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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14일은 서울에 올 겨울 뿐만 아니라 근래에 드문 추위가 온 날이었다. 이번 산행코스는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길이었다.

 

북한산성은 백제 때 쌓아진 토성을 조선 숙종 때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해서 석성으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백제가 성을 쌓을 당시의 외세는 주로 신라나 고구려였다. 그곳을 가기 위해 북한산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현재 남북 대립의 성벽이나 다름없는 휴전선이었다. 언젠가는 우리도 남북이 서로 왕래하며 휴전선은 다만 역사책에만 그어져 있는 선이 될 날을 그려 보았다.

 

북한산성 북한산성계곡 입구에서 바라다 보이는 원효봉, 백운대, 노적봉.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끄럽게 뾰족한 봉이 노적봉이다.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앞에 내리니 멀리 왼쪽으로 원효봉과 노적봉이 가까이 다가온다. 북한산을 오르는 길로는 이쪽이 처음이다. 인솔자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 보이는 능선과 봉들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지도를 보며 북한산성이 이어지다가 끊어져 있는 곳인 백운대나 노적봉 근처를 가리키면서 이곳은 워낙 산새가 험해서 성을 쌓지 않아도 적이 쳐들어오지 못할 천해의 요새이기에 성을 쌓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북한산성 산길에서  대서문이 나무들 사이로 보인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대서문을 통과해 중성문을 지나 노적사와 근처에 있는 행궁지까지만 걷는 길을 택했다. 평소 산을 오르지 않는 주부들과 함께 눈길을 가야 해서 인솔자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집안일은 노동이지 운동이 아니다. 그렇기에 평소 걷기나 산행을 하지 않았던 주부들에게는 정상을 오르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나 겨울 눈산은 더 힘들고 위험 할 것이다. 해서 북한산 아랫자락을 돌아보자는 취지로 모였는데 첫 번의 산행이 우이령을 넘는 것이었고 두 번째가 북한산성 계곡을 따라 오르게 된 것이다.

 

북한산성 길을 따라 걸을 수록 앞 봉에 가려 보이지 않던 봉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했다.

이 계곡 길은 매우 넓었다. 차들이 대서문을 넘나들었다. 여름에는 이곳에 있는 식당차와 절에서 움직이는 차들과 계곡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해서 매우 복잡한데 겨울은 한적해 걸을 만하다고 한다.

 

춥기도 했지만 눈 덮인 산길에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바람 한 점 없는 쨍한 날씨가 산속으로 들어오니 오히려 추운 기운이 가시고 따뜻하다. 왼쪽에는 원효봉, 백운대, 만경대가 앞에서 인도를 하고 오른쪽으로는 의상능선이 길게 뒤따라 왔다. 산 위 쪽으로 점점 걸어 들어갈수록 안보이던 염초봉과 인수봉도 나란히 나타난다.

 

북한산성 중성문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산길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백운대 쪽 넓은 길 따라 걸어 오르니 대서문이 나온다. 대서문을 들어서자 그곳은 고양시가 되었고 행정명은 북한동이었다. 북한산의 경치보다 먼저 눈앞에 보이는 것은 '대책없는 이주사업 세입자만 죽어나네'라는 현수막이었다.

 

이미 이주는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현수막을 잘 살펴보니 모두 '세입자'란 글자가 들어 있다. 아마도 집주인들은 벌써 이주를 한 모양이고 갈 곳을 찾기가 버거운 세입자들만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가 싶었다.

 

가다보니 듬성듬성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깨끗해 보이는 한옥도 있었는데 안내판에는 주민은 이미 이주가 되어 있어서 곧 철거 대상이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직 몇 군데의 식당들은 남아서 영업을 하고 있다. 식당들에서는 겨울철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맞기 위해 삼삼오오 남자들이 모여 장작을 패고 식당 벽을 따라 열심히 쌓고들 있다.

 

북한산성 노적봉과 노적사와 하늘. 이곳의 주인공은 노적봉이었다.

정부에서 북한산을 보호하기 위한 이주정책을 폈나본데 집주인들은 그나마 보상을 받아 나갔을 것이나 도시에서 밀려나 산 속까지 들어와 더부살이한 세입자들에게는 이주정책이 마른 하늘의 날벼락 같았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다. 자연보호도 하고 세입자도 제대로 이주 시켜주는 정부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그러고 보니 이곳도 조만간 책 속에서나 '어느 때까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주택지였다'라는 흔적을 한 줄 글로 만나게 생겼다.

 

북한산성 노적사에서 바라다본 의상능선. 국녕사라는 절이 능선 품안에 폭 파묻혀 있었다.

대서문을 지나 얼마쯤 지나면서부터는 녹지 않은 눈길이었다. 눈이 쌓여 있어서 오르는 길이 그리 미끄럽지는 않았다. 약간의 오르막길인 좁은 산길을 걷다보니 중성문이 나온다.

 

중성문은 숙종 때 대서문쪽이 적들에 의해 뚫릴 경우를 대비해서 축조되었다고 한다. 성벽이 눈으로 덮여서 낮게 보인다. 산을 조금 더 오르면 노적사가 나오고 그곳에서는 노적봉이 주인공이었다. 노적사에서 앞산을 바라보니 의상능선 가운데에 국녕사라는 절이 점처럼 하얀 눈 지붕으로 보인다. 노적사에서 대남문 쪽으로 방향을 잡아 오르는 길에는 주춧돌만 남은 산영루라는 정자가 있던 터가 보인다. 이곳의 경치가 좋아 조선의 시인들이 모여 시회를 연 곳이라는데 안내판에는 다산 정약용의 시 한수가 적혀있었다.

 

북한산성 행궁지 안내판. 규모가 꽤 큰 궁궐로 보이는데 주변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

 

한 때 이 산에서 대찰의 역할을 했다는 중흥사지를 지났다. 얼마 오르지 않아서 대남문과 청암동 암문으로 갈리는 이정표 앞에 행궁이 있었던 곳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있다. 이 행궁은 전란에 대비한 임시궁궐로 숙종 때 축성된 130여 칸의 규모였다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눈이 쌓여 있지 않을 때는 그나마 축대였을 것 같은 돌들이 보인다고 인솔자가 말해준다. 그 앞에서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가 나란히 형제처럼 붙어 있는 모습을 감상하고 하산했다.

 

북한산성 행궁지에서 바라다본 왼쪽부터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삼각산의 삼형제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하산 길에는 아이젠을 착용했는데 뽀드득 소리가 귓가에 음악처럼 달라붙어 따라왔다. 사실 왕복 2시간 정도의 거리 밖에는 안 되는 길이었지만 그 안에서 과거의 번영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보듬지 않으면 세월의 흔적에 시나브로 사라져 버리는 터들도 만났고, 앞으로 곧 사라질 사람살이의 터전도 만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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