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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 방치된(?) 귤나무, 지난밤 겨울의 기운을 담아 시원하고 새콤함이 온 몸을 깨운다.
▲ 귤나무 정원에 방치된(?) 귤나무, 지난밤 겨울의 기운을 담아 시원하고 새콤함이 온 몸을 깨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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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를 볼 생각에 아침 일찍 리틀 프랑스 정원을 찾았다. 정원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담장에는 커다란 귤나무가 귤을 풍성하게 달고 있다. 귤 크기가 커서 하귤인가 했는데, 색깔이 영락없이 귤이다. 하나를 따서 먹어보니 시중에서 상품으로 사는 귤보다는 시큼하지만 귤은 귤이었다.

따스한 남도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겨울이니 시큼한 맛과 시원한 맛이 어우러져 온 몸을 깨운다. 귤 수확이 끝난 요즘도 귤 밭에 가보면 남아있는 귤이 있다. 인심이 좋은 제주도에서 그 귤은 그냥 따 먹어도 된다. 물론, 한두 개 맛보는 정도지만.

고개를 살포시 숙이고 있는 모습이 자기 모습에 취해 연못을 바라보는 나르시소스를 닮았다.
▲ 수선화 고개를 살포시 숙이고 있는 모습이 자기 모습에 취해 연못을 바라보는 나르시소스를 닮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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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몇 년 만에 수선화가 막 피어나는 것을 보았는지 가물거린다. 겨울이면 늘 제주의 수선화가 보고 싶었다. 종달리에 살 때에는 어김없이 12월이 시작되는 첫 날, 한 두 송이라도 피어주었다.

수선화의 달콤한 향기는 이른 아침과 저녁에 유별나다. 자아도취 혹은 자존심이라는 꽃말을 가진 수선화는 나르시소스의 전설과 관련이 있다. 가히, 자기의 모습에 홀딱 반할 만한 모습이며,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이 나르시소스가 연못에 비친 자기의 얼굴을 바라보는 형상이다.

먼나무의 붉은 열매가 탐스럽다.
▲ 먼나무 먼나무의 붉은 열매가 탐스럽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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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한 겨울에도 꽃과 열매가 많다. 노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 중 가장 화려한 열매는 뭐니 뭐니 해도 먼나무의 붉은 열매다.

저거이 먼나무여? / 먼나무!
쩌어거~~ / 먼나무랑게!
놀리능겨 먼나무냐고 묻잖여? / 먼나무랑게!
.................
되묻지 말아요/  내 이름은 먼나무랍니다.

제주도 관덕정에 정원에 있는 글이란다. 먼나무, 그 붉은 열매가 매혹적이라 제주에 살게 되면 정원에 석류나무와 더불어 꼭 심고 싶은 나무 중 하나다.

아래의 꽃은 이전자료이다. 멀구슬나무에 서려있는 제주여인의 아픈 삶의 단편들이 마음 아프다.
▲ 멀구슬나무 아래의 꽃은 이전자료이다. 멀구슬나무에 서려있는 제주여인의 아픈 삶의 단편들이 마음 아프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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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에 있는 모이세 식당에서 해장국을 먹고 한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산간도로를 거쳐 몇몇 마을을 돌아보고 공항으로 가면 얼추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제주 여행은 관광지 중심으로 도는 것보다 중산간도로를 따라 제주의 마을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다.

중산간 마을에 들어서니 돌담 사이로 멀구슬나무가 노란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겨울을 나고 있다. 그런데 띄엄띄엄 자주 눈에 띈다. 꽃만 볼 때에는 왜 멀구슬나무일까 했는데, 열매를 보면 그래서 멀구슬나무구나 알게 된다.

멀구슬나무는 제주도 여성의 나무였다고 한다. 꽃이 예쁘고 향기가 고와서가 아니라 조금은 슬프고 고단한 여성의 삶과 관련이 있는데 원하지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멀구슬나무 껍질을 벗겨 달여 마시곤 했단다. 그러니까 낙태용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멀구슬나무는 울안에는 심지 않고 으슥하지만 누구든 볼 수 있는 곳에 심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울안에는 거의 없고, 주로 돌담 밭 주변에 한두 그루씩 자리하고 있다.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을 만큼이다. 요즘이야 그 쓰임새를 잃어버리고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지만, 그 나무 하나에도 제주인의 고단한 삶이 들어있는 것이다.

제주의 돌담을 감싸고 있는 송악, 좌측은 꽃, 요즘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 송악 제주의 돌담을 감싸고 있는 송악, 좌측은 꽃, 요즘 꽃이 지고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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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돌담을 감싸고 있는 사철 푸른 잎을 가진 송악, 제주의 돌담과 아주 잘 어울리는 식물이다. 엉성한 돌담을 꽉 껴안고 기세 좋게 자리를 잡으면 그 돌담은 웬만한 바람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송악은 공기뿌리를 가지고 있다. 공기뿌리는 흙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덩굴줄기에 무성하게 뿌리가 나온다. 공기뿌리다보니 흙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보다 수분섭취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철 내내 그 푸름을 잃어버리는 적이 없고, 바위 같은 것들을 벗 삼아 피어나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고창 선운사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송악도 바위를 벗 삼아 자라고 있다.

비파나무의 열매는 5월쯤 익는데 그 모양이 비파를 닮았다.
▲ 비파 비파나무의 열매는 5월쯤 익는데 그 모양이 비파를 닮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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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임에도 꽃이 지지 않는 섬 제주도, 비파나무가 대단한 기세로 꽃망울을 졸망졸망 달고 피어나기 시작한다. 솜털 옷을 입은 꽃망울, 저 꽃이 지고나면 5월이면 비파를 닮은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그 맛은 망고 맛 같은데 갈증을 떼어버리기에 그만이다. 비파 서너 개만 먹으면 5월의 햇살에 목말랐던 몸이 촉촉해 지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의 밭과 뜰에는 비파나무가 많다. 비파열매에 들어있는 큰 씨앗은 생존력도 강해서 그냥 열매를 먹고 씨앗을 버리면 또 그곳에서 싹이 나고 나무가 된다. 자연히 사람들이 주로 활동하는 곳을 근거지로 삼아 자랐고, 비파나무 열매는 제주인의 특별한 과일이 되었던 것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나무는 녹나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제주하면 떠오르는 나무가 녹나무가 아니라 팽나무다. 제주 여행을 하면서 오름을 보지 못하면 제주여행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닌 것처럼, 팽나무를 보지 않으면 제주의 나무를 제대로 보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팽나무가 보고 싶었다. 팽나무를 보려면 명월리로 가야한다. 빨강 애마가 명월리로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어집니다.)


태그:#먼나무, #비파나무, #멀구슬나무, #수선화, #송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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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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