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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날마다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고 한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날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삶의 이치랄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같은 것을 발견하고 전율한다.

이 겨울은 참 춥기도 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밤에도 이불을 덮지 않는다. 바닥에 요가 깔리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신다. 그나마 이불은 가끔 덮고 주무시기도 하지만 요는 처음부터 아예 그 위에 올라앉지도 않고 밀어내 버린다. 그 바람에 난방비를 조금 더 지출해야 한다. 그놈의 난방비가 무서워서 방 하나를 폐쇄하고 하나만 쓰는데도 난방비는 줄어들 줄을 모른다.

어머니가 만일 내복 바람으로 그렇게 이불이 없이 주무시고자 한다면 난방비는 배가될 것이다. 그런데 다행이랄까 어쩔까, 어머니는 밤에 옷을 벗는 법이 없다. 벗고 자야 한다고 해도 안 한다고,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거절하신다. 뿐만 아니라 밤이면 꼭꼭 버선을 챙겨 신으신다. 낮에도 물론 버선을 신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맨발일 때도 있는 반면 밤에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이 갑옷을 챙기듯이 두터운 겉옷에 두툼한 버선을 신고 꼿꼿하게 앉아 텔레비전을 응시하다가 언제인지 알 수도 없는 시간에 새우처럼 구부린 채로 누워 잠들어 있곤 한다.

밤이면 잠자리에서 요는 예쁘게 개켜놓고, 이불은 덮었다가도 이내 밀어놓는 어머니
 밤이면 잠자리에서 요는 예쁘게 개켜놓고, 이불은 덮었다가도 이내 밀어놓는 어머니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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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을 몰랐을 때는 어머니와 밤새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었다. 요를 깔아놓고 어머니를 억지로 안아서 그 위에 앉히면 어머니는 금방 그것을 밀어내 버렸다. 이불을 덮어드리면 처음에는 잠자코 계시지만 잠시 뒤에 보면 어느새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밀어놓은 이불을 어머니는 잠결에 가끔 끌어다가 덮기도 하지만, 잠이 깨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밀어내는 것이었다.

이게 대체 뭔가. 아무리 치매가 가족을 슬프게 안타깝게 하는 증세라고 한다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왜 이런 방식으로 자식을 힘들게 하는 것인가. 한편으론 그렇게 원망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기에 뭔가 있다, 하는 생각에 혼자서 가끔 골똘히 생각에 빠져드는 날들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깊은 비밀을 발견하고 명확하게 아,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까지 8개월여가 걸렸다. 처음에 나는 아마 공짜로 그것을 얻겠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조하고, 그래서 답답하고, 그래서 가끔은 짜증을 내기도 했었다. 어리석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단 말인가. 별다른 노력도 없이, 관심의 집중도 없이, 성찰과 헤아림과 마음의 지극함도 없이 어떻게 보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그러한 노력은 그렇게 하겠다고 작정을 하고 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포기하고 체념한 채로 그저 지켜보고나 있었던 것이 연구 비슷하게 되어진 것일 뿐이었다.

밤이면 버선을 챙겨신는 어머니. 양말을 신었었지만,버선을 신기 시작한 뒤로 양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버선을 신을 때마다 "내 발에 꼭맞는다고, 맞춘 것 같다"고 즐거워하신다
 밤이면 버선을 챙겨신는 어머니. 양말을 신었었지만,버선을 신기 시작한 뒤로 양말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버선을 신을 때마다 "내 발에 꼭맞는다고, 맞춘 것 같다"고 즐거워하신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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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을 켜고 끄지도 못하고, 텔레비전을 켜고 끄지도 못하는, 그러면서도 밤이면 시간 단위로 화장실 출입을 해야만 하는 어머니를 위한답시고 맨 처음 생각해낸 것이 요강이었다. 사실은 밤새 켜둬야 하는 전기료가 무서워서였을 것이다. 방에 요강을 들여놓고, 화장실 전등은 끄고 방에는 전등 대신 텔레비전을 밤새 켜두면 전기료가 절감될 수 있다는, 딴에는 썩 좋은 아이디어라 여기고 혼자서 무릎을 치기도 했다.

이 안에 수련을 키웠던 것을,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깨끗이 거절당했다
 이 안에 수련을 키웠던 것을,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깨끗이 거절당했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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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은 예전에 수초를 기르겠다는 생각으로 어디서 얻어온 사기로 된 고풍스런 것이 하나 집에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나 보다 어쩌고 흐뭇한 미소까지 지어가며 깨끗이 씻어서 방에 들여놓고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이제부터 소변이 마려우면 이걸 쓰시라고.

어머니는 가타부타 아무런 말이 없이 요강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표정이 참 복잡했다. 다른 일은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자 하면 알았다고 응, 응, 하시는데 요강 앞에서는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는 것이었다. 아들이 만일 생각이 좀 더 깊은 사람이었다면 그때 벌써 알아차리고 요강을 포기했을 테지만, 표정 하나에서 열 가지 이야기를 읽어낼 만한 눈이 없는 탓으로 요강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어쨌든 어머니는 사흘이 지나도록 요강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당신 몸에 요강이 닿는 것도 무섭고 끔찍하다는 듯 언제나 한 걸음 이상 거리를 두고 있었고, 누워서 잠을 잘 때도 그쪽으로는 얼굴을 돌리지도 않았다. 그쯤 되면 무엇인가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으련만, 어리석은 아들은 어머니의 그런 태도에서 마지막 남은 자존을 읽지는 못하고 여전히 요강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사기 요강을 거절당하고 이것을 사 왔지만, 혼자서 무안만 느끼고 말았다
 사기 요강을 거절당하고 이것을 사 왔지만, 혼자서 무안만 느끼고 말았다
ⓒ 김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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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이 너무 오래된 것이라서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인가, 사기로 된 것이라서 너무 무겁고 버거운 것인가, 등등 이런 따위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아들, 급기야는 시장에 나가서 가볍고 번쩍번쩍 빛나는 스테인레스 요강을 삼 만원이나 처들여 가며 사오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 밤, 어머니는 캄캄한 화장실에서 헤매다가 넘어져 오른쪽 눈꼬리가 찢어지는 사고를 당해야만 했다.

아 이,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미련한 놈이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고 남의 탓만 하더라고, 나는 여전히 문제의 핵심을 내 안에서 찾으려 하기보다는 어머니에게서 찾고자 헛된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것이 물이었다. 물, 목이 마를 때 마시는 물, 밥을 먹고 난 뒤에 마시는 숭늉 같은 것들, 그랬다. 어머니는 물을 안 마시고 있었고, 물로 된 음식 또한 피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새삼스럽게 발견한 현상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우유라든가 주스 같은 음료수를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목이 타기 쉬운 여름에도 음료수를 드리면 들었다 놓았다 잠깐 입에 대보고는 밀어놓기 일쑤였다. 목이 마르다고, 물을 좀 마셔야겠다고 하시면서도 물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조금 떠서 입술이나 축이고 말았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도 그저 어머니가 체질이 변했나보다 여겼을 뿐 오줌과 연결해서 생각해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물은 곧 오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머니는 진즉에 그것을 간파하고 가능한 한 물로부터 멀어지고자 내심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을, 아들은 전혀 다른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물을 피하는 것이 오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아직 그것이 이불과도 관련이 있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왜 밤이면 그렇게도 자주 화장실 출입을 하시는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랬다. 그 생각을 하고 관찰을 해보니 역시 또 그랬다. 낮에는 서너 시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 화장실을 어머니는 밤만 되면 한 시간에 한 번, 혹은 삼십여 분에 한 번꼴로 드나드는 것이었다. 화장실 문 앞에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여보면 오줌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짐작컨대 찻숟갈로 하나 정도일 것 같고, 어떤 때는 두세 방울 정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다가 그만이었다.

괄약근 기능이 약화되어 그렇게도 자주 요의가 느껴지나 보다, 생각할 수도 있기는 했지만, 낮과 밤의 차이가 심한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한 그것을 답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야아 이것 참 어렵구나, 어렵구나, 내심 속으로 그런 소리나 중얼거리며 또 며칠이나 아니 몇 달이나 흘렀던가.

사흘 전의 일이었다.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이른 아침이었다. 어머니의 행동이 아주 이상했다. 뭔가를 구석에 숨기는 것 같았고, 숨긴 그것을 다시 꺼내 이미 개켜놓은 이불 속에 넣고 있었고, 잠시 뒤에 그것을 다시 꺼내 옷자락 속에 넣는가 싶더니 도로 꺼내들고 손으로 둘둘 말아 주먹에 꼭 쥐고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누운 채로 숨소리까지 죽여 가며 살펴보는 내 눈에 그것은 속옷이었다. 팬티였다.

엄마 지금 뭐해? 소리가 내 입에서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지만, 무슨 계시를 받았는지 나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젖은 속옷을 벗어들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구석에 숨겼다가 다시 꺼냈다가 허둥거리는 어머니를 지척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나, 그제야, 그 순간에 이르러서야 쌓이고 쌓였던 비밀의 덩어리가 무너지면서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이었다. 어머니에게는 아마도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는 것이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이면서도 최종적인 어떤 것, 마지막 방어선 같은, 자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존엄성이라고나 해야 할 어떤 것이었을 게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던가. 어머니는 치매라고 하는 그 무시무시한 것에 잡혀 있으면서도 정신만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나름 사력을 다해 투쟁하고 있었던 것을, 아들은 그저 편리함만을 생각하고 왜 요강을 쓰지 않느냐, 왜 이불을 덮지 않느냐, 투정이나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모르겠다. 내가 여자였다면 여자인 어머니의 이런 심층심리를 좀 더 일찍 간파하고 크게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눈물을 글썽였을지도.


태그:#인간의 존엄성, #어머니, #치매, #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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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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