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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주. 걸쭉한데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참 좋다.
 모주. 걸쭉한데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이 참 좋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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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섣달 긴긴 밤이라더니 겨울밤이 길다. 겨울밤, 입이 참 궁금하다. 뭐 맛난 게 없을까? 고구마나 구울까? 겨울철 밤엔 고구마만한 간식이 없다.

그런데 마침, 아내가 보던 책을 덮으며 말을 꺼낸다.

"여보, 우리 막걸리나 한 잔씩 할까요?"
"웬 일이야! 당신이 막걸리를 다 마시자 하고!"
"모주는 막걸리 아닌가? 우리가 담근 모주 한 잔 어때요? 따끈하게!"
"모주? 그거 참 좋겠네."

아내는 자기가 만든 모주를 맛보며 즐거워 했다.
 아내는 자기가 만든 모주를 맛보며 즐거워 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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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젖는 아내가 요즘 모주(母酒) 맛에 후딱 반한 것 같다. 아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두 번째 모주를 담갔다. 모주를 마시며 제법 술꾼(?) 행세를 한다. 술맛은 모르면서 모주 맛은 아는 척 한다. 아내는 술기운도 없는 모주를 보약처럼 마신다.

모주를 먹어보니 그 맛이 제법

한 달 전쯤 아내는 전라도 전주에 다녀왔다. 모임이 있어 죽과 장이 맞는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났던 모양이다. 밤새 이야기꽃을 피우고, 잘하지도 못한 술도 몇 잔 마셨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아내 일행들은 아침식사를 위해 콩나물국밥집을 찾았다고 한다. 간밤의 숙취를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콩나물국밥은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전주가 고향인 친구가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지르더란다.

"아줌마, 여기 해장술부터 주세요!"

무슨 해장술이야? 뜬금없는 친구 제안에 일행들은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술꾼도 아니면서 이른 아침 해장술이라니! 숙취는 술로써 속을 푼다더니 정말 그러나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뿐만 아니라 일행들 모두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너, 술로 속을 달래려는 거야! 우린 뜨끈한 콩나물국이면 돼!"
"이런 숙맥들, 여기 해장술은 다르다고! 너희들도 맛을 보면 이 맛을 잊지 못할 걸! 색다른 술이니까 기대해보라고!"

그런데 주방에서 들리는 소리는 달랐다고 한다.

"모주 말하는 거죠? 따끈하게 데워 올게요!"

해장술이라더니 웬 모주? 모주가 뭐야? 일행들은 궁금증이 더하였다고 한다. 모주라는 말은 들어본 것도 같은데, 그게 해장술인가? 아무튼 모주에 대한 기대와 내키지 않은 해장술에 대한 우려가 섞였던 모양이었다.

곧이어 주방에서 이른바 해장술이 나오고, 술을 시킨 친구가 모두에게 한 잔씩 따랐다고 한다. 그리고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쭉한 모주로 건배를 외치더란다.

"맛은 달달하고, 속은 확 풀릴 것이니까 쭈욱 들이켜 보자구! 그리고 우리들의 건강과 우정은 잊지 말고!"

졸지에 해장술을 맛본 일행들 표정은 마시기 전과는 딴판이었다고 한다. 술기운은 없고, 부드럽게 목을 넘기는 맛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맛은 달짝지근하고, 쓰린 속도 풀리는 것 같고!

"모주가 뭐야?"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전통술은 약주와 탁주, 소주로 나뉜다. 막걸리를 빚을 때 위쪽에 맑게 떠오르는 술은 약주라 하고, 남은 찌꺼기를 물에 타 체로 걸러내면 탁주이다. 탁주를 흔히 막걸리라 부른다. 그리고 막걸리를 소주고리에서 증류시키면 소주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모주가 있었다. 모주는 사전적인 뜻으로는 밑술, 또는 술을 거르고 남은 찌꺼기라는 뜻이다. 막걸리를 걸러내고 남은 찌꺼기를 술지게미라고 하는데, 이를 버리지 않고 물을 타서 뜨끈뜨끈하게 끓여 먹었다. 그러니까 모주는 알코올 농도가 낮아 맹물을 겨우 면하는 정도로, 우리네 배고픈 시절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술 아닌 술인 것이다.

그런데, 모주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설이 많다. 조선조 광해군 때 인목대비 모친이 귀양지 제주에서 빚었던 술이라 해서 대비모주(大妃母酒)라 부르다가 모주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제주도에서는 아직도 막걸리를 모주라 부른다. 또 한 가지 설은 어느 고을에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아들이 있어 어머니가 막걸리에다 각종 한약재를 넣고 달여 아들의 건강을 챙기느라 만든 술이라 하여 '어머니술' 모주(母酒)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허나, 전주의 풍류가객들은 모주(母酒)가 아니라 어스름 새벽 어두컴컴한 때 마시는 해장술이라 하여 모주(暮酒)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집에서 모주 담그기

아무튼 아내가 전주에서 맛본 술맛은 어땠을까? 아마 어머니가 아들의 건강을 위해 만든 '어머니술' 모주가 아닌가 싶다.

아내는 모주에 대한 부드러운 맛이 자기 입맛에 맞아 모주를 담가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모주 담그는 법을 꼼꼼히 메모해왔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내게도 맛보여주고 싶기도 했으리라.

우리는 모주 담그기에 도전했다.

막걸리를 가지고  모주를 만든다.
 막걸리를 가지고 모주를 만든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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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 인삼가루, 칡가루, 대추, 생강, 감초, 계피가 들어간다.
 모주를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 인삼가루, 칡가루, 대추, 생강, 감초, 계피가 들어간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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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끓이면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다. 6도 막걸리가 2도 정도 된다.
 막걸리를 끓이면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다. 6도 막걸리가 2도 정도 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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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에 재료를 넣고 끓이면서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눌지 않도록 한다.
 막걸리에 재료를 넣고 끓이면서 나무주걱으로 저어가며 눌지 않도록 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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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재료를 넣고 충분히 끓인 뒤 체로 걸려내면 모주만들기는 끝난다.
 각종 재료를 넣고 충분히 끓인 뒤 체로 걸려내면 모주만들기는 끝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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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모주를 담그려는데 한 가지가 없네!"
"그거 뭔데?"
"칡가루요."
"그거 빼고 담그면 되지!"

그래도 아내는 전주에서 먹었던 맛 그대로 재현하고 싶다고 했다. 이곳저곳 수소문을 하여 칡가루를 구했다. 모주에 들어가는 재료가 모두 준비된 셈이다. 인삼가루, 칡가루, 대추, 감초, 계피, 생강, 그리고 막걸리. 그야말로 몸에 좋은 재료이다.

모주 만들기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솥에 막걸리 5L을 붓고 끓인다. 생강을 얇게 썰어 대추와 감초를 함께 넣고 끓인다. 그리고 인삼가루, 칡가루를 넣고 솥이 눌지 않도록 나무주걱으로 젓는다. 모든 재료는 각각 50g 정도면 된다. 술 색깔이 암갈색으로 변화면서 양이 줄어들면 계피가루를 넣고 한소끔 끓인다. 마지막으로 걸쭉해진 것을 체로 걸려내면 맛과 향이 좋은 모주가 탄생한다.

모주에서 단내가 풍겼다. 아내는 맛을 보며 전주에서 마셨던 맛과 똑 같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정성이 들어간 모주는 아내 말마따나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걸쭉한 모주 한 잔에 입이 궁금한 긴긴 겨울밤이 지나간다.


태그:#모주, #해장술,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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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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