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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1924년에 문을 연 '통인가게'다. 갤러리에서부터 각종 기념품까지는 전부 파는 인사동의 종합판매장이다. 한사람의 주인이 전체의 매장을 관리하는 곳이라 분위기의 통일과 상업주의를 막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입구에 노점을 내어 약간은 시끄럽기도 하고 분주하여 요즘은 자주 찾지 않는 곳이다.
              
인사동 최고의 만물상
▲ 통인가게 인사동 최고의 만물상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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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사동에 갔을 때 이곳 한곳에서 모든 것을 구경하고 쇼핑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과 함께 간혹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 최초의 공예품 전문 화랑으로 한때는 미술잡지를 발행하기도 하는 등 우리의 전통문화를 알리고 가꾸는데 일조한 공로가 있는 가게다.

이어 길을 조금 더 내려가면 좌측에 사찰음식 전문점이 '산촌'이 보인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음식 전문점으로 음식 맛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매일 저녁 다양한 국악 이벤트를 열며, 후식으로 나오는 한방차도 유명하다.

이어 인사동 큰 사거리를 지나서 우측에 있는 중국집 '신신원'이다. 난 정말 어린 시절부터 짜장면을 좋아했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중국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생일이나 잔치 날 정도였는데, 이곳의 짜장면은 요즘 보기 드문 수타로 정말 맛있다.
                        
정말 짜장면이 맛있는 곳이다.
▲ 중국집 신신원 정말 짜장면이 맛있는 곳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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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사동으로 산책을 갔다가 연우랑 같이 짜장면을 한 그릇씩 먹었는데, 맛에 감격한 연우가 "아빠! 자꾸 말 시키지마, 정말 맛있는 짜장면 먹을 때는." 이라고 말해 웃음이 나왔던 곳이다.

아무튼 나도 이곳을 지날 때면 늘 어린 시절과 고향의 짜장면이 생각난다. 요즘은 보기 드문 수타를 하는 곳이라 인사동을 지나는 외국인이나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아주 좋은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앞의 통유리는 면을 뽑는 기술자의 솜씨 자랑장 같다.

그리고 신신원의 맞은편에는 '스타벅스 커피점'이 있다. 전통 문화의 거리답게 인사동 한가운데 있는 이곳의 별 다방과 안국역 인근에 있는 별 다방은 한글로 간판이 걸려있다. 한글로 간판을 단다고 특별히 변하는 것이 있으랴만 우리의 거리를 지켜내려는 상인들의 노력이 조금은 느껴지는 것 같아 가끔 지나면서 웃음 짓는 곳이다.
               
한글 간판을 단 인사동의 별다방
▲ 스타벅스 한글 간판을 단 인사동의 별다방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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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에서 친구가 왔을 때 인사동에 한글 간판을 단 별 다방이 있다고 했더니 확인을 하고 싶다고 하여 같이 동행한 적이 있기도 한 곳이다.

그리고 조금 아래의 골목 안에 있는 인사동에 있는 117년 된 '승동교회(勝洞敎會)'가 보인다. 원래 지금의 을지로 롯데호텔 인근의 곤당골에서 설립된 승동교회는 1902년에 이곳에 터를 잡았다.
                 
독립운동의 산실로, 아주 오래된 교회이다
▲ 승동교회 독립운동의 산실로, 아주 오래된 교회이다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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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유명한 것은 3. 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이웃한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였다면, 거사 직전인 2월 20일 학생대표들의 모임인 학생지도자회의가 이곳에서 열렸다. 3.1운동 당시에도 학생들이 이곳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는 등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다.

또한 1939년 일제가 평양의 장로회 신학교를 폐교하자, 한국인들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신학교인 '조선신학교(현재의 한신대학교)'가 이곳에 세워져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교회의 본당건물은 바닥이 직사각형이고 지붕은 십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형태가 웅장하고 동적으로 건축되어 있다. 측면은 2단 박공으로 처리하여 수직 상승 감을 더하였고 창문의 아치는 반원형이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여러 차례 부분적으로 수리를 했으나 기본적인 형태나 구조는 변함이 없으며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2001년 서울시 지정 유형문화재가 되었다.
                     
승동교회에서 본 이웃의 목욕탕 굴뚝
▲ 목욕탕 굴뚝 승동교회에서 본 이웃의 목욕탕 굴뚝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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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을 사진을 찍다 보니, 본당 뒤편에 교회와 이웃한 목욕탕의 굴뚝이 보인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인사동에 사람들이 많이 살던 시절에는 이곳에 목욕탕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상인들과 직장인들이 많아 신축 건물 몇 곳에 사우나가 있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이곳에도 사람들이 많이 살고 목욕탕도 있었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놀라웠다.

교회에서 나와 '남인사마당'으로 갔다. 지난 몇 달간 공사 중이라 너무 어수선하던 곳이었는데, 최근 완공이 되어서 화장실과 공연장 등이 잘 꾸며져 있는 것이 보기에 좋다. 공연장 벽에 임금의 용상 뒤편에 그려지는 '오봉일월도'가 그려져 있는 것이 약간은 눈에 거슬렸다.
                  
왜? 오봉일월도가 이곳에 그려졌을까? 용상에 앉고 싶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
▲ 남인사마당 왜? 오봉일월도가 이곳에 그려졌을까? 용상에 앉고 싶은 사람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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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누가 이 공연장 무대에 앉아서 행사를 할지 모르지만, 왕의 뒷자리에 그려지는 그림을 이곳에 그린 의도가 무엇일까? 행사장 무대 위에 앉아서 용상을 꿈꾸는 사람이 미리 부탁하여 그린 것 같아 불순한 의도가 아닌가 하는 더 불순한 생각이 들었다. 그냥 소나무 그림도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하필이면 왜? 오봉일월도일까?

그리고 인사동의 남쪽 초입인 옛 '새마을운동중앙회 건물터'로 간다. 이곳은 과거 5공 시절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가 회장으로 있으면서 '리틀 소통령'의 권세를 누리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건물이 철거되어 작은 공원과 그림을 그리는 노점이 들어와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극장'이 있던 곳이다. 3층 규모의 벽돌 건물로, 영화과 연극공연을 겸한 공연장으로 사용되었다. 개관 당시 최상급의 극장시설이었다. 공연은 주로 기생 춤과 서양댄스, 판소리, 연극, 외국영화 상영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영화제작도 하였으며, 1923년에는 토월회(土月會)의 창립공연을 하는 등 한국 연극영화사에 큰 공헌을 한 극장이다.

그리고 길을 건너 관철동에 위치한 국내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었던 '우미관(優美館) 터'로 간다. 현재는 맥도날드와 우미호텔이 위치한 곳으로, 1910년 고등연예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져 15년 우미관으로 개칭된 곳으로 2,000명이 넘는 관중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 규모가 켰고 명성이 높아 서울을 방문하는 지방 사람들의 관광코스로도 손꼽혔다.
                           
관철동의 우미관 터
▲ 김두한의 우미관 관철동의 우미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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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무성영화를 상영하다가 1928년 최초로 발성영화를 상영하였다. 광복 때까지 단성사, 조선극장 등과 더불어 일류 개봉극장으로 이름을 떨쳤던 우미관은 1959년 화재로 소실되었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제일의 주먹이었던 김두한의 사무실이 있던 곳이라 시대의 풍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늘 애정과 관심이 가는 곳 중에 하나다.

다시 길을 건너면서 3. 1독립운동의 산실 '탑골공원'을 바라보며, 인사동을 거슬러 올라 사거리 인근에 위치한 '사동면옥'에서 북한식 만둣국을 한 그릇 했다. 사동면옥은 인사동에 2개의 식당을 운영하는 곳으로 도가니탕, 설렁탕, 불고기와 냉면, 만두와 만두전골 등이 유명하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이상하게도 너무 만두를 좋아해 자주 이곳을 찾는다.

아무튼 일행은 이곳에서 맛있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 달을 기약하며 해산했다.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시 종로/중구 걷기 모임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



태그:#인사동 , #승동교회 , #우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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