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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어느새 1년. 지난해 말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됐고 지난 9일 장례도 치렀지만, 서울 곳곳에 아직 '용산'이 있다. 3년째 철거사업이 진행 중인 상도동의 눈 덮인 산동네에도, 밀어붙이기식 개발에 항의하며 주민이 자살한 마포구 용강동에도, 우여곡절 끝에 이주협상을 타결해 뿔뿔이 동네를 떠나는 왕십리에도 있다. <오마이뉴스>는 참사 1주기를 맞아 '재개발제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았다. [편집자말]
지난 1월 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에 철거민 5명의 얼굴을 담은 대형 '부활도'가 놓여 있다.
 지난 1월 9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참사 희생자 영결식에 철거민 5명의 얼굴을 담은 대형 '부활도'가 놓여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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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보강 : 19일 오후 5시 15분]

용산참사 현장을 지키던 유가족들은 요즘 이사를 준비 중이다. 남일당 분향소는 물론 가족들이 임시 주거하던 삼호복집도 오는 25일까지 모두 비워주기로 했다. 용산4구역의 철거는 오는 6월부터 재개된다. 벌써부터 언론에서는 용산을 '부동산 투자 유망 지역'으로 꼽고 있다.

지난 9일 용산 철거민 노제에서 고 이성수씨 부인 권명숙씨는 "호시탐탐 저희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는 굴착기와 덤프트럭을 보면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면서 "우리가 용산을 떠난다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이곳을 부자들의 천국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참사 발생 직후인 지난해 2월부터 정부는 발 빠르게 '제도 개선방향'을 발표했고, 지난 1년 동안 도시정비법 조항이 열군데나 개정됐다.

그런데도 용산 유가족들과 범국민대책위원회는 협상을 타결하는 순간에도 "재개발정책을 전환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일부 언론에서 말하듯이 '떼잡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러나 도시정비업체 측 상황을 봐도, "1년 동안 바뀐 게 없다"는 주장은 억지가 아닌 듯 하다. 백준 J&K 도시정비 대표는 "참사 터지고 초기에는 약간 경각심을 느꼈지만 재개발조합이나 업체가 볼 땐 힘들어진 부분은 없고 세입자들이 더 힘들어졌다"고 전했다.

김진애 의원(민주당)은 19일 '우리사회 재개발사업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에서 "국회는 재개발 문제를 바꿀 철학도 용기도 역량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는 뉴타운공약으로 당선된 '뉴타운돌이' 의원들이 대다수고, 야당 의원들 역시 지역의 개발 기대심리에 눈치를 볼 뿐 아니라 여론 조성 능력이나 정책 공론화 역량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상가세입자 죽었는데 왜 주거세입자 보상을 바꾸지?

가장 큰 개악은 엉뚱하게 주거세입자 보상금 부분에서 나왔다. 용산 철거민들이 대부분 상가세입자이고, 그나마 주거세입자에 대해선 이주비나 임대주택 등 일부 생계대책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다.

새 도시정비법은 그동안 재개발조합 측이 공동 부담하던 주거세입자 보상을 각 건물주에게 넘겼다. "조합과 세입자의 분쟁을 줄인다"는 것이 이유지만, 정작 세입자들은 더 힘들어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건물주는 세입자 보상비를 빼고 손실보상을 해서 감정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자신의 평가금이 줄어들까봐 걱정이 된 집주인들이 서둘러 세입자들을 내쫓고 있다. 김종민 뉴타운재개발바로세우기세입자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난해 5~6월부터 이 같은 상담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예전에는 인정상 철거 직전까지 세를 살게 해주던 집주인도 이제는 전세 계약기간이 끝나거나 월세가 밀린 세입자들에게 바로 냉혹하게 "방 빼"를 외친다. 그 뒤에 전세를 새로 들어오거나 계약을 연장하려는 사람은 "개발에 따른 보상을 안 받는다"고 각서를 써야 방을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성동구 성수동에서는 개발계획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재개발 소문이 퍼지면서 집주인이 세입자들을 내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주거이전비 지급 요건도 까다로워졌다. 공익사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정비구역 지정 공람'이 발표된 이후 새로 이주한 세입자는 대책 없이 쫓겨나야 한다.

재개발사업은 '정비구역 지정→사업시행 인가→관리처분' 순으로 진행되는데, 이 기간은 빠르면 통상 1년 정도 걸리지만 분쟁이나 소송 때문에 몇 년씩 늦어지기도 한다. 이 사이 새로 이주하는 세입자도 생기는데, 이전 법에서는 사업시행인가 3개월 전에 이주해도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재개발조합과 건물주들은 바뀐 법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이전 법에 따라 사업이 시행되는 기존 재개발 지역에서도 세입자에게 "조항이 바뀌어서 주거이전비를 줄 수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동안의 지급일 기준은 법에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다가 세입자들이 지난 2008년 집단소송에 승소해 이뤄낸 결과다. 그 뒤 철거민단체들 사이에선 "재개발조합이나 업자들이 법조항을 바꾸려고 로비를 한다"는 소문이 계속 돌았는데, 역설적으로 다섯 철거민의 죽음을 계기로 '개악' 루머가 현실이 된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12월 22일 오후 참사가 발생한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 주변 풍경을 담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 12월 22일 오후 참사가 발생한 용산구 한강로 남일당 건물 주변 풍경을 담았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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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달 늘어난 휴업보상

상가세입자 생계대책에서는 휴업보상을 기존 3개월분에서 4개월분으로 한 달 늘린 게 가장 눈에 띈다. 그러나 큰 실익은 아니다. 많게는 수천만 원의 권리금과 억대의 인테리어 비용을 들여 가게를 열었던 용산 철거민들은 평균 25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개정안에서 용산 유가족들이 요구했던 임시·임대상가 지원 등의 대책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용산 범대위 활동가 이원호씨는 "죽음에 이른 사람에게 1달 더 목숨을 늘려준 것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휴업보상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세입자에게 감정평가내역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똑같은 액수를 '4개월분'으로 이름만 바꿔서 지급한다고 해도 진실을 알 도리가 없다. 안 그래도 자신의 보상금이 턱없이 적게 느껴지는 세입자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강화된 상가 우선분양권도 세입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가 임대료를 부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용산참사 협상에서도 철거민 생계대책으로 분양권 논의가 나왔지만, 이런 이유로 금방 대안에서 제외됐다. 재개발 이후 용산의 상가들은 일반 분양가 93㎡이 10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남일당 건물은 1평당 감정평가액이 1억20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뒷거래 없이는 사업 어렵다... 여전히 재개발은 복마전

그나마 사업 절차의 투명성과 공공성 부분에서는 다소 진전이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지난해 7월 나온 서울시의 '공공관리자 제도'. 재개발조합이 아닌 행정관청이 정비업체·설계자·시공자 선정 등을 직접 맡도록 하는 내용이다. 물론 구청과 조합·건설사의 정경유착 사례도 많지만, 그나마 시민사회단체가 감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기대를 모았다.

문제는 실제 시행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역할이 대폭 축소된 것이다. 업체 선정도 몇 개 안을 제시하는 정도고, 그나마 조합 설립 전까지만 사업을 관리한다. 정작 사업이 본격화되고 뒷거래가 많아질 때는 손을 떼는 것이다. 백준 대표는 "현 제도에서는 커넥션이 발생할 틈새가 워낙 많다, 규제할 장치가 취약해 사실상 개인의 도덕적 결단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설계·정비·용역·철거·법무 등 수십개 업체에서 알아서 조합 임원들에게 상납을 하는 게 관행이고, 뒷거래 없이 제대로 사업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나 역시 (거래 관행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조합 임원들이 처음엔 순수한 마음이었다고 해도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1월의 용산참사, 12월의 마포 철거민 자살

철거가 거의 마무리되고 착공을 앞둔 뉴타운 지역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많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전경이다.
 철거가 거의 마무리되고 착공을 앞둔 뉴타운 지역에는 아직 떠나지 못한 세입자들이 많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서울 동대문구 전농·답십리뉴타운 내 전농7구역 전경이다.
ⓒ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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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 활동가들은 "법과 제도 개선만으로는 실효성이 없다, 실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어디에 있는지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 제도에서도 세입자 보상을 강화할 여지는 많은데 집행 과정에서 유명무실해진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이번 개정안은 '세입자 이주대책'을 사업시행계획에 반영하도록 했지만, 이미  '임시 수용시설을 포함한 이주대책'을 명기하도록 기존 조항과 큰 차이가 없다. 그동안 개발조합이 이 항목에 '없음'이라고 적어내도 사업 인가엔 아무 지장이 없었다.

철거민 인권침해의 상징이었던 동절기 강제철거도 마찬가지다. 서울시가 이미 지난 2008년 동절기 철거를 금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일선 구청에서는 동절기에도 관리처분 인가를 내줬다. 그 뒤 용산참사가 터졌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 용강동의 한 철거민은 결국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종민 위원장은 "인허가권을 내주는 구청에서만 제대로 해도 많은 개선을 할 수 있는데, 구청이 세입자들을 무시하면서 안내도 잘 안한다"고 전했다. "모범적인 행정 사례도 취재해보고 싶다"는 말에 그는 "그런 구청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백 대표 역시 "용산참사 직후에도 세입자들과 영세 건물주가 조직화될까봐 걱정했을 뿐"이라면서 "정책 변화나 규제에 대한 불안은 없었다"고 전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재개발정책에 대한 업계와 조합의 굳은 믿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태그:#용산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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