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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으로 이송된 당시 상황. 피해견은 눈부위와 몸에 그을린 화상과 칼에 찔린 자국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발톱이 모두 뽑힌 상태였다.
 병원으로 이송된 당시 상황. 피해견은 눈부위와 몸에 그을린 화상과 칼에 찔린 자국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 개들과 마찬가지로 발톱이 모두 뽑힌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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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마지막 날, SBS <동물농장>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사연은 송파구 한 동물병원으로 다친 채 버려진 개들을 주민들이 데리고 왔는데 이제까지 그 수가 4마리나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개들의 외상이 거의 비슷했다. 온몸은 미용돼 있었고 몸의 일부 혹은 눈에 라이터로 화상을 입힌 흔적이 있었다. 또 자상을 입거나 발톱이 뽑힌 개들도 있었다. 4마리 중 한 마리는 주둥이가 테이프로 꽁꽁 묶인 채 발견됐고 의사 진찰 소견에 따르면 뒤통수에 심한 타격이 가해진 것으로 드러났다. 자연적인 상처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일부러 가해진 것이 분명했다. 이런 같은 행위를 반복해 왔다면 이는 이른바 연쇄적 동물학대라고 부를 만했다. 공식적으로 드러난 대한민국 최초의 동물연쇄학대사건인 것이다.

12월 31일, 동물농장팀과 주변을 탐색해 보았다. 특이한 점은 학대받은 개들이 거의 비슷한 지역에서 발견됐다는 것이다. 결국 학대범은 주변을 잘 알거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고 학대를 가한 이후 해당 동물을 버렸다고 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마리 정도씩 발견되었고 시간은 8시에서 9시 사이 밤 시간대였다.

한 동네서 학대받은 채로 버려진 개만 5마리

오후 4시경 우리가 해당 동물병원을 방문, 다친 개들의 상태를 물어보던 차에 한 주민이 푸들 한 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 주민은 "개 한 마리가 추운 날 털이 다 밀린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고 발에서 피가 나고 있어 병원으로 급히 데려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 개 상태는 지금까지 발견된 개들의 상태와 같았다. 눈은 라이터에 화상을 입었고 발톱은 뽑힌 채였으며 온몸은 털이 다 깎인 채로, 군데군데 자상이 있었다. 그리고 개는 매우 심각하게 말라있었다.

12월31일 사건발생지역 주민에 의해 동물병원으로 이송된 피해견의 엑스레이사진. 복부 군데군데 박힌 커터칼 조각들이 관찰되고 있다.
 12월31일 사건발생지역 주민에 의해 동물병원으로 이송된 피해견의 엑스레이사진. 복부 군데군데 박힌 커터칼 조각들이 관찰되고 있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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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 개가 그 정도의 학대를 받았다면 분명히 주민들 중 개의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추정 하에 인근 주민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개들의 학대를 목격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학대받은 채로 버려진 개만 5마리째. 그리고 몇 마리 개들은 참혹하게 학대당한 채로 죽음을 맞이했다는 증언이었다. 어떤 개들은 동료 개들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을 것이다. 죽음 직전의 고통과 그것을 목격해야 하는 극도의 공포…. 얼마나 더 있을까.

그리고 1월 2일 <동물농장>으로부터 푸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계속 식사를 하지 못하고 혈변을 보던 개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X-레이 촬영을 했고 몸 안에서 세 개의 커터칼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푸들은 장파열로 사망했다.

1월 6일 결국 범인은 검거되었고 총 8건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를 자백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이 종료됨으로써 모든 것이 끝났을까. 현행법상 동물학대의 최고형은 벌금 500만원이다. 그러나 이것은 법상의 최고형일 뿐이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실질적으로 위법행위자는 아주 적은 금액의 벌금을 내게 된다.

죄책감과 죄의식 전혀 없는 동물학대자들

대표적인 사건이 지난해 6월 대구에서 있었다. 살아있는 고양이를 덫에 넣은 채 불에 태워 죽인 범인에게 법원은 벌금 20만원을 선고했다. 연속적으로 동물을 잔혹하게 죽이고 학대한 사람에게 20만 원이란 적은 액수의 벌금을 선고하는 게 합당한 것일까?

직업상 동물학대로 의심되는 사건에 대한 제보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 법을 모르는 경찰에 의한 훈방조치,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기소취하로 끝난다. 혹여 범죄행위가 입증된다 해도 아주 적은 벌금을 내는 것으로 일단락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인식 속에는 '그래도 사람이 중요한데', '동물은 사람의 소유니 사람위주로', '사람도 아닌데 좀 때렸다고 벌금까지 내게 해야 하나?', '인간의 자유권과 소유권을 인정해야' 등등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어린 여학생에 대한 잔혹한 성폭행사건이 벌어지고, 인종과 국적 피부색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버젓이 벌어지는 사회, 아직 인권조차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인간의 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인권이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는 사회라고 해서 동물에 대한 범죄행위가 가볍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할 순 없다. 요점은 해당 행위의 잔혹성이다. 

나는 많은 학대자를 만났다. 유형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가한 행위가 상대 동물에게 극도의 공포와 고통을 주었다는 데에 대한 죄책감과 의식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동정심이 없고 타자와의 소통과 이에 따른 감정의 동요가 없다.

몇몇 이들은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기도 한다. '사업은 안 되고 외롭고 사는 게 힘들고…' 죄는 미워하되 죄지은 자는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가. 모든 행위에는 원인이 있다. 그리고 변명도 사정도 있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사회성을 갖춘 인간다운 인간은 자신이 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외롭고 사는 게 힘들다고 해서 다른 약자를 괴롭히지 않는다.

동물보호법 강화만이 학대 확산 막는 길이다

폭력행위에 대한 법을 만들고 규제를 가하는 것과 그 사람에 대한 인식론적,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법을 만드는 것은 범법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그 행위자의 폭력행위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개를 때리는 사람이 가족구성원을 때리거나 연쇄살인범의 학대행위가 동물학대로부터 시작된다는 연구보고는 수도 없이 많다. 물론 개별 사건을 모두 그것과 연관 지어 예단할 수는 없다. '동물학대를 했으니 너는 인간도 학대할 것이다'라는 단순한 논리는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이 인간이등 동물이든 약자에 대한 학대행위는 모두 연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법을 강화해 그 학대행위가 더욱 발전하고 심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밉고 동물이 더 좋아서도 아니고 인간이 우선이냐 동물이 우선이냐 라는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에게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는 것을 사회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이제 동물이 인간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살고 있고 이중 어떤 동물들은 인간의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동물보호법의 강화는 이런 이유에서 필요하다.

'동물 좀 때렸다고 징역까지 살아야 하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동물학대를 한 것이 밝혀져 징역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00년 12월 리투아니아에서는 개를 강물에 던진 사람이 기소되었고 징역 8개월의 형을 받았다. 리투아니아의 경우 동물학대는 사회봉사, 벌금, 구금 그리고 최고 1년까지 징역형이 가능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사건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여론조사 결과 이 사건이 징역 8개월로 충분하다고 답한 사람은 전체 26%였으며 '2년 정도 징역을 살아야 한다'가 12%, '2~4년'이 22%, '더한 형을 받아야 한다'는 40%나 되었다는 점이다(<부산일보> 2009년 12월 1일자 기사).

물론 그 해당 사회의 분위기를 모두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 없다. 그러나 영국, 호주 등에서는 실제로 잔혹한 동물학대범죄에 1년에서 3년까지 징역형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향후 동물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9년 영국 법원은 개를 교수형에 처해 죽인 사람에게 2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향후 동물을 사육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쿠키뉴스> 2009년 4월 17일). 

동물학대자로부터 동물 격리하는 미국

2005년 일산 백구 학대  현장. 정신이상자인 동물학대 가해자는 상습적으로 유기동물을 데려와 학대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2005년 일산 백구 학대 현장. 정신이상자인 동물학대 가해자는 상습적으로 유기동물을 데려와 학대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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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범에 대한 징역형 등 처벌을 강화하는 것뿐 아니라 지속적인 학대를 가하거나 학대행위가 극심한 경우 소유권에 제한을 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폭행, 절도 등의 기타 범죄도 범죄행위가 반복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런 경우 가중 처벌하는 것은 연속적인 범죄의 반복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동물학대의 경우 현행법상 "동물학대의 신고를 접수한 동물보호감시관은 동물학대행위자로부터 피학대동물을 격리하여 동물보호전문기관에 인도하거나 그 동물의 치료가 필요한 때에는 치료기관에 인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19조 5항)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강제규정은 아니다. '동물 좀 때렸다고… 개까지 빼앗겨야 하나?'라는 의식이 존재하는 한 지속적인 학대는 막을 수 없다.

미국은 거의 모든 주가 동물의 학대자로부터 동물을 격리할 수 있다. 또한 노르웨이 동물보호법 32조에 따르면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경우 일정기간 혹은 영구히 동물을 소유하거나 교역, 도상, 사냥, 낚시 할 수 없다. 인도동물보호법 29조는 동물보호법을 위반한 자에 대해 법원이 압수권을 명령할 수 있으며 오스트리아법 12조 역시 사육인이 연방법률이 상응하는 사육으로 동물을 보살필 수 없을 때에는 연방법률에 상응하는 사육을 하는 승인된 연합, 기관들 사람들에 사육을 인계한다는 조항이 있다.

2006년 동물보호법 개정 당시 농림수산식품부는 이런 격리조항(제19조(동물보호감시관)5항)이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취했으나 자본주의와 재산권이 가장 많이 보장된 미국에서조차 거의 모든 주에서 이 격리조치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대한민국 최초로 공식적으로 드러난 동물연쇄학대사건. 해당 사건의 처벌뿐 아니라, 이번 일이 '동물학대는 사회적 범죄'란 인식전환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동물보호법 강화는 우리 아이들이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 내용은 지난 1월 17일 SBS TV 동물농장 '개연쇄학대범'편을 통해서도 방송이 되었습니다. 현재 동물자유연대 웹사이트(http://www.animals.or.kr) 에서 이와 같은 상습적 동물학대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법적 처벌과 동물보호법 강화를 촉구하는 진정서 제출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태그:#SBS 동물농장, #동물학대범, #동물학대,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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