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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바타>에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아바타 상영을 계기로 미국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에 때 아닌 색깔논쟁이 벌어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필자에게는 자원고갈에 직면한 인류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판도라' 행성의 토착민인 나비(Na Vi)족의 외모에 인간의 의식을 링크한 '아바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줄거리가 기발했다. 아바타와 판도라 같은 친숙한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 주효했다.

 

판도라(Pandora)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다. 그러나 판도라는 제우스 신이 열어보지 말라고 경고한 상자를 열어봄으로써 불행을 자초했다. 그래서 '판도라의 상자'는 인류의 불행과 희망의 시작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MB, '세종시 수정안' 판도라의 상자 열었다

 

이명박(MB) 정부가 11일 마침내 '세종시 수정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행정부처의 세종시 이전 계획을 전면 백지화해 세종시의 개념을 행정중심 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전환하고 삼성, 한화, 롯데, 웅진 등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골자이다.

 

수정안에 따르면, 세종시에는 고려대와 KAIST가 들어서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지정을 통해 가칭 세종국제과학원이 설립돼 중이온가속기 등 첨단과학 연구시설이 갖춰진다. 그것도 기존 계획보다 10년을 앞당겨 오는 2020년까지 집중 개발한다는 것이다.

 

도시가 제 모습을 갖추려면 30년쯤 걸리는데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가 먼 훗날이 아니고 눈앞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이익이 될 것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난 총선 당시 서울에서 재미를 본 '뉴타운 정책'을 전국 단위에서 구현하려는 것이다.

 

영화에 비유하면, MB는 정운찬이라는 판도라 행성(공주-연기) 출신의 아바타를 현지에 보내 눈앞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이익으로 현지 주민들을 설득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수정안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당장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종시 문제의 '전국화'와 '세종시 블랙홀'

 

첫째는 세종시 문제의 '전국화'와 이른바 '세종시 블랙홀'이다.

 

세종시 블랙홀은 정부가 지역 발전의 핵심기능을 죄다 세종시로 끌어들이는 통에 다른 지역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우려에 근거한다. 당장 첨단복합의료산업단지를 유치한 충북 오송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설립을 추진 중인 경북 포항, 교육과학기업중심도시를 추진해온 인천, 신재생에너지와 LED분야를 광역경제권의 핵심선도산업으로 추진해온 광주-전남 등이 모두 반발할 태세다. 영화 <아바타>에서 판도라 행성의 모든 부족들이 지구인의 자원 수탈에 맞서 단결해 싸우는 양상과 비슷하다.

 

정운찬 총리도 이런 점을 의식해 이날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기업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아니라,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중심축이 될 것"이라며 "그 파급효과는 세종시에만 국한되지 않고 인근의 대덕과 오송·오창은 물론이고 천안·아산·충주를 넘어 대구·광주·원주 등 전국으로 골고루 확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의 반발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를테면 세종시에 유치되는 신재생에너지와 LED분야는 이미 이명박 정부가 국토균형발전 전략으로 내놓은 '5+2광역경제권 개발' 계획의 호남경제권 선도산업 프로젝트에 포함돼 있다. 그런데 정부가 서울에서 가까운 세종시에 입주할 기업이나 연구소에 부지를 헐값으로 제공하는 판에 남도 땅까지 찾아올 기업이나 연구소가 있을 리 없다.

 

오죽했으면 친이계인 김문수 경기지사조차도 수정안 발표를 앞두고 지방선거에서 표로 응징하겠다고 반발했던 터이다. 또 오죽했으면 형님(이상득 의원)조차도 "대구경북이 바보도 아니고 뺏는다고 순순히 뺏기겠는가"라고 질타했을 정도다. 이처럼 세종시 문제는 이미 지역(충남)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 단위의 문제다.

 

야당 입장에서는 비록 4대강 사업 예산을 막지는 못했지만 세종시 문제의 '전국화'에는 성공한 셈이다.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 정책으로 재미를 본 MB 정부가 '세종시 퍼주기'로 지역 주민만 설득하면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다른 지역을 희생하는 세종시 발전은 있을 수 없으며, 이런 역차별 우려를 불식하지 못하는 한 제 아무리 좋은 구상도 공염불이 될 뿐이다.

 

세종시 문제의 '정치화'와 권력 투쟁

 

둘째는 세종시 문제의 '정치화'와 권력 투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세종시 수정안의 공식 발표와 관련해 "세종시 수정안은 순수한 정책 사안"이라며 "정치 현안과는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종시 건설은 정치(신의)가 아닌 정책(국가 대사) 선택의 문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세종시 문제는 이미 '정치화'된 지 오래이다.

 

이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를 계기로 살펴본 여론조사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11월 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이후 수정 추진(40.9%)이 원안 추진(36.7%) 의견을 앞섰으나, 이후 조사에서 두 의견의 격차가 크게 줄어들어 지난 7일 조사에서는 수정 추진(39.3%)과 원안 고수(39.1%) 의견이 거의 동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같은 여론추이는 MB 정부의 지속적인 공세적 수정안 추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힘'이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운찬 총리도 이날 "발전방안(수정안)을 마련하면서 원안과 원안+알파는 물론, 일부 부처 이전 등 모든 방안을 검토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의 약속에 조금이라도 정치적 복선이 내재돼 있다면 뒤늦게나마 그것을 바로잡는 것이 나라를 생각하는 지도자의 용기 있는 결단 아니겠느냐. 세종시 건설은 정치적 신의 문제 이전에 막중한 국가 대사다."

 

누가 보기에도 '원안+알파'를 내세우며 수정안에 반대하는 논리로 국민과의 신의를 강조한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한 발언이다. 한나라당의 '미래 권력'인 박근혜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선전포고'다. 친이계의 핵심인 정두언 의원이 수정안 발표 하루 전에 "제왕적 총재보다 더하다"고 박근혜에게 날선 공격을 퍼부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권력 투쟁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이처럼 세종시 수정 논란에는 가까이는 6월 지방선거, 멀리는 2012년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물러설 수 없는 생존 싸움이 얽혀 있다. 친이와 친박이 겉으로는 각각 행정 비효율성과 국가 백년대계, 국토 균형발전과 정치 신뢰 등을 내걸고 찬반 대결을 펴고 있지만, 그 바탕에는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권력 투쟁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일단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한 대통령제 정부 하에서 '살아있는 권력'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과거 여권의 권력투쟁 양상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전두환 대 노태우, 노태우 대 김영삼, 김영삼 대 이회창의 사례에서 보듯, 오히려 미래 권력이 현재 권력과의 당권 경쟁에서 늘 승리했다. 단임제 대통령의 한계이기도 하다.

 

더구나 '원칙과 신뢰'로 무장한 박근혜는 잃을 것이 별로 없는 정치인이다. 그래서 역대의 어떤 미래 권력보다도 더 강하다. 박근혜는 지난 10월 23일 '원안+알파'를 얘기할 때 "정치는 신뢰인데, 신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 문제는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고 했다. 박근혜의 치열함이 엿보인다.

 

반면에 MB는 11월 27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패널이 박근혜 전 대표와 야당이 끝까지 반대하면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통과가 난항인데 어찌 설득할 것인지를 묻자 "한나라당 내에 주류, 비주류가 없다"면서 "지금 반대하시는 분들이 다음 대통령 되지 않겠냐"고 생뚱 맞는 답변을 했다. MB의 안일함이 엿보인다.

 

안일함은 치열함을 이길 수 없다. 더구나 예산 싸움인 4대강 사업과 달리 세종시 수정안은 반드시 국회에서 법안 투쟁(표결)을 거쳐야 한다. 그러려면 행정중심복합도시 특별법을 개정하거나 이를 대체할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MB "의연하고 당당하게"...한나라당 주류는 내심 초조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 전체 298석 가운데 한나라당은 169석으로 원내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60명에 이르는 친박계가 반대하면 수정안은 물 건너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회 통과는커녕 현재까지의 당론(원안 추진)을 변경하기조차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나라당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당헌 72조에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당론을 바꿀 수 있다고 돼 있다. 최소 113명이 찬성해야 당론을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나 기권, 불참 등을 모두 합쳐 56명이 넘으면 부결된다.

 

MB는 "의연하고 당당하게" 추진하라지만, 한나라당 주류는 내심 초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열린우리당의 분당 과정에서 목격한 골육상쟁의 비극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MB가 '선전포고'는 했지만, '승산없는 전쟁'이 벌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태그:#세종시, #이명박, #정운찬,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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