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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답사 일번지' 강진 만덕산 백련사 가는 길. 추운 날씨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 만덕산 백련사 가는 길. 추운 날씨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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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추위가 기승을 부렸다. 야외활동도 그만큼 위축됐다. 그러나 이럴수록 움직여야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이번 주말엔 상대적으로 날씨도 풀린다고 하니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 좋겠다. 가족과 함께…. 어디로 가볼까?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으로 가본다. 강진은 다산 정약용과 떼놓을 수 없는 인연을 지니고 있다. 다산 정약용(1762∼1836년)은 학자이면서 조선후기 개혁적 사회사상가였다. 이 다산이 신유박해를 계기로 18년(1801∼18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곳이 바로 강진이기 때문이다. 하여 다산의 사상과 예술도 대부분 유배시절인 강진 땅에서 완성됐다.

다산(茶山)은 차나무가 많았던 만덕산의 별칭이다. 정약용의 호 역시 여기서 유래했다. 다산은 귀양살이 18년 가운데 10년을 다산초당에서 지냈다. 여기서 <목민심서><흠흠신서> 등 500권에 달하는 저서를 남겼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체취가 묻어나는 대표적인 유적지다.
 다산초당. 다산 정약용 선생의 체취가 묻어나는 대표적인 유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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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차밭. 백련사 동백숲 옆에서 만난다. 저만치 구강포가 내려다 보인다.
 백련사 차밭. 백련사 동백숲 옆에서 만난다. 저만치 구강포가 내려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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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 가면 다산의 손길이 닿았던 흔적이 여러 군데 남아있다. 초당 뒤편 바위에 새겨진 '정석(丁石)'이란 두 글자가 그렇다. 그가 마시던 샘물인 약천, 솔방울을 태워 차를 달이던 '다조'(차 부뚜막)라 불리는 앞마당 바위에도 그의 체취가 묻어난다.

네모진 연못을 파서 그 안에 자연석으로 둥근 섬을 만들고 홈통으로 물을 끌어와 작은 폭포를 만든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도 있다.

다산의 체취가 느껴지는 곳으로 지금 천일각이 서 있는 동쪽 산마루도 있다. 이 곳은 다산이 틈틈이 올라 바람을 쐬거나 흑산도로 귀양 가 있던 형 정약전을 그리며 먼 바다를 내다보던 곳이다.

오솔길.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숲길은 걷기에 좋다.
 오솔길.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숲길은 걷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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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 다산초당이 있는 귤동마을에서 다산문화유적지로 가는 길이다.
 오솔길. 다산초당이 있는 귤동마을에서 다산문화유적지로 가는 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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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이어지는 오솔길도 정겹다.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에 버금가는 걷기 좋은 길이다. 숲길의 길이가 800여m. 다산이 유배생활 중 백련사 혜장선사(1772∼1811년)를 만나러 다니던 길이다. 다산은 이 길을 통해 선사와 만나 유학과 불교를 논하고 차와 세상을 얘기했다.

길도 가파르지 않고 비교적 평탄해 동행과 얘기 나누며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삼림욕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그리 길지 않는 길인데도 중간에 혜월루, 천일각 등 쉼터도 있다. 다산유물전시관도 들러볼만 하다.

다산의 흔적은 초당 외에서도 발결된다. 강진으로 유배 온 다산은 동문매반가에서 4년, 보은산방과 이학래가에서 각 2년, 다산초당에서 10년을 살았다. 다산이 강진에 와서 처음 발길을 한 곳이 바로 주막집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 다산은 이 주막집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유배봇짐을 풀고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았다.

사의재.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당해 강진에 와 처음 머물던 곳이다.
 사의재.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를 당해 강진에 와 처음 머물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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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매반가에서 내놓은 동동주. 맛이 일품이다.
 동문매반가에서 내놓은 동동주.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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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방 이름이 사의재(四宜齋)다. 사의재란 생각과 용모, 언어, 동작 등 네 가지를 올바로 한 이가 거처하던 집이라는 뜻이다. 다산의 저서 가운데 〈경세유표〉가 여기에 머물 때 나온 것이다. 동문매반가와 사의재 모두 지난 2007년 여름, 강진읍에 복원됐다. 주막에서 내놓는 동동주 맛도 별미다.

사의재는 영랑생가와 불과 200∼300m 떨어져 있다. 영랑생가는 '오매 단풍들겄네',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으로 유명한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어들로 가득했던 그의 시적 감흥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짬을 내서 여기에 가보는 것도 좋겠다.

월출산 자락의 천년고찰 무위사(無爲寺)도 가볼만 하다. 단아한 목조건축물인 극락보전과 그 안의 후불벽화를 품고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다. 극락보전과 후불벽화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다. 절 이름 그대로 자연스러움 그대로가 멋스러운 사찰이다.

영랑생가.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윤식의 생가다.
 영랑생가.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김윤식의 생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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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무위사. 소소한 멋스러움을 지닌 사찰이다.
 월출산 무위사. 소소한 멋스러움을 지닌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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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으로 발걸음은 한 김에 '백조의 호수'를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백조의 호수'는 백조들이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강진만 구강포(九江浦)의 별칭이다. 백조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품격 있는 철새다. 길고 커다란 날갯짓으로 우아함을 뽐내는 백조는 천연기념물 제201호로 지정돼 있다.

백조는 강진만 북동쪽 칠량면 송로리 구로마을 제방, 그 반대편 강진읍 남포마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품은 만덕산 아래 남포둑도 좋은 탐조장소다. 도암면 만덕리 신평마을(해창포구) 철새관측소에서 남포마을에 이르는 비포장 제방길도 괜찮다.

백조는 덩치가 크면서도 고귀한 외모를 지녀 '귀족철새'로 분류된다. 백조의 비상하는 모습은 환상적이다. 큰 덩치 때문에 한 번에 날지 못하고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듯 몇 번의 달리기 끝에 파문을 일으키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하여, 이맘때 강진으로의 여행은 고매한 품성과 학덕을 지닌 다산과 우아한 날갯짓의 백조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여정이 된다. 남도여행의 품격도 업그레이드된다.

백조의 호수. 강진만 구강포에는 요즘 큰고니들이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다.
 백조의 호수. 강진만 구강포에는 요즘 큰고니들이 찾아와 겨울을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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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백조의 호수' 찾아가는 길
'백조의 호수'로 불리는 구강포는 강진읍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강진읍에서 완도 쪽으로 가다가 왼편의 다산초당·백련사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태그:#남도답사 일번지, #강진, #다산유적지, #백조의 호수,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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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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