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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객을 마중 나오는 누렁이. 1월6일 월출산 무위사 풍경이다.
 방문객을 마중 나오는 누렁이. 1월6일 월출산 무위사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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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 자락에 있는 무위사는 여느 절과 느낌이 다르다. 단청하지 않은 것 같은 절 분위기가 그렇고 전해져오는 전설도 색다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첫 장에 소개된 곳이기도 하다. 하여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에서도 '일번지'라 해도 좋은 곳이다.

그 느낌을 기억하며 무위사로 향했다. 눈보라가 날리고 겨울바람이 매섭다. 오가는 차량도 없다. 주차장도 텅 비어 있다. 날씨 탓일까? 주차장 한 편에 있는 전통찻집과 기념품 판매점까지도 불이 꺼져있다.

사방이 고요하다. 바람소리만 쌩-쌩 귓전을 스친다. 컹-컹- 인기척이라도 하듯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일주문에서 누렁이 한 마리가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담배 한 개비 입에 물었다. 찻집 처마 밑에 서서 눈보라 속에 연기를 실어 보내고 있는데 누렁이가 다가와 내 주변에서 맴돈다.

발걸음을 일주문 쪽으로 옮기자 누렁이가 앞장을 선다. 누렁이를 따라 사천왕상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 습관처럼 극락보전으로 향한다. 극락보전은 아주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국보로 지정돼 있다. 무위사라는 절 이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기도 하다.

월출산 무위사 삼층석탑과 극락보전.
 월출산 무위사 삼층석탑과 극락보전.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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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화. 얼마 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무위사 극락보전 후불벽화. 얼마 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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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에서 재미있는 것은 불상 뒤편에 그려진 벽화이다. 최근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여기에는 세 불상이 조각돼 있는데, 이 가운데 왼쪽 관음보살상이 미완성 작품이다. 옛날 노스님이 이곳에 와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이 스님은 "49일 동안 그림에 몰두하고 싶으니 극락보전 안을 들여다보지 말아 달라"고 주지스님한테 부탁을 했다. 이에 주지스님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49일째 되는 날.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는 노스님에 대한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주지스님이 그 안을 살짝 엿보게 된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살며시 들여다 본 주지스님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노스님은 없고 작고 예쁜 파랑새가 붓을 입에 물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순간 그림을 그리던 파랑새는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파랑새는 그때 눈을 그리고 있었단다. 그래서 결국 미완성 작품으로 남아있게 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극락보전에 대한 신비감을 배가시켜주는 전설이다. 허구인 줄 알면서도 재미있다. 전설이 재미있는 건 아마도 세상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위사 선각대사 편광탑비. 태조 왕건을 도운 형미스님의 업적을 기려 세운 것이다.
 무위사 선각대사 편광탑비. 태조 왕건을 도운 형미스님의 업적을 기려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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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월출산 무위사. 여느 절집과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눈 내리는 월출산 무위사. 여느 절집과 다른 분위기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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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문화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선각대사 편광탑비, 목조 아미타 삼존불좌상, 백의관음도, 내벽 사면벽화 등이 보물로 지정돼 있다.

극락보전 옆에 있는 선각대사 편광탑비는 거북이가 탑을 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신라 말 고승으로서 태조 왕건을 도운 형미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대사가 입적한 지 28년 후에 세워놓은 비라고 한다.

겨울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해 떨어지면 도로가 빙판이 될 것이란 걱정도 든다. 발걸음을 재촉해 경내를 돌아본다. 갈증이 조금 난다. 다음에 날씨 풀리면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약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인다. 뼛속까지 차가운 기운이 전해진다.

월출산 무위사 풍경. 누렁이가 이 풍경을 닮은 것 같다.
 월출산 무위사 풍경. 누렁이가 이 풍경을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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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내 앞에 선 누렁이. 저만치 보이는 건물이 무위사 극락보전이다.
 다시 내 앞에 선 누렁이. 저만치 보이는 건물이 무위사 극락보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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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더 거칠어졌다. 산중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마음이 급하다. 이제 그만 돌아서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누렁이가 내 앞에 와 있다. 사천왕상을 지난 이후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그 누렁이다. 마치 절로 가는 길을 안내해 주고, 경내를 돌아보는 동안 자리를 피해 있다가 다시 나타난 것만 같다.

내 마음 속을 꿰뚫고 있는지 누렁이가 또 앞장을 선다. 이번에는 일주문 밖 주차장으로 안내를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처음 경내로 안내할 때보다도 훨씬 나를 살갑게 대한다는 점이다. 누렁이가 기특해 보여 몇 마디 말을 건넸더니 알아듣는 것만 같다.

앞장 서 걷는 누렁이를 따라 다시 주차장으로 나왔다. '참 멋진 놈'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렁이의 표정에서 서운해 하는 기색이 읽혀진다. '그래, 너만 서운하냐? 나도 서운하다'는 말이 절로 입 밖으로 나온다.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더니 누렁이가 한발 비켜선다.

마음속으로 작별인사를 건네고 차를 돌렸다. 실내거울을 통해 뒤를 바라봤더니 누렁이가 다시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고 있다. 단순히 절을 지키는 누렁이가 아니었다. 인적이라곤 없는 절에서 방문객 환송까지 정확히 하고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무위사에 국보나 보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누렁이도 '문화재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앉은 지금까지도 그 누렁이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다.

주차장까지 배웅 나온 누렁이. 작별을 아쉬워하는 것만 같다.
 주차장까지 배웅 나온 누렁이. 작별을 아쉬워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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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닫힌 전통찻집. 처마 밑으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꽁꽁 닫힌 전통찻집. 처마 밑으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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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무위사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국도 광산 나들목-13번국도-나주-영산포-영암-풀치재 터널-무위사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소재)



태그:#누렁이, #무위사, #월출산, #강진,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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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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