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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가을, 대전

 

"사라지는 기억들에 대해서 어린 세대들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들고 싶어요."

 

두 명의 어른과 네 명의 아이들이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대전지역에서 재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함께 돌며 일종의 가이드북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없어지는 소중한 것들을 담고 싶다는 취지다.


서로의 의견에 열변을 토한다. 그러면서도 침묵이 흐를 때는 눈빛이 부드럽게 얽힌다. 눈빛 사이엔 지난 겨울 함께 다녀온 40일간의 여행에서 쌓은 신뢰가 켜켜이 담겨있다.

 

로드스쿨 36일차. 룸비니

 

예정보다 늦게 인도의 소나울리로 도착했다. 네팔과의 접경지역이다. 룸비니로 갈 예정이다. 버스를 타고 갈 수 없단다. 마오이스트들과 정부군 간에 교전이 벌어져서다. 갈 수 있는 방법은 릭샤(인력거)를 타고 가는 방법뿐이다. 두 시간 가량 달려야 한다. 인력거 네 대가 줄지어 이동을 한다. 도착할 무렵 릭샤들의 얼굴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첩보전에 가까운 통로를 이용하여 룸비니에 도착했다.


부처님의 고향, 룸비니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이제 다시 카트만두로 가야한다. 나가는 길은 더더욱 점입가경이다. 포카라로 멀리 돌아가야 한다는 것. 시위대를 피해 가는 길은 룸비니로 올 때 보다 더욱 힘들다. 시위대로 인해 길이 막혀 하루를 지체했다.


갈 때는 지프를 이용했는데 중간에 기름이 떨어졌다. 주유소에 들렀더니 시위를 하는 상태라 기름이 없다고 한다. 때마침 뱃속에서 신호가 온 승완이는 화장실을 찾아 뛰쳐나간다. 아침에 짜이(인도식 홍차, 연유를 섞어 만듬)를 마셨던 현희도 속이 좋지 않아 연신 화장실을 간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던 설사는 여행 내내 현희를 괴롭힌다. 천방지축 아이들과 함께 동고동락 하는 어른들의 식은땀도 그칠 줄 모른다. 이제야 현희양은 이야기한다.

 

"볼일 처릴 다 하지 못한 찝찝한 마음을 아시나요?"

그래도 이제 곧 한국에 도착한다. 한국에 도착하기만 하면… 도착하기만 하면….

 

로드스쿨 2일차. 캄보디아


캄보디아. 천년의 미소를 간직한 나라다. 하지만 근영은 울상이다. 로드스쿨 하루 만에 향수병이 생겼다. 집에 가고 싶다고 울고불고 난리다. 아이들이 다독거리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자존심까지 버리며 근영에게 애원하는 아이들을 보며 근영의 마음도 흔들린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말을 되풀이하는 근영을 강용운씨는 붙잡지 않는다. 근영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이 붙잡으면 근영이가 따라 올 것임을 안다. 하지만 매번 어려움이 닥쳤을 때 누군가의 어깨와 손을 빌리는 버릇을 들인다면 스스로 넘을 수 있는 벽에 부딪혔을 때도 주저앉고 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 더 커지길 바라는 강씨의 모진 마음을 아이들은 헤아릴 수 있을까. 아이들은 이 여행을 통해 얼마만큼 성장할 수 있을까.

 

2008년 봄, 대전


안혜경(38)씨는 대전여상 2학년의 한 반을 맡고 있는 담임교사다. 현장에 있는 영상전문가를 초청해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영상교육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영상제작을 하는 '다큐멘터리'회사의 한 실장을 소개받는다. 강용운(40) 씨는 안 교사의 추천으로 영상과 학생들의 수업을 맡게 된다. 강씨가 안 교사에게 한 첫 마디.


"제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요?"


강씨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넓은 세상을 보면 아이들의 인생은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그 역할을 자신이 맡기로 마음먹는다. '내가 바라는 일을 그 누군가가 도와주고 응원해준다면!' 그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기로 결심한다.


같은 해 가을 강씨는 아이들에게 로드스쿨(여행학교)을 제안한다. 안 교사가 맡은 반 학생 중 전현희, 김근영, 송지은, 홍정희 양과 중학생인 고승완 군이 함께 하게 된다. 어른 셋과 다섯 아이들의 소심, 과묵, 좌충우돌 여행길이 시작된 것이다.

 

2003년. 인도 첫 배낭여행

지치고 힘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누구나 훌쩍 떠나기를 꿈꾼다. 고단하고 지친 삶의 끄트머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얻길 원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힘은 그런 것이 아닐까.


서른넷. 강씨는 생애 첫 배낭여행을 다녀온다. 그리고 "10년만 일찍 넓은 세상을 경험했더라면…"이라는 아쉬움이 생겼다. 그리고 "내 곁에서 내가 바라는 것을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7년 뒤 내가 다녀온 이곳을 다시 오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해주리라.' 강씨의 다부진 입술이 하늘 저편을 향했다.

 

1990년 겨울. 군산


고등학교 2학년 시절 87년 6월 항쟁을 겪은 강씨는 학교 졸업 후 대학진학 대신 공사판 현장을 선택했다. 군산의 아파트 건설현장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차별이라는 것을 처음 느꼈다. 자격증이 있는 고졸 선배들 위에 전문대 졸업한 하위 관리직, 그 위에 서울의 번듯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책임자들. 그들의 발 밑에서 쥐 죽은 듯이 일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현장 관리자 7명의 하루 회식비 350만 원. 한 달을 꼬박 일해 얻은 자신의 월급 15만 원이 허무하게 보였다.


91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간 강씨는 운동권 동아리에 들어간다. 사회에서 겪었던 부조리함은 대학가서 열심히 싸워 바꿔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던 것. '나 하나 보태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1학년의 불꽃같은 눈. 그의 시선은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

 

다시, 2009년


스무 살 대학생이 사십 대 아저씨가 되었다. 기술은 고도로 발전하고 생활은 편리해졌으나 행복의 체감지수는 더 낮아졌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더 배울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학원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고민을 가진 이들이 길을 떠났다. 자신을 비우고 더 큰 성장을 위해….


돌아온 그들 앞에 세상은 아직 그대로이다. 그들이 얻어온 것은 무엇일까.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 담아온 씨앗이 멀지 않은 미래에 연두빛 새싹으로 피어나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노동세상>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로드스쿨, #인도, #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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