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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어휘와 거의 올바른 어휘의 차이는 마치 번개와 반딧불의 차이와 같다. <톰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돌이켜보면, 신경민 기자 클로징이 그랬다. KBS 보신각 타종 중계 문제점을 단 열 글자로 요약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백 마디보다도 무거웠던 "화면의 사실과 현장의 진실".

최근 나온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도서출판 참나무)도 참 '무거운 책'이다. 본인이 특히 의미를 부여했다는 클로징이 154개나 실려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들 클로징은 물론 각각에 따르는 해설과 주석 대부분이 하나의 문제 의식으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칙'의 문제다.

앞서가는 사회는 태산만큼이나 무겁게 여긴다는 '원칙'을, 우리 사회는, 특히 권력은 너무나 우습게 여긴다고 비판한다. 또 그것이 권력의 '본능'임에도 이를 제어해야 할 검찰과 언론의 '웩 더 독(Wag The dog : 꼬리가 개를 흔듦)'을 통박한다. 앵커 교체 관련 비화나 뒷 이야기는 잔가지에 불과하다.

권력 비판으로 중립 지켜, 그저 원칙에 충실했을 뿐

최근 나온 <뉴스데스크 앵커 387일의 기록 :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최근 나온 <뉴스데스크 앵커 387일의 기록 :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 도서출판 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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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자가 명확히 하는 것은 사실 관계다. "상당수 시청자들은 어떤 친구가 갑자기 뉴스에 나타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갑자기 사라졌다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2007년 라디오 앵커 시절 때도 '악명'을 날렸으며, '덕분에' 대통령 측근들에게 '반노 인사'로 찍혔음을 적시한다.

누구 편도 아니란 뜻이다. 그저 권력을 비판하는 '원칙'에 충실했을 뿐이란 이야기다. 또 그것이 언론인으로서 중립을 지키는 길이란 저자의 소신이기도 하다. 이런 '꼬장꼬장함'은 책 전체에 서술 하나 하나를 통해 관철된다. 진보나 보수란 표현을 남발하지 않는다. '일부 신문' '다른 신문' 식이다.

"정연주 사장 해임을 지지하는 인사들"이란 표현에서 '올바르거나 거의 올바른 어휘'의 차이가 실감난다. 저자는 당당하다. "앵커가 중립적으로 진행이나 잘 하라는 측"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만약 내가 용비어천가를 절묘하고 구수하게 노래했더라도" 이런 시비를 걸었겠냐고.

그 당당함은 아는 만큼 보이는데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언론인으로만 28년, 작심한 듯, 대통령은 물론 검찰, 사법부, 국세청 등 각종 권력을 두루 '조진다'. 특히 사건 덮기, 질질 끌기와 침묵 그리고 신종대응 '끝까지 무시하기와 우기기' 등을 다룬 '권력이 살아가는 법'은 속지 않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훌륭한 텍스트로 손색이 없다.

신경민이 바라본 참여정부 vs. 이명박 정부

그렇게 권력이 살아가는 이유를 저자는 "자신들의 유불리를 따져 매우 공학적, 기계적으로 문제에 대응하는" 속성에서 찾는다. 때문에 "근본적이고 양심적인 대응을 하는 권력을 현실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참여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인식이다.

정연주 사장 해임을 '암울과 야만'에 빗대면서도 "임기 중인 기관장에게 공사간의 비리를 디밀어서 사퇴를 압박하는 일은 사실 역대 거의 모든 정권에서 나타났다"고 강조한다. 참여정부도 개인비리를 캐고 이를 압박카드로 쓰는가 하면 공개 모욕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 청와대 참모가 '배 째드릴까요?'라고 고위공직자를 협박한 일이나, 아프간 인질 사건 당시 기자회견에서 협상요원을 공개한 김만복 전 국정원장, 모두 저자에게는 권력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사적지 안에서 불 피우고 밥 먹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명박 정부와 '똑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참여정부가 언론 불만 해결을 주로 중재와 민사소송에 의지했다면 새 정부는 검찰을 주로 동원했다"거나 "용산 참사를 덮기 위해 강호순 사건을 확대 재생산한 수법은 매우 치졸하고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한다.

'청와대 기자회견 놀이', "일종의 퍼포먼스"

뉴스가 시작되기 전 박혜진 앵커와 첫 원고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소개하고 있다
 뉴스가 시작되기 전 박혜진 앵커와 첫 원고를 연습하는 장면으로 소개하고 있다
ⓒ MBC 보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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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명박 정부에게 더욱 인색하다. 말 그대로 "그만큼 상식으로부터 많이 벗어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4대강 사업이 실질적인 대운하사업이라고 폭로한 뒤 중징계를 받은 김이태 연구원 사례를 '되돌이표'의 단적인 사례로 소개한다.

"합리적으로 잘 돌아가는 사회라면 바뀌는 것과 절대 바뀌지 않는 부문이 동시에 있어야 할 것이다. 바뀌지 않아야 할 부문을 바꾸라고 권력이 강요한다면, 안 된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하고 이를 받아줄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그러니 누구보다 힘과 돈에 꿀리지 않아야 할 검찰과 언론에 대한 문제의식은 그만큼 크다. 일종의 '내부고발'은 때로는 가혹하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미국 대통령은 공식 회견에서 질문을 미리 정하거나 연기를 하지 않는다"면서 우리 공식회견 문화를 '약속대련'에 대놓고 빗댄 대목이 그러하다.

"대부분 회견에서는 질문자의 순서와 질문 내용까지 정해져 있다. 기자의 손 흔드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엑스트라 연기 내지는 퍼포먼스에 해당돼 포장은 미국식이되 실제로는 '청와대 기자회견 놀이'란 제목의 한국판 연극인 셈이다."

"검찰이 정말, 제대로, 원칙대로 한 수사는 BBK"

검찰에 이르러서는 아예 독자에게 답을 구한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결정을 하고도 전혀 괘념치 않는", 그럼에도 "검사만 천 수 백 명에 이르는 거대조직이 한 마디 소리 없이 고요한", 총장임기제를 보면 제도로도 한계가 뚜렷한 검찰을 대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그래서 "정말로 사건을 제대로, 원칙대로 수사한" 사례로 BBK 사건을 꼽는 것은 다소 뜻밖이다. 저자는 "증거를 엄정하고 엄밀하게 해석해 대입했으며, 피고소인 소환과 인신 처리에서 인권 보호라는 기본에 맞췄다"며 "근대 형사법 기초와 기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물론 단서는 붙는다. "피고소인 이명박 후보에게 했던 것처럼 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그렇게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묻고 답한다. 검찰이 착각을 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잘못 본 것인가. "둘 다 아니라면 검찰다웠던 모습은 본 모습의 위장이거나 가식이었다"고 말이다.

이처럼 '원칙'마저 위장과 가식에 이용당하는 현실에서 저자가 박종철 군 사건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사건 첫 단계에서 단 하나 원칙이라도 지키려 애쓴" 사람들이 권력에 무릎 꿇었다면, '박종철, 20년의 드라마'는 불가능했다고 강조한다. '문제도, 대안도 원칙'이란 소신을 재강조하는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언론 내부... "젊은이에게 신뢰받는 매체 되야"

2008년 봄 미국 신문 방송 기자들이 MBC를 방문했을 때
 2008년 봄 미국 신문 방송 기자들이 MBC를 방문했을 때
ⓒ MBC 보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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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저자의 문제 의식은 현 언론계 불황의 원인과 대안을 따지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업으로서의 존립이 위협받을 정도로 심각한 불황"을 지금 언론이 일부 자초했다는, 심판이 '선수'로 뛰는 경기에 열광할 관중은 없다는 지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언론이 내부적으로 자사와 정권에 대한 이익 여부를 주요한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경향을 보이면서 민주와 자유의 가치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지 않은 언론이 민주와 자유를 사회에 전파할 수 없고, 정직하지 않은 언론이 정직을 말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저자는 젊은 세대가 자신의 클로징에 주목한 원인을 돌아본다. 저자는 "솔직히 고백하면 젊은 세대는 내가 멘트를 쓸 때 의식하고 있던 주요한 시청층이 아니었다"며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클로징에 속 시원하다고, 잘 몰랐던 인과관계를 지적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소개한다.

차마 책에서 드러내지는 못했겠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원칙을 지킨 '신경민'에게 젊은이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자평이 담겨 있는 셈이다. "언론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신뢰받는 매체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도 그래서다.

"문제 해결에 마술은 없다"

책을 덮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든다. '신경민'을 제거한 '권력'의 판단은 참으로 정확했다고 말이다. 두려워서 그랬을 것이다. 그의 클로징이 계속됐다면, 그만큼 권력에 속지 않는 국민은 늘어났을 것이므로. 올바른 어휘와 거의 올바른 어휘의 차이는 마치 번개와 반딧불의 차이와 같으니까.

그의 빈자리를 보는 아쉬움이 그래서 더욱 커진다. 신경민 기자는 마지막 클로징에서 "할 말은 많다"고 했다. 그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는 셈이다. '비원칙'과 '원칙'의 충돌은 필연이었다. 허나 우연을 만드는 것 또한 원칙이다. "문제 해결에 마술은 없다"는 말의 울림이 크다.

"잘못된 과거를 망각하는 일은 승자와 패자에게 편리한 축복이면서 내일을 고대하는 사람에게는 잔인한 저주이다. 희망을 가질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비상식적인 되돌이표 역사는 언젠가 끝내야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점

'누구든' '어디든' 맹목적인 지지자 ★★★★★☆
소설 태백산맥에서 김범우 입장에 공감한 사람 ★★★★★
'이 놈도 저 놈도' 믿지 못하겠다는 뉴스 시청자 ★★★★☆
언론고시를 준비하다 지칠 때 ★★★★
회사의 길과 언론의 길을 구별하지 못하는 '직딩' ☆☆☆☆★
'신경민은 빨갱이'라고 하면 보수인 줄 아는 '버뮤다 삼각인' ☆☆☆☆☆

2007년 대선 개표방송 당시 신경민 기자
 2007년 대선 개표방송 당시 신경민 기자
ⓒ MBC 보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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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과 사실,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는 '모범'
물론 이른바 '비화'라 할 만한 이야기도 적지는 않다. 올해 들어서면서 MBC <뉴스데스크> 광고가 급감해 '대포광고'를 집어넣을 정도였다던가, 박혜진 앵커 멘트를 문제삼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의 공방, 앵커 교체에 즈음해 보도국장과 나눈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MBC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 보인다. 허나 "회사가 좋아지려면 회사에 대한 비판을 솔직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앵커를 바꾸고 선임하는 절차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회사를 비판한다. 할 말은 다 하는 셈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언론인의 책으로 '모범'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남의 말, 사실,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구분한다. "세월이 흘러 민주시대라고 하고 검찰이 변했다고 말한다. 악명 높았던 대책회의도 사라졌다. 사실 이제 시대의 흐름으로 봐서 대책회의라는 이상한 기구가 존재하기 어려워졌다"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만큼 '꼬장꼬장하게' 보이기도 한다. 자신의 주장을 꼼꼼한 주석으로 뒷받침하는데, "검찰이 전혀 정연주 사장의 무죄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반증"이라며 담당 검사가 후속 인사에서 영전한 사실도 함께 전하는 식이다. 일종의 A/S 주석인 셈인데, 사건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다만 워낙 다양한 사건이 등장하고, 연결고리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독자에 따라서는 전체 주제를 파악하기 어려운 나열 또는 반복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점이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의 말처럼 비슷한 문제는 다시 나타나기 마련이니, "최소한의 솔직과 정직이 빠져 있는 사회"에서 뉴스를 바라보는 지침서로도 참고할 만하다는 뜻이다.


신경민, 클로징을 말하다 - 뉴스데스크 앵커 387일의 기록

신경민 지음, 참나무(고혜경)(2009)


태그:#MBC, #신경민, #기자, #뉴스, #클로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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