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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눈이 내리면 세상의 색깔은 단순해 집니다. 어는 일 없이 늘 출렁이는 바다를 제외하면 모두가 하얀 눈을 이고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문득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쉴 새 없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가 아니라, 그냥 머물러있는 하얀 파도 같았습니다. 그 바다에도 흰 눈이 내리자 백설의 바다와 청자색의 바다가 확연하게 나타났습니다.


누군가 바다는 멍이 들어 푸르다고 했습니다. 저 하늘에서, 그 어느 산골에서부터 시작된 물줄기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부딪치면서 든 멍이라고 했지요. 하얀 눈은 빗방울처럼 격하게 내려온 것이 아니고, 아직 여행을 시작하지 않았으니 그냥 하얀 파도를 닮은 것이겠지요.


기와에 내린 눈은 물이랑인 듯 출렁입니다. 바다는 생명의 어머니, 그 깊은 바다를 어떻게 파괴할지 아무도 모를 원전쓰레기, 핵폐기물을 버린다지요? 저탄소 녹색성장 운운하며, 원전 수주가 얼마나 많은 경제적인 공헌을 하는지 자동차 2백만 대를 수출하는 것과 같다고 바보상자에서는 떠들어댑니다. 지구 위에서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드는 존재인 인간, 돈을 버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지고의 선으로 포장되는 현실에서 만일에라도 발생할지 모를 위험을 대비해야 한다는 말은 바보들의 아우성쯤으로 치부되는 현실이 무섭습니다.


 

속도전에 재미를 붙인 사람들은 눈이 내려도 그 풍경을 감상하지 못하고, 눈 때문에 더뎌지는 발걸음이 귀찮을 뿐입니다. 눈 내리기 무섭게 염화칼슘을 뿌려댑니다. 그나마 세상에 덜 물든 아이들이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 그래서 세상이 온통 따스해 보이는 이들이 하얗게 내리는 눈을 기다릴 뿐입니다. 지난가을 붉게 익은 산수유, 그냥 겨울빛 속에서 밋밋했는데, 하얀 눈이 내리자 그 붉은빛이 유달리 붉습니다. 먹을거리가 부족한 겨울, 하늘을 나는 새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을에 떨어진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려면 적당한 목마름과 해갈이 필요합니다. 말랐다 젖기를 반복하면서 흙이 되지요. 누구든 상처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상처 없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은 아닙니다. 아픔이 동반되지 않는 삶, 밋밋하기만 할 것입니다. 때론 내 아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남의 아픔 따위는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행복에 겨워 살아가는 이들에게 물어보십시오. 당신에게는 상처나 아픔이 없느냐고.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니요, 있지요.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게 나를 맡겨놓지 않을 뿐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다시 눈 내린 바다입니다. 저 바다의 파도는 철썩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데, 하얀 백설의 파도는 소리없이 다가옵니다. 공통점은 바람을 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는 누가 걸어가도 흔적이 남질 않는데 백설의 바다는 흔적이 남는다는 것입니다.


흔적을 남긴다는 것, 그것을 사람들은 좋아하지요. 어쩌면 이런 욕구가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백설의 바다를 걸어가며 첫 발자국을 남기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법 눈다운 눈이 내렸습니다. 속도전에 맛을 들인 도심의 길거리는 염화칼슘 세례를 받은 눈들이 도시의 먼지와 범벅이 되어 자신의 모습을 상실했지만, 아직도 자연을 품은 눈은 아직도 백설입니다. 하얀 파도처럼 내려앉은 하얀 눈 속 풍경입니다.


태그:#제주, #바다, #눈, #낙엽, #원전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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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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