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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의 시어

 

오후 들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모티프원의 리프레시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시간, 오늘 예약자인 박성희씨 일행이 오셨습니다. 급히 안내해 드리고 나머지, 다른 공간의 정리에 몰두하고 있을 때 저를 도와주기 위해 모티프원에 와 있던 아들이 저에게 호통에 가까운 지청구를 했습니다.

 

"아빠, 빨리 베란다의 눈을 쓸지 않고 뭐해요. 임신한 분도 오셨는데……."

 

아들의 이야기는 실내를 정리하는 것보다 임산부가 드나들기에는 위험할 수 있는 바깥의 눈을 먼저 정리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집안 정리는 자신이 계속할 터이니 어떻게 할 지 모르는 바깥 눈 정리를 제가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밤이 이슥한 시간, 4명의 박성희씨 일행이 밤참을 즐기기 위해 내려왔을 때야 이 일행과 온전하게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의 말대로 4명중 2명이 임신 중이었습니다. 한 명은 임신 8개월, 또 다른 한 분은 2개월이었습니다. 다른 한 분은 결혼 7개월의 신혼이며 한 분만 남자를 소개받은 지 2주가 지난 분이었습니다. 일행의 말로는 이번 나들이는 '태교여행'이라고 했습니다. 한 분이 출산을 하면 함께 하는 여행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기도 했습니다.

 

임신 8개월 된 분에게 태아의 성별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병원에서 알려주었다고 했습니다.

 

"태아의 성을 알려주는 것은 위법이 아닌가요?"

 

"다양한 방법으로 암시를 합니다. 즉 아빠를 닮았네요, 하면 아들이고 엄마를 닮았네요, 라고 하면 딸입니다. 씩씩하네요, 하면 아들이고, 예쁘네요, 하면 딸이지요. 혹은 하늘색 옷을 준비하셔야겠어요, 라면 아들이고, 분홍색 옷을 준비하셔야겠어요, 하면 딸이에요."

 

태아의 성별을 미리 앎으로서 발생할 수 있는 낙태를 막기 위해 태아의 성 감별 고지를 금지하는 법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을 수 없는 부부의 욕구와 병원의 위법을 피하기 위한 이 은유는 남아를 선호했던 슬픈 시어詩語일 것입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28주가 지난 태아의 성별 고지는 가능하도록 된답니다. 이는 남아를 선호했던 문화적 낙후성과 의식이 현저하게 개선되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톰 크루즈

 

박성희씨가 무쳐낸 비빔국수가 완성되었고 일행은 반병두리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흰 눈이 쌓인 겨울밤, 고추장 양념과 참기름에 버물린 고소한 김치가 얹힌 면은 금방 동이 날 만큼 맛난 것이었습니다.

 

네 분은 모두 특수교육을 전공한 대학원 동기들이었습니다. 박성희씨는 박사학위과정중에 있고 다른 이들은 관련 현장에서 근무 중이었습니다. 지적장애(정신지체를 순화한 말), 학습장애, 정서장애와 정서자폐 등 세부 전공이 모두 달랐습니다.

 

좀 더 깊이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저는 그 각각의 개념에 대해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싶었습니다.

 

"지적장애는 IQ70 이하 등 몇 가지 기준이 정상인에 미달하는 경우입니다. 물건을 하나 구매하는 것도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지적행위입니다. 무엇을 살 지를 스스로 결정해야 하고 그 물건을 상표를 통해 구별해내야 하며, 값을 치르기 위해 셈을 해야 하는 셈법을 알아야 합니다. 옷을 입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셔츠와 바지를 구별해야하며 단추를 채우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학습장애는 모두 정상이지만 특정 분야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입니다. 숫자의 인식에 어려움을 겪거나 특정한 숫자에서 계속해서 오류를 내거나 글자를 읽을 수 없는 경우 같은 것입니다. 톰 크루즈는 문자를 판독할 수 없는 난독증 환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대본을 누군가가 읽어주면 외워서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정서자폐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것 등이지요."

 

학창시절, 제가 수학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 갑갑했고 암기를 잘 할 수 없음이 답답했습니다. 그저 평범하기만 한 것이 답답했고 어느 분야에 발군의 능력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주지 못함이 저 자신에게 불만이었습니다.

 

저는 박성희씨 일행의 요약된 용어의 설명만으로도 제가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에 대해 내심 감사했습니다. 평범한 것이 얼마나 특별한 축복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남의 도움 없이 살 수 있다는 것, 스스로도 멋 나게 옷을 입을 수 있다는 행복의 크기를 알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과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특수교육, #난독증, #지적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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