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 시흥시청1층 로비에 마련 된 전시장모습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12월 중순, 시흥시청 1층 로비에서 '방짜유기' 전시회가 열렸다. 흔치 않은 전시회라 발걸음이 바빠졌다. 방짜유기 전시회는 이번이 1회로 시흥문화원에서 주최하고 영일유기 공방주관, 시흥시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날 전시회에서는 5첩, 7첩 반상기, 부부원앙세트, 합식기세트를 비롯해 전통식기, 불고기판화로, 양푼, 별 촛대, 생활용품, 제사용품, 불교용품 등 많은 방짜유기들이 선을 보였다.

그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한 남성이 전시된 방짜유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주 어렸을 적 고향생각이 나네요, 요즘은 이런 유기그릇을 보기 힘들잖아요, 이 요강, 주전자 좀 보세요"라고 말한다. 추억에 빠진 그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방짜유기'하면 얼른 생각나는 것은 놋그릇이란 말과 어린 시절에 명절이나 제사 때 어머니가 정성껏 닦는 모습이다. 앞마당 한쪽에 가마니를 펴놓고 그 위에 모래나 기왓장가루를 지푸라기에 묻혀 힘껏 놋그릇을 닦으면 노란색깔을 띠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그런 방짜유기가 오랫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이유는 무엇이고, 요즘 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
▲ 전시 된 방짜유기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전시 된 방짜유기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방짜유기의 유래

유기란 놋쇠로 만든 각종 기물을 말한다. 놋쇠는 구리를 주성분으로 주석 등을 섞은 대표적인 구리, 주석 합금이다. 신라 시대에 이미 유기를 제작하던 철유전(鐵鍮典)이 있었으며, 고려 시대에는 상류층 식기와 각종 불교공예품으로서 유기가 사용되었는데, 당시 유기는 중국으로 수출도 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점차 늘어나 일반 용기로 쓰였다.

유기 종류는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方字)와 주물(鑄物), 그리고 반방짜(半方字) 등이 있는데, 가장 질이 좋은 유기로 알려진 방짜유기는 동1근(16량)에 주석 4∼5량을 합금한 것으로 일명 양반쇠라고도 한다. 중국은 사기제품이 주종이고 일본은 나무그릇이 주종을 이룬다. 오직 우리나라만이 유기제품을 병행했다. 

방짜유기그릇은 1천여 년 동안 우리민족과 함께해 온 전통식기다. 일제시대에 유기 원료인 청동을 군수용으로 쓰느라 놋그릇을 아예 만들지 못하게 했으며, 6.25를 겪으면서 무거운 놋그릇보다 가벼운 양은그릇이 인기를 끌었다. 그런가 하면 난방방식이 재래식아궁이에서 연탄화덕으로 바뀐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연탄이 뿜어내는 유독가스가 놋그릇을 변색시켜 관리하기 힘들어져 그나마 남은 유기그릇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일반인들에게 방짜유기의 우수성이 전해지며 차츰 반응이 일어났고 최근에 들어 방짜유기의 우수성이 실험을 통해 속속들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이다.

...
▲ 영일방짜유기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자신이 만든 유기그릇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는 김 원수씨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쇳물이 녹을 동안 틀에 물건모양의 형틀을 넣은 후 흙을 다진다
▲ 흙을 다지는 과정 쇳물이 녹을 동안 틀에 물건모양의 형틀을 넣은 후 흙을 다진다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재료들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시흥시에도 '방짜유기'를 만드는 곳이 있어요

방짜유기 전시회를 보고 방짜유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궁금해졌다. 시흥시 금이동에 있는 영일유기공방을 찾았다. 주변 환경이 쾌적하지 않음을 한눈에도 알 수 있었다. 요즘 웬만한 작업은 자동화가 되었지만 유기그릇은 일일이 사람 손길이 필요했다.

그만큼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고되고 힘든 작업인 것이다. 작업장으로 들어가 봤다. 공방대표는 직원들 사이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모두가 똑같은 작업복 차림에 누가 직원인지 대표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삼복더위의 여름이나 추운 날씨의 겨울에도 뜨거운 불앞에서 쇠와의 작업은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였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흙먼지가 입안을 텁텁하게 만든다.

그렇게 열악한 작은 공간에서 11단계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의 유기그릇이 소비자에게 전달이 된다.

제작과정
1,재료합금(구리78% 주석22%합금과정에서 주석을 먼저 녹인다)
2,재료를 녹인다(다 녹인 재료를 인코더에 뽑는다)
3,흙을 다진다(쇳물이 녹을 동안 틀에 물건모양의 형틀을 넣은 후 흙을 다진다)
4,흙을 말린다(다진 틀을 쇳물이 흙속으로 파고들지 않기 위해 그을음으로 말린다)
5,틀 고정(그을음 말린 틀을 쇳물을 붓기 위해 줏대로 고정시킨다)
6,쇳물 중비(다져진 틀에 쇳물을 주입하여 그릇 형태를 만든다)
7,흙에서 그릇을 털어낸다(쇳물 주입 후 완성된 제품을 흙에서부터 분리한다)
8,담금질(분리한 제품을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담금질을 한다.
9,재료를 녹인다-담금질까지 완성된 제품(열에 가열한 후 물에 그릇을 넣고 식혀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10,마무리 작업-로구로(가질로)깍아 낸 제품(담금질 한 제품을 가질(로구로)깍아 낸다.
11,포장단계 (고급 선물박스 포장. 보자기포장, 오동나무 박스포장)

로구로(가질로)깍아낸 제품
담금질한 제품을 가질(로구로)로 깍아 낸다
▲ 마무리작업 로구로(가질로)깍아낸 제품 담금질한 제품을 가질(로구로)로 깍아 낸다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마무리작업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
▲ 작업하는 모습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이번 전시회를 주관한 영일유기공방 대표인 김원수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 방짜유기에 입문한 특별한 동기는?
"특별한 동기는 없어요. 예전에는 생업을 위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일이 너무 힘들어 중간에 그만둔 사람들도 많았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요. 비록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해온 일이지만 내가 그만두면 안 될 거란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어요. 힘든 일이지만 그런 작은 생각에서부터 지금까지 유기그릇을 만들게 된 것이지요."

- 40여년을 종사하시면서 힘들었던 일은?
"그동안 힘든 일이 정말 많았어요. 공장부지, 자금문제, 환경도 좋지 않은데다 힘든 일이라 이일을 하려는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려웠어요. 우린 아주 영세업자라 나라에서 지원금도 못 받고 있어요."

최근 들어 유기그릇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서 형편이 조금 나아진 것이라고 하는 환경이 그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전에 잊혀져가고 사라져갔을 때 어려움은  어땠을까?

- 요즘 들어 방짜유기그릇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데요.
"옛날 우리선조들이 쇠를 녹여서 만들어 계속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건데, 언제부터인가 잊혀져가는 방짜유기를 새롭게 다시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서 애를 쓰고 있어요. 예전에는 관리하기가 힘들어서 가정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가지고 있던 것들도 모두 없애는 사람들도 많았지요. 하지만 요즘 들어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좋다는 것이 알려지니깐 사람들이 점점 많이 찾고 있어 반가운 일입니다"

-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방짜유기를  지켜온 이유는?
"제작 과정이 힘들고 어려워서 요즘은 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요. 전통을 지켜 나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어요. 하지만 그 누군가는 이것을 지켜야 만이 우리나라의 놋그릇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거지요"

-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인데 혹시 김원수씨의 대를 이을 전수자가 있나요?
"다행히 아들이 내 뒤를 잇겠다며 요즘 이 곳에서 같이 일하고 있어요. 예전에 학교에 다니면서 내가 바쁘면 아들이 도와주고는 했어요. 아들은 학교를 마치고 2년 동안 사회생활도 했어요.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방짜유기작업을 했는데 아버지 대에서 이 일이 끊긴다고 생각하니깐 그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 뒤를 이어 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그는 아내의 고생도 오늘날 자리 잡는데 큰 몫을 했다고 하면서 미안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도 주문받고, 포장하고, 보내는 등 잡일은 아내가 도맡아 하다시피 한다고 한다. 

..
▲ 완성된 제품들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아버지의 대를 잇고 싶다는 아들 김영호(29)씨와 그의 어머니도 만나보았다.

김영호씨 어머니는 아들이 방짜유기 전수자를 자청했을 때 반대를 했다고 한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이 그의 어머니도 그렇게 힘든 일을 자식에게 대물림 한다는 것이 무척 안쓰럽고 안타까웠을 것이다. 김영호씨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시키고 아버지 대를 잇게 된 것이다. 어머니도 아들 생각을 이해하고 지금은 세상 누구보다도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다.

앞으로 영호씨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제가 사회생활을 해보니깐 모든 일이 그렇게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아버님이 평생을 받쳐 이루어온 방짜유기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알고 보면 유기그릇은 사람에게 좋은 점이 아주 많은 데도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 유기그릇을 요즘 젊은 사람들 취향에  맞게 예쁘고 편리하게 디자인을  개발해서 널리 알리고 싶어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방짜유기를 세계에도 널리 알리고 싶고요. 몇 년 전 우리 집에 놀러온 선배에게 어머니가 유기밥그릇에 밥을 담아준 적이 있어요. 몇 년이 지났는데도 그때 밥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고 그래요."

어머니도 아들 영호씨가 알아서 척척 일을 해결해주니까 많이 편하다고 말한다. 영호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요즘, 간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일회용 용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일유기공방의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쯤 조금 더 넓은 도창동으로 공장을 옮길 생각입니다. 공장을 이전하게 되면 방짜유기 작업하는 과정을 한눈에 관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체험관, 전시장도 만들 계획입니다. 그럼 관내 학생들괴 시민들은 물론 타 지에서 시흥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견학을 할 수 있고 체험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걸 더욱 활성화시켜서 우리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 문화재를 만드는 일을 자신이 함께 해결해주었을 때, 자신이 만든 방짜유기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방짜유기 제작과정은 11단계를 거쳐야 끝이 난다. 대부분 과정이 불과 함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힘든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어려운 그 작업을 포기하지 않은 김원수씨께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
▲ 수저 ..
ⓒ 정현순

관련사진보기


얼마 전, 어느 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유기그릇에 음식이 담겨 나왔고 하얀 쌀밥이 유기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이 아닌가.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고 융성한 대접을 받은 기분이 들었다. 유기그릇은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 음식점에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날, 나는 마치 왕과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던 것은 모두가 방짜유기의 좋은 점이 돋보여서 그러했으리라.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그리고 건강에도 좋다는 방짜유기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큰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날 '인도이지정(그릇을 보면 그 나라의 형편을 알 수 있다)'이란 말이 실감이 나기도 했다. 

김원수씨가 40여 년을 바쳐온 방짜유기에 대한 희생과 사랑. 그의 말처럼 지금보다 더 발전하여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는 김원수씨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고, 앞으로는 그의 아들 김영호씨가 계획한 것처럼 더욱 활기찬 활동을 기대해본다.

또 시흥의 명물로 자리 잡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기도 했다.

방짜유기 이모저모
*방짜유기의 효능

- 식중독균등 각종 유해세균 살균효과(0ㅡ157균이 하루도 지나기 전에 사멸됨)
-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성분 생성
- 각종 영양소(단백질 비타민,,) 장시간 유지(사기와 스테인레스는 금방 소멸)
- 농약, 유해성분 등 독성 물질 검출

*유기그릇은 쓰기가 불편하다?

한마디로 그렇지 않다. 유기그릇은 다른 그릇처럼 편하게 쓰면 된다. 유기도 보통 그릇처럼 일반세제에다가 수세미로 닦아주면 된다. 단 수세미는 철수세미만 쓰지 않으면 되고 매일 사용하면 유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관 시에는 물기를 제거한 후 비닐이나 신문에 싸서 보관하면 된다. 광택제는 얼룩이 지거나 변색이 되고 색상이 싫증날 때만 사용하면 된다. 물론 다른 그릇보다 조금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무겁다는 단점 하나로 놓치기엔 장점이 많은 그릇이 방짜유기다.

*생활속 방짜유기

- 부패세균을 살균하여 각종 채소(거의 한달 동안)나 생선 등 음식물이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싱싱함이 유지된다.
- 보온 보냉이 좋아 요리 직후 온도를 유지해줘 음식 맛이 살아난다.
- 옛날 미나리를 놋그릇에 씻으면 거머리 등이 떨어져나간다. 방짜 양푼이 없으면 작은 놋쇠수저라도 그 속에 넣어서 씻기도 했다. 즉 놋쇠는 해충을 소독하여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 스님들 삭발 기구인 '삭도'는 반드시 방짜로 만든다. 자주 삭발하는 스님들에게 덧나지 않는 칼은 방짜 밖에 없었다.
- 옛날사람들은 오이지를 담글 때 놋그릇을 닦았던 지푸라기를 얻어놓으면 오이가 더 파랗게 되고 맛있어진다.(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장)
- 놋그릇을 사용하면 풍에 좋다.(풍은 미네랄부족으로 올 수 있는데 방짜유기는 미네랄성분을 방출 한다.)
-놋그릇에 화초를 기르면 훨씬 잘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방짜수저로 바꾸는 그날부터 입병이 안 생기며 있었던 입병도 씻은 듯이 낫는다고 한다.
(김원수씨의 이야기와 인터넷자료참고)

덧붙이는 글 | 전시회는 12월 19일 끝날 예정이었으나 찾는 사람들이 많아 이달말까지 연장 전시하기로 했습니다



태그:#방짜유기, #유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주로 사는이야기를 씁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