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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11일, 일본 사이타마 현(縣) 이루마시의 빈 아파트에서 남녀 3명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이들의 죽음은 타살로 볼 만한 증거가 전혀 없었기에 평소 알고 지낸 사람들끼리의 동반자살로 처리된다. 하지만 이들의 자살은 단순한 동반자살이 아니었다.

서로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 게시판에 누군가 남긴 '00에서 함께 죽을 사람을 구합니다'와 같은 글로 죽음을 전제로 만나, 메일이나 게시판을 통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의논하고 정한 후에 자살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동반자살은 이들과 함께 죽기로 했으나 동반 자살 결행 며칠 전에 연락이 끊겨 함께 죽지 못한, 연락이 끊기자 궁금한 마음에 죽음을 공모했던 아파트를 찾은 여고생에게 발견, 여고생의 증언으로 죽음의 전모가 밝혀져 일본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 증언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자살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1998년 12월의 닥터 기리코 사건, 1998년 8월 의 애완동물 미용사의 자살방조사건 이래 또다시 인터넷 동반자살 사이트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신문,TV, 잡지 등의 대중매체는 연일 사이타마 현의 집단자살을 다뤘다. 그리고 자살 사이트 등에서 동반자살 상대를 모집해 실행하는 것이 어느 샌가 '인터넷 동반자살' 또는 '인터넷 자살로 불리게 됐다. …이 증언이 나오자 언론은 이 사건을 인터넷 동반자살 게시판에서 같이 죽을 상대를 모집한 '인터넷 집단자살'로 일제히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보도는 이후 인터넷 동반자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계기가 된다. -책속에서

모방 자살 급증과 함께 사이타마 현의 동반자살자들이 선택한 자살의 방법과 도구들인 '인터넷에서 모집, 연탄(일산화탄소 중독), 자동차, 죽을 때까지 사람의 눈에 띌 가능성이 없는 한적한 장소' 등이 동반자살의 정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자살 문제, 감춘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인터넷 동반자살>겉그림
 <인터넷 동반자살>겉그림
ⓒ 주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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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동반 자살>(주영사 펴냄)은 최근 몇 년 동안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급증,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인터넷 동반자살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저자 '시부이 데쓰야'는 일본의 독립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이다. 전직 기자였던 그는 현재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집단자살, 소년범죄, 동성애, 집단 괴롭힘, 성매매, 폭력, 인터넷 중독 등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주로 취재,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술한 책으로는 <인터넷 중독을 조심하라-3권> <절대약자> <웹 연애> <내일 자살하지 않겠어요?> 등 현대 사회가 앓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들을 다룬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이력의 저자는 그간의 취재와 저술을 바탕으로 지난 몇 년 간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인터넷 동반자살자들을 추적한다.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친 사람들을 인터뷰하거나 동반자살한 사람들이 주고받은 메일, 그들이 만났던 사이트 등을 추적하여 인터넷 동반자살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책은 모두 5부, 인터넷 자살의 특징,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유형별 문제점, 인터넷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노력의 방법들을 제시한다.

-인터넷 동반자살을 하려는 사람은 주위에 어떤 형태로든지 메시지를 보낸다. 그것은 실행에 옮긴 자살자, 또는 옮기지 않은 자살시도자 모두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물론 노리오(제2장 사례)처럼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전혀 신호를 보내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수는 구조 신호(SOS)를 보낸다.

-또 아이가 자살 사이트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서 인터넷을 금지시켜서는 안 된다. 자살 사이트를 보거나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은 물론 위험한 측면이 있지만, 이런 것들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책속에서

저자는 자살에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만을 다루지 않는다. 자살사이트에서 죽음을 전제로 만났지만 서로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위로를 얻고 건강한 생활인이 된 사례, 모든 자살사이트는 위험하다는 인식과 달리 자살을 막기 위한 사이트들의 노력 등도 소개한다.

흔히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힘든 것을 이겨내지 못할 만큼 심약하기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책을 통해 만난 대부분의 자살자들이 삶의 힘든 지경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놀랍게도 긍정적인 사람도 동반 자살을 선택하는가 하면, 자살을 막으려다가 휩쓸려 자살하거나, 상담을 해주다가 전이되어 자살하는 사례들까지 소개된다. 인터넷을 통한 사람들간의 마음 나눔, 그 위험을 소름끼치도록 느낀 사례들이다.

저자는 사례 제시로 끝나지 않고 흔히 말하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문제 해결 등을 위한 마음 나눔이나 웹 연애 등 인터넷의 부정적인 측면, 인터넷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까지 다룸으로써 인터넷과 우리의 생활을 돌아보게 한다.

언론보도가 자살 부추겨...신중하게 보도해야

저자에 의하면 사이타마 현의 자살사건이 있기 전에도 이와 흡사한 동반 자살사건들이 발생했었다. 이들처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인터넷 자살사이트에서 만나 실내에 연탄을 피워 중독되는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건들이 종종 발생했는데 사이타마 현의 자살사건 이전에는 일정한 자살률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이타마 현의 자살 사건이후 일본의 인터넷 동반자살은 급증하고 만다. 저자는 그 원인으로 신문이나 방송들의 보도 행태를 지적한다.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동반자살은 계속되고 있다. 언론이 보도를 하게 되면 그것을 흉내 낸 모방 자살이 이어지기 때문에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면 보도하지 않는 것이 좋다. 굳이 보도를 해야 한다면 흥밋거리를 불러일으키는 식의 보도행태는 그만 두어야 한다.

-2004년에 후생노동성에서 <웹사이트를 매개로 한 복수동사자살의 실태와 예방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나왔다. 보고서에는 "모든 신문마다 자살방법을 빠짐없이 게재했다고 한다. 즉 풍로를 구입하고, 창문 및 현관을 접착테이프로 바르고, 인터넷을 통해 서로 알게 되었다는 것을 보도했다. 보고서는 또한 "유럽 및 북미에서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자살보도의 가이드라인이 있으며, 일본도 이에 대해 지금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책속에서

이 부분들을 읽으며 올 봄 강원지역의 인터넷 동반자살과 몇 몇 연예인들의 자살 방법까지 자세하게 보도함으로써 수많은 자살을 부추긴 우리 언론의 행태가 씁쓸하게 떠올랐다. 강원지역의 인터넷 동반자살 첫 보도 후 한 달 동안 발생한 인터넷 동반자살은 5건, 모두 12명의 남녀가 죽었다.

인터넷 동반 자살,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는 자살대국으로 불린다. 2005년 기준 OECD 가맹국 중 자살률 1위, 2008년 한국인 사망 원인 4위가 자살이기 때문이다. 부끄럽고 충격적인 현실이다.

하지만 자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자살을 막기 위한 노력은 매우 낮다고 한다.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쉬쉬하며 금기시하고 자살은 "심약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으로 치부하기 일쑤다. 

그러나 자살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도 아니며 심약하거나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일부 사람들의 잘못된 선택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내 이웃 내 주변 누군가 선택할 수 있는 우리 공동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개인과 가족, 사회, 정부 등이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자는 최근 몇 년 일본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자살사건들을 소개하면서 언론의 보도행태, 자살을 막기 위한 우리들의 노력 등을 충실하게 제시한다. 인터넷 동반 자살이란 책 제목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들은 심각하고 진지하다.

책을 읽는 중에 이 책의 존재를 주변에 알렸더니 인터넷 동반자살을 부추기는 책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사람으로서 이 책이 인터넷 동반자살을 막는 역할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읽는 동안 올 봄 강원지역을 강타한 인터넷 동반 자살 첫 보도 당사자인 6촌 당숙의 아들이 안타깝고 아프게 떠올랐다. 죽음 소식을 접하며 의문스러웠던 것들이 안타깝게도 이 책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6촌 당숙이 조금만 일찍 이 책을 접했다면 어이없는 선택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왜 죽음을 선택하는가.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회는? 인터넷은 자살을 부추기는가. 아니면 자살을 억제하는가. 인터넷 공간에서는 무슨 말이 오고가는가? 인터넷 동반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 인터넷은 우리 생활 전반에 관여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생활의 중요한 수단이 된 것이다. 이 책은 인터넷과 죽음의 관계를 자세하고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 인터넷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내 주변 누군가의 생명이 걸린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력과 방법들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 동반자살|시부이 데쓰야 (지은이) |박철현 (옮긴이) |주영사 |2009-11-25|11,000원



인터넷 동반자살 - 자살 문제, 감춘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부이 데쓰야 지음, 박철현 옮김, 주영사(2009)


태그:#동반자살, #자살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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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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