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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에 의해 연행되어 차에 오르기 전 지지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검찰에 의해 연행되어 차에 오르기 전 지지자들을 쳐다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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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과 한명숙, 승부에서 지는 쪽이 치명상을 입는 싸움이 시작됐다. 곽영욱(69) 전 대한통운 사장의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22일 곽 전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수수한 혐의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불구속 기소했다.

피의사실 유포 공방과 체포영장 집행 등을 둘러싼 장외 공방을 끝낸 양측이 이제 무대를 법정으로 옮겨 벼랑 끝 법리 다툼을 벌이게 된 것이다.

만약 법원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손을 들어준다면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몰고 온 박연차 게이트 수사에 이어 다시 한번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 시민사회와 정치권발 검찰개혁 태풍에 휘말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반대로 법원이 검찰의 손을 들어준다면 한명숙 전 총리는 물론 이번 수사가 '정권-검찰-언론'의 공작이라며 전면전을 선포했던 친노 진영도 정치생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물적 증거 없어... 관건은 곽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

관건은 곽영욱 전 사장이 내놓은 진술의 신빙성이다. 곽 전 사장은 돈을 줬다고 하지만 한 전 총리는 1원 한푼 받은 적이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검찰은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직접적인 증거, 즉 계좌추적 자료나 목격자 등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한 법정 공방이 오갈 수밖에 없다. 

때문에 법원이 과연 어느 쪽 진술의 신빙성을 높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갈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례도 있다. 1심 재판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박연차 게이트' 재판에서 재판부는 검찰 조사부터 법정 진술에 이르기까지 번복 없이 일관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을 인정해 대부분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이 진행되고는 있지만 정대근 전 농협회장, 이광재·최철국 민주당 의원 등이 모두 유죄를 선고받았다.

당초에는 유죄 선고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피고인들이 불법정치자금이나 뇌물 수수 사실을 한결같이 부인하고 검찰도 박 전 회장의 진술 외에 혐의를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박 전 회장의 진술이 재판부의 신뢰를 사면서 검찰은 압승을 거뒀다.

재판부는 특히 무더기 유죄를 선고하면서, 박 전 회장이 자신의 혐의가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피고들을 무고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연차 게이트 재판의 사례, 주목되는 박진 의원 선고

이 같은 판단 논리는 한 전 총리의 재판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24일 선고를 앞두고 있는 박진 한나라당 의원의 재판 결과가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전 총리와 박진 의원 사건 모두 당사자들은 한사코 돈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돈을 줬다는 이들의 진술에 의지해 기소했다.

박 의원은 2008년 3월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베트남 국회의장 초청 만찬장에서 박연차 전 회장으로부터 2만 달러가 든 봉투를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역시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박 전 회장의 진술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지난 3일 열린 공판에서 박 전 회장과 체격이 같은 사람을 등장시켜 만찬장 사진을 검증하는 절차를 거치기도 했다. 박 의원의 변호인 측에서 제출한 사진을 보면 안주머니가 비어있는 듯 보이고 검찰이 제출한 사진에는 무엇인가 담긴 듯 굴곡이 드러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한명숙 전 총리의 재판에서도 '재연'될지 모른다. 곽 전 사장이 총리 공관에서 한 전 총리를 만나 직접 2만 달러와 3만 달러가 든 봉투를 전달했다고 밝혔지만 한 전 총리 측은 여성 옷의 특성상 주머니가 거의 없고 핸드백은 수행비서가 가지고 있어서 돈 봉투를 받아 숨길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만 달러와 3만 달러의 부피만큼의 종이지폐를 직접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 넣어 보이면서 "검찰의 혐의 내용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 전 총리의 변호인단도 곽 전 사장 진술의 신빙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리 측은 지난 18일 소환조사가 끝난 후 검찰의 압박 수사로 인한 허위자백 가능성까지 제기했다.

한명숙 공대위 "검찰 공소장, 역사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

한명숙 전 총리가 11일 오전 노무현재단에서 열린 한명숙 공대위 회의에 참석해 "이번 기회에 제 모든 인생을 걸고 수사 기관의 불법행위와 모든 공작정치에 맞서 싸우겠다"며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가 11일 오전 노무현재단에서 열린 한명숙 공대위 회의에 참석해 "이번 기회에 제 모든 인생을 걸고 수사 기관의 불법행위와 모든 공작정치에 맞서 싸우겠다"며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언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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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정치공작 분쇄 및 검찰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한명숙 공대위)도 이날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고,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도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겁에 질린 병약한 70세 노인의 짜 맞추기 주장만을 바탕으로 작성된 공소장은 한국 검찰사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며 "검찰의 압박에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특별히 신빙할 만한 정황'이 없는 주장은 진술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특히 곽 전 사장이 "살려주세요, 검사님", "저 죽을지도 모릅니다"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인 점을 들어 "곽 전 사장의 절규는 인권이 보장된 검찰청사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고문과 협박이 자행되는 지하 조사실에나 어울릴 말"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 공동변호인단의 이종걸 의원은 지난 18일 한 전 총리의 소환 조사과정을 지켜본 후 "곽 전 사장의 진술이 여러 번 바뀌었고 부장검사가 나서 내용을 지시해 주면서 확인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송영길 의원도 "곽 전 사장이 '제가 검사님에게 이것 때문에 혼났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보아 진술이 강요된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결국 이 사건의 뼈대이자 핵심 쟁점이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 수수 여부인 만큼 변호인단은 이 같은 정황들을 최대한 활용해 재판의 주도권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한 전 총리의 변호인 측은 "곽 전 사장의 검찰 진술에 대해서는 증거 채택을 거부할 것"이라며 "돈 거래 목격자나 한 전 총리로부터 인사 청탁을 받은 자가 존재할 리 없기 때문에 결국 핵심은 법정에서 곽 전 사장의 진술을 탄핵하는 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죄나 무죄냐, 돌아올 수 없는 다리 건넜다

이에 맞서 검찰은 "수사팀이 충분한 조사를 했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당시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강동석 전 장관, 곽 전 사장을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곽씨를 잘 부탁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고, 곽 전 사장은 오찬 후 한 전 총리와 둘만 남았을 때 돈봉투를 전달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검찰은 남동발전과 석탄공사를 압수수색해 사장 공모 관련 자료를 확보했고 곽 전 사장 외 다양한 인물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법정에서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 수수와 대가성을 입증하는 정황 증거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특히 한 전 총리와 곽 전 사장의 친분도 부각시키고 있다. 1998년께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가 운영하는 여성단체의 행사 경비를 후원하면서 인연을 맺은 후 함께 식사하거나,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공기업 사장 자리를 청탁할 만큼 친분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변호인 출신의 한 의원은 "이 사건도 '박연차 게이트' 재판처럼 재판부가 곽 전 사장의 진술을 얼마나 신빙성 있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유무죄 판단이 갈릴 것"이라며 "재판 과정에서 확실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이상 관련자 진술 등 정황 증거를 누가 더 설득력 있게 제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검찰과 한명숙, 양측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태그:#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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