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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최후진술문을 낭독하던 선생님들이 막 울기도 하고……."

 

17일 오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최혜원 교사(전 서울 길동초)의 목소리에는 재판으로 얼룩진 지난 1년간의 피로가 잔뜩 배어 있었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다른 재판을 끝내고 나와 "판사의 얼굴에 뽀뽀를 할 뻔했다"며 뛸듯이 기뻐했던 그였다.

 

"반드시 학교로 돌아오겠다"고 아이들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탓일까? 이날 오후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해직처분 취소청구 소송 마지막 공판이 끝난 뒤, 최 교사는 기자와 통화하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는 말과 "희망이 보인다"는 말을 번갈아 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최 교사를 비롯해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의 교사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지 8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된 조치였다. 아이들에게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알린 게 이들의 징계 사유였다.

 

지난 3월 열린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애초 '파면' 처분을 받았던 교사 3명의 징계 수위가 '해임'으로 감경됐지만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이에 교사 7명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다.

 

보신각 앞에서 연행된 '노란풍선', 무죄를 받다

 

최 교사는 행정소송과는 별도로 국가를 상대로 한 또 하나의 소송을 벌여야 했다. 이른바 '노란풍선 사건'이다.

 

지난해 12월 31일 밤, 그는 다른 교사들과 함께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적힌 노란풍선을 들고 보신각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노란풍선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물품'이라며 이들의 보신각 접근을 가로막았다.

 

최 교사는 "풍선이 아이들의 희망을 담은 상징인 만큼 31일 자정에 날려 보내 '아이들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제지하는 경찰에게 항의했다. 하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고, 서러움이 복받친 최 교사는 눈물을 흘렸다. 당시 타종 행사에는 최 교사 등에게 징계를 내린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도 참석할 예정이었다.

 

경찰들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인파에 밀려 바닥에 쓰러진 최 교사는 밤 9시경 경찰에 연행됐다. 최 교사는 "수십 명의 경찰 군홧발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내가 (경찰을) 폭행했다고 하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며 "당시 저는 거의 실신 상태였고,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밤새 조사를 받아 과호흡 증세를 보일 정도로 힘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최 교사는 다음 날 훈방됐지만 검찰은 '공무집행 방해'와 '집시법 위반' 혐의를 적용, 벌금 오십만 원의 약식명령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최 교사가 불법집회에 가담했거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공소 사실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다. 결국 17일 오전 최 교사는 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최 교사는 재판 결과에 대해 "무죄까지 예상 못했다. 아무리 좋아도 선고유예 정도로 기대했다"며 "행정소송보다 더 많은 증인과 과정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고통을 받았는데, 말끔히 해소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제 사건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다른 촛불 사건에도 힘이 될 수 있는 소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거리로 내몰린 '도둑괭이 쌤'... 법원의 최종 판단은?

 

기쁨도 잠시, 최 교사는 곧바로 이날 오후 예정된 행정소송 결심 공판을 준비해야 했다. 최후진술을 위해 재판부 앞에 선 그는 "해직 당시에 발령받은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새내기 교사였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해직된 지 1년이 지났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아이들의 울음소리, 담임으로 서지 못한 졸업식의 풍경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른다"며 "1년 동안 진정 깨달은 것이 있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천생 선생이라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복직해서 다시 아이들 앞에 서고 싶다. 제가 앞으로 만나서 더 사랑해주어야 할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다"며 "이미 파행임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국가의 교육 정책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교사들을 교직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달라"고 호소했다.

 

일부 교사들은 최후진술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해직교사측 변호인단은 "일제고사 강행의 배경에는 민주주의의 파행이 있다"며 이들의 해직처분 취소를 주장했다. 1심 선고의 기일은 오는 31일로 결정됐다.

 

'노란풍선' 재판에서 승리했지만, 정작 아이들 품으로 돌아가기 위한 더 큰 재판이 남은 것이다. 문제는 결과를 쉽게 낙관할 수 없다는 점이다. 만일 징계가 무효로 결정된다 해도 교육 당국이 항소할 가능성이 높다. 최 교사는 "저희의 복직 문제 뿐 아니라 국가 시책의 정당성 문제가 걸려 있어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희망의 끈을 놓은 것은 아니다. 최 교사는 선고일이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이라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좋은 징조'라는 것이다. 그는 "선고일이 12월 31일이라는 데 희망을 품고 있다. 연말인데,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판결을 내리는 것은 인간적으로 좀 그렇지 않느냐"며 해맑게 웃었다.

 

희망의 근거는 또 있다. 지난 3월 일제고사를 거부하다 울산에서 해임된 조용식 교사가 지난달 16일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3개월 정직'으로 징계 수위가 낮아져 복직이 결정됐다.

 

교직 생활 3년 만에 해임된 최 교사는 '새내기 교사'이면서 일제고사로 해직된 교사들 가운데서도 '막내'다. 그는 아이들에게 '도둑괭이 쌤'으로 통한다. 1년 전 교장에 의해 강제로 교실에서 쫓겨난 '도둑괭이 쌤'을 끌어안고 아이들은 "헤어지기 싫다"며 펑펑 울었다.

 

그는 또 '거리의 교사'였다. 그는 굳게 잠긴 교문 밖에서 아이들과 노래도 부르고, 그림도 그리면서 '거리 수업'을 진행했다. 1년 내내 각종 소송으로 법원을 오간 최 교사가 반드시 복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이 아이들 때문이다.

 

용산참사를 시작으로 그 어느 해보다 암울했던 2009년, 그나마 마지막 날인 31일엔 교실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최 교사와 아이들에게서 눈물이 아닌 웃음을 볼 수 있을까?


태그:#해직교사, #일제고사, #최혜원 교사, #도둑괭이 쌤, #노란풍선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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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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