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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를 끌고 있는 TV 프로그램에 안철수씨가 나온 적이 있다. 방송 다음날, 서점가는 분주했다. "어제 방송 봤냐", "무슨 얘기 하더냐", "안철수씨가 쓴 책이 전부 몇 종이고, 어느 분야(에세이냐, 자기계발이냐)에 속해있냐"는 얘기들이 사무실을 오갔다. 이른바 '안철수 기획전'을 만들기 위해서다. 안철수씨의 본업은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장'이지만 글 솜씨 또한 출중하여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방송이 나온 다음날부터 안철수씨가 썼던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한다.

 

제가 일하는 '인터넷 서점' 풍경입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회사지요. 안 씨가 방송에 출연한 뒤 '안철수 도서 기획전'을 만든 것처럼 출판계 사람들은 요즘 무슨 책이 나오는지, 어떤 책이 반향을 일으키는지, 앞으로 어떤 책이 나와야 할지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명인이 방송에 나오면 급증하는 관련 저서들

 

책 한 권이 세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불안과 압박이 가중될수록 자기 치유와 위로의 내용이 담긴 소설이나 심리학 관련 책들이 많이 팔리고, 경제위기가 지속될수록 경제 위기 해법과 경제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담긴 책들이 많이 판매되기도 합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큰 영향을 행사하기도 하고 세상의 흐름에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책이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책이 가지고 있는 매력입니다.

 

어린 시절 책을 즐겨 읽지 않았던 저를 생각했을 때 책을 파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현재 제 모습은 마치 소매가 짧은 옷을 입은 것 마냥 어색합니다. 수필이나 소설, 고전은커녕 그 흔한 위인전도 읽지 않았으니까요. 초등학교 시절 독후감 방학숙제를 늘 어려워 했는데, 한 번은 당시 유행하던 유머집 <최불암 시리즈>를 읽고 숙제를 제출했다가 담임선생님께 혼쭐이 난 기억도 있습니다.

 

이런 제가 책과 관련하여 인생의 전기를 맞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빈둥거리고 있을 때 제가 좋아하던 한 선배가 "그러고 있지 말고 이것 좀 읽어보라"면서 던져준 한국 현대사 책이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입니다. 세 권이 한 세트로 된 책이었습니다. 독서 습관이 몸에 배어있지 않아 읽어 내려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지만 고등학교 때 배우지 못한 현대 역사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좋아하는 선배가 권해준 책이라서 열심히 읽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니 책을 권한 선배랑 자연스럽게 책의 내용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군요. 책과 담을 쌓고 살던 제가 책을 읽고 나누는 재미를 경험한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 대학 1학년 때 경험했던 독서와 독서토론은 마치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참 좋은 공부 독서, 아직 경험하지 못하셨다면

 

그 후로 '책 세미나' 같은 것을 열심히 쫓아 다녔습니다. 그렇게 저는 책이 주는 매력에 빠져들었습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참 좋은 공부가 됩니다. '공부'라는 단어가 '지긋지긋한'이라는 형용사로 완벽하게 어울릴 만큼 서글픈 현실입니다. 사실 진정한 공부는 입시 위주의 교육을 뜻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을 보고, 듣고, 배우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말이 아닐까요.

 

공부의 의미를 이렇게 넓혀서 생각해보면 한 개인이 지식과 정보를 축적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사람, 생명과 생명이 함께 살아가는 것, 즉 관계를 풍성하게 하는 것 자체가 모두 공부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책을 읽고 나누는 과정은 책의 내용을 습득하는 데 머무는 것을 넘어 책으로 사람과 사람의 사귐이 깊어지는 데까지 이르러야 참 공부로서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근무하다보면 '베스트셀러'의 허와 실을 보게 됩니다. 별 내용이 없는 책인데도 마케팅을 잘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는 도서가 있는가 하면 좋은 책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채 서가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책들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 책이 모두 좋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내용도 좋고 많이 팔리는 책도 많지요. 다만 자신이 읽어야 할 책을 잘 찾아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서 정보(베스트셀러나 광고)를 제외하면 어떤 책이 내가 읽어야 할 책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한 주에만 수백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지요.

 

"그러고 있지 말고 이것 좀 읽어봐"

 

대학 때 들었던 이야기 "그러고 있지 말고 이것 좀 읽어보라"는 말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어떤 책을 읽고 나눌지, 그것은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혼자 읽는 책보다는 함께 읽고 나누는 게 재미있고 서로 간에 이야깃거리도 풍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책을 만드는 건 결국 독자의 몫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포장해도 내용이 부실한 책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입과 손에 오르내리지 않습니다. 분별력을 키워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좋은 책을 읽고 나누는 관계가 풍성해질수록 좋은 내용을 담은 책들이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마을 주민들과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인수동 독서 토론회' 같은 것이 만들어지면 어떨까요? 책을 읽고 나누는 풍성함으로 마을에서 이웃들의 관계가 풍성해질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죠. 책의 매력에 푸욱 빠지다보면 어느새 더욱 풍성해진 관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수동마을신문<아름다운 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독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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