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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생활에 대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시장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도 대학에 들어가고 사진 찍는 취미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달동네의 뒷골목이나 시장 풍경을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버릇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시장을 한바퀴 돌고 나면, 상상도 못했던 신이 나고 기분도 좋아지며 활력도 넘쳐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과는 달리 그 때 몇 년 전만 해도 재래 시장의 풍경은 결코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한바퀴 돌고 나면, 바지단에 때 구정물이 튀는 훈장을 감내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이 그 안에는 항상 살아 생동하였기 때문에, 저절로 다시 찾게 되는 유혹을 결코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16세기 유럽의 생동감 넘치는 시장 풍경

그런데 재래 시장 풍경은 오래 전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렇게 많이 변해 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옛 추억을 생각하며 '16세기 유럽의 시장 풍경' 속으로 따라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유럽의 시장은 아시아나 우리네 시장 풍경과는 다를까요. 많이 다를까요. 다르면 어떻게 다를까요.

Oil on oak, 1550, Alte Pinakothek, Munich, Bavaria, Germany ⓒ 2009
▲ 시장 풍경(Market Scene) Oil on oak, 1550, Alte Pinakothek, Munich, Bavaria, Germany ⓒ 2009
ⓒ Pieter Aert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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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그림들의 화가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그가 남긴 유작(遺作)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피터 애르첸(Peiter Aertsen, 네덜란드, 양식주의 화가, 1508-1575)은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유명한 화가입니다. 1508년,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Amsterdam)에서 태어났습니다. 청년 시절에 클레즈(Allaert Claesz, 네덜란드, 1498-1564)의 수습생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했으며, 키가 커서 '롱 피터(Long Peter)'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가구나 부속품과 같은 물건을 재현하거나 조리도구로 요리하는 등의 가정적인 주제의 그림에 놀랄 만큼 사실적인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 후에 역사적인 장면을 상세하게 재현하는 수법을 완성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성당의 제단화를 포함한 최고의 작품들 가운데 몇몇 그림은 네덜란드의 종교전쟁 때 파괴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Crucifixion, 1545)"라는 작품은 앤트워프에 있는 '성 누가 예술원(the Academy of St Luke)'의 회원이기도 했던 그의 화풍이 매우 잘 드러나 있는 유명한 그림입니다. 그의 세 아들 모두 인정받던 화가였으며, 그가 가르친 스트라다노(Giovanni Stradano, 플랑드르, 1523-1605)와 조카 보이체래(Joachim Beuckelaer, 플랑드르, 1530–1574)도 화가로 활동했습니다.

그가 태어난 암스테르담과 벨기에 북부에 있는 주 앤트워프(Antwerp)에서 주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였습니다. 정물화와 풍속화의 선구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아래에 소개한 "정육점 상품 진열대((Butcher's Stall, 1551)"란 그림에서 구체적으로 완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애르첸은 그림에서 만큼은 오랜 명가의 수장이었으며, 가장 큰 재능을 보였던 화가는 그의 조카이자 제자였던 보이체래였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과 같은 그의 풍속화들은 훗날 이탈리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이한 사실은 바로 아래 그림의 경우, 전경(前景)은 시장풍경인데, 후경(前景)은 성서적인 그림이라는 점입니다.

Oil on oak,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Westfalen, Germany
▲ 시장 풍경(market scene) Oil on oak, Wallraf-Richartz Museum, Cologne, Westfalen, Germany
ⓒ Pieter Aert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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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wood, 1567, Staatliche Museen, Berlin
▲ 야채 상품 진열대의 시장주인(Market Woman with Vegetable Stall) Oil on wood, 1567, Staatliche Museen, Berlin
ⓒ Pieter Aert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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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wood, 1551, Private collection
▲ 정육점 상품 진열대(butcher's stall) Oil on wood, 1551, Private collection
ⓒ Pieter Aert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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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첫 번째 그림은 전체적인 시장의 풍경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는 것처럼 조망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짐을 실어 나르는 짐마차와 손수레도 보이고, 좌판에 올려 놓은 온갖 상품들과 그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앉을 의자, 크고 작은 각종 바구니 등 다양한 물건들이 마치 활이 휘어진 것 같은 곡선의 형태로 여기저기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 첫째 그림의 뒷배경으로는 한번 흘끗 보고 지나갈 정도로, 성경의 '바라바(Barabbas)'를 외치는 군중들이  있는 연단(요한복음 19:4-6)이 설정되어 있습니다. 자세하고 세밀한 상황을 엿볼 수는 없지만, 이런 두 가지 주제를 한 그림 안에 재현한 점은 애르첸 그림의 또다른 매력이자,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 구도는 독자(관객)들을 압도하는 배열이며, 애르첸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독자(관객)를 압도하는 무지개 모양의 배열 구도

둘째, 셋째 그림의 생선이나 각종 과일과 같은 농작물, 마지막 넷째 그림의 각종 고기나 닭의 모습은 마치 사진을 보고 있는 것처럼 놀랄 만큼 생동감이 넘쳐나며 매우 극사실적입니다. 한편 그림을 들여다 보며 감상하고 있으면, 당시에는 경제적인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으며, 중세 후기 농부들의 행복한 웃음과 해학, 영원의 연인을 끌어 안고 있는 풍속 화풍의 배경 그림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생선의 크기나 눈의 표정도 살아 있어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함이 느껴지며, 내장을 빼고 말린 홍어나 가오리로 보이는, 살아 있는 것 같은 입 벌린 생선의 모양이 적나라하고 사실적입니다. 온갖 다양한 과일과 각종 야채의 종류나 겉모양의 질감이 마치 밭에서 갓 따서 가지고 나온 것처럼 싱싱하고 신선해 보입니다. 500년 전인 16세기 유럽의 시장 풍경도 우리의 시장과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 넷째 그림에서 화가는 독자들에게 실제 크기의 식료품을 대량으로 들이댑니다. 위 그림의 관찰자도 당황스러워 보이는 새고기와 소시지,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 버터, 치즈, 짧짤한 비스킷, 최상층의 수소 머리의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초대합니다. 각각의 대상은 오만해 보일 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전경(前景)의 관계를 역행하고 있으며, 화가가 말하고자 하는 그림 속의 실제 이야기들은 배경화면에서 일어납니다.

우선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하는 오른쪽 뒷편에 빛이 비치고 있는 선술집 풍경이 보입니다. 술집 건물 주변의 땅(대지)은 술꾼들이 최음제처럼 소비했을 굴과 홍합 껍질들이 널려 있고, 선술집의 환락 속에 단골 고객과 함께 있는 매춘부도 보입니다. 또 한편 왼쪽 뒷편으로 동시대의 의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 지방 교회를 향해 걷고 있는 광경이 보입니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처녀 마리아가 잠시 멈춰 서서 가난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있는 성서 이야기를 통하여 고통 속에도 행운을 나누는 인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그림과 같은 16~17세기에 일반화된 풍속화는 신자들 죽음의 상징으로서 도살된 동물을 신학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연약한 육체(마태복음 16:41)'를 암시하고 있으며, 겉보기에 무척 많고 풍성해 보이는 정육점 상품 진열대에 놓인 식용 고기에서 연상할 수 있습니다. 사진보다도 훨씬 더 생생해서 마치 당시의 현장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마치 그 시대 그 시장의 좌판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합니다.

Oil on panel, 1560,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새고기를 파는 사람(vendor of fowl) Oil on panel, 1560,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n Federation
ⓒ Pieter Aert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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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wood, 1561,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Hungary
▲ 시장 풍경(Market Scene) Oil on wood, 1561,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Hungary
ⓒ Pieter Aert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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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l on wood, 1561,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Hungary
▲ 시장 풍경 세부그림(Market Scene, detail) Oil on wood, 1561, Museum of Fine Arts, Budapest, Hungary
ⓒ Pieter Aert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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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세 그림은 주인공인 노점상 노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표정과 인물의 몸매, 입고 있는 옷의 질감과 표면의 결을 자유로운 양식과 붓질의 그림자 효과를 통하여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1560년에서 1561년까지 여러 시각에서 드러나는 이 인물의 다양한 몸 동작을 수십 번씩 그리고 또 그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주인공이 이고 있는 물동이나 쓰고 있는 모자, 신고 있는 나막신까지 꼼꼼하게 현장 그대로를 재현하였습니다.

이런 독립적인 주제로서의 풍속화는 16세기 네덜란드에서 기원합니다. 이런 인간의 활동을 그린 16세기의 그림은 장식의 한 형태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풍속화'란 '종류, 또는 부류'를 뜻하는 라틴어, '게누스(genre)'에서 유래되었으며, '일상적인 삶의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장르화(Genre-painting)'라고도 합니다. 즉 평범한 주제의 일상이 고귀한 가치와 이상으로 승화된 미술을 의미합니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 기원한 풍속화의 발전
 
풍속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왔으며, 여러 세기 동안 다양한 주제가 등장했습니다. 이처럼 풍속화는 당대의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동시대의 현실이 그림의 주제가 됩니다. 또한 당시의 사회와 일상 생활, 의복 등을 기록한 증거가 되며, 특히 음식이나 음악과 같은 감각적인 체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당시 16세기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노동, 즉 '하층 인생'을 주제로 한 풍속화들은 중산층의 주요 후원자나 상류층 구매자들의 즐거운 감상이 되었습니다.

위 그림에서도 노점 상인인 남자 노인과 여인의 진지한 일상과 생업 현장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그려졌습니다. 세밀한 원근법과 그림자, 세밀한 화면 구성, 그리고 차분하고 조화로운 색채를 통하여 매우 실감나는 세계와 시끄러운 시장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풍자나 해학이 아닌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진실하게 나타내었으며, 노인의 깊게 패인 주름과 무뚝뚝하면서도 인자해 보이는 표정이 잘 묘사된 작품입니다.

이처럼 16세기의 풍속화가, 애르첸은 세밀한 원근법과 명암, 화면 구성, 그리고 색채를 통하여 매우 사실적이고 진지한 시장의 일상과 생업 현장으로 독자(관객, 방문자)들을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화가 애르첸은 피터 브뤠헬(Pieter the elder Brueghel, 플랑드르, 1525-1569)과 함께 당시 네덜란드에서 많은 지지자를 갖고 있던 풍속화가였습니다.

오늘의 화가 애르첸의 대부분의 작품은 시장에서 일하는 노점의 농부들을 대상으로 묘사하였는데, 좁은 공간에 제한되어 있는 힘있는 모델의 모습과 깨끗한 윤곽, 그리고 색채를 통하여 기념비적인 결과를 이루었습니다. 그의 풍속화 후기의 장면을 비교할 때, 애르첸의 위대한 가치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순수함과 단순성에 있습니다. 그런 점이 바로 우리 삶을 대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며 그의 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오늘 오후 시장을 거쳐 귀가하는 것은 어떨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와 초하뮤지엄.넷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피터 애르첸(Peiter Aertsen, 네덜란드, 양식주의 화가, 1508-1575)의 그림과 약력은 위키백과(http://en.wikipedia.org/wiki/Pieter_Aertsen#cite_ref-0)와 ARC(http://www.artrenewal.com),

Web Gallery of Art(http://www.wga.hu/frames-e.html?/bio/g/grunewal/biograph.html), "주제로 보는 명화의 세계(Alexander Sturgis 편집, Hollis Clayson 자문, 권영진 옮김, 마로니에북스)"의 내용을 참고하여 번역, 종합, 정리한 것입니다. 더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태그:#풍속화, #GENRE-PAINTING, #AERTSEN, #애르첸, #암스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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