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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기업을 넘어 영적 기업으로
ⓒ 한언
잉글랜드의 한 시골 마을에 직물공장이 들어섰다. 공장은 잘 운영됐고 그 수도 늘어갔다. 하지만 법적 체계와 정화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물이 점점 오염됐고 주민들은 병이 들었다. 도시에는 장티푸스, 콜레라가 창궐했다. 여기에 매연까지 더해져 평균 수명이 20세 안팎으로 떨어졌다.

마을에서 가장 큰 기업이던 '다니엘 셀트와 그 아들'은 외곽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한다. 기업은 새로운 도시에 맑은 물이 나오는 저수지를 팠고, 학교와 도서관을 지었다. 직원들은 회사가 만든 공공시설물을 이용했다. 이는 1851년 설립된 '기업도시' 샐타이어의 얘기다. 자본주의 초기의 이야기지만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한국 기업의 현실은 어떤가. 유한 킴벌리의 4조 2교대의 독특한 사례를 제외하곤 불법 파견에 문자해고를 한 기륭전자, 노동유연화를 위해 계산 업무직을 외주화하려 했던 이랜드, 여승무원에게 불합리한 처우를 했던 KTX고속철도 등이 대번 생각난다. 그뿐이던가. 내전을 방불케 한 쌍용차 파업은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다.

<위대한 기업을 넘어 영적 기업으로>의 저자 마르크 건서는 '포춘'지 수석기자다. 포춘지는 주로 '부'에 관한 기사가 썼는데 예상치 않게 그의 기사 '신과 비즈니스'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경영에 있어서 최고경영자의 '윤리의식'과 '실천'을 강조했고 그 바탕을 '청교도 사상'에서 찾았다.

"사업은 사업일 뿐이며 기업은 돈을 벌고 법을 지키는 것 외에 아무 의무도 없다는 믿음이 마치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겨우 1세기 동안의 관점일 뿐이다. 미국 기업의 탄생은 '회사란 신의 뜻을 받드는 장'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시작됐다. 청교도인들은 중노동을 종교적인 의무로 받아들였고 소공상인들이 경제를 지배하는 동안 '장사는 도덕적인 사업이다'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었다."

저자는 사례를 중심으로 여러 기업을 소개한다. 직원을 제1가치로 두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사', 직원의 기회균등과 교육에 힘썼던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 협력업체와 우호적인 관계를 보여준 '스타벅스', 해고의 정도를 보여준 '허만 밀러' 등이 있다.

한국 기업은 경영위기 상황에서 보통 정리해고나 임금 삭감의 카드를 꺼낸다. 하지만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9․11테러 이후 항공업계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 직원 해고 없이 위기를 돌파했다. 최고경영자 바렛은 "직원들이 우선이다. 승객들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주주들은 세 번째다."라며 직원을 지켰다. 회사가 직원에게 진심으로 대하면 그들도 고객들에게 최선을 다해 회사에 이익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실제 충성고객은 더 늘었고 심지어 '무료비행쿠폰'을 보내기도 했다. 직원의 80%가 노조에 가입했지만 노사관계는 대체로 원활하다. 중요한 변수가 되는 임금 협상 시에서도 "얼마나 월급을 적게 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직원들에게 얼마나 월급을 많이 줄 수 있느냐로 질문을 시작할 때 협상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물류회사 유나이티드 파셀 서비스(UPS)는 직원들에게 균등한 취업 기회와 교육 시스템을 제공한다. UPS는 시간대별로 가용인원이 달라 12만 명의 시간제 직원을 채용한다. 그들은 대학생이거나 갓 졸업한 학생으로 소포를 싣고 내리는 분류작업을 한다. 그들은 본인만 원한다면 근무연수에 따라 정식 직원으로 채용된다. 8만 명의 운전기사들도 대부분 소포를 나르다 발탁됐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비행기 조종과 같은 특수직을 제외하고 대체로 내부승진을 한다. 또 지역경제를 위해 정부의 생활보호대상자 5만 8000명을 채용했고, 이민자에게 정년을 보장했다. 2006년에는 회사 간부의 32%가 이민자였다. UPS는 교육에도 많은 투자를 했다. 노동자에게 '언 앤 런'(Earn and Learn)이라는 수업료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했고 대학 대출금을 지원했다. 지역대학의 강의를 회사 안에서 들을 수 있게 했다.

스타벅스는 협력업체와 관계를 중시한다. 반세계화주의자들에게 악덕기업이라는 오해를 받지만 사실 스타벅스는 오래전부터 커피 재배농에게 2배가 넘는 가격을 지불하고 있었다. '자선'이 아닌 믿을 수 있는 커피콩을 얻기 위해서라고 강조한다. 2001년에는 국제보존연맹과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사회적․환경적․경제적 품질기준에 만족하는 기업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이 경비절감 부담을 하청업체에 돌리는 것과 거리가 멀다. 중소기업은 시설/기술투자를 못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이 지난해 30.9%까지 떨어졌고 전체 노동생산성 하락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언제가 한번은 해고의 칼을 쥐게 될지 모른다. 의자 제조회사인 '허만 밀러'는 해고의 모범을 보여준다. 허만 밀러는 작업 환경과 직원 복지에 선두적인 사회책임경영(CSR)을 해오지만 매너리즘에 빠져 위기를 맞는다. 일부 지역의 공장은 폐쇄하기까지 이른다. 일단 해고자가 결정되자, 인사부서 담당자와 해당 부서 팀장은 해고자와 일대일 면접을 했고 의료보험비와 26주치의 퇴직수당을 챙겨줬다. 다음은 회사가 고용한 카운슬러를 통해 심리치료를 받게 하고 헤드헌터를 통해 이직을 도왔다. 물론 이 과정에 돈이 들었고 투자자들도 볼멘소리를 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 데프리는 남은 직원들을 주목했다. 해고직원의 부당한 처우로 자칫 남은 직원들에게도 신뢰를 잃고 개혁의 의지가 꺾일 수 있다는 걸 감지한 것이다. 경영진의 임금 정책도 특기할 만하다. 지금은 폐지됐지만 한동안 최고경영진들의 현금보수는 노동자의 20배로 상한선을 두었다. 그 전통으로 최고경영진의 연봉이 다른 기업들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008년 기업의 사회공헌활동' 조사 결과, 조사에 응한 209개의 기업은 2007년에 비해 10.5% 증가한 2조 1604억 원을 사회에 투자했다고 나왔다. 하지만 자화자찬할 수준은 아니다. 유럽,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2000년부터 사회책임경영을 시작했지만 한국은 2007년에야 정부차원의 준비가 시작했다. 또 전경련을 비롯해 대기업은 여전히 '사회적 책임'보다는 '사회 공헌'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등 '공익 캠페인'의 성격이 강하다.

한국 기업은 사회책임경영에 앞서 기본이 되는 법부터 준수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대형 건설사들의 담합, LPG 회사들의 가격 담합 등 시장경제를 어지럽히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재벌 총수들에게는 법의 형평성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다. 두산그룹 박용성 회장은 회사자금 286억 원을 횡령하고도 징역 3년에 집행 유예 4년을 선고받았지만 곧 사면되었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아들을 때린 자들에게 조폭을 고용해 보복 폭행까지 했다. 탈옥수 지강헌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대판이다.

범어에 '줄탁동시'(啐啄同時)란 말이 있다. 뭔가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안과 밖에서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책임경영 역시 '국가'와 '기업' 모두의 역할이 필요하다. 국가는 기업이 사회책임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써야한다. 미국 기업은 공인단체 기부금에 10%의 세제혜택을 준다. 일본은 25%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은 5%에 불과하다. 상향조정 해야한다. 한편 기업은 단발성 행사가 아닌 기업 경영 전략의 일환으로 사회책임경영을 고려해야 한다. 시민들의 소비문화와 시민의식이 날로 성장하고 있다. 공정무역이라든지 착한 소비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권력이 있으면 책임이 뒤따르는 법, 기업의 책임 있는 역할이 필요한 때다.


위대한 기업을 넘어 영적 기업으로

마르크 건서 지음, 현혜진.최태경 옮김, 한언출판사(2005)


태그:#황상호, #사회책임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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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트레블러17 대표 인스타그램 @rreal_la 전 비영리단체 민족학교, 전 미주 중앙일보 기자, 전 CJB청주방송 기자 <오프로드 야생온천>, <삶의 어느 순간, 걷기로 결심했다>, <내뜻대로산다> 저자, 르포 <벼랑에 선 사람들> 공저 uq26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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