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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여행이 조금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준비해 갈 것이 많아 번거롭고 옷도 두툼하게 껴입어야 한다. 하지만 겨울여행에도 색다른 묘미가 있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움도 있다. 그건 철새들의 집단춤(군무)이다.

 

남도에서 겨울철새를 탐조할 수 있는 여행지는 여러 곳이다. 해남 고천암호는 수십 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군무를 펼치는 곳이다. 순천만에선 천연기념물인 흑두루미 떼를 볼 수 있다. 강진만에선 '백조'라 불리는 큰고니 무리를 볼 수 있다. 영암호에서도 가창오리 떼의 군무가 펼쳐진다.

 

이들 철새 서식지의 공통점은 근처에 새들의 먹을거리가 많다는 것. 드넓은 갯벌이 펼쳐지고, 새들이 몸을 숨기기에 좋은 갈대밭도 있다. 호수 인근에 광활한 간척지도 있어 곡식 낟알도 많다. 겨울철새들이 해마다 잊지 않고 날아드는 이유다.

 

이 가운데 가창오리 떼가 찾아드는 영암호로 가본다. 영암군 학산면과 해남군 산이면 사이를 가르는 영암호 역시 주변에 크고 작은 호수가 있고 넓은 곡창지대와 갈대숲이 있어 새들의 보금자리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겨울에도 호수가 얼지 않는 따스한 기후도 철새들을 유혹한다.

 

지난 8일 오후 4시30분께 영암호. 호수의 물위에 둥둥 뜬 채 휴식을 취하는 가창오리 무리가 아득하다. 간간이 무리지어 하늘을 나는 철새 무리도 보인다. 5시쯤 되자 서편 하늘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다. 30여분 동안 서편 하늘을 쳐다보는데도 지루한 느낌이 없다. 일몰 풍경이 환상적이다.

 

하루 일과를 마친 해가 자취를 감추었는데도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지 않는다. 혹여 헛걸음을 했나 자책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때 호수가 출렁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시커먼 물체가 물 위로 솟아오른다. 고대하던 철새들의 군무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5시40분께다. 시커먼 무더기는 산등성이를 따라 수평으로 이동해 간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괴물체의 이동 같다. 그 모습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경외심이 느껴진다. 살아있는 자연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 싶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철새들의 내한 공연이다.

 

그 괴물체는 5분여 동안 오른쪽으로 옮겨가더니 하늘이 거의 잿빛으로 변할 무렵 어디론가 사라진다. 타원형을 그리고 때로는 둥그런 원도 그려 보이는 그런 환상적인 군무는 아니었지만, 군무는 군무였다.

 

시야에서 사라진 철새 무리는 어디선가 먹이활동을 할 것이다. 대낮에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고 해질 무렵에만 볼 수 있는 게 아쉽기만 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새들만의 생존법칙일 것이기에. 자신들의 몸이 적당히 은폐될 만큼 어두워야 안전하게 먹이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무를 본 영암호의 철새 관망지점은 신포리와 호포리 부근이었다. 목포에서 강진방면, 대불대학교 앞에서 독천방향으로 가다가 서창저수지 조금 못미처 서호리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들어간다. 이곳 서호리와 망산리, 신포리, 호포리 일대 호수변이 영암호의 탐조지점이다. 이곳에선 호수 건너편으로 해가 지는 풍경을 배경으로 철새들의 군무를 볼 수 있다.

 

호텔현대에서 해남 산이면에 있는 보해매실농원 방면, 구성리나 덕송리, 상공리, 대진리 쪽에서도 이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선 호수를 등지고 봐야 한다. 군무를 보는 맛이 조금은 덜할 수 있다.

 

철새들의 군무는 해질 무렵에 볼 수 있다. 낮 시간엔 영암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탐조시간을 기다리는 게 좋겠다. 영암엔 가볼만한 곳이 많다. 국립공원 월출산이 있으니 산에 올라도 좋다. 월출산이 품고 있는 도갑사에 가서 산사의 고즈넉함을 느껴보는 것도 매력적이다.

 

 

왕인박사 유적지를 차분히 돌아보는 것도 좋다. 도갑사 입구 구림마을을 돌아보는 것도 좋고… 구림마을은 일본에 문물을 전한 백제 왕인, 풍수지리의 시조인 신라 도선국사, 왕건의 책사였던 고려 최지몽이 태어난 곳이다.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가 글쓰기와 떡 썰기 시합을 한 곳도 이 마을이다. 한석봉은 스승을 따라 영암으로 내려와 이 마을에 있는 죽림정사에 머물며 글씨를 배웠다고 전해진다.

 

영암도기박물관도 이 마을에 있다. 도기박물관은 왕인 박사가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탔던 상대포 바로 옆에 있다. 20년 전에 발굴된 도요지로, 통일신라시대 도기를 제작하던 가마터였다. 여기서 도자기 빚기 체험도 해볼 수 있다.

 

자녀들과 함께라면 영산호농업박물관에 들러도 좋다. 가까운 목포 유달산의 겨울도 멋스럽다. 여기엔 요즘 철없는 개나리꽃이 많이 피어있다. 붉게 물든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와 노란 개나리꽃이 색의 대비를 이루고 있어 발길을 붙잡는다.

 


태그:#영암호, #철새군무, #영암, #탐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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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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