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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대게, 온천, 원자력발전소 등…. 경북 '울진'하면 대게 떠오르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울진하면 '숲길'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울진은 사라진 옛 길을 생태적으로 복원하는 '금강소나무 숲길' 조성사업이 한창이다. 마을주민들과 함께하는 이 사업은 환경보호와 지역경제를 동시에 생각하는 '착한여행'을 모토로 하고 있다.

숲길 구간 중 십이령길은 과거 부보상들이 울진부터 봉화까지 넘나들던 열두 개의 고갯길인데, 열두 고개 중 두천리에서 소광리에 이르는 네 고개 구간은 거의 정비돼 내년 봄에 개방된다는 소식이다. 숲길 사업을 돕고 있는 두천리 이장 정만식 할아버지(60)와, 같은 마을에 사는 김종수 할아버지(73)가 녹색연합의 사전탐방을 안내할 일일 가이드로 나섰다. 그들의 눈을 빌려 울진의 아름다운 숲길을 탐방했다. 울진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아온 그들이 바라보는 옛 길은 어떤 모습일까.... 녹색기자단 안미소

현재 조성 중인 십이령길 중 네 고개 구간은 내년 봄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현재 조성 중인 십이령길 중 네 고개 구간은 내년 봄부터 일반인들에게 개방될 예정이다.
ⓒ 녹색연합 김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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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은 "오손도손 살고묵기 좋은 마을"

숲길 사업에서 관광객 가이드 역할을 맡게 될 정만식 할아버지는 몇 차례 가이드교육을 받았지만 시범적으로 일행을 안내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편 김종수 할아버지는 이른 아침 정 할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얼떨결에 숲길 탐방에 동행하게 됐다. 김 할아버지는 가이드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울진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안내서였다.

"우리가 이 자연부락으로서는 참 살기 좋아요. 옛날에 30~40가구 살 때는 좀 힘들었어요. 그때는 한 가족에 근 10명씩 다됐는데, 뭐 40가구 10명이면 을마야, 400명 아니야. 농토는 적고, 인구는 많고 그르니까 묵고 살기 힘들었지. 그런데 어떻게 묵고 살았느냐 하면, 상인들이 동면, 죽변에서 등짐을 지고 오다가 여기 울진이 천상 하룻밤 자는 곳이야. 여그서 다음 코스로 가면 사람이 살질 않았으니 뭐 일찍이 와도 자야 되고, 늦게 와도 자야 되고. 그 사람들 이용해서 묵고살았지.

그러다 인자 부보상(봇짐장수)이 없어지고부터는 묵고살 게 없으니까 (주민들이) 객지로 떠났지. 지금은 정확하게 29가구 살아요. 큰 돈 쟁여놓고 살 그런 여유는 아이고, 겨우 이래 오손도손하게 살고묵기 딱 좋은 가구예요. (숲길을) 한 14km 개발을 해가지고 시범적으로 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었는디, 나도 첫 손님을 이래 맞이하니끼니 감회가 새롭네예. 인자 앞으로 널리 홍보를 해가꼬 우리 동네 사람들이 마이 오도록 협조 쫌 부탁드립니다." (정만식 할아버지)

부보상들이 봇짐지고 다니던 옛 고갯길

정만식 할아버지는 탐방의 시작지점인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 앞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성행상불망비는 1890년경 울진과 봉화를 왕래하며 상행위를 하던 당시 행상들이 그들의 접장인 정한조, 권재만을 기리기 위해 부보상 길의 초입에 세운 비석이다.

정만식 할아버지가 내성행상불망비 앞에 서서 설명하고 있다. 내성행상불망비는 1890년경 울진과 봉화를 왕래하며 상행위를 하던 행상들이 그들의 접장인 정한조, 권재만을 기리기 위해 부보상 길 초입에 세운 비석이다.
▲ 내성행상불망비 정만식 할아버지가 내성행상불망비 앞에 서서 설명하고 있다. 내성행상불망비는 1890년경 울진과 봉화를 왕래하며 상행위를 하던 행상들이 그들의 접장인 정한조, 권재만을 기리기 위해 부보상 길 초입에 세운 비석이다.
ⓒ 녹색연합 김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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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고개부터 탐방을 한번 시작해 봅시다. 여기가 인제 우리 탐방하는 길의 포인트요. 이것이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인데, 옛날에 부보상 우두머리 권재만씨랑 정한조씨가 있었어. 한 30명씩 데리고 다녔지. 옛날에 서민들은 공부를 할래야 할 수가 없었자나요. 근데 권재만씨는 머리가 좋아가꼬 글을 참 많이 알았어요. 무슨 물품을 사가지고 어딜 가면 얼마 팔리겠다는 계산이 상당히 좋았던 사람이야. 정한조는 싸움을 참 잘했어. 어느 놈이 도적질을 해도 혼자서 다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

(김종수 할아버지) "쉽게 말하자면 한 사람은 장사꾼 인원 관리하고, 한 사람은 산적들이 달려들고 하니까 인자 그놈들을 처치한 거지. (그래서 비석으로) 그 사람들의 공덕을 기리는거지. 그르믄, 얘기만 들었어. 우리가 쪼고만할 때 최종적으로 봇짐지고 댕기는 사람들을 봤거든. 모여서 가는게? 최하 5명씩은 모였지. 많이 갈 때야 수십 명씩 쫙 서서 가고.
부보상들이 아마 55년 정도에 완전히 없어졌지. 옛날에 일본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이다 뭐다 해서 한참 전쟁할 때 쇠로 만드는 건 놋쇠든 구리든 뭐든 다 가져갔다고. 그런데 저 비석은 그때 뺏길까 봐 땅에 묻어놨던 거여 그게. 안그랬음 일본놈들이 놔두나, 다 가져갔지."

(정 할아버지) "부보상들을 마이는 안 봤어, 쪼끔 봤지. 그 때 요만했는데(어렸는데) 무거운지 가벼운지 우예 아노. 짐을 져봐야 아 저것이 무겁구나 느끼지. 그냥 올라가도 숨이 이리 찬데, 어떻게 이 길을 등짐을 지고 춘양까지 갔을꼬…."

소나무 중의 소나무, 금강소나무 숲길

울진대게와 온천에 가려져 지금껏 빛을 보지 못했던 금강소나무가 이번 숲길 사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고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울진 소광리 일대는 국내 최대의 금강소나무 군락지이다. 이곳의 금강소나무는 2000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22세기를 위해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숲' 부문 대상을 차지한 화려한 수상경력도 있다. 현재 울진의 금강소나무 군락지는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숲길에서 푸르름이 느겨지는 것은 아마 곳곳의 금강소나무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숲길에는 금강소나무뿐 아니라 일반 소나무들도 많다. 언뜻 보기에 이 둘을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숲길에 난 긴 임도. 일행이 임도 중간에 서서 금강소나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금강소나무 숲길 숲길에 난 긴 임도. 일행이 임도 중간에 서서 금강소나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녹색연합 김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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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아버지) "금강소나무랑 소나무를 어떻게 구분하냐고? 껍데기를 보면 알지. 껍질이 그거(금강소나무)는 거북이 등껍질같이 생겼다꼬. 근데 이거(소나무)는 그냥 골이 죽죽 길게 나있고. 촌사람들이야 산하고 접하니까 대번 구분하지만 첨보는 사람들이야 잘 안되지."

금강소나무는 위쪽이 황적색을 띄고 있어 적송(赤松)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 중심부가 유난히 넓고 질이 좋다고 하여 황장목(黃腸木)이라고도 하고,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소광리 일대의 금강소나무들이 벌목돼 기차역 춘양역으로 반출됐던 이유로 춘양목(春陽木)이라 부르기도 한다.

오랜 기간 오지(奧地)로 남겨져 있었던 덕분에 울진은 때 묻지 않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다. 이런 자연의 숲길에 야생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에는 산양, 멧돼지, 삯, 두더지 등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 숲길을 걷다보면 두더지가 지나가 위로 솟아오른 지면이나, 멧돼지가 파먹어 파헤쳐진 나무뿌리 등 곳곳에 동물들의 흔적이 눈에 띈다.

(정 할아버지) "짐승은 구경 못해도 똥을 보는 행운이 쪼끔 따르네. 요게 산양똥이라. 요고 눈 지 얼마 안됐네. 색도 안 변하고. 산양똥이 약이야. 부인병한테 좋다고. 내가 어제 산양한테 전화를 했거든.(웃음) 얼굴을 보여준다꼬 분명히 약속을 했는데 안 오는거 보니까는 바쁜 모양이라. 돼지한테도 전화했는데 전화 분명히 받았거든? 돼지가 내보다 더 바쁜 모양이라."

(김종수 할아버지) "돼지도 인제 서울로, 대도시로 다 가고 시골엔 없어.(웃음) 서울엔 돼지가 노상 나타나는데 뭐. 동물들도 인자 편안한데 가서 살라꼬 하능가보지."

숲길 위에서 발견한 산양의 배설물.
▲ 산양배설물 숲길 위에서 발견한 산양의 배설물.
ⓒ 류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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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피어나는 옛 이야기들

금강소나무 숲길은 옛 길을 복원했기 때문에 길 곳곳에 사람이 살던 집터나 담장, 성황당이나 디딜방아 등 선조들의 자취가 남아있다. 긴 세월이 흐르며 본래의 모습은 많이 허물어졌어도, 그 자리에 서면 과거 울진 주민들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길 위에서 옛날 흔적들을 마주칠 때마다 정만식 할아버지의 설명이 따른다.

"여기 성황당에선 마을 사람들의 무사안녕을 빌었지. 길을 지나는 부보상들의 안전도 빌고. 옛날에는 (이 주변) 나무에 끈 같은거 매놓고 그랬다꼬. 정확히는 몰라도 지금으로부터 한 200년 가까이 됐을 거야.

선조들이 세운 성황당. 과거 이곳에서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과 부보상의 안녕을 빌었다.
▲ 성황당 선조들이 세운 성황당. 과거 이곳에서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과 부보상의 안녕을 빌었다.
ⓒ 류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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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요기 디딜방아는 요롷게 파논 지가 얼마 안 돼요. 마을 어른들이 요기 담장이 있는걸 보고 이 밑에 뭐가 있을꺼라 해서 파보니까 디딜방아가 나온기라. 이 주변에는 두 집이 살았는데 (디딜방아를) 공용으로 같이 썼지. 요즘에는 교통이 좋으니까 버스 타가꼬 장에 나가 곡식을 빻아 묵지, 옛날에는 다 여기서 빻아 묵었어.

여기는 옛날에 다섯, 여섯 집이 살았던 곳입니더. 68년에 무장공비 나오고부터 마을이 완전히 소멸됐어요. 긍께, 무장공비 나오고부터 정부에서 완전히 우리 마을로 철수시켰지예. 여 살던 사람이 우리 마을 들어와 살아요."

무장공비 이야기가 나오자 김 할아버지는 기다렸단 듯이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이 일어난 68년에 30대의 젊은 나이였던 김 할아버지는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내가 오대산 일대를 6년을 간벌을 할 때, 그 때 무장공비가 쳐들어왔지. 무장공비가 쳐들어오니깐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우리는 간벌을 했다고. (그 때가) 한참 추울 때라고. 무장공비가 얼마나 걸음이 빠르단 얘기야. 울진에 침투해가지고 그날 밤에 삿갓봉까지 올라갔으니. 산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몇 번을 해야 거까지 가는데…. 산 타는 데는 도사였던 거지. 하이튼 무장공비들이 낙동강을 건너면 범위가 넓어지니까, 낙동강 못건너도록 예비군하고 군인들하고 막았지. 그래 결국은 (무장공비들이) 낙동강을 못 건너고 겨울이 닥쳐가지고 얼어죽고….

내가 한번 이승복 본가에도 가봤어. '공산당이 싫어요'한다 해서 죽었뿌렸다 하지 뭐. 또  시시골에 가면 빨치산 아지터가 있어. 폭포가 우리키로 스무 개는 될거야. 그게 아래로 물이 미미하게 내려오는 게 아니라, 아주 철철철철 떨어진다고. 폭포가 30m면 한 15m쯤 아래로 내려와가꼬 구멍이 하나 있다고. 그 구멍으로 사람이 기들어가면 거기에 열 명 정도가 숨어 지낼 수 있는 빨치산 아지트가 있었어."

숲길을 안내하고 있는 정만식 할아버지(왼쪽)와 김종수 할아버지.
▲ 두 할아버지 숲길을 안내하고 있는 정만식 할아버지(왼쪽)와 김종수 할아버지.
ⓒ 류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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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내내 두 할아버지는 젊은 일행들보다 더 생기가 넘쳤다. 다소 가파른 고갯길을 걸을 때도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울진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깊다는 증명이었다. 그들에게 울진은 그 안에 있으면 숨이 탁 트이고 마음이 편안한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탐방이 끝나갈 즈음 김 할아버지는 말했다.

"좋으나 안좋으나 우뜩해, (숲길 사업이) 그렇게 된다는 거를. 기왕 이리 닦아 놨으니까 마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찾아 왔으면 좋겠지. 뭐 걱정될 게 있어, 요즘 이런데 댕기는 사람들은 절대로 뭐 헤치고 버리거나 안한다고. 그리고 여기다 뭘 버려노면 안됐지, 이렇게 깨끗한데….

하이튼 먼 길에서 울진이라는 낯선 곳을 와가지고, 하루 이래 같이 여행을 하면서 재밌었는지, 설명이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소. 나도 생애 처음이니까는, 미숙한 점도 많고 잘 못한 것 같은데, 나도 좀 많이 댕기면서 배워야겠소. 우리 두천에 모든 시설들이 준비되거들랑 그때 다시 한번 와주소. 우리집은 농사도 안 짓고 뭐 그냥 이리 사니까, 나중에 오면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소."       

아름다운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 소나무로 둘러쌓인 숲길 아름다운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 녹색연합 김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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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울진, #숲길, #금강소나무, #보부상, #착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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