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달릴 때에는 아주 느릿느릿입니다. 웬만하면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걷습니다. 그러다가는 골목집 담벼락에 기대어 놓고 한참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꽃그릇 구경을 합니다. 집집마다 다 달리 꾸며 놓은 꽃그릇을 들여다보고 문패를 올려다보고 시멘트 틈바구니를 비집고 나오는 골목풀을 내려다봅니다.

 

오래되었다고 해 보아야 길어야 백 해인 인천 골목길입니다. 우리 나라 다른 도시 골목길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도시 골목길이 되기 앞서 모두 시골 고샅길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고작 백 해밖에 안 되는 세월이지만, 어느 누구도 백 해를 살아내기란 어려운 노릇이라 길다면 긴 햇수입니다. 백 해 아닌 쉰 해라 해도 그렇지요. 나이 쉰이 되면 몸을 마음대로 못 쓰잖아요. 여느 젊은이만큼 힘을 내지 못하잖아요.

 

 

생각해 보면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백 해 묵은 책이라고 해 보아야 그리 대단한 책은 아닙니다. 우리 역사가 얼마나 깁니까. 흔한 말로 '근대 책 문화'는 짧다고 하지만, 아무리 그러해도 나라밖 어디에서고 '백 해 된 책'은 옛책 자리에 끼어들지 못합니다. 하물며 쉰 해쯤 되었으면?

 

그렇지만 기껏해야 쉰 해 된 책조차 요즈음은 '옛책(고서)' 대접을 받습니다. 몇 만 원씩에 사고 팔리며, 때로는 여러 열 만 원에 사고 팔립니다. 마흔 해 묵은 책도 그렇고 서른 해 묵은 책도 그렇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새책방에서 두고두고 오래오래 팔리는 책 가짓수는 얼마 안 됩니다. 열 해 넘게 팔리는 책, 스무 해 넘게 팔리는 책은 얼마나 될까요. 대여섯 해라도 버티며 꽂히는 책은 얼마쯤일까요. 다만, 모든 책이 오래오래 꾸준히 사랑을 받는다면 새로 나오는 책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참에 새로 나온 책은 다음에 새로 나올 책한테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해요. 지나온 책은 새로 나올 책한테 밑거름이 되어 주어야 한달까요. 씨앗 하나가 제 몸을 바쳐 새로운 아기 씨앗을 이루어내듯, 책 하나가 제자리를 기꺼이 내어주면서 새로운 책 하나로 다시 태어난달까요.

 

 

헌책방은 이런 책흐름에서 살짝 어긋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가지 책이 열 해이고 스무 해이고 한 자리에 꽂혀 있기도 하니까요. 서른 해나 마흔 해 된 책이라 하여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눈에 잘 뜨이는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요. 더욱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더 빛이 나며 값이 있다고 하는 헌책방 책입니다. 어쩌면, 거꾸로 가는 책 흐름이라 할 테고, 뒷걸음을 치는 책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꾸로 가는 흐름이 외려 사랑스럽고 따뜻합니다. 거슬러 간달 수 있고 뒷걸음을 친달 수 있는 걸음새가 한결 반갑고 포근합니다.

 

보듬어 주니까요. 껴안아 주니까요. 어루만져 주니까요. 보살펴 주니까요.

 

헌책방 또한 새책방과 마찬가지로 '돈을 벌어야 살림을 꾸릴 수 있는 가게'입니다. 헌책방 일꾼도 먹고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에서 책을 갖추어 놓는 매무새는 새책방하고 사뭇 다릅니다. 똑같이 책을 '물건으로 다루면서 돈을 얻어내야' 하는 얼거리이지만, 헌책방은 새책방처럼 '어디에 전화를 걸거나 팩스를 넣어 책 주문을 할 수 없'어요. 고물상이든 파지간이든 살림집이든,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와야 하고, 그쪽에서 책을 갖고 와 주어야 합니다(헌책방에서 먼저 찾아갈 때도 있으나). 헌책방은 헌책방 쪽에서 먼저 찾아나선다고 하여도 '어떤 책을 만나고 어떤 책을 사들여 책꽂이마다 살포시 갖출 수 있는지'를 조금도 알 길이 없습니다.

 

며칠 앞서 갓 나온 책이 들어올는지, 지난달에 나온 책이 들어올는지 모릅니다. 한두 해 묵은 책일는지, 열 해나 스무 해 묵은 책일는지 몰라요. 잘 팔리는 책일는지 안 팔리는 책일는지 모릅니다. 나라안 책인지 나라밖 책인지 모릅니다. 인문학책인지 어린이책인지 모릅니다. 하나도 모릅니다. 또한, 얼마어치를 사들여야 할지조차 모릅니다.

 

 

이는 우리가 헌책방마실을 할 때에도 똑같습니다. 우리는 '어느어느 헌책방에 가야지!' 하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헌책방 일꾼이 '어느어느 고물상이나 파지간으로 가야지!' 하고 생각하듯이), '오늘은 이런 책을 만날 테야!' 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돈이 얼만큼 있으니 얼마어치를 사야지!' 할 수조차 없습니다.

 

빈손으로 돌아나올 수 있고, 돈이 모자라 외상을 긋거나 카드를 긁거나 책을 맡기고 다음에 찾으러 올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헌책방이란 '알쏭달쏭'이라고 할까나. '아리송'이라고 할까나. '수수께끼'라고 할까나. '궁금함'이라고 할까나. '숨겨짐'이라고 할까나. '두근거림'이라고 할까나. '기다림'이라고 할까나. '설레임'이라고 할까나. '모름'이라고 할까나. '바람'이라고 할까나. 이 온갖 느낌이 고루 섞였다고 할까나.

 

더구나, 우리가 만나서 사드는 책들에 어떤 값과 뜻과 빛과 힘이 실려 있는지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미리 알고 있던 책을 고맙게 만나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도 모르던 책을 갑작스레 만나기도 하니까요. 나온 지 한두 해밖에 안 되었지만 언론매체 손길은 한 번도 타지 않아 사라져 버린 책이 있습니다. 나온 지 서른 해쯤 되었는데 처음에는 널리 사랑받았어도 금세 자취를 감춘 책이 있습니다. 나이가 어린(나온 지 몇 해 안 된) 책이라 해서 '다 알 만한' 책이 아닙니다. 나이가 든(나온 지 오래된) 책이라 해서 '모두 뜻깊은' 책이 아니에요.

 

도무지 알 수 없는 헌책방이요 헌책이라 할 텐데, 이런 가운데 한 가지는 뚜렷합니다. 모든 책을 헌책이도록 하는 헌책방은 모든 책을 고르게 대접합니다. 모든 책을 그저 책으로 바라봅니다. 돈이 되는 물건이라든지 뭔가 담겨 있는 보배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책입니다. 어린이도 사람이요 어른도 사람인 셈이라고 할까요. 푸름이 또한 사람이라 입시지옥에만 매이며 푸른 빛이 시들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느끼는 마음결이라고 할까요. 사람은 사람이요 책은 책임을 밝히는 헌책방이요 헌책이라고 할까요.

 

사람이 사람이 될 때, 우리들은 누구를 만나든 그이한테서 꾸밈없는 삶을 보고 느끼고 배웁니다. 우리들은 누구 앞에서건 우리네 꾸밈없는 삶을 보여주고 나눠 주고 어깨동무합니다. 책이 책이 될 때, 우리들은 어느 책을 읽든 이 책에서 꾸밈없는 알맹이를 받아먹고 줄거리를 곰삭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읽은 책을 바탕으로 내 넋과 얼을 알차게 가꾸면서, 또다른 책줄기를 찾으려고 좀더 힘을 쓰면서 눈물과 웃음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매무새를 키웁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결과 매무새를 차근차근 사랑하고 아낀다면, 우리들은 오래된 사람, 곧 어르신을 참다이 섬기는 마음자리를 키웁니다. 나이가 많다고, 밥그릇을 많이 비웠다고 모두 어르신은 아니거든요. 나이가 적거나 밥그릇을 적게 비웠어도 어르신이 있습니다.

 

오래된 책, 한자말로 하자면 '고전'이란 오래된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사람을 오래된 아름다움과 믿음이 깃든 참사람이 되도록 하는 눈높이는 오래된 책을 오래된 아름다움과 믿음이 담긴 참책이 되도록 하는 눈높이와 같습니다.

 

오늘 보고 내일 보아도 반가운 사람처럼, 오늘 읽고 내일 읽어도 반가운 책이 아름답습니다. 내가 만나고 내 옆지기가 만나며 내 아이가 만나더라도 반가운 사람처럼, 내가 읽고 내 옆지기가 읽으며 내 아이가 읽더라도 반가운 책이 아름답습니다. 오늘 보았을 때에만 반가운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 읽었을 때에만 반가운 책은 아름다운 책이 아닙니다.

 

이리하여 저는 저 스스로 오래된 사람이 되고자 마음을 쏟습니다. 그저, 이 오래된 사람이 되자면 하루아침에 될 수 없기에, 두고두고 제 매무새를 가다듬습니다. 언제 이룰는지 모르나 차근차근 가다듬습니다. 죽는 날까지 이루지 못할 수 있으나, 저로서는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애쓰면서 제 삶결을 가다듬을 생각입니다.

 

저 스스로 오래된 책을 좋아하는 만큼, 제가 쓰는 글이 오래된 글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제가 애써 번 돈으로 뿌듯하게 장만하는 책이 한결같이 오래된 책이 되기를 꿈꿉니다. 어쩌면 나중에 되읽을 때에는 허섭쓰레기밖에 안 될 책을 잘못 골랐을는지 모르지만, 꾸준히 사고 읽고 되뇌고 하는 동안, 나와 내 옆지기와 내 아이, 또 내 아이가 만날 새 옆지기와 둘이 얼운 다음 낳아 기를 새 아이까지도 반가이 맞이할 만한 오래된 책은 무엇이 될까를 헤아리면서 책을 사고 읽고 되뇝니다.

 

저한테 한 번 주어진 삶이 아름답기 때문에 저로서는 제 삶 모두를 바치면서 아름다움을 찾고 싶고 누리고 싶고 즐기고 싶고 나누고 싶으며, 마지막으로는 남기고 싶습니다. 제 넋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기를 빌고, 제 책이 아름다움으로 빛나기를 빕니다. 저 스스로 아름다이 길을 간다면 제 손을 거쳐 제 일터 책시렁에 꽂히는 책도 아름다이 빛날 수 있을 테니, 이 아름다움이 오래오래 스며들고 배어들면서 두고두고 둥글둥글 야물딱질 수 있기를 비손합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제 1인잡지 <우리 말과 헌책방> 8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책, #헌책방, #책삶, #책이야기, #책읽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