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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연주 KBS사장이 2008년 8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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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3일, 노무현 대통령 때 임명된 전윤철 감사원장이 돌연 사퇴했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져 온 터여서, 그가 감사원장을 그만 두면 KBS 특별감사는 시간문제라고 나는 당시 생각했다.

아니다 다를까. 전윤철 감사원장이 사표를 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뉴라이트 쪽 3개 시민단체가 KBS에 대한 국민감사 청구를 했고, 불과 엿새 뒤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가 열려 특별감사를 승인했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 같았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사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크게 실망하고 화를 냈다는 이야기를 훨씬 나중에 전해 들었다.

전윤철 감사원장 사퇴하자, KBS 특감 '일사천리'

지난 2008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KBS·MBC정상화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광우병 괴담 선동센터 KBS·MBC 규탄 및 감사청구 기자회견'에서 서정갑 국민행봉본부 본부장,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008년 5월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KBS·MBC정상화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광우병 괴담 선동센터 KBS·MBC 규탄 및 감사청구 기자회견'에서 서정갑 국민행봉본부 본부장,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등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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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철 감사원장과는 KBS 특별감사를 둘러싸고 묘한 인연이 있었다. 감사원은 지난해 말고도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KBS에 대한 집중적인 특별감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감사원장도 전윤철씨였다.

2003년 11월, 국회에서 KBS 특별감사 청구를 했다. 당시 다수당이던 한나라당은 'KBS 사장 정연주'의 존재를 눈에 가시처럼 여겼다(그 시절의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히 증언할 터이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2003년 가을 국회 문광위 국정감사 때에는 이원창 한나라당 의원이 '정연주 사장 간첩 혐의'를 제기했고, <동아일보>는 다음 날, 1면 머리기사로 이를 전했다).

감사원은 2003년 11월 26일부터 엿새 동안 예비감사를 했고, 12월 8일부터 본감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4월 12일까지 본감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본감사 종료 후 39일 뒤인 5월 21일, 감사원 보고서를 채택, 발표했다. 예비 감사 시작 후 거의 6개월 만에 특별감사가 마무리되었다.

이에 비해 지난해 감사원 특별감사는 전광석화, 일사천리의 속도전이었다. 전윤철 감사원장이 사퇴하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뉴라이트 쪽 시민단체가 KBS내 간부노조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자료를 가지고 국민감사 청구를 했으며, 엿새 뒤 국민감사청구심사위원회가 열려 특별감사 실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닷새 뒤인 5월 26일부터 6월 5일까지 예비감사가 있었고, 엿새 뒤인 6월 11일부터 한 달 동안 본감사가 있었다. 그리고 8월 5일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나의 해임을 요구했다. 4년 전의 특별감사가 예비감사 시작 후 6개월 만에 마무리된데 비해, 지난해 특감은 예비감사 시작 후 2개월 9일 만에 초고속으로 끝났다. 그렇게 특감을 끝낸 뒤 8월 5일 감사원은 '감사 결과 처분 요구서'를 발표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사장 해임 요구를 했다. 영혼없는 무리들에 의한 정치 감사, 표적 감사가 아니라고 우길 수 있을지...

8월 5일 발표한 '감사 결과 처분요구서' 1쪽에 이런 구절이 있다.

2008.5.15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대표 000 외 381명이 KBS의 경영 부실, 사장의 인사 전횡 등의 사유를 들어... 감사원에 국민감사 청구를 하였다.  이에 2008.5.21 개최된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에서는 누적 적자의 증가 등 부실 경영의 원인에 대한 분석과 인사권 남용 등 경영실태 전반에 대한 감사 필요성을 인정하였다.

'누적 적자'와 '인사권 남용'이라는 거짓과 왜곡

이 구절을 보면, 감사원은 누적 적자 등 부실 경영과 인사권 남용 등 두 가지 구체적 사례를 들면서 특별감사를 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KBS 특별감사를 결정한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의 회의록을 보면 두 가지에 대한 논란이 집중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핵심 사안은 모두 거짓과 왜곡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1500억 원 누적 적자'의 거짓은 지난 주에  밝힌 바 있으니, 이 자리에서 반복하지 않겠다.

그리고 두 번째 예를 든 '인사권 남용'이라는 것도 정말 어이가 없는 지적이다. 인사권 남용의 예로 든 특별 승격 사례들은 2003년의 일인데다 당시 사규대로 집행되었고, 더구나 2004년 8월 팀제 도입으로 문제의 소지가 근원적으로 사라져 버린 사안이었다.

2003년 4월 말, KBS에 취임하고 보니, KBS 조직이 전형적인 관료주의 조직체제로 되어 있었다. 간부가 되려면 일정 직급 이상이 되어야 가능했다. 그러니까 직위와 직급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일정 직급에 이르지 못하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책임 있는 직위, 직책을 맡을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예외로 가능하게 한 것이 특별승격 제도라는 것이었다. 어떤 직위, 직책에 발탁하기 위해서 특별승격을 하도록 사규에서 정해 놓았다. 그래서 그 사규에 따라 특별 승격을 실시했고, 그리고 직위, 직책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 자체가 전형적인 관료주의 체제였으며, 그래서 직위와 직급을 분리시키고, 능력 있는 사원의 발탁을 가능하게 한 개혁이 바로 2004년 8월에 단행한 팀제 도입이었다. 팀제 아래서는 직위와 직급이 분리되어, 2직급(차장급) 이상이면 어떤 직책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팀제 도입 이후에는 아예 특별승격 자체가 필요 없게 되었고, 능력 있는 사원들의 발탁 인사가 가능했다. 실제로 팀제 도입한 이후, 2직급의 직급을 가진 사원이 팀장으로 발탁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팀제 이전이면 불가능한 인사였다.

팀제는 대부분 일반 기업체에서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정부기관 중에 관료주의극복을 위해 팀제를 도입한 곳도 여럿 된다. 나는 지금도 KBS에서 도입한 대팀제가 관료주의 조직을 극복하고, 상명하복의 수직적 조직문화를 자율성과 참여가 크게 확대되는 수평적 조직문화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내가 해임된 후 팀제의 골간도 다 허물어지고 지금은 껍데기만 남고, 다시 옛날처럼 관리하기 좋은 상명하복의 수직적 관료주의 체제로 환원되어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개혁의 성과는 무시한 채, 그 개혁 이전의 관료주의 제도 아래서 발탁 인사를 위해 사규에 정해진 특별 승격을 한 것을 문제 삼아 인사권 남용이라고 하니, 참으로 옹색하고 해괴한 사고 방식이었다.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의 황당한 회의

지난 2008년 10월 6일 오전 서울 삼청동 감사원 별관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감사원의 KBS감사와 관련된 의혹과 관련해서 국민감사청구심사위 회의록을 보며 질의하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 6일 오전 서울 삼청동 감사원 별관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감사원의 KBS감사와 관련된 의혹과 관련해서 국민감사청구심사위 회의록을 보며 질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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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쪽에서 국민감사 청구를 한 지 엿새 만에 열린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의 구성과 회의에서 나온 황당한 발언들을 보면 그들의 무지와 무책임, 이미 방향이 정해진 감사원 실무팀의 정치적 고려 등이 생생하게 보인다.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는 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사원 사무1차장, 사무2차장, 기획홍보관리실장이 당연직이고, 외부위원 4명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외부위원 4명도 감사원장이 위촉권을 가지고 있으니, 감사원의 입김이 직접 닿아 있는 셈이다. 더구나 전윤철 감사원장이 사퇴를 한 뒤 감사원은 사실상 이명박 정권의 직영 체제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의 회의 내용과 그 실상은 내가 해임된 뒤 두 달쯤 지나 국회에서 폭로되었다. 지난해 10월 6일, 감사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박영선 의원(민주당)이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했던 것이다.

이 회의록은 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입수 과정도 참으로 기이했다. 박영선 의원은 감사원에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으나, 감사원은 이를 거부하고, 열람만 가능하게 했다. 그러자 박영선 의원실의 한 비서관이 회의록을 직접 열람하면서 회의록 가운데 주요 내용을 손으로 직접 써서 담아냈다. A4 용지 11쪽에 이르는 수작업이었다.

이런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우리는 국민감사 청구심사위원회의 그 은밀한 대화를, 그 황당하고 참담한 실상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이 자리를 빌어 박영선 의원과 비서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감사원이 열람을 허용한 회의록에는 발언자의 이름이 000으로 처리되어 실명이 밝히지지 않았다. 발언의 내용이 몰고 올 파장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그들의 무지와 무책임함,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러웠던지, 그들은 회의에 참석한 위원회 위원들과 감사원 실무진의 이름을 죄다 감췄다. 그 이름이 언젠가는 모두 밝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역사가 바로 설 수 없다.

지난 해 가을, 해임되고 두 달 뒤 이 자료를 보게 되었다. 그때는 나의 해임 문제가 이미 사회적 관심사 밖으로 떠밀려 나가면서 잊혀지던 무렵이었다. 그래서 회의록의 실상이 일부 폭로되었어도,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감사원, 그들의 머리와 생각을 특감하고 싶었다

그런데 당사자인 내가 그 내용을 보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렇게 무지하고 무책임한 인사들이 나의 운명, KBS의 운명, 공영방송의 운명을 결정했는지 할 말을 잊게 했다. 그들의 뇌 구조와 생각을 특별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7인의 심사위원들 가운데 일부는 특감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는 했어도, 소극적이었으며, 대세는 이미 정해진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특히 감사원 실무진들이 작성한 자료는 이미 방향이 다 정해져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 자료도 대부분 뉴라이트 쪽이 제시한, 거짓과 왜곡이 가득한 것들을 근거로 한 채.

그들의 생생한 육성은 다음 주에 전하겠다. 양도 만만치 않은 데다 해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다루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다만 이 자리에서는 지난해 감사원이 공기업 사장의 목을 자르는 데 얼마나 지대한 공을 세웠는지, 이런 맥락에서 KBS 특별감사가 노리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밝혀두고자 한다.

지난해 10월 6일,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감사원 국정감사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힌 적이 있다. 감사원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바에 따르면 1, 2차 공공기관 실태 감사(3월 10일 - 6월 4일)가 있었는데, 감사를 받은 98개 공기업의 사장 가운데 79명이 감사를 받는 도중 혹은 감사를 받은 직후 사표를 제출했다. 사표를 내지 않은 19개 기관 가운데 10개는 통폐합 대상이었다고 하니, 사실상 감사받은 공기업의 사장은 거의 퇴출되었다. 감사원 감사가 공기업 사장의 목을 치는 '마녀 사냥'의 도구가 된 셈이다.

이런 상황과 관련하여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해 7월 24일 국회 공기업 특위에서 "정치적 판단에서 일괄 사표를 받았다"고 말했다. 정치적 이유에서 '마녀 사냥'을 했음을 시인한 셈이었다.

이 발언에 대해 이석연 법제처장은 지난해 9월 19일 "정치적 고려로 임기 중에 있는 기관장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법치행정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본다"고 답한 적이 있다. 이석연 법제처장의 말대로, 서울행정법원도 나의 해임 처분에 대해 지난 11월 12일 '해임의 절차와 내용이 위법하다'며 해임 취소 판결을 내렸다. '마녀 사냥'이 불법이었음을 법정에서 판결해주었다. 그런 '마녀 사냥'에 가담한 자들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는 앞으로의 과제다.

(*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태그:#정연주, #KBS, #감사원, #특별감사, #전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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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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