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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맨'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전환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사교육비 절감 차원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이 아닌 여권 실세가 들고 나온 카드이기 때문입니다. 정두언과 전교조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풍경도 재밌습니다. 한 달 넘게 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0일 교과부의 외고 개편안이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외고·일반계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육전문가, 학원 강사까지 다양한 이해 집단을 아우르는 취재를 통해 '외고 논쟁'의 본질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뤄진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정문앞에서 많은 학원관계자들이 수험생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뤄진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정문앞에서 많은 학원관계자들이 수험생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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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 본지 오래 된 한국 사회의 고입 전쟁에서도 '유전외고 무전일반고'가 적용된다. 단순한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통계로 입증된 2009년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외고생 학부모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매년 등록금과 이런저런 교육비로 550만원은 납부할 능력이 돼야 한다. 매달 사교육비도 50만원은 써야 한다. 월소득이 500만원을 넘고 '사'자 들어가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자녀가 외고에 입학할 가능성은 훨씬 높다.

그래도 일단 자녀를 보내놓기만 하면 주요 사립대학까지 입학은 일사천리다. 대학마다 외고생들을 유치하고자 특별전형 절차도 마련해놓았다. 외고를 나왔다고 굳이 어문계열로 진학할 필요도 없다. 저소득층이나 다문화가정 자녀라면? 사회적 배려 전형을 노려볼 수 있겠지만 정원이 50여명이니 하늘의 별따기다.

올해 4월부터 11월까지 수차례 관련 통계조사를 발표했던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실 조사 결과는 외고를 둘러싼 계급격차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지난 11월 정부기관인 한국직업개발원 인적자원패널·통계센터 조사에서도 "외국어고 입학이 학생의 실력이 아닌 가구 배경과 부모 재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 지적됐다.

95만원 내고 일본 가는 외고생, 10만원 내고 양평 가는 전문고생

이번 개발원 조사에서 외고의 경우 월평균 500만원 이상 고소득가구 자녀의 비율이 거의 절반에 가까운 49.3%다. 이에 비하면, 일반고는 23.8%에 불과하다. 월평균 소득이 100만원도 안되는 저소득가구 자녀 중에 외고에 입학한 학생들은 단 2명이었다.

또한 외고의 경우 아버지 학력이 대학원졸인 비율이 14.5%로 일반고(2.6%)의 5배가 넘는다. 반대로 아버지 학력이 고졸인 경우는 외고가 34%였고 일반고는 2배에 가까운 67%로 나타났다.

이와 같이 고소득·고학력 가구의 자녀들이 주로 외고에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 개발원의 분석 결과다. 이를 놓고 개발원은 "'실력'이 대접받는 사회 풍토 조성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보고서에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직업개발원은 외고의 부정적 측면으로 "초·중학교 단계부터 높은 사교육비 부담, 또한 외고 재학 중에도 일반고에 비해 높은 사교육 의존도"를 꼽았다. 이에 따르면 외고생들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입시 준비를 시작하며, 중학교 단계에서 통상 1~2년 선행학습을 한다.

외고 재학 중에도 학생 88.7%가 사교육에 참여하는데, 이들의 사교육비는 월평균 51.3만원이다. 일반고 학생들은 65.3%가 사교육을 받으며, 사교육비도 월평균 33.8만원으로 차이가 컸다.

지난 4월 권영길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서도 외고와 일반고의 신분 차이는 확연히 드러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외고생의 아버지가 전문직, 경영·기술직 등 상위직에 종사하는 비율은 30.15%이다. 반대로 판매․서비스직, 소규모 농․축․수산업, 비숙련노동 등 하위직 종사 비율은 14.08%에 불과했다.

이같은 격차와 관련, 권영길 의원은 "같은 생활권 안의 학교 학생간 부모소득 격차는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며, 등하교시 마주치는 학생들끼리의 위화감은 통계로 표현할 수 없다"라며 이를 '신(新)계급사회'라고 지적했다.

공부 못하는 외고생은 어문계열을 전공한다

이번 조사에서 개발원은 "외고의 전반적 교육환경이 일반고에 비해 우수한 가운데 교사와 학생의 유대감과 수업 집중도도 상대적으로 높다"면서, 이를 외고의 긍정적 측면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같은 차이는 외고와 일반고 사이의 불평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개발원 조사에서 외고생들은 학교건물과 시설 상태에 대해 3.46점(5점 척도 기준)의 만족도를 표시했고, 학교 주변환경 만족도에 대해서도 3.65점을 줬다. 일반고생의 만족도는 이보다 낮은 3.22점(학교시설), 3.23점(학교 주변환경)의 만족도를 나타냈다. 컴퓨터·시청각 시설, 특별실 이용 등 다른 항목에서 외고는 일반고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 10월 권영길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외고의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사립의 경우 830만9735원이었으며, 국공립의 경우 오히려 1146만7943원으로 일반고(612만5354원)의 2배 가까운 수치다.

또한 외고 등록금 및 수익자부담경비(현장학습비·학생수련활동비·급식비·특기적성교육활동비·졸업앨범비)는 학생 1인당 548만2000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2.32배 비쌌다.

특히 서울시내 A외고의 2007년 1인당 등록금 및 수익자부담경비는 785만6250원으로 같은 구내 일반고(187만7454원, 2008년 기준)의 4.2배가 넘었다. 구내 실업계고(124만6470원)과 비교하면 6.3배나 된다.

지난 2008년 5월 서울시내 B외고 1학년 학생들은 95만원을 내고 4박5일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반면 일반고 1학년생들은 26만120원을 내고 2박3일 제주도 수학여행을, 전문계고 1학년생들은 9만9000원을 내고 2박3일 경기도 양평으로 수련교육을 갔다. 같은 지역의 동갑 학생들의 수학여행 비용이 9.6배 격차를 보인 셈이다.

정부 지원도 일반고와 외고를 차별했다. 특목고(외고 및 과학고)에 지원한 특별교부금과 지방자치단체 교육경비보조금은 최근 3년간 학생 1인당 162만8574원으로 전국 평균(학생 1인당 11만4102원)보다 14.3배 더 많다.

명문대까지 일사천리... 사회적배려 대상자는?

이렇게 돈을 쏟아부어 자녀를 외고에 보내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가기 좋기 때문이다. 외고의 설립취지는 '어학영재 양성'이지만, 자녀를 어학영재로 키우려고 외고에 보내는 순진한 부모는 없다.

또한 이번 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대학 어문계열에 진학하는 외고생들은 24.3%에 불과했고, 법·경영 등 사회계열 진학자가 절반 이상인 50.7%로 나타났다. 미래의 직업을 결정한 외고생은 60.4%로 일반고생(65.4%)보다 다소 낮았다.

오히려 외고에서 대학 어문계열은 기피 대상으로 나타났다. 외고 졸업생 중 수능1등급인 성적우수자는 단 15%만 어문계열에 진학했다. 어문계열 전공으로 진학한 외고 졸업생들은 대학 만족도(3.46점) 및 전공 만족도(3.59점) 역시 타전공 진학자(대학 만족도 3.87점, 전공 만족도 3.93점)에 비해서 낮았다.

대학 만족도가 낮은 것은 기대치가 높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이 기대 역시 통계로 입증됐다. 올해 대입에서도 이미 외고의 파워는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권 의원실에 따르면, 고려대 '세계선도인재' 수시전형에서 외고 합격률은 52.5%. 연세대와 성균관대의 '글로벌리더' 수시전형(각각 41.3%, 41.7%), 서강대의 '알바트로스' 수시전형(43.9%)에서도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전국 고3 학생 중 외고생은 1.3%라는 것을 감안하면 더 어마어마한 수치다.

이같은 결과는 주요 사립대학의 특별전형이 사실상 외고생들을 선점하기 위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이들 전형의 지원자격 조건은 토플·토익·텝스 등의 외국어시험점수나 외국어 관련 과목 이수다.

대학마다 이름은 각자 다르지만 이같은 특별전형은 '외고전형'으로 불리며, 올해 수시1차 정원의 적게는 14.4%, 많게는 35.5%를 차지한다. 이에 비해 사회적배려 대상자 전형은 30~70명에 불과하다.

권영길 의원은 "외고는 부모의 소득과 자녀의 학벌을 제도적으로 연결하는 고리"라면서 "이 고리의 처음은 어머니의 정보력과 아버지의 재력이 쥐고 있으며 마지막엔 명문 사립대학이 있다"고 꼬집었다. 외고 폐지 등 적극적인 정책으로 학벌의 구조화를 막지 못하면 사회 양극화는 더 공고하게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태그:#외국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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