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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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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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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IT업계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아이폰'입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스마트폰업계의 일인자로서 위치를 굳히고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에게 도전을 받는 위치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도전자의 위치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 이후 현재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 아이폰이 한국에서 보여준 돌풍을 보면 가히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공학의 기본

공학도로서 대학 수업을 듣던 중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공학이란 건 작은 중국집을 운영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할 줄 아는 건 자장면과 짬뽕, 볶음밥, 탕수육 정도고요. 90%의 손님은 이 정도 메뉴에 만족하면서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10%의 손님이 유산슬을 주문하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런 때 여러분이 해야하는 일은 평소 친하게 지내둔 큰 중국집에 전화해서 유산슬을 하나 배달시키는 것입니다. 속이는 것 같죠? 그런데 공학도 비슷합니다. 사용자가 편안한 사용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공학이라는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것은 사용자입니다. 결국 사람이 사용할 물건을 만드는 일이고, 따라서 얼마나 사용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느냐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공학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기본적인 상식이자 마음가짐이지만, 우리는 정말 우리의 편의를 생각하는 제품들의 세계에서 살고 있었을까요? 거기에는 의문이 따릅니다.

수치에 의한 경쟁

아이폰과 옴니아1, 블랙베리, 햅틱아모레드, 터치다이아몬드 단말기(자료사진)
 아이폰과 옴니아1, 블랙베리, 햅틱아모레드, 터치다이아몬드 단말기(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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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은 전통적으로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IBM에서 1993년 발매된 최초의 스마트폰인 Simon은 휴대폰이면서 캘린더, 주소록, 계산기, 이메일, 팩스, 게임 등의 기능을 갖춘 혁신적인 휴대기기였지만 당시에 굳이 거금을 들여 이런 기기를 구입할 필요를 느끼는 사용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낮은 수요는 스마트폰 시장의 규모를 한정시켰지요. 이후 1996년, Nokia 9000을 출시하며 스마트폰 시장의 표준을 제시한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장을 한 단계 성장시킵니다. 당시 PDA 시장의 큰손이었던 HP와 휴대전화 시장의 최강자였던 노키아의 합작으로 탄생한 이 스마트폰 라인(Nokia Communicator line)은 항상 노키아가 가진 최고의 기술력을 집결시켜왔습니다. 2000년에 출시된 Nokia 9210은 휴대전화로서는 이례적으로 컬러스크린을 탑재하고 있었고, Nokia 9500은 노키아 최초의 카메라폰이었습니다.

여기에 RIM의 블랙베리가 큰 성공을 거두며 경쟁자로 가세하고, 핸드스프링사가 Palm을 합병하며 제품군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이런 시장의 전개, 특히 블랙베리 브랜드가 2001년 출시 후 6년만에 800만 가입자를 확보하는 성공을 거두면서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진행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일반 유저들에게는 '기능은 많지만 비싸고 잘 고장나는 데다 사용법도 어려운 휴대전화' 정도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크게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시장 안의 경쟁이 '하드웨어 스펙' 위주로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2004년경에 들어서면서 스마트폰은 이제 하드웨어적으로 갖출 것은 거의 다 갖추게 됩니다. 자연스레 제조사들은 수치를 내세우며 자사 제품의 우수함을 어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CPU의 클럭 수가 얼마이고 스냅드래곤이 어떻고 하는 광고는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화려한 그래픽의 게임을 실행할 수 있을 정도의 높은 사양은 아니었고,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게임기기가 아닌 스마트폰의 광고로서는 효과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조사들은 병적으로 기기의 사양을 높이는 데만 주력하고 경쟁은 방향을 잃어갔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하드웨어의 성능 향상이야말로 스마트폰의 미래이고, 사용자를 위한 발전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OS, 운영체제였습니다.

'고인 물' 윈도 모바일

현재까지도 그렇습니다만, 과거 스마트폰에 가장 많이 쓰이던 OS는 윈도 모바일과 심비안이었습니다. 특히 최초 PDA용으로 개발되었던 윈도 모바일은 독보적인 점유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한 번이라도 사용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윈도 모바일이 그렇게 훌륭한 운영체제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입니다.

2009년 현재 가장 최신 버전인 윈도 6.5조차 만족스러운 안정성을 보여주지 못하며 원인을 알 수 없는 오작동을 보여주는 일이 허다합니다. 특히 스마트폰이 주로 업무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도때도 없이 다운되어 필요한 때 필요한 전화를 놓치게 만들 수 있는 이러한 안정성의 결여는 치명적인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천차만별로 다른 사양을 지닌 스마트폰에 범용으로 쓰이다보니 개발에 있어 명확한 기준이 없고, 최적화도 어려워 최신 스마트폰의 하드웨어 성능을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합니다.

윈도 모바일이 본가 윈도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런 형편없는 운영체제가 된 이유는 명백합니다.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내용물은 신경쓰지 않고 겉모습 치장에만 힘썼기 때문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하는 하드웨어 사양의 고공비행 속에, 윈도 모바일은 고이다 못해 썩어버린 것입니다. 당연히 불안정하고 인터페이스도 불편하며, '윈도 모바일용으로 개발된 애플리케이션'이 윈도 모바일을 사용하는 스마트폰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 사용자들이 스마트폰에 관심을 가지기는 어려웠습니다.

소프트웨어의 관점에서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새롭게 시장의 플레이어로 참가하며 한 일은 간단했습니다. 사용자들이 애플의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한 것이죠. 그리고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했습니다. 바로 독재였습니다.

애플은 닫힌 시장모델을 이용해 큰 성공을 거둔 기업입니다. 애플이 개발한 OS는 공식적으로는 애플의 하드웨어 이외의 다른 어떤 하드웨어에서도 쓰이지 않습니다. 이 수완은 아이폰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아이폰은 OS X기반으로 개발된 전용 OS를 사용합니다. 당연히 모든 부분에 있어서 아이폰에 최적화되어 있고, 동급의 하드웨어를 사용하는 다른 스마트폰에 비해 월등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게 됩니다.

애플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2007년 맥월드 연설에서 기존의 스마트폰을 두고 그리 '스마트'하지 않은 기기라고 한 것은 이런 부분과 일맥상통합니다. 또한 이 연설에서 잡스가 아이폰에 대해 소개했던 방식은 애플이 스마트폰의 개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보세요, 액정에 두 손가락을 대고 벌리면 화면이 확대됩니다! 게다가 지금 바로 이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의 위치를 검색해서 바로 전화를 걸 수도 있어요'라고 말하는 잡스의 태도는 흡사 새로운 장난감을 쥔 어린아이의 흥분된 행동 같았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작업이 너무나 부드럽고 직관적으로 표현된다는 사실은, 무표정하고 불친절한 윈도 모바일의 세계 속에 갇혀 있던 사용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줍니다. 애플이 유저들의 새로운 경험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개발에 임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그리고 애플이 강점을 보여왔던 유저친화적인 인터페이스 디자인은 아이폰에도 그대로 발휘되어,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내기에 이릅니다.

결국 아이폰은 대성공을 거두며 스마트폰 시장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키우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역사에 남을 휴대전화가 되었습니다. 고압적으로 사용자들에게 높은 사양의 하드웨어가 좋은 것이라고 '교육'하던 기존 제조사들에 비해, 눈을 낮추고 사용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전자기기를 손에 쥐었을 때의 그 흥분감을 느낄 수 있는 아이폰을 만들어낸 애플의 자세는 그동안 잊혀져 왔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사용자의 편의성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것을 업계에 재촉하는 경종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그림자는 있다

ⓒ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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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폰은 여전히 닫힌 시장모델안에서의 왕입니다. 애플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자 더 큰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장애물로도 지적받고 있는 이런 개발방식은 열린 구조에 비해 바람직한 형식은 아닙니다. 확장성의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아이폰 OS는 한계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앱스토어'라는 애플이 마련해준 유일한 통로를 통해 어플리케이션을 구입하고, 아이튠즈를 통해 아이폰에 설치합니다. 자기 입맛대로 인터페이스를 고치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앞서 이야기한 애플의 '독재'입니다. 기존 스마트폰 시장(전체 휴대전화 시장으로 확대해도 마찬가지입니다만) 또한 관습적인 하드웨어 경쟁속에 이동통신사들이 대부분의 수익을 독점하는 닫힌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애플이 독점하는 현재 스마트폰 시장의 구조도 별반 다를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구조는 누군가가 독점적인 이익을 얻는 대신 누군가는 손해를 보거나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아이폰의 등장 전까지 손해보는 역할은 사용자들이 떠맡았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의 횡포에 의해 제한된 하드웨어로 제한된 콘텐츠를 비싼 사용료를 내고 사용할 수밖에 없었죠. 애플은 이렇게 사용자들에게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를 이동통신사들에게 돌려놓는다는 발상을 했습니다.

도전 받는 아이폰

아이폰은 현재 안드로이드라는 강력한 도전자를 만났습니다. 애플과는 상반되는 철저하게 열린기업 구글에 의해 개발된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는, 현재까지 출시된 다수의 스마트폰에 적절한 최적화와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아이폰 OS보다 한단계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애플이 쌓아온 브랜드 이미지와 충성스러운 고객층이 있는 한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테지만, 지금처럼 독보적인 위치에 서서 시장을 선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절치부심한 윈도 모바일 7의 발매가 가까워졌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고요.

그러나 안드로이드폰의 활발한 출시와 매서운 성장세는 애플이 구축해놓은 새로운 패러다임에 크게 빚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일구어낸 힘은 분명 경쟁에 있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긍정적인 사실은, 아이폰이 바꾼 변화의 방향은 그것이 어떤 플레이어들에 의해 경쟁되고 발전하건 간에 사용자들을 위한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이폰의 성공이 일깨워준 공학의 초심이 되겠지요.


태그:#아이폰, #윈도우즈 모바일, #안드로이드, #애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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