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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맨'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전환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사교육비 절감 차원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이 아닌 여권 실세가 들고 나온 카드이기 때문입니다. 정두언과 전교조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풍경도 재밌습니다. 한 달 넘게 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일 교과부의 외고 개편안이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외고·일반계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육전문가, 학원 강사까지 다양한 이해 집단을 아우르는 취재를 통해 '외고 논쟁'의 본질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한나라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 간담회가 2009년 10월 27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한나라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소가 주최한 외고 문제 해법 모색을 위한 긴급 간담회가 2009년 10월 27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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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잘나가던 외고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전에도 몇 차례 외고에 매서운 비판이 제기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존폐 자체를 걱정할 정도로 위협적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논란은 전통적으로 외고를 옹호해 오던 한나라당과 여권 일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위기감을 느낀 일부 외고 교장들이나 학부모들은 공개적으로 강력히 반발하면서 어떻게든지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고 교과부 수뇌 역시 기존 체제 유지 쪽으로 여론을 유도하는 양상이다. 반면 오래 전부터 외고를 비판해 오던 쪽에서는 이참에 외고를 완전히 퇴출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사태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일부 보수 언론이나 자칭 고상한 학자들은 이번의 외고 논란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쟁점에 대해서 늘 그래왔듯이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식의 양비론적 시각에서 적절한 타협을 주문하기도 한다.

외고 문제, 엉거주춤한 타협은 금물... 이번 기회에 확실히 개혁해야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정 의원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특성화고로 통합하고, 지원자격 제한 없이 추첨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정 의원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를 특성화고로 통합하고, 지원자격 제한 없이 추첨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토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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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러한 접근에 반대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를 의미하기 때문이며 또 그러한 엉거주춤한 타협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켰을 뿐이라는 전례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다소 시간이 걸리고 적지 않은 에너지를 쏟더라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외고 문제(나아가 한국 중등교육 문제 전체)를 해결하기 위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여 논란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특히 한국의 미래나 우리 자녀 세대의 내일을 위해서 절실하다.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외고가 출범 당시부터 '외국어 영재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이 형식적인 명분에 지나지 않았으며 실제로는 평준화 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중산층의 선발 욕구에 부응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이다.

외고의 학생 선발 기준이 이를 말해준다. 1991년 가을 서울시교육청은 외고 설립 계획을 발표하면서 입학 지원 자격을 내신 성적 5% 이하로 제한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언어영재 양성이라는 설립 목적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이후 모든 외고의 학생 선발 기준에서 내신 성적 상위자는 움직일 수 없는 지위를 유지해 왔다.

이처럼 외고는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교이다. 명분과 실제가 다르며 우리 사회 구성원이 폐기하기로 합의했던 입시명문고를 버젓이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 대하여 일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반문하기도 한다.

비록 일부 문제는 있지만 이미 만들어진 학교를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다른 고등학교들도 입시위주의 교육을 하는 마당에 유독 왜 외고만을 입시 위주의 교육과 사교육비 유발에 앞장선다고 비난하는가? 어느 사회에나 남보다 더 좋은 교육을 받고자 하는 수요층이 있기 마련인데 이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 경쟁력을 위한 수월성 교육기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외고가 그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세계가 점점 더 글로벌화되고 있는 마당에 '글로벌 인재'의 육성에 앞장서고 있는 외고를 유지해야 하지 않는가?

이러한 반문들에 대하여 일일이 반박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지면관계상 몇 가지로 압축하여 그 허구성을 지적하고 우리 사회에서 외고가 초래하는 병폐를 드러내고자 한다.

외고가 글로벌 인재 육성한다고? 교육개혁 가로막는 암적 존재!

우선, 외고가 글로벌 인재 육성에 공을 세웠다고 하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단지 외국어를 잘하고 외국 명문대에 입학했다고 해서 글로벌 인재가 되는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한 시야와 실제로 세계 우수한 인재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종합적 역량을 갖추는 일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인들(유학생과 미국이민 1.5세대)의 미국 명문대 중도탈락률이 절반에 가깝다는 보도는 외고들의 외국 명문대 진학교육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잘 보여준다.

혹자는 국내의 이른바 일류대학 진학 실적을 들어 외고의 공을 인정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것은 외고가 잘 가르친 결과라기보다 본래부터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선발한 효과로 보아야 한다. 이것은 비난성 추측이 아니라 2007년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수행한 특목고 연구에서 입증된 결론이다. 이 연구에서 확인된 것은, 외고의 학교 효과는 없으며 외고생들의 높은 진학 실적은 단지 선발 효과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입시위주의 교육이나 사교육 유발의 책임이 왜 외고에만 있는 것처럼 비난하느냐는 볼멘소리에 답해보자. 외고가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임은 상식이기도 하지만 전문적인 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외고 입시를 준비하는 초등·중학생들의 사교육비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월등히 높았으며, 외고 재학생들의 사교육비 지출도 과학고나 일반고 학생들에 비하여 훨씬 높았다. 이것만으로도 외고의 존재 자체가 우리 사회의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됨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교육비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요인은 우리 사회의 그릇된 경쟁방식이며 구체적으로는 점수 경쟁에 기반하고 있는 대학입시 체제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외고(특히 대도시 사립 외고) 역시 그러한 구조와 관행을 유지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난의 화살을 피할 길은 없다.

그 핵심적인 기제는 특권적인 선발 제도이다. 외고는 '언어영재 양성'이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쓰고 다른 일반계 고교에서는 금지된 성적 위주의 선발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외고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는 대입체제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 학생으로서는 외고 입학이 명문대로 가는 급행열차이다. 그러기에 외고 입학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외고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외고의 존재와 작동 방식이 끼치는 중등교육의 퇴행적 왜곡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한국의 학부모들은 명문대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점수 경쟁에 몰입한다.

대원학원에서 운영하는 대원외고 사이트(자료 이미지).
 대원학원에서 운영하는 대원외고 사이트(자료 이미지).
ⓒ 대원외고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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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외고 네트워크, 양극화 고착화한다

그런데 객관식 시험을 통한 점수 경쟁에 몰입하는 사이에 아이들은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나 창의성, 문제해결력 등을 기를 수 없다. 말하자면 과거 대량생산 체제의 산업사회 경쟁방식에 몰두하느라 미래사회 대비를 철저하게 외면하는 셈이다. 이 결과가 불과 수십 년 후에 어떤 양상으로 다가올 것인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뿐이다.

외고 당사자들은 단지 남보다 좋은 좌석에 앉게 되어 다소 미안한 감은 있지만 온갖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할 나쁜 역할은 하지 않았다고 믿고 싶겠지만, 마치 절박한 도시 재개발을 끝까지 방해하여 결국 시행사와 시민들을 파산시키는 '알박기' 행위처럼, 내가 보기에 외고는 그들의 주관적 의지와 무관하게 초·중등교육의 변화를 가로막아 결국 우리 미래의 파탄을 가져올 암적 존재 그 자체이다. 사교육비 증가 유발이라는 폐해는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외고의 존재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은 또 있다. 이미 여러 차례 언론매체에 보도되었지만 대도시의 몇몇 사립 외고들은 평준화 제도 도입으로 사라진 과거의 고교 학벌을 대체할 만큼 새로운 학벌로 등장하고 있다. 명문대 입학자나 사법시험 등의 국가고시 합격자 수에서 발군의 실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이들 외고 출신자들이 강한 동질감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를 이루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권력집단을 이룰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것이 폭넓은 공감을 얻는 이유는 외고 입학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대부분 중산층 이상이기 때문이다. 외고 입학을 위해서는 높은 사교육비 부담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당연한 현상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기제를 통해 우리 사회의 계층 양극화가 고착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이상에서 언급한 내용들로 볼 때 외고가 더 이상 존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외고만 없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지도 않는다. 국제고나 심지어 과학고도 문제의 대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자립형사립고도 매한가지다.

외고 폐지하고 고교 체제 개편 논의해야

따라서 진정한 해답은 성적 위주의 선발에 기생하는 모든 학교가 질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나는 다음과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첫째, 단순한 외고 선발 방법의 개선은 해결책이 아니며 따라서 현행 외고체제는 전면 폐기되어야 한다. 사립 외고 교장들이 외고 폐지론에 반발하면서 사교육비 유발의 원인으로 지목된 영어 듣기평가와 구술 면접을 폐지하겠다고 하였지만, 여전히 내신 중심의 성적 순위로 선발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외고 문제의 완전한 해결은 초등·중학교 학생들의 성적 경쟁을 유발하지 않도록 성적 위주의 학생 선발 관행을 없애는 동시에 '외고'라는 이름 자체를 폐기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고에 최소한의 출구를 열어주는 방향의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20년 가까이 존속된 외고를 하루아침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할 수는 없으며 전환을 위한 합리적 경과 기간과 선택의 여지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이는 외고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적어도 복수여야 하며 또 가급적 전향적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전향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기존의 고교 체제로 단순 회귀하기보다는 미래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함을 의미한다.

셋째, 외고 폐지는 미래사회에 대비한 고교 체제 개편의 시발점이어야 한다. 외고는 여러 특목고 중의 하나이며 특히 과학고와 국제고 역시 많은 부분에서 외고와 유사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점에서 외고 폐지는 현행 특목고 제도의 폐지를 전제하며 고교 수준의 교육 내용과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현행 대입제도는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적인 운영을 제약하는 근원적인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고교 체제의 개편은 입시제도와 함께 그와 연계된 고등교육 체제의 일부까지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외고 폐지 논란이 제기된 후 정부와 여당은 한동안 혼란에 빠진 듯했다. 하지만 이내 안정을 찾아 전반적인 기조는 외고라는 틀을 유지하되 선발 전형 방법이나 교육과정 등에서는 크게 개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단지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며 우리 고교 교육의 미래지향적 비전을 마련하는 데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현재 국회 교육과학위원회에 제출된(혹은 앞으로 제출될) 법안들의 내용만으로도 현행 외고 체제는 존속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사교육비 절반'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실천보다는 범보수 진영의 분열을 우려한 여권이 절대다수 여당의 힘을 이용하여 교과위 법개정을 원천 봉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점에서 낙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임계점을 넘은 외고 폐지론을 다수 의석으로 막는 것은 그만큼 정치적 부담을 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한 학생이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자료 사진).
 한 학생이 대치동의 한 입시학원으로 들어가고 있다(자료 사진).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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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자사고의 수월성 교육은 폐기돼야 할 낡은 교육

마지막으로 두 가지만 추가로 언급하고자 한다. 하나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의 고교체제를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범국민적 논의구조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이전의 대통령 자문기구나 교육부장관 자문기구 수준이 아니라 특별법에 의한 상설기구로서 범국민적 의견 수렴과 전문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미래의 고교체제, 나아가 전체 교육체제의 비전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나는 대통령 자문기구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 한계를 절감하고 수년 전부터 이러한 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최근 민주당의 당 대표가 이에 관한 제안을 한 바 있다. 이것이 구체적인 법안으로 제안되어 공론화되기를 기대한다.

 이종태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월성 교육'에 관한 오해에 관한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수월성 교육은 필요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수월성 교육의 내용이다. 시대에 따라 수월성 교육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 왔고 또 그 범위나 형식도 크게 변모되었다. 과거에는 주로 지적 수월성이 강조되었으며 선발을 통한 정예교육이 주된 형태였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수월성의 영역은 다양하다는 점이 인정되었으며 최근에는 '모든 이를 위한 수월성' 개념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각자의 장기에 따라 여러 줄 세우기가 가능하며 이것이 미래사회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비추어보면 여전히 선다형 시험을 통해 나타난 점수로 모든 경쟁의 척도를 삼는 우리의 학교와 사회 관행들은 후진적이기 짝이 없다. 강조하건대 외고나 자사고 등은 결코 수월성 교육의 모델이 아니라 폐기되어야 할 낡은 교육 모델이다.

늦었지만 우리 교육에 변화의 서광이 비치기를 학수고대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이종태는 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입니다.



태그:#외고폐지, #수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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