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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호사진전'이 열리는 성곡미술관. 아래는 작가의 사진
 '강영호사진전'이 열리는 성곡미술관. 아래는 작가의 사진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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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내년 1월24일까지 '춤추는 사진작가 강영호(1970~)전'이 열린다. 그는 상업사진가였다가 이번을 계기로 순수사진가가 되었다. 사립미술관인 성곡미술관에서 그를 위해 쉽지 않은 일을 결행한다. 미술관 화이트큐브(흰벽)를 온통 까맣게 칠한 것이다.

강영호는 원래 여자친구에게 줄 사진 몇 장 찍었다가 청바지회사 '닉스'에 우연히 의뢰를 받아 광고사진가가 됐다. 그리고 변혁이 감독한 영화 <인터뷰>의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이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그 후로 <시월애> <파이란> 등 영화포스터 100여 편과 삼성, SK, 지오다노 등 광고사진 1200편도 제작했다. 

그는 원래 홍익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했다. 동대학원에서는 미학과 산업디자인 등을 공부했으나 적성에 안 맞아 다시 불문학(지도교수 진형준)으로 돌아갔다. 그가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건 역으로 사진에서 누구보다 과감한 실험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행운인지 모른다. 이번에 선보인 자화상 99컷(99 variations)도 바로 그런 실험의 한 단면이다.

그는 괴물인가 영웅인가? 남성인가 여성인가?

'뉘우치지 않은 감옥'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먼지괴물로 변신하여 절규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뉘우치지 않은 감옥'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먼지괴물로 변신하여 절규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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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김용옥의 딸인 김미루 작가가 자신의 누드를 찍어 센세이션을 일으켰듯 강영호는 한국사진계에 온몸으로 폭탄을 던지듯 혜성처럼 나타났다. 그는 상업사진가로 성공하고 돈도 벌었으나 속성상 그건 고객의 비유를 맞추는 것이라 작가적 관점과 상상력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이런 상업사진의 쓴맛을 본 후 순수사진에 도전했다.

그에게 자신보다 좋은 모델은 없다. 그래서 이번 전을 위해 매력적 피사체를 만들려고 2개월간 곡기를 끊고 하루에 냉녹차 2ℓ를 마셔가며 15kg을 빼기도 했다. 그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듯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다 영감이 떠오르면 거울을 매개로 사진을 찍는다.

'등뒤에 흐르는 깊은 강'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등뒤에 흐르는 깊은 강'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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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99컷 변신모드로 바꾸어 나간다. 이번엔 44컷만 선보인다. 때론 영웅의 기개가 넘치는 남성으로 때론 애교가 넘치는 여성으로 때론 이런 양성이 합쳐진 중성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은폐하거나 노출시키며 자신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찾아간다.

위에선 영웅주의로 불타는 전사로 변했다. 갑옷의 패션이 장엄하다. 치열한 전투에서 싸워 살아남은 자의 모습이다. 이 인물의 내면엔 지성도 풍긴다. 이 작가는 주역과 노장사상, 그리고 프랑스 상징주의를 즐겨 읽는다. 게다가 카이스트(KAIST)에서 양자역학과 물리학도 청강했다.

원숭이 몸짓으로 고흐와 같이 고뇌를 토로하다
 
'겸손한 왕은 강을 걸어서 건넌다'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고흐가 귀를 자르듯 그런 고통도 감내한다
 '겸손한 왕은 강을 걸어서 건넌다'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고흐가 귀를 자르듯 그런 고통도 감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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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온몸으로 던지며 사진을 찍는다. 그가 보여주는 몸은 마음, 정신, 지성, 영혼도 포함된 몸이다. 그는 사진작업을 통해 자신을 인류학적으로도 접근하여 공부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나를 알면 남도 알 수 있다"는 철학으로 그렇게 끊임없이 자신을 탐구한다.

그는 이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잘 하는 것을 알아챈 것인가. 이번에 돈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를 맛본 것인가. 그의 몸짓은 이런 걸 얻기 위한 절규와 고뇌이자 또한 이를 넘어선 후에 얻어진 열락과 환희를 표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작품명은 주역의 괘를 뽑은 것인데 이오네스코의 부조리극 '대머리여가수'에서 나오는 "나(대머리여가수)는 매일 같은 식으로 머리를 빗는다(?)"와 같은 식이다. 하여간 그는 이렇게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사진작업을 시도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지나치게 엄격한 가장'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지나치게 엄격한 가장'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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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번 전 테마를 "환상과 욕망으로 제조된 괴물을 건져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 괴물은 변신의 귀재다.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 갔다 하는가 하면 남성, 여성, 양성이 되기도 하고 신화, 전설, 역사가 되기도 한다. 즉흥적 우발성도 즐긴다. 한 번에 1500장을 찍고 거기서 겨우 1장만 건진다.

자신의 몸은 관객과 소통하고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는 도구로 쓴다. 그는 먼지와 쓰레기와 끈적끈적한 아교까지 뒤집어쓰며 다양한 물질을 온몸에 연결하여 감각을 느끼며 사진을 찍는다. 변신을 위해서라면 독성의 화학약품도 마다않아 눈 떨림, 탈모현상도 온다.

위 작품에서 보듯 변신의 상상력이 예사롭지 않고 예술적 끼가 농후하다. 그는 사진작업에서 감독, 연기, 촬영, 대본, 조명, 연출, 조명, 섭외 등 일인다역을 한다. 그렇게 그는 박수무당이고 종합연출가이고 토털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강영호는 흡혼(吸魂)의 연금술사"

'하늘에 고인 물'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99일째 23시59분'(하단). 거울과 무대의자와 카메라를 세팅하여 타고난 광대기질과 예술적 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하늘에 고인 물'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99일째 23시59분'(하단). 거울과 무대의자와 카메라를 세팅하여 타고난 광대기질과 예술적 끼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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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시는 단지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충격을 주는 것이고 하나의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다. 변신의 연금술을 수십 가지로 구가하여 관객이 품고 있는 충동과 억압을 넘어 상상력을 선물처럼 펼쳐주는 시이고 춤이고 음악이고 퍼포먼스라 할 수 있다. 

그를 주제로 <99>라는 소설을 쓴 김탁환은 이 작가를 이렇게 소개한다.

"강영호는 흡혼(吸魂)의 연금술사다. … 그리고 이제 밖으로 향하던 눈길을 자기사진으로 되돌린다. 거울을 만들고 거울을 세우고 거울 앞에 서서 거울을 노려보며 말한다. "너는 누구냐 강영호 너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 영원히 자폐로 빠질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 고리를 끊는다면 이 작가는 길들여지지 않는 황야의 늑대나 이리를 닮았다."

'뼈 없는 여인은 숨어서 화살을 쏜다'(왼쪽). '아침을 차리는 여자는 저녁을 차리지 않는다'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뼈 없는 여인은 숨어서 화살을 쏜다'(왼쪽). '아침을 차리는 여자는 저녁을 차리지 않는다'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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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작가 속에 잠재하고 있는 여성성이 튀어나온다. 검은 얼룩드레스를 입고 윙크하며 교태를 부리는 모던한 프랑스 여가수로 변신한다. 여성적인 것은 현대문명을 구하는 기제이다. 자신 속에 숨겨진 여성을 발견한다. 에로틱한 섹슈얼리티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 다양한 모습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 속엔 신들이 있고 다른 남자와 여자가 있고 양성 돌연변이가 있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나와 함께 공존하며 서로 관계하고 있다. 결국 나는 카메라라는 열쇠를 가지고 거울이라는 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가 신화적 원형을 깨우고 그들을 이 세상으로 나오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위태로운 변신을 통해 시와 소설이 된다

▲ 사진작업 준비하는 장면 사진을 찍기 위해 변장하는 모습. 주변에 특수효과, 메이크업, 헤어스타일에서 전문디자이너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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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신주의자는 세 번 결혼한다'(상단). '신중하지 않은 뿔'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지난 2004년에는 사진시집 <99%진짜 같은 가짜 사랑(소담)>을 발표했다
 '독신주의자는 세 번 결혼한다'(상단). '신중하지 않은 뿔'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225×150cm 2009. 지난 2004년에는 사진시집 <99%진짜 같은 가짜 사랑(소담)>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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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진의 재물이 되어 사진 속에서 분열된 자아를 그린다. 그의 춤추는 이런 사진은 위태로운 변신으로 재밌는 얘깃거리 다시 말해 일종의 몽환적 '이미지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한 작가의 직관과 열정이 융합되어 잉태한 '사진시'라고 말할 수도 있다.
 
'혼자 여행가라는 판결'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썩은 나무껍질, 양치식물 등으로 몸을 장식하기도 한다
 '혼자 여행가라는 판결' 아트지에 피그먼트프린트 160×150cm 2009. 썩은 나무껍질, 양치식물 등으로 몸을 장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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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위 작품으로 그의 사진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이 작품은 서로 대립되고 상충되는 것이 결합한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육감적이지만 경악케 한다. 악마적 미와 심미적 미가 공존하고 가학과 피학이 뒤섞인다. 또한 모더니즘과 샤머니즘도 혼재되었다. 

자웅동체인 꽃처럼 작가가 여성과 남성이 결합된 양성의 모습을 갖춘 이상적 자아를 찾으려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형상화하는데 어떤 터부도 없고 금기는 없어 보인다. 작가는 이런 99컷 자화상작업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존재감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한 것이 아닌가싶다.

덧붙이는 글 | 매주 토요일 오후4시에는 성곡미술관 1층 북두칠성이 그려진 '신화의 장' 전시장에서 작가가 음악에 맞춰 거울 앞에서 춤을 추며 사진을 찍는 퍼포먼스도 한다. 02)737-7650



태그:#강영호, #춤추는 사진작가, #사진자화상, #김미루, #성곡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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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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