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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정건 군의 투병기를 각색한 ‘정(情)’이라는 제목의 창작뮤지컬을 선보여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 백혈병 투병 친구 위한 음악회 친구들은 정건 군의 투병기를 각색한 ‘정(情)’이라는 제목의 창작뮤지컬을 선보여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 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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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여의 음악회가 끝났지만 환호성도, 앙코르도, 그 흔한 꽃다발 증정도 없었다. 다만 한 친구를 향한 숙연한 회복의 기도와 바람만 있을 뿐이었다.

지난달 28일 저녁 경기 구리시 소재 서울삼육고등학교 강당. 수능을 한 달 앞두고 급성 백혈병으로 쓰러진 이 학교 3학년 정건 군의 쾌유를 기원하는 특별한 자선음악회가 열렸다. 건이의 친구와 후배들이 손수 꾸민 음악회에는 이 학교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 등 1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보였다.

건이는 지난 10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 주로 성인에게서 발병하는 이 병은 정상적인 백혈구의 생산을 방해하는 비정상적인 세포가 적색골수에서 생성, 축적되는 혈액암. 미국 내 암으로 인한 전체 사망률 중 1.2%만을 차지할 정도로 희귀한 질병이다.

처음에는 고3 수험생이면 누구나 겪을 법한 입시 스트레스로 인한 가벼운 위염 증세로 여겼지만, 2학기 중간고사를 앞두고 갑자기 쓰러져 정밀진단을 받은 결과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판정과 동시에 건이는 그간 애써 준비해 온 수능을 포기해야 했다. 훌륭한 의사가 되겠다던 꿈은 첫 관문을 통과하기도 전 모든 도전을 중단했다. 절망감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졸업을 겨우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건이의 아버지 정용표씨도 몇 해 전부터 원인불명의 희귀병으로 투병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개인사업을 시작했지만,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든 그에게는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이후 네 가족의 생계는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의 손에 맡겨졌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어마어마한 치료비는 해결방법이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막막했다. 건이의 병원비만 한 주 사이에 500만원이 청구되었다. 완치까지는 약 1억3000만원의 치료비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건이의 가정은 어느 곳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딱한 처지다.

꺼져가던 생명의 빛을 되살린 건 친구들. 곧 전교생을 대상으로 건이를 돕기 위한 돼지저금통 모으기와 희망편지쓰기운동을 펼쳤다. 뜻밖에도 1000만원이라는 적잖은 돈이 모였다. 게 중에는 애지중지하던 게임기를 팔아 모금에 선뜻 동참한 후배도 있었다. 150여명의 학생들이 헌혈증서로 마음을 나누었다.

아이들의 이런 자발적 활동에 교사와 학부모회, 동문회도 호주머니를 털어 모금운동에 동참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어느 지인은 자신의 골수이식 기증의사를 밝혀오기도 했다. 학생들의 헌신적 실천이 어른들에게 자극이 된 셈이다.  

음악회에는 1,500여명의 관객이 참석해 성황을 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꼬마들이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 있다.
▲ 꼬마들도 함께한 나눔의 대열 음악회에는 1,500여명의 관객이 참석해 성황을 보였다. 공연을 관람한 꼬마들이 모금함에 성금을 넣고 있다.
ⓒ 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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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척해진 친구의 영상편지에 음악회장은 '눈물바다'

학생들은 아픈 친구를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 이날 저녁 학교 강당에서 평소 건이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모아 이렇듯 특별한 음악회를 열었다. 이와 함께 건이의 투병기를 각색한 '정(情)'이라는 제목의 창작뮤지컬을 선보여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이를 위해 매일 밤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연습했다. 직접 대본을 짜고, 곡을 만들고, 안무를 맞추었다. 때론 눈앞으로 다가온 기말고사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목소리가 쉬거나 감기몸살에 걸리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연습에 구슬땀을 흘렸다.

누구에게 칭찬을 들으려 음악회를 준비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병마와 싸우고 있는 친구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건이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간절함뿐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병상에서 친구들에게 보낸 건이의 모습이 영상을 통해 소개되었다. 그사이 몰라보게 수척해진 친구의 모습에 스크린을 바라보던 학생들과 선생님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건이는 발병 이후 몸무게가 16Kg이나 빠졌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학교를 찾았던 학부모들도 안쓰러운 마음에 목이 메었다.

영상 속의 건이는 "나를 돕기 위해 애써준 모든 친구들에게 고맙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너무 보고 싶다"고 인사하면서 "빨리 완쾌되어 졸업식에라도 참석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속내를 꺼내보였다.

건이는 "요즘 나의 유일한 낙은 친구들이 보내준 편지를 읽는 것"이라며 "차마 일어설 기운도 없어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내게 친구들의 편지는 큰 위안이 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솔직히 평소 저랑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정성껏 꼼꼼하게 써 준 편지를 보면 많이 힘도 나고, 용기도 얻어요. 그저 친구들에게 고맙고 미안하죠. 그래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어 감사하고, 행복해요!"

친구들과 선생님도 그런 건이에게 영상메시지를 보냈다. 비록 병상에 누워 있어 직접 볼 수는 없지만, 따뜻한 마음만큼은 그에게 남김없이 전달될 터였다. 친구들은 "우린 너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생각보다 꿋꿋하게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큰 병이지만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며 '파이팅!'을 외쳤다.

선생님은 "교실에서 너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마음이 허전하고, 문득문득 네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마음이 텅 비는 것 같아 쓸쓸하다"면서 제자가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길 기원했다. 

현재 2차 항암치료에 들어간 건이는 한때 70%를 웃돌던 체내 암세포가 지금은 5%까지 떨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앞으로 3-4개월 동안은 구토와 설사로 탈진을 거듭하는 괴로운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 그사이 누나는 건이를 위한 골수이식검사를 준비하고 있다.

음악회를 마치며 아이들은 건이에게 소리 질러 외쳤다.

"건이야! 우린 네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어. 너의 건강하고 밝은 모습 다시 보고 싶다. 기다릴게."

친구들에게 건이도 고백했다. 오랜 만에 그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드리워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 뿐인 것 같아. 사랑해."


태그:#서울삼육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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