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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중순 부산으로 출장을 갔다가 출장 가방 속에 늘 가지고 다니는 치약과 칫솔, 면도기 등이 없어, 서면 근처의 작은 슈퍼에서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을 샀다.

 

먼저 음료수를 한잔 마시고 나서 치약과 칫솔 등을 산 다음, 돌아서 나오는데 참 특이한 포장 패키지에 젊은 여성이 샤워하는 모습의 사진과 상단에 '선교 목욕용 특허 장갑' 이라는 이름이 써진 목욕장갑을 발견했다.

 

'참! 특이한 제품이구나. 목욕타월이 아니라 목욕용 장갑이라. 실용적이고 편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한 개를 집어 들어 계산을 하고서 가방 속에 넣었다.

 

오후 약속을 위해 급히 인근 빌딩의 화장실로 달려가 양치질과 세수, 면도를 마치고서 가방을 정리하여 약속 장소로 갔다. 일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서 가방 안에 든 '목욕용 장갑'을 살펴보았다.

 

뒷면의 제품 소개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구절이 많다. '본 제품은 '선교 때밀이 샤워장갑'이라고 합니다. 이 제품의 장점은 가정에서나 목욕탕에서 사용하시면 빠른 시간에 편안하게 목욕을 즐길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기존의 목욕용 때밀이 타월을 좀 더 개량한 형태의 장갑으로 만들어 쉽게 목욕을 하면서 때도 밀고, 샤워도 할 수 있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앞면의 상표 옆에는 작은 글씨로 특허청의 마크과 실용신안 특허, 의장 특허 출원, 123개국 국제특허출원, 상표등록출원을 마쳤다고 되어 있다.

 

볼수록 신기하고 재미가 있는 제품이다. 목욕장갑의 포장 패키지를 열어보니 정말 오리발 모양을 목욕장갑이 나온다. 플라스틱으로 틀을 만들어 형태를 보존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진 장갑은 앞면 때밀이 바닥은 흔히 목욕용으로 쓰이는 인견으로 되어 있고, 뒷면은 샤워용으로 나일론 소재다.

 

디자인이 약간 촌스럽기는 하지만,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인 것 같다. 때밀이 샤워 장갑의 사용방법을 알리는 글귀에는 '착용하기 전과 벗을 때는 충분히 비누칠을 하여 거품을 내어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며, '앞면은 때밀이용, 뒷면은 샤워 및 마사지용'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또한 '여성이나 어린이의 경우 손목 부분을 접어서 사용하면 이용이 편리하며, 두 개를 양손에 동시에 끼고 사용하면 짧은 시간에 힘 안들이고 편안하게 목욕을 할 수 있다'고 자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마지막의 유의사항은 '사용시 비누를 충분히 칠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장갑이 손상될 수 있다'고 경고 하고 있으며, '사용 후에는 구겨서 보관하지 말고 원형을 유지하는 형태로 건조하여 보관하라'고 되어 있다.

 

아무튼 놀랍고 재미있다. 크게 시장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아이디어가 좋고 참신하여 대박이 날 것 같기도 한데, 난생 처음 보는데서 오는 생소함과 무엇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다음 날 회사에 출근하여 궁금함에 경남 김해시에 있는 제조사로 전화를 했다. "왜? 이런 제품을 개발했으며, 하필 이름이 '선교 때밀이 샤워장갑'이냐"고 따지듯 물어보았다.

 

"작은 교회 장로로 3년 간 각고의 노력 끝에 개발하여 주로 교회에 선교용으로 팔고 있는 목욕용 장갑인데 생각보다 영업이 쉽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는 "아이디어도 좋고, 제품도 수준급이지만, 포장 디자인이 너무 촌스럽고 샤워하는 모델과 제품명도 너무 아니다. 또한 회사명도 깨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쪽 사장님은 웃으며 "그런 면도 있지요. 그래도 선물용으로 주면 다들 좋아해요. 수건처럼 주문자 이름과 상호도 인쇄하여 주는데 필요사면 연락주세요"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자본의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라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개인이 혼자 힘으로 적은 자본을 가지고 개발한 제품은 분명하게 한계가 있는 것 같다. 특별히 대단한 제품이 아니면 말이다.

 

기존의 목욕용 때밀이 타월이 가지는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애써 값이 더 비싼 오리발을 닮은 때밀이 장갑을 써야하는 조건이 절대적으로 동기 부여되지 않는 제품인 것 같았다.

 

또한 디자인이 남다르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색상이 없고, 다양한 색상이 없다면 몇 가지 정도의 크기는 준비되어 최소한 성인 남성, 여성, 어린용은 시판되어야 하는데 사이즈도 문제고, 앞면이 때밀이용 인견이면, 뒷면은 나일론 보다는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은 미용용 극세사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고.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 신자만을 위한 제품도 아닌데, '선교'라는 이름이 나를 자극한다. 그럼 절을 다니는 사람은 쓰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면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 때가 많이 생겨 목욕을 자주 한다는 말인가? 도저히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브랜드 네임이다.

 

발음하기 좋고, 외우기 좋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제품의 속성을 전부 담는 브랜드 네임이 최고라는데 차라리 오리발을 닮은 은행잎은 연상하도록 '은행잎 목욕장갑' '은행잎 목욕타월' 정도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연우랑 목욕장갑을 꺼내들고, 서로 끼어보고 만져보면서 장난도 치고 사진도 찍고, 오랜 만에 욕조에 물을 충분히 받아 목욕을 하면서 상호간에 등을 밀어주기도 하면서 써 보았다.

 

품질은 단연 최고였다. 쓰기 편하고 부드럽고 때도 잘 밀리고, '서울에서 구하기 힘든데 2~3개 더 사올 걸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경남 시골에서 작은 교회 장로님이 3년을 연구하여 만든 특허품이라고 하니 놀랍고 재미있기도 하지만, 홈페이지도 없이 영업사원도 유통망도 없이 사업을 하니 판매가 순조롭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마음이 더 아플 뿐이다.

 

좀 더 돈이 많은 사람이나 규모가 큰 회사를 만나, 본격적인 영업과 유통이 결합하면 분명히 히트상품으로 자리를 잡을 것 같은데, 나 같은 사람은 제품 사용기를 쓰는 것 이외에는 별로 해줄 것이 없어 더 안타깝다.


태그:#파워 브랜드, #때밀이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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