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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소녀 '나니아'가 큰 눈망울로 자신의 그린 그림을 보고 있다.
 단발머리 소녀 '나니아'가 큰 눈망울로 자신의 그린 그림을 보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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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에서 온 소녀 '나니아'(6·가명)는 아빠엄마와 함께 가구공장 컨테이너에서 산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빠는 10년 경력의 베테랑 기술자이고 엄마는 1년 갓 넘긴 초보 기술자다. 아빠엄마는 힘든 일에도 불평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한국 사장님이 참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엄마가 일하다 손가락을 다친 것이다. 그런데 산재처리가 되지 않아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병원비 때문에 아픔을 꾹꾹 참다가 새끼손가락이 구부러진 채 굳어버렸다. 손가락을 고치려면 수술비가 5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엄마는 돈이 없어 수술을 엄두도 못내고 있다.

나니아네 가족에게 공장은 일터이자 살림집이고 공부방이다. 공장 불이 꺼지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고 나니아네 식구들만 남아서 어둠에 잠긴 공장을 지킨다. 나니아는 밤이 되면 방글라데시에서 가져온 교재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그림그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아무 종이에나 그림을 그리는데 그럼 아빠엄마는 '낙서 좀 그만해!'하고 야단을 치기도 한다.

나니아 아빠는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이지만 방글라데시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엄마는 결혼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다. 우리 아빠엄마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인데, 어떤 한국 사람들이 아빠엄마를 무시하는 건 참 잘못된 것이라고 나니아는 생각한다. 아빠엄마가 힘든 일을 하고, 무시당하고, 불안에 떨면서도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자신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함이라는 것을 나니아는 혹시 알까?

나니아는 엄마와 함께 3년 전에 한국에 왔다.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서 온 것이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만 잠깐 보고 방글라데시로 금방 돌아가면 아빠를 또 다시 볼 수 없게 되고, 그러면 또 다시 눈물이 나오기 때문에 엄마와 함께 눌러 앉았다. 한국의 법을 어겼기 때문에 불안하고, 잘못한 것도 잘 알지만 그래도 아빠와 떨어지기는 정말 싫다. 아빠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한국이 너무 행복하다.

단발머리 소녀 나니아는 공장 밖에서 살고 싶지만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나니아네 식구는 공장에 딸린 한 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산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주노동자 나니아네 식구는 공장에 딸린 한 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산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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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저씨!"

아빠와 함께 마중 나온 나니아가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를 한 뒤 아빠 다리에 착 달라붙는다. 쑥스러운 것이다. 커다랗고 맑은 눈동자의 단발머리 소녀 나니아는 시골교회가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니는데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단다. 친구가 몇 명인지 물었더니 손가락 다섯 개를 편다. 유치원에서 무슨 놀이를 하는지도 물었다.

"잡기놀이요!"

경계심을 푼 나니아가 대답한다. 피부색과 이목구비만 다를 뿐 한국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유창한 한국말이다. 한국에서 3년 가량 지냈는데 저렇게 유창하게 언어를 익히다니…. 아이들이란 그런 것 같다. 금방 언어를 익히고 친구를 사귀고 적응한다. 그런데 그것은 아빠엄마라는 안전기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니아는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합니다. 피아노뿐 아니라 영어도 배우게 하고 싶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한국의 학원비는 너무 비싸서 우리 월급으론 가르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아빠엄마와 함께 하는 그림그리기 놀이로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나니아의 현재 꿈은 크거나 대단하지 않다. 세 식구가 살고 있는 한 평 남짓한 컨테이너처럼 아주 작은 꿈이다. 그것은 아빠엄마와 함께 한국에서 지내는 것이다. 기왕이면 본드 냄새가 풍기지 않는 공장 밖에서 살고 싶다. 아무리 봐도 공장에서 노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불법(미등록)이라 밖에서 사는 게 위험하기 때문에 딸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

베테랑 가구 기술자 나니아 아빠의 꿈은

컨테이너 구석에는 딸을 위해 사놓은 각종 인형들이 있다.
 컨테이너 구석에는 딸을 위해 사놓은 각종 인형들이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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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기술자인 나니아 아빠의 월급은 150만원, 엄마는 80만원이다. 두 사람의 월급을 합하면 230만원, 이 돈을 꼬박꼬박 모으면 이들 부부가 그토록 원하는 '코리안드림'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번 돈 전부가 이들의 몫은 아니다. 

방글라데시에는 가난한 홀어머니와 형제자매(형제 5명과 누나 1명)가 살고 있다. 월급을 받으면 매월 100만원~150만원을 어머니의 생활비와 동생들의 학비로 보낸다. 나머지 돈으로  유치원비도 내고 생활비도 충당한다. 그는 남동생 2명의 학비를 계속 대고 있는데 한 명은 대학을 졸업했고, 또 다른 남동생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그가 송금한 돈으로 새로 지은 집에서는 어머니와 두 남동생이 살고 있다.

그는 지금의 공장에서 10년째 일하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된 작업 때문에 들락날락 하지만 그는 꼼짝하지 않고 공장을 지킨다. 성실한 노동자인 그는 이 공장의 보배다. 단속에 대한 불안만 아니면 행복한 한국생활이다. 그 또한 한국생활 초창기에는 서러움을 많이 당했다.

"한국에 처음 와서 공장 다닐 때는 힘들었어요. 한국사람 동료들이 말도 못 알아듣고, 일도 못한다며 욕을 많이 했고 주먹으로 때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젠 한국말도 잘하고 기술도 늘어나서 나쁘게 하는 사람 없어요. 사장님은 우리 부부를 너무 사랑하고 아주 잘 해줘요."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한국에 온 그는 지난 60~70년대, 가난한 부모형제를 살리기 위해 상경한 우리들의 형과 누이 같다. 그 형과 누이들은 잔업 철야 조출 등으로 뼈 빠지게 일해서 번 돈을 시골로 보내 생계를 잇게 했다. 동생들은 그 돈으로 육성회비를 낼 수 있었고 심지어는 대학공부까지 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너무 일찍 잊어버린 혹은 잃어버린 우리들의 형과 누나, 공돌이 공순이로 무시당한 그 형과 누이의 모습을 나니아 아빠엄마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딸과 아내와의 이별 "생각만 해도 슬퍼요!"

나니아는 아빠를 몹시 좋아한다. 물론 나니아 아빠도 딸을 몹시 좋아한다. 그런데 공부 문제 때문에 떨어져야 할 지도 모른다.
 나니아는 아빠를 몹시 좋아한다. 물론 나니아 아빠도 딸을 몹시 좋아한다. 그런데 공부 문제 때문에 떨어져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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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드림'을 위해 불법체류를 선택한 그의 고민은 딸의 공부다. 딸은 아빠와 함께 사는 한국생활에 만족해하고 있지만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른 이주노동자들도 자녀 교육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다. 결국 교육문제 때문에 자녀들을 고국으로 보내놓고 생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다른 엄마아빠들도 교육 문제 때문에 아이들을 방글라데시로 보내 놓고 많이 울어요. 하지만 저는 한국에서 나니아를 공부 가르치며 남편과 함께 살고 싶어요. 한국이 너무 좋아요.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 너무 슬퍼요."

나니아의 아빠는 아내와 딸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하지만 아내와 딸은 떨어지는 걸 너무 싫어한다. 자신 또한 가족과의 이별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프다. 그는 동생을 대학 졸업시키고 자신이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몇 년은 더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어요. 한국은 진짜 살기 좋은 나라예요. 딸과 아내와 함께 사는 게 너무 행복해요. 그런데 딸 공부 때문에 방글라데시로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걱정하고 있어요."


태그:#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방글라데시, #식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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