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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김장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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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농사 끝은 무엇일까? 무엇을 끝마쳐야 진정으로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지었다고 할 수 있을까? 가을걷이? 아니다. 바로 김장이다.

김장은 가을걷이를 끝낸 후 초겨울 문턱에 한다. 우리가족도 마찬가지, 초겨울만 다가오면 김장 문제로 집안 전체가 들썩거린다. 우리가족 '김장담그기'는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한다. 다섯 집이 한 해 동안 먹어야 할 김장을 시골 고향집에서 한꺼번에 담그기 때문이다.

내 나이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김장담그기' 작전에서 늘 '열외 병력'이었다. 별로 참여 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 전체가 모여서 '시끌벅쩍' 하게 김장을 담근다는 자체가 그리 썩 내키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김장 담그느라 중노동 하느니 시장에 가서 조금씩 사먹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호연이, 다섯 살
 호연이, 다섯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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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늘 겉돌았다. 김장 담그는 철만 되면 마지못해 아내 손에 이끌려 고향집으로 가곤 했지만 난 그저 구경꾼이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남는 게 없었다. 몇 년 째 김장을 담갔지만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고작' 배추 나르는 일이 힘들었다는 것 정도다.  

김장 담그는 일이 재미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마흔 줄로 들어서기 시작한 작년부터다. 아마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여물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가족들이 모여서 함께 땀 흘린다는 사실 만으로도 즐거웠다. 올해는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몸으로 익히기 위해 김장 작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 바짝 차리고 참여했다.    

올해 김장 맛, 호연이 발이 한 몫

11월 21일 토요일 꼭두새벽, 온 가족이 배추밭으로 향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이 텃밭에서 정성껏 기른 배추로 김장을 한다. 그날 부모님은 잠도 덜 깬 다 큰 자식들에게 '작전 명령을 내렸다. 배추 밑동을 따서 앞마당 샘가로 옮긴 다음 깨끗이 씻어서 소금에 절이는 작업을 오전 중에 끝내라는 것이다. 

"처남은 그냥 배추 나르는 것이 좋겠어. 그렇게 하면 두 번 일해야 하거든."

한참 배추 따기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들린 소리다. 최소한 김장철 만은 매형 말이 곧 법이다. 매형은 무지무지 꼼꼼하게 일하는 스타일 이다. 적당 적당히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밴 우리 집 유전자와는 차원이 다르다. 또 웬만한 여성보다 김장 담그는 솜씨가 좋다. 이를 잘 아는 터라 우리 가족은 김장에 관해서 매형이 하는 말이라면 의심 없이 철썩 같이 믿는다.

"밑동을 따고서 그 자리에서 너저분한 배추 잎사귀를 다듬어야 해. 안 그러면 샘터까지 날라 놓은 다음 다듬어야 하거든 그럼 두 번 일하는 거잖아."

무조건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곧 바로 역할이 바뀌었다. 매형이 다듬어 놓은 배추를 나르는 일이 내 임무다. 덩달아 다섯 살 배기 아들 녀석 임무도 바뀌었다. 배추 따는 아빠 옆에서 말동무 해주며 장난치던 녀석이 덩달아 함께 배추를 나르게 됐다. 

배추를 깨끗이 씻는 일도 장난이 아니다. 농약을 거의 치지 않고 키워서 그런지 배추벌레가 많았다. 배추 배를 가른 다음 잎사귀를 펴서 물에 몇 번을 헹군 다음에야 소금에 절일 수 있었다. 아마 김장 김치에 배추벌레 몇 마리 정도는 남아 있을 듯하다. 매형은 먹으면 보약이 된다며 물컹거리고 씹히면 꿀꺽 삼키라고 충고 해 줬다.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배추 묻기
 배추 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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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령' 을 완수하지 못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배추 약 200포기를 다 절이고 뒷정리를 마쳤을 때는 오후3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부모님은 오전에 끝내라고 명령을 내렸었다. 이제 오후 작전을 수행해야 했다. 무를 잘게 채 썬 다음 갖은 양념을 넣어 배추 속을 만드는 작업이다.

자신만만하게 부엌칼을 들고 달려들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사들이 멋지게 무나 양배추를 썰 때면 은근히 한번 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써는 속도도 느리고 잘게 썰리지도 않았다. 세상에 쉬운 일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실력 발휘 할 순간이 왔다. 억센 팔뚝만 있으면 되는 일이다. 배추 속을 버무리는 작업이다. 이것만은 멋지게 해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쉬지도 않고 '억센 팔뚝' 으로 배추 속을 휘저었다. 아마 천 번을 휘젓고 한번 정도 허리를 편 듯하다.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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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무채가 고춧가루, 갖은 양념과 뒤 섞여 빨개질 때쯤 김장작전 총사령관 어머니가 양념(생강, 설탕, 젓갈 등)그릇을 들고 나타났다. 가장 중요한 맛을 내는 시간이다.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서 맛을 본 다음 양념을 조금씩 넣었다. 고수의 숨결이 느껴지는 매우 자연스럽고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어머니가 양념을 넣고 나면 난 다시 '억센 팔뚝' 으로 배추 속을 휘저었다. 그날 작전은 밤늦게 끝났다.

"으앙" 소리에 놀라 선 잠에서 깼다. 부리나케 밖에 나가보니 다섯 살 호연이 녀석 발이 빨간 배추 속에 빠져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얼른 달려가 호연 이를 번쩍 안고 수돗가로 달려갔다.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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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장 맛 굉장하겠어. 호연이가 몸을 던져서 간을 맞췄잖아."
매형이 한마디 하자 온 가족이 깔깔 거리며 웃었다. 호연이 녀석은 영문도 모르고 따라서 웃는다.

배추 잎에 배추 속과 삶은 고기를 싸서 한입에...혀에 느껴지는 전율

다음날(일요일) 꼭두새벽, 털 점퍼에 털모자 장화로 중무장을 하고 샘가로 모였다. 절인 배추를 물에 씻어서 배추 속을 넣어 김장을 완성하는 작업이 그날 작전명령이다.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모터 펌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에 촛불을 비추고 모터를 갈고 난 다음에야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절인 배추를 물로 씻어 내는 작업을 마치고 난 다음 배추를 땅에 묻는 작업을 했다.   

"처남 배추 다시 꺼내! 그렇게 하면 안돼 밑동이 위로 향하도록 해야 흙이 배추 속으로 들어가지 않지! 그리고 지푸라기로 숨구멍도 만들어 줘야 하고, 나중에 숨구멍 보고 배추 묻은 자리 찾는 거야 "

음~역시 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그냥 아무렇게나 묻으면 되는 줄 알았다. 정말로 내가 농촌 출신인가를 스스로 의심해야 했다. 역시 난 '무늬만 농촌 출신'이다. 배추 묻는 신성한(?) 작업을 매형에게 인수인계 하고 난 다시 배추 나르는 일을 했다.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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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속을 넣는 작업까지 마무리 하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꼭두새벽부터 서두른 덕에 일이 빨리 끝났다. 점심 메뉴는 김장 특선 삶은 돼지고기다. 연한 배추에 삶은 고기와 갖은 양념을 한 배추 속을 넣어서 입에 넣자 혀에서 전율이 느껴진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족 한해 농사가 마무리 됐다. 부모님은 몇 해 전부터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되풀이 해 왔다. 올해만 고향집에서 김장하고 내년부터는 각자 알아서 하란 말씀이시다.

전통 있는 우리가족 '김장담그기' 작전은 올해가 정말도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부모님 연세 내년이면 여든 셋, 배추 농사를 지을 만한 기력이 있을지......! 수 십 년 지기 경운기도 이미 헐값에 처분 하셨다. 내년부터는 일단 쌀농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 하셨기 때문이다.

정신 바짝 차리고 김장 담그기 작전을 수행하고 나니 역시 남는 게 있다. 김장담그는 순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김장담그는 모습을 구경 할 때보다 힘도 덜 든 느낌이다. 흥미를 가지고 참여 하다 보니 힘든 줄도 몰랐다. 한해 농사 마무리인 '김장' 은 이렇게 끝났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태그:#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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