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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찌를 담으려고 널어놓은 시골집 마당의 무와 비닐통에 가득가득 담아놓은 배추가 김장철임을 실감 나게 한다. 보기만 해도 입맛이 당기고 마음이 풍요로워지면서 여유를 안겨주는 풍경들이다.  

안방 출입을 못할 정도로 장아찌 담글 무를 널어놓은 농가. 궁금해서 주인에게 물었더니 적당한 자리도 없고, 햇볕이 잘 들기 때문이라고...
 안방 출입을 못할 정도로 장아찌 담글 무를 널어놓은 농가. 궁금해서 주인에게 물었더니 적당한 자리도 없고, 햇볕이 잘 들기 때문이라고...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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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시절 얘기인데, 하굣길에 철길 주변 밭에서 늘씬하게 올라온 무를 하나 고른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다가가 윗부분을 발로 툭 차면 저만치 굴러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살짝 집어서 손으로 껍질을 벗겨 먹으면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게 꿀맛이었다.

열흘 전 안집 아주머니가 까나리액젓으로 방금 버무렸으니까 맛이나 보라며 유리그릇에 가득 담아온 파김치와 엊그제 옆집 '방울이 할머니'가 비닐봉지에 담아온 생굴을 넣은 시원한 겉절이가 김장철 분위기를 한껏 돋워준다.

간을 죽이려고 비닐통에 담아놓은 배추는 보기만 해도 입안에 고소한 맛이 감돌면서 개나리꽃을 연상시키는 노란 배춧속을 한 가닥 얻어먹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데, 세 끼 해결하기도 어려웠던 시절의 향수까지 느끼게 한다.

필자가 철부지였을 때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어머니가 고생하면서 담근 김치나 깍두기보다 '배추꼬랑이'가 더 좋았다. 볶은 참깨를 뿌린 노란 배춧속도 따라올 수 없는 고소한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밭에서 배추를 뽑으면 윗부분은 김치를 담그고, 가느다란 '뿌리'는 버린다. 맛도 없고, 먹을 게 없으니까 버리겠지만, 배고픈 시절에도 양배추 뿌리는 먹지 않았다. 그러나 토종인 경종 '뿌리'는 씹을수록 단맛이 나고 고소해서 '배추꼬랑이'라는 애칭까지 얻었고,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군것질거리로 인기가 좋았다.

김장할 때 식구가 많은 집은 '배추꼬랑이'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큰 포대에 담아서 창고나 건넌방, 아니면 땅에 갈무리해놓고 쪄먹기도 하고 깎아 먹기도 했다. 필자도 팥 광주리에 쥐 드나들 듯 건넌방을 드나들며 꺼내 먹던 추억이 있는데 보리누룽지도 귀하던 시절, 고구마와 함께 겨우내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막걸리 안주로 인기가 좋았던 '배추꼬랑이'는 아무 때나 먹는 게 아니었다. 어른 주먹보다 큰 놈도 있었는데 초가을에 배추를 뽑아 잘라먹으면 입안이 아리고 비린내가 났다. 그러나 입동(立冬)이 지나고 김장철이 시작되면 제 맛을 냈다.

붕어빵 하나만 사먹으려 해도 어머니를 온종일 따라다니며 졸라야 했던 시절에, 누님이랑 동생이랑 화롯가에 둘러앉아 깎아 먹는 '배추꼬랑이'는 훌륭한 간식거리였는데 지금도 맛을 기억할 정도로 일품이었다.  

배추꼬랑이 사냥

김장철이 시작되면 우리 입을 즐겁게 해줄 일이 하나 늘었는데, '배추꼬랑이' 사냥이었다. 달구지가 배추를 가득 싣고 지나가면 고삐를 쥔 농부 아저씨 눈치를 살피면서 기회를 잘 포착했다가 달려가 '배추꼬랑이'를 잘라 호주머니에 넣는 일이었다.

배추를 가득 싣고 시내를 질주하는 트럭. 가을이면 소달구지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리던 초등학교 등굣길이어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배추를 가득 싣고 시내를 질주하는 트럭. 가을이면 소달구지 바퀴가 자갈을 밟는 소리가 들리던 초등학교 등굣길이어서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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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꼬랑이'를 잘라 먹으려면 가장 중요한 도구인 칼이 있어야 했는데, 돈이 없는 아이들은 대못을 철로에 비스듬하게 올려놓고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납작해진 못을 갈고 다듬어 칼을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달구지에 매달리는 재미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데, 지금은 배추를 트럭에 실어 나르고, 아이들도 학원에 다니느라 배추꼬랑이 사냥을 할 시간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필자가 어렸을 때는 여름철 참외나 수박 서리만큼이나 스릴이 있었고, 성공했을 때는 희열을 맛보기도 했다.  

누가 큰놈을 잘랐는지 겨루기도 했는데, 아프리카 초원의 사자가 자기보다 몸집이 큰 물소 목을 물고 늘어지듯 달구지에 찰싹 달라붙어 '때끼칼'(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작은 칼)로 '배추꼬랑이'를 잘랐다. 그러나 칼이 작아 아무리 능숙한 아이도 한 번에 성공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절반 정도 칼질을 해놓고 따라가며 손으로 때리면 땅에 떨어질 때 줍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배추를 모두 뽑아내고 시래기가 즐비한 배추밭을 기억해두는 것도 중요했다. 대부분 사람은 통째로 뽑아가지만, 윗부분만 가져가는 집도 있기 때문에 눈밭에 묻혀 있는 '배추꼬랑이'가 우리를 즐겁게 했으며 간식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운동장이나 골목에서 썰매를 타다가 배가 출출해진 누군가가 "야뜰아, 우리 배추꼬랭이 캐먹으러 가자!"라고 하면 모두 따라나섰다. 그리고 어디에 있는 밭에 많이 묻혀 있을 거라는 의견이 모아지면 누렇게 변한 시래기가 널브러져 있는 밭을 헤매고 다녔다.

잘못된 정보로 종일 헛고생만 하다 돌아올 때도 있었는데, '배추꼬랑이'를 발견한 사람은 눈 쌓인 겨울 산에서 산삼을 발견한 심마니처럼 탄성을 질렀다. 찬바람에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밭에서 뽑아먹으면 단맛이 더해 입에서 살살 녹아내렸던 '배추꼬랑이', 요즘 아이들이 즐겨 먹는다는 피자 맛에 비하랴. 

말(馬)과 소달구지에 대한 추억

지금도 한 폭의 소도시 풍경화처럼 눈앞에 그려지는 추억이 있는데 하나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오는 말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입에서 하얀 거품을 내뿜는 게 불쌍하게 보였던 소에 대한 얘기이다.

외양간에서 밖을 바라보는 소. 죽도록 일만하고 뼈와 가죽까지 인간에게 바치는 소는 볼 때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외양간에서 밖을 바라보는 소. 죽도록 일만하고 뼈와 가죽까지 인간에게 바치는 소는 볼 때마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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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초만 해도 고향집 골목 앞 신작로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이었는데, 농촌과 도시를 연결해주는 길이고 시장과 청과시장을 끼고 있어 항상 붐볐다. 특히 가을이 되면 당시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말이나 소달구지가 많이 지나다녔다.

지금은 차에서 나는 소리가 소음공해라고 한다. 그러나 군산시내 자가용을 모두 합해도 30대 남짓밖에  안되던 시절에는 짐을 잔뜩 싣고 자갈을 짓이기고 지나가는 달구지 바퀴 소리가 소음공해였다. 동이 트기 전부터 시골에서 추수한 나락과 채소를 가득가득 싣고 나오는 달구지들이 잠꾸러기의 꿀 같은 새벽잠을 깼으니까.

김장철 한창 때는 무와 배추를 싣고 나오는 달구지 행렬이 장대 열차처럼 이어졌다. 청과시장에 퍼 놓을 자리가 없으면 공설운동장 담벼락을 따라 세워놓고 기다렸는데 무거운 짐을 끌고 오느라 지친 소와 말들에게는 여물을 먹으면서 한가로이 쉬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루는 동네 친구들과 쉬고 있는 말에게 우르르 몰려가 둘러앉았다. 말이 콩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말의 성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콩 볶아 주께 ㅇ지 ㅇ라··."를 주문 외우듯 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말의 성기가 아래로 내려왔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 웃고 떠들다 갑자기 나타난 농부 아저씨 고함에 혼비백산하여 도망간 일이다.

또 하나는 불쌍한 소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루는 배추를 가득 싣고 오던 소달구지 바퀴가 웅덩이에 빠졌다. 그런데 농부 아저씨가 "이랴! 이랴!" 하면서 고삐를 잡아당겨도 꿈쩍 하지 않았다. 등을 쓰다듬으며 어르고 달래도 움직이지 못하니까 인상이 찌그러들면서 "야 이놈아, 이~르~아!"를 외치더니 잔꾀를 부린다며 채찍으로 소를 때렸다. 그래도 소는 하얀 김을 내뿜으며 앞발만 힘들게 내놓았지 앞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 도움으로 빠져나오긴 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물기서린 눈망울로 하늘을 바라보며 버둥대던 소의 애처로운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곤 한다. 비록 철부지였지만, 고통스러워하는 소가 눈물이 날 정도로 불쌍했고, 농부 아저씨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김장철이면 흔히 보던 가슴 아픈 풍경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장철, #배추꼬랑이, #달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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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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