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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미래'표지
 '진보의 미래'표지
ⓒ 동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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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초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할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하고 나서 정치학 교과서를 쓰고 싶다"고 했다. " 정치교과서를 나만큼 쓸 수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는 말로 의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가 예고했던 '교과서'가 나왔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과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은 25일 노 전 대통령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다음 세대를 위한 민주주의 교과서'(동녘출판사)를 발간했다. 그의 유고집으로는 '성공과 좌절'에 이어 두 번째다.

완성된 형태는 아니지만, 그가 지난해 10월 참모진과 학자들에게 '진보주의 연구모임'을 제안하고 비공개 연구카페를 만든 뒤 올해 5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몰두했던 진보주의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그는 인터넷을 통한 협업으로 대중적 교양서를 만들기를 원했다.

그의 서거에 따라 '진보의 미래'는 세 권으로 나뉘었다. 유고집에 이어, 노 전 대통령이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을 위원장으로 한 전문가 연구위원회에 던졌던 질문과 그의 답을 모은 2권 '노무현이 꿈꾼 나라'(가제)가 내년 1월쯤에, 연구 참여를 희망한 각계 전문가와 일반시민들의 토론을 종합한 3권 '노무현과 진보, 그리고 우리'(가제)가 노 전 대통령 1주기인 내년 5월쯤 나올 예정이다. 이를 위한 온라인 거점으로 '진보의 미래2.0'이 운영되고 있다.

이번 유고집은 노 전 대통령이 연구모임 카페에 올린 5개의 원고를 담은 1부 '진보의 미래'와 그가 연구모임에서 구술한 육성기록으로 구성한 2부 '진보주의를 연구하기 위하여'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는 그의 진보주의와 보수주의·국가의 역할·신자유주의에 대한 고민과 인식, 대통령 재직 시절의 한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향한 신자유주의라는 비판에 대한 당혹감, 시민주권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다. 

"2002년 대선구도는 다시 나오지 않는다"

그는 "한국이라면 오바마가 당선될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오바마가 한국에 오면 밀어줄 국회는 있는가? 밀어줄 여론은 있느냐"는 것이다.

"97년 대선득표를 다시 생각해보자…92년 정주영 후보가 표를 갈랐음에도…2002년은 영남의 일부가 호남의 표와 제휴할 수 있는 아주 특수한 구도였다, 이런 구도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100쪽)

그의 고민은 "한국은 아직도 보수의 나라"라는 데서 출발한다. "반공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아직도 색깔 공세가 통하는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은 진보의 시대가 필요하다. 한참을 더 가야 미국, 일본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의 필생의 화두였던 지역주의에 대해서도 "이 지역구도는 못 넘어간다"는 불안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평소 현행 소선거구제로는 지역주의 정치를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었다.

"신자유주의는 보수-진보를 가르는 기준 아니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으로 보는 것에 반대했다. 

"이 논리로 가면 유럽의 진보주의 정부들, 이른바 제3의 길이라고 불리는 정권 아래서도 정부혁신, 구조조정, 아웃소싱,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의 유연화, 개방 등을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이들 정권은 신자유주의 보수정권이다, 이렇게 말해야 된다." (80쪽)

신자유주의 주장의 일부를 수용한다고 해서 이를 신자유주의라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실제적으로 강조하는 핵심 가치는 감세와 복지의 축소이다. 여기에 대하여는 분명하게 '아니다', 이렇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냐, 국가냐라든가 민영화, 규제완화, 노동의 유연화 등과 같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정책수준의 선택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는 일들에 관해서는 '그것은 구체적인 타당성의 문제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자', 이런 융통성 있는 태도로 가는 게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85쪽)

대신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을 '복지와 분배'라고 규정했다. 이는 시장과 경쟁을 보수와 진보의 기준으로 보는 시각에 대한 반론이다. "지금 지구상에 현존하는 진보주의에 시장과 경쟁을 반대하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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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팠던 대목은 노동유연화"

그는 자신이 말한 진보를 기준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노동유연화의 수용'을 꼽았다.

"우리가 진짜 무너진 건, 그 핵심은 노동이다.…노동의 유연성을,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인데…, 아웃소싱을 우리가 불법이라고 규정해서 잘라내지를 못하니까 정부의 칼이 현장에서 파업하는 사람들한테 겨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32, 233쪽)

그는 이 노동유연화 문제를, 빈부격차를 발생시킨 큰 원인으로 규정했다. 또 전 세계적 관점에서도 "'노동의 유연화, 그것도 우린 할 수 있어'하고 놔버린 게 진보주의의 가장 아팠던 대목"이라고 했다.

'증세-감세'문제에 대한 아쉬움도 나타냈다.

"나는 그냥 불행한 대통령이다. 분배는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분배정부라고 몰매만 맞았던 불행한 대통령이다…환자가 지금 뭘 먹어도 못살 판에 살을 뺀다고 하고 있으니." (140쪽)

"김대중·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인가"

그에게 가장 곤혹스러웠을 '김대중·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인가'라는 질문도 주요하게 다루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진보정권이었나? '제3의 길', 유럽의 진보주의 기준으로 평가해 보자. 그래도 한계는 분명하다…무엇이 발목을 잡았을까. 한국의 이념구도,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조류, 제3의 길 노선의 세례, 위기와 극복을 위한 비상대책, 정치세력의 한계-소수파 정권, 여론을 주도하는 조직적 세력의 열세, 진보주의 분파와 분열과 갈등" (99쪽)

그러면서 "그걸 한 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보수주의 사상의 세례를 받은 것이냐, 아니면 실질적으로 세계의 변화를 받아들인 것이냐는…(것을 정리해보려 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이 같은 고민들은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집약된다. 그는 국민들의 행복실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구현돼야만 하며, 민주주의는 조직된 시민에 의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시민의 시민사회로 확대'에 대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관련 글을 기고한 것이 있다면서 "김 대통령을 인터뷰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에게 '시민'은 민주주의의 핵심개념이고, 그는 시민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을 진보주의, 민주주의라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그는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간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이 우리 쪽의 동질감을 만들어 주고, 우리는 착한 사람이고 뭔가 미래를 위해서 기여할 것처럼 하는 그런 분위기가 지금도 여전한 것이 현실이다. 오늘도 대중적 분위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거냐?……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거냐에 대해서 과거 반독재 구호처럼 한 개인을 타도하는 것, 한 세력을 타도하는 것, 그것이 아니고, 다음 세대를 이끌어가고 다음 세기를 지배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의 가치 체계가 중요한 것이다." (314쪽)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는 자신을 비판하는 자든, 지지하는 자든 쉽게 자신을 지나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태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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