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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918년)에 군산 장재동에 설치되었다가 1931년 시가지 확장과 함께 철길 옆 신영동으로 옮겨와 80년 세월을 서민의 입맛과 함께 해오던 공설시장(일명 구시장)이 3층 현대식 문화관광시장으로 거듭난다.

공설시장 2층에서 내려다본 구 기차역 방향. 옛날에는 시장이 끝나는 지점으로 염소, 닭, 오리 등 가축을 파는 가축시장이어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공설시장 2층에서 내려다본 구 기차역 방향. 옛날에는 시장이 끝나는 지점으로 염소, 닭, 오리 등 가축을 파는 가축시장이어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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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익산, 김제는 물론 충남 장항, 서천, 화양, 한산, 부여에서까지 장을 보러오기도 했고, 구 기차역 주변에서는 새벽마다 '도깨비시장'이 열려 도매시장보다 싸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큰 시장이었다.

공설시장은 8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는 동안 새벽마다 도깨비시장이 섰던 '역전종합시장', 어머니 품과 같은 '구시장', 70년대 째보선창 복개공사를 하면서 신영동 쪽으로 신설된 '신영시장'으로 확장됐음에도 문 닫는 가게는 계속 늘어났다.

손님을 대형마트에 빼앗기고 어렵게 유지해오던 공설시장 상인들이 재건축 공사를 앞두고 임시 시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해서 어제(23일)는 아내와 시장에 나갔다가 항상 밝은 표정이었던 국숫집 아주머니가 궁금하고, 잔치국수도 한 그릇 먹고 싶어 들러보았다.

국숫집 아주머니의 하소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백열등 불빛이 눈에 부시도록 환한 가게에 테이블이 세 개 놓여 있는데 한쪽 테이블에서는 중년의 아주머니 셋이 불빛으로 더욱 빨갛게 보이는 떡볶이를 앞에 놓고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웃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장사하느라 늦은 점심을 먹는 국숫집 주인아주머니. 티셔츠는 5천 원짜리 사 입어도 감사헌금은 꼬박꼬박 한다고.
 장사하느라 늦은 점심을 먹는 국숫집 주인아주머니. 티셔츠는 5천 원짜리 사 입어도 감사헌금은 꼬박꼬박 한다고.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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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가마솥 앞에서 잡채를 만들던 아주머니가 보고 웃으면서 "어서 오세유!"라고 인사를 하기에 국수 두 그릇을 주문하고 요즘 재래시장에 손님이 자꾸 줄어들어 걱정이라고 했더니 대답이 재미있었다.

"저는 걱정 안 혀유. 내가 허기 나름이니께유. 2천 원짜리 국수지만, 손님한티 인사도 꼬박꼬박 허고, 맛있게 만들믄 또 오거든유. 그런 식으로 장사를 24년 혔응게. 그리고 우리 아저씨 허고 내 별명이 '빵할아버지', '빵할머니'여유. 애들이 학교에 감서 인사를 착실히 헐 때마다 느들이 먹고 싶은 빵 하나씩 먹으라고 허쥬. 갸들이 머더러 인사 허겄어유. 빵 얻어먹을라고 허지. 그려서 '빵'별명이 붙은 거유." 
     

아주머니(66세)는 아저씨(68세)가 먼 거리까지 배달해준다고 했다. 빵이든 족발이든 나운동이나 조촌동에서 1만 원어치라도 주문이 들어오면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배달하러 다닌다고 하면서도 대기업 여사장님처럼 표정이 무척 밝았다.

점심 때 손님이 많았는지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가게 자랑을 늘어놓는 아주머니에게 "그럼 이사는 언제 하세요?"라고 물었더니 갑자기 표정이 바뀌면서 "나는 안 가유! 죽어도 안 가유!"라며 퉁명스럽게 답하기에 재차 물었다.   

- 옛날 한양화학이 있는 공터에 임시건물을 지어서 시장을 설치하고 연예인도 초청해서 홍보 공연도 몇 차례 하는 모양이던데 왜 안가세요?
"나는 용가리 통뼈거든유, 그려서 죽어도 안 가유. 딴디는 보상을 혀준다고 허는디 아무 대책도 없이 갔다가 어떻게 허라고유, 다시 온다는 보장도 없는디 머더러 간데유. 나는 절대 안 가유."

- 언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데요?
"새각씨 때부터 혔응게 삼십 년이 넘었는 게비네유. 이 자리에서만 고무신 장사 7년에 국수장시 24년 혔응게유. 그러니 아무 보상도 없이 억울혀서 이사를 씀벅 가겄냐고유." 

- 아저씨는 어떻게 만나셨는데요?
"말도 마셔유. 나는 충청도 부여가 고향인디 신랑이 군산 고무신 공장(경성고무) 댕긴다고 혀서 굉장헌지 알고 시집 와서 고무신 장사 허다가 엎어 먹고, 딸 하나 낳은 것이 서른여섯이 되드락 시집도 안 가고 속을 썩이네유.

결혼 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 친정아버지가 시집에 가니까 신랑 성적표랑 상장을 밥풀로 문대서 벽에다 붙여놨더래유. 그려서 아버지가 성적표를 보고 '핫따 이놈이 지 밥벌이는 허것구나!' 허고 결혼을 시켰다는디 이 모냥 이 꼴이 됐네유."

최소한의 보상 이뤄져야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잔치국수. 값도 싸고(2천원) 맛도 좋지만,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하얀 김이 솟아오르는 잔치국수. 값도 싸고(2천원) 맛도 좋지만,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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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얘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는데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수가 나왔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국수에 양념간장과 시금치를 고명으로 얹어놓아 더욱 상큼하고 시원하게 느껴졌는데 맛있게 먹으면서도 아주머니와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 이사하는 상인들 편리를 위해 시에서 중장비 지원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고 하던데요.
"지원해주믄 뭐해유. 앞으로 추운 겨울이 닥쳐올틴디, 허허벌판에서 장사가 잘 된다는 보장도 없잖유. 그리고 재래시장 건물을 새로 지어서 성공한 예가 하나도 없다네유.

익산 남부시장이 우리 허고 거의 같은 조건이라고 허는디 물어보고 따지는 남자들이 없어유. 그려서 내가 갔지유. 거기 사람을 만났더니 '우리도 좋다고 찬성 혔는디 결국 망조 들었습니다. 재래시장이 비만 새지 않으면 되지 무슨 유리구두 신고 에스걸레터 타고 2층, 3층으로 올라 댕길 일이 있냐고요'라고 허믄서 음식은 잘못 만들믄 먹어주든지 돼지라도 주지만, 건물을 잘 못 지으믄 몇 십 년 애물단지라고 허는디 그 말이 딱 맞어유."

그리고 익산은 장사 허는 사람들한티 보상금으로 3천만 원에서 최하 5백만 원씩 보상 혀줬드라고유. 그러니 어치게 그냥 이사 갈 수가 있느냐고유. 시장 사람들한티 익산에 댕겨온 얘기를 혔드니 회장이라는 사람이 유언비어 퍼트리고 댕긴담서 머라고 허드라고유. 하이간 웃겨서···."

- 그래도 시장 건물을 3층으로 멋있게 짓는다고 하던데요?
"건물을 새로 지으믄 공간을 내줘야 허니께 이쪽 근방은 싹 없어져유. 그리고 1층은 에어로빅 짠짜잔 채리고, 2층은 노래방 만든 데유. 어떤 놈이 시장에 와서 장은 안 보고 춤추고 노래 부르냐고유. 그리고 200억을 가지고 짓는다고 허는디 벌써 다 없어지고 지금은 80억 남었데유. 그 돈으로 어떻게 돈도 안 받고 지어 주냐고유. 익산도 상인들이 평당 1백만 원씩 내고 들어갔데유."     

한번은 시청서 조사 나와서 손님이 하루에 얼마나 오냐고 물어보드라고유. 그려서 양심대로 말혔쥬. 2천 원짜리 국수는 팔지만 손님 숫자로 허믄 우리 집이 젤 많을 거다. 하루에 100명은 못 돼도 70-80명은 된다고 허니께 시청 직원이 다른 사람들은 20명-30명밖에 안 온다고 숨기는데 아주머니는 왜 그렇게 화끈허냐고 허드라고요. 그려서 그렇게 장사가 되니께 나갈 수 없다고 혔쥬."

- 내년에 공사를 시작할 모양이던데 반대하는 상인이 그렇게 많나요?
"그럼유. 전체 상인이 300명쯤 되는디 처음에는 38명이 반대혔어유. 그런디 늘어나가지고 70명이 넘드니 120명, 지금은 160명이 반대 허고 있어유. 첨에는 다 좋다고 혔는디 여기저기서 말을 들어보니께 그게 아니거든유. 땡전 한 푼 보상도 없는 디다가 이사혀서 장사가 잘될지 불안허니까 반대허는 거쥬."

아주머니와 대화를 마치고 가게를 나오면서 군산시에 당부하고 싶은 말 두 가지가 떠올랐다. 첫째는 재개발도 중요하지만, 상인들이 억울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공사 기간에 불편은 물론 시장건물이 준공되고서도 후유증이 심각할 것 같다. 시장으로 통하는 중동, 평화동, 신영동, 대명동 길들이 하나같이 좁기 때문이다. 해서 주차공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훗날 교통대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공설시장, #국숫집아주머니, #구시장,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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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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