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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먼쓰는 불지사리가 발견된 불교 성지다.
 파먼쓰는 불지사리가 발견된 불교 성지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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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먼쓰의 입구는 너무 크고 화려해 엄숙한 국가 추모장을 들어서는 위압감을 준다.
 파먼쓰의 입구는 너무 크고 화려해 엄숙한 국가 추모장을 들어서는 위압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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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8월 중국 산시(陝西)성 수도 시안(西安)에서 서쪽으로 115㎞ 떨어진 푸펑(扶風)현 내의 천년고찰 파먼쓰(法門寺). 사찰 주변은 열흘 이상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우기가 지속되던 어느 날 오전 파먼쓰 위로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번개는 그대로 사찰 내 13층 팔각 진신보탑(眞身寶塔)을 강타해 두 동강을 냈다. 400여년 간 숱한 풍상에도 굳건히 버텨오던 탑이 간단히 무너져 버렸다.

그로부터 5년 뒤 가을 산시성 정부는 한동안 방치되던 진신보탑에 대한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작업팀이 탑을 조심스레 들추어내던 중 바닥에서 조그만 굴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던 지하궁의 출현이었다. 작업팀은 중요한 유물이 잠들어있음을 직감하고 우선 주위를 통제한 뒤 상부에 보고했다.

산시성 정부는 수개월간 철통같은 보안 아래 기초조사 작업을 진행했다. 1987년 4월 전문적인 발굴팀이 지하궁의 돌문을 열고 들어섰다.

지하궁에서 출토된 유물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경악시킬 만큼 엄청났다. 당나라 황실에서 쓰이던 보물 3000여점이 1113년 만에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무엇보다 세상을 흥분으로 몰아간 것은 전설에서만 떠돈 '불지(佛指)사리'의 재현이었다. 불지사리는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뒤 다비에서 나온 손가락 뼈 사리를 가리킨다.

기원전 485년 숨을 거둔 석가모니의 유체를 7일간 화장했는데, 재가 되지 않은 8만4000여개의 사리가 남겨졌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파먼쓰 지하궁전에서 출토된 4㎝ 길이의 진신사리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손에 꼽을만한 석가모니의 사리가 남겨져 있다. 그 중 불지사리는 하나도 남겨지지 않았었다. 오랫동안 사라진 진짜 손가락 뼈 사리를 본 따서 만든 영골(影骨)을 진신사리라 부르며 불지사리처럼 추앙해왔었다. 그런데 파먼쓰에서 진짜 불지사리가 세상에 빛을 드러낸 것이었다.

불지사리가 봉납되었던 순금으로 된 8중 보물함의 가장 겉모습.
 불지사리가 봉납되었던 순금으로 된 8중 보물함의 가장 겉모습.
ⓒ 파먼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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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으로 만들어진 부처상과 법장. 중국에서도 흔치 않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순금으로 만들어진 부처상과 법장. 중국에서도 흔치 않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 파먼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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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사후 남겨진 사리는 기원전 240년 인도 아소카왕에 의해 인도와 전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불교의 포교를 위해 흩어진 것이다. 그 중 불지사리가 중국으로 들어왔다.

고대 중국의 황제들은 불지사리는 최고의 보물로 궁전 깊숙이 보관해왔다. 황제들만 친견하던 불지사리는 후한시대 파먼쓰 지하공전으로 옮겨졌다. 석가모니의 영골(靈骨)이 황실에 보관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간청한 고승들의 의견이 받아졌기 때문이다.

파먼쓰는 서기 300년 창건한 황실 사찰이었다. 당나라 때는 황실에서 직접 관리했는데, 거주하는 승려가 1000여명에 달한 정도로 규모가 컸다. 당 의종 때에는 아예 불지사리가 모셔진 지하궁을 밀봉하고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했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지하궁의 존재를 아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불지사리의 존재도 차츰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20세기 말 1600여년 만에 지하궁을 나온 불지사리는 곧 '세계 9대 기적'으로 불리며 인류 전체의 보물로 모셔졌다. 특히 지하궁에서 발견된 지문비(志文碑)는 불지사리의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로, 전 세계에서 단 하나 밖에 없다.

지하궁 위를 받치고 있던 진신보탑은 아이러니컬하게도 1579년 명나라 때 만들어졌다. 8각 13층, 높이 47m의 벽돌 탑으로, 파먼쓰 대웅전 뒤편에 우뚝 서있다. 탑의 축조 당시 지하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후대인을 위한 부처의 안배인 듯싶다.

불지사리가 발견되기 전 파먼쓰는 대웅전과 진신보탑, 몇몇 부속 불전 밖에 없던 황량한 사찰이었다. 찾는 이도 거의 없던 파먼쓰는 불지사리의 출현으로 과거의 휘황찬란한 영화를 되찾았다.

파먼쓰를 중심으로 새로운 마을 파먼진이 생겨났다. 1년 사시사철 파먼쓰는 전 세계에서 온 불자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합장하는 손 모양과 불지사리 봉납함을 형상화한 파먼쓰박물관 외경.
 합장하는 손 모양과 불지사리 봉납함을 형상화한 파먼쓰박물관 외경.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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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먼쓰 대웅전 입구와 진신보탑. 진신보탑 밑에서 전 세계를 흥분시킨 지하궁이 발견됐다.
 파먼쓰 대웅전 입구와 진신보탑. 진신보탑 밑에서 전 세계를 흥분시킨 지하궁이 발견됐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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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파먼쓰를 처음 찾은 것은 지난 1996년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파먼쓰는 제대로 된 유물 전시관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 뒤 5년 간격으로 방문한 파먼쓰는 매번 상전벽해의 모습을 선사했다. 지금 파먼쓰는 사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테마 관광지와 다를 바 없다. 전체 면적은 1300무(666.7㎡/1무)에 달하고, 각종 관광객을 위한 볼거리가 갖춰졌다.

파먼쓰의 입구는 너무 크고 화려해서 찾는 이의 기를 죽인다. 경건하고 엄숙한 종교 성지에 들어선다는 느낌보다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국가 추모장을 찾는 듯한 압박감을 준다.

갓 만들어져 의미 없고 조잡한 불교와 석가모니의 상징물이 줄지어 선 광장을 지나면 한 편 구석에 파먼쓰 사찰이 숨어있다. 옛 모습 그대로인 대웅전 뒤편에는 지하궁을 품어 온 진신보탑이 우뚝 서있다. 탑 밑의 지하궁은 은행금고처럼 두꺼운 철문으로 입구를 막아놓았고 감시 카메라가 24시간 돌며 관리한다.

대리석으로 된 진신보탑의 계단을 내려가면 중앙홀로 통하는 통로가 나온다. 홀 천장에는 지하궁이 발견됐을 당시에 붙어 있었던 석가모니의 여러 모습을 담은 금박장식이 찬란한 빛을 발한다. 홀 사방에는 여러 형상의 금불상과 사리함이 진열되어 있다.

진신보탑에서 얼마 떨어지는 않은 뒤에는 2001년 문을 연 파먼쓰진열관이 있다. 초현대식인 진열관은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불교계의 지원을 받아 지어졌다. 진열관에는 지하궁에서 발견된 진귀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유물은 당 황실의 호화로운 궁중생활과 당시 문화예술의 극치를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단수십이환석장 등 순금으로 된 법장, 측천무후가 직접 짠 자수, 섬세하고 아름다운 유리자기 등 수백점이 찾는 이를 반긴다. 그 중 불지사리를 봉납했던 8중의 봉납함은 화려함을 자랑한다.

지하궁에서 출토된 유물 대부분은 중국에서도 국보 중의 국보다. 1991년 중국 최고 지도자로는 처음 파먼쓰를 찾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천하의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들"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반포유적박물관의 발굴지 외경.
 반포유적박물관의 발굴지 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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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전시관에서 발굴된 채도에는 예술적이고 추상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다.
 유물전시관에서 발굴된 채도에는 예술적이고 추상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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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안 시내로 되돌아 와 반포(半坡)유적박물관을 찾았다. 반포유적은 중국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앙소(仰韶)문화의 중요 발굴지다.

앙소문화는 중국을 대표하는 신석기 문화다. 1921년 허난(河南)성 몐츠(澠池)현 양샤오에서 기원전 5000~3000년 전 유적이 발굴된 데에서 유래됐다. 주로 황허(黃河) 중류 일대의 신석기 문화를 일컫는데 허난성 샤창(狹長) 일대, 산시성 웨이허(渭河) 유역, 산시(山西)성 서남부 등에 걸쳐있다. 동서로 약 1000㎞, 남북으로도 1000㎞에 달한다.

앙소문화는 농업이 발달한 씨족사회로, 돼지를 사육하면서 수렵과 어로 활동도 활발했다. 간석기로는 도끼, 삽, 칼, 화살, 물레 등 만들었고 뗀석기로는 돌칼, 맷돌, 숫돌 등을 제조했다. 앙소문화의 정수는 무엇보다 토기다. 토기는 니조반축(泥條盤築)법을 써서 만들었는데 붉은 빛깔을 띠었다.

토기는 다양한 그림과 무늬가 그려진 채도(彩陶)다. 사람 얼굴과 몸, 동식물, 물고기, 나무 등 대상을 함축하여 그렸고 형이상학적인 기하 문양도 있다. 주로 취사도구로 사용됐는데 사발, 주발, 접시, 잔, 물그릇, 항아리 등 용도가 넓었다.

반포유적은 기원전 5000여년 전 웨이허의 지류 변에 살았던 공동체 유적이다. 1921년 발견되어 1950년대 대규모 발굴사업을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거주 인구는 약 500~600명 정도로, 전성기 때는 200가구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을 통해 가옥 46채, 가축우리 2채, 성인묘 174개, 유아 묘인 옹관 73개, 도기 제작장 6소, 부장물품 200여점 등이 출토됐다.

발굴된 묘소는 앙소문화의 독특한 합장 문화를 보여준다. 앙소문화는 집단 합장과 동성(同性) 합장이 성행했다. 머리는 서쪽을 향했고 질서를 갖추어 안치했다. 각 묘지의 규모와 부장품은 차이가 없지만, 여성묘의 부장품이 더 많다. 이는 당시가 모계사회였음을 대변해준다.

반포유적지는 앙소문화의 비밀을 담고 있는 촌락 유적이 고스란히 발견됐다.
 반포유적지는 앙소문화의 비밀을 담고 있는 촌락 유적이 고스란히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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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북쪽에서 발굴된 집단 합장묘에서는 다양한 부장품도 발굴됐다.
 유적지 북쪽에서 발굴된 집단 합장묘에서는 다양한 부장품도 발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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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유적에 들어서면 지은 지 오래된 유물전시관이 찾는 이를 맞는다. 전시관에는 유적지에서 출토된 석기, 어구, 뼈바늘 등 주요 생산도구와 채도가 전시되고 있다. 석기는 정교롭게 깎여져 날카롭기까지 하다. 토기에는 예술적이고 추상적인 무늬가 그려져 있다.

반포가 물질적, 정신적으로 발전된 사회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물 뼈로 만든 낚시와 망의 추도 있어 농업뿐만 아니라 어로 활동도 활발했음을 알 수 있다. 가축의 사육이 이뤄져 돼지, 개, 양의 뼈도 발견됐다. 이 밖에 귀걸이, 목걸이, 머리빗, 팔지, 혁대 등 다양한 생활유물도 있다.

유적지는 거대한 돔에 둘러 싸여 있다. 내부는 발굴 당시의 현장을 그대로 유지하여 보여준다. 이를 통해 반포의 주거환경과 사회생활을 뚜렷이 엿볼 수 있다. 마을 경계는 도랑을 파서 들짐승이나 다른 부족 사람의 침입을 막았다. 북쪽 가장자리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그 아래에는 가축들을 키우던 축사가, 중앙에는 주거지가 있는 구조다.

반포의 집은 지하와 반지하, 지상을 아우르면서 용도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지어졌다. 주거지의 반은 땅 밑이지만 중앙에는 항상 화로가 설치됐다. 집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집회 장소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도 발견됐다. 이는 반포 촌락이 체계적인 사회질서를 갖춘 공동체였음을 알 수 있다.

반포유적은 중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대규모 촌락 유적으로 지금도 가치가 높다. 약 1만㎥의 대지 위에 황허 유역 원시 씨족사회의 성질, 취락분포, 경제발전, 문화생활 등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반포유적의 발견 이후 중국 각지에서는 다양한 신석기 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어 고대 중국문명을 기원전 8000년까지 끌어올렸다.

돔 형태의 유적지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는 기념품 판매점이 있다. 상점에서는 반포유적에서 출토된 채도 및 생활도구의 모조품을 판매하고 있다. 채도를 사는 여행객이 적지 않아 앙소문화에 대한 중국인의 뜨거운 관심을 느낄 수 있다.

다옌타는 밤이 더욱 아름답다. 다양한 조경을 받아 화려함이 빛난다.
 다옌타는 밤이 더욱 아름답다. 다양한 조경을 받아 화려함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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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밤 다옌타 북부 광장에서는 세계 최대 분수쇼가 벌어진다.
 매일 밤 다옌타 북부 광장에서는 세계 최대 분수쇼가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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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Tip 1

파먼쓰는 산시성 푸펑현청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져 있다. 파먼쓰의 개방시간은 매일 8:00~18:00이고, 입장료는 160위안(한화 약 2만7200원)으로 상당히 비싸다.

파먼쓰로 가는 교통편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시안기차역 동쪽 광장에서 출발하는 파먼쓰 전용 여행버스(旅遊專線)를 타면 된다. 날마다 아침 8:00부터 오후 1:00까지 5차례 발차하고 버스비는 25위안(약 4250원)이다. 시안으로 되돌아오는 막차는 오후 4:00다. 둘째는 시안기차역이나 위샹먼(玉祥門) 버스터미널에서 푸펑현으로 향하는 시외버스를 타서 2시간을 간 뒤, 푸펑현청에서 파먼쓰까지 연결된 버스를 갈아타면 된다.

반포유적박물관은 시안 도심에서 동쪽으로 6㎞ 떨어진 반포촌 베이허(浿河) 동변에 있다. 반포유적박물관의 개방시간은 매일 8:30~17:00이며, 입장료는 30위안(약 5100원)이다. 교통편은 시내 각지에서 출발하는 3, 42, 45, 233, 408 등의 버스가 있다. 구러우(鼓樓)에서 출발하는 105번, 시안기차역에서 출발하는 11번도 반포유적을 지난다.

# 여행Tip 2

시안을 떠나기 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다옌타(大雁塔) 북부 광장에서 벌어지는 분수쇼다. 분수쇼는 매일 밤 8시 반부터 30분 동안 진행되는데, 규모와 다양함에 있어 세계 최대다. 중국 고전 및 현대음악과 조화를 이루며 물줄기가 시원하게 밤하늘을 가른다.

화려한 분수쇼는 다옌타를 배경으로 진행되는데, 당나라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중국정부의 의지를 보는 듯하여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도심에서 다옌타로 가는 버스는 10여개 노선이 있다. 종러우(鐘樓)에서 다옌타까지 택시로 갈 경우 12위안(약 2040원) 안팎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시안, #법문사, #파먼쓰, #반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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