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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남전이 열리는 갤러리학고재 본관 입구. 아래는 이번 전 홍보포스터.
 이이남전이 열리는 갤러리학고재 본관 입구. 아래는 이번 전 홍보포스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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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격동 갤러리 학고재 본관과 신관에서 이이남의 '사이에 스며들다'전이 12월 13일까지 열린다. 그의 신작 등 40여 점 영상작품과 C-프린트 작품을 선보인다.

이이남(1969~)은 담양에서 태어나 조선대, 연대에서 조각과 영상예술학을 공부했다. 어려서 시골에서 농사일을 도우며 자랐다. 그런데 1997년 우연히 애니메이션영상과 접하면서 움직이는 조각이 가능함을 디지털에서 발견한다. 원본 이미지를 차용하거나 혼성 모방하는 방식을 실험하다 마침내 미디어작가로 변신한다.

그의 작업은 과거를 현대로 되살리고 미래도 예시하는 '생성미학'이다.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또한 '미(美)'보다는 '활(活)'을 근거로 하는 '기운생동미학'이다. 이런 개념을 디지털에 담고 이이남만의 독창적 재해석을 곁들인다.

화려한 금강산과 전쟁시뮬레이션을 동시에 보다

이이남 I '2009-금강전도' LED TV, 비디오영상(전반과 후반) 2009
 이이남 I '2009-금강전도' LED TV, 비디오영상(전반과 후반) 2009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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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진경산수의 대표작이자 한국미술의 최고봉인 겸재의 '금강전도'에 디지털 옷을 입힌다. 2009년 판에는 금강산의 계절변화를 보여준 후 느닷없이 첨단장비를 갖춘 헬기와 전투기를 등장시킨다. 이 평화로운 강산에 웬 전투기인가 싶은데 사실 남북이 대립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 아닌가.

그는 이렇게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공포감을 주는 전쟁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줘 기막힌 우리의 분단현실을 예술화한다. 하여간 이렇게 작가의 첨단미학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디지털기술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 09-금강전도(중후반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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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의 원본과 작가가 패러디한 복제가 마구 뒤섞여 구경거리가 많다. 하지만 이런 영상이 되기까지 끔찍할 만큼 노고가 든단다. 게다가 작품설치에 문제가 생기나 보다. 하지만 이번 전시공간엔 대만족이다. '박연폭포' 같은 작품은 그 길이만 해도 6미터나 되는데 문제가 없다. 어찌됐든 작가는 이런 작품이 관객들에게 삶의 청량제가 되기를 바란다.

모네 '해돋이'와 소치 '추경산수'가 대화하다

이이남 I '모네와 소치와의 대화' 모네의 '해돋이-인상', 소치의 '추경산수화'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이이남 I '모네와 소치와의 대화' 모네의 '해돋이-인상', 소치의 '추경산수화' LED TV, 비디오영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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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1840~1926)의 '해돋이'와 소치(1809~1892)의 '추경산수화'가 대화한다. 두 작품은 발광다이오드 화면(LED TV) 속에서 중첩되고 또한 자리를 바꿔가며 혼합된다. 모니터는 이렇게 작가의 의도를 담아 표현하는 '그릇'이자 '캔버스'라 할 수 있다.

거기에서 동서양, 시공간, 디지털과 아날로그 등이 비빔밥처럼 비벼져 전혀 새로운 맛을 낸다. 한국의 산수화와 서양의 풍경화를 같이 놓고 보니 두 미술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 고속철처럼 빨라진다. 그 발상이 신선하다.

인왕산은 현실로, 몽유도원도는 첨단도시로 바꾸다

이이남 I '신-인왕제색도', '신-몽유도원도(아래)'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생생한 현재와 미래로 복원한 무릉도원이라 할만하다.
 이이남 I '신-인왕제색도', '신-몽유도원도(아래)'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생생한 현재와 미래로 복원한 무릉도원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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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가 비온 후 그린 인왕산 전경, 여기에 색동옷을 입히고 과거가 현재로 되돌아온 것 같다. 봄의 약동, 여름의 녹음, 가을의 낙엽, 겨울의 설경 등이 동시에 담긴다. 첨단IT기술이 이런 작품의 가치를 더 빛낸다. 덩달아 겸재의 이름도 세계적으로 알려진다.

지난번 국립박물관에서 시민들이 몇 시간을 기다리며 봐야했던 몽유도원도, 작가도 거기서 받은 감동을 첨단영상으로 부활시킨다. 화면의 중반 이후에는 고층건물이 즐비한 시뮬레이션도시가 등장한다. 그 건물 광고판에 유명상표의 로고가 보여 웃음이 터진다.

이이남은 이렇게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근거로 현재화한다. 옛 명성을 오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렇게 해서 모빌(움직이는)페인팅의 가능성과 창작의 폭을 넓힌다. 잃어버린 우리의 꿈과 이상을 작가는 여기서 되찾아주려 했는지 모른다.  

앤드 워홀,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와 호흡 맞추다

이이남 I '신-우는 여자'와 '신-마릴린 먼로'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이이남 I '신-우는 여자'와 '신-마릴린 먼로' LED TV, 비디오영상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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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업은 워홀이나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와도 호흡을 맞춘다. 담배 피는 마릴린 먼로 참 멋지다. 그의 얼굴에 점이 이동한다. 그림의 통념을 깨면서 관객을 흥분시킨다. 그리고 먼로는 서서히 마이클 잭슨이 된다. 하긴 둘은 마치 오누이처럼 한 운명인 것 같다.

피카소의 '우는 여자'와 다르게 리히텐슈타인의 '우는 여자'는 애교가 더 넘친다. 원작의 특징인 망점이 흩어지면서 그림에 생기가 돈다. 감정에 호소하는 표정이 더 확연해진다. 그림 속에 박제된 눈물이 줄줄 흐른다. 가상과 현실, 복제와 창조가 합쳐지면서 그 상승효과도 커진다. 

겸재와 세잔, IT로 만나 미학을 논하다

이이남 I '겸재 정선과 세잔' LED TV, 비디오영상 2009. 겸재의 '장안연월(長安烟月)'과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
 이이남 I '겸재 정선과 세잔' LED TV, 비디오영상 2009. 겸재의 '장안연월(長安烟月)'과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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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과 서양현대미술의 아버지 격인 세잔(1839~1906) 이 화면에서 만난다. 두 작가를 나란히 올려놓고 보니 산세가 너무나 비슷하다. 겸재는 세잔보다 160년 전 사람이지만 두 대가는 세대를 떠나 뭔가 잘 통했나보다.

세잔은 19세기 말 서양미술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빛의 인상을 그리는 화풍을 그는 못마땅하게 여겼다. 무엇보다 물성 자체를 탐구하면서 사물 표면보다 내부를 객관적으로 보려 했다. 그래서 그는 사물을 원이나 뿔, 공이나 콘 모양으로 보라고 했다. 하긴 이게 나중에 입체파의 단초가 된다.

▲ '겸재 정선과 세잔'(후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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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는 독자적 사실적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꼭 눈에 보이는 실경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진경을 그렸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붓을 가지고 다니지 않은 것은 자연의 겉보다는 속을 담아 보려고 했고 마음의 진정성을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미술의 영웅주의자로 불렸던 세잔은 작가로서 매우 엄격하고 철저했다. 그림을 그리다 죽고 싶다고 했다. 겸재도 말년까지 그에 못지않았다. 이이남은 기존의 관념을 깨고 이런 두 대가를 비교하여 미디어아트의 새 장을 연다. 이는 동서양을 통합하여 비디오아트를 창시한 백남준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고흐, 클림트 명화 등을 재치 있게 패러디하다

이이남 I '신-고흐자화상'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장면 중 일부 발췌
 이이남 I '신-고흐자화상'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장면 중 일부 발췌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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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LED TV에선 고흐의 자화상을 한꺼번에 다 볼 수 있다. 미디어아트의 장점이다. 고흐가 눈을 껌벅거리는 것이 보인다. 얼굴 표정의 미묘한 변화도 잡아낸다. 담배 피우는 모습도 눈앞에서 보는 것 같다. 그 담배 연기 속에서 대표작 '오베르즈교회' 등이  피어오른다.

그 중 또 눈에 띄는 건 클림트의 '키스'이다. 원래 구상인데 화면이 바뀌면서 추상이 된다. 이제 추상과 구상을 구분하는 그 자체가 의미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디지털로는 고흐의 자화상도 바로 추상이 되기 때문이다.

전통한국화를 디지털로 실감나게 복원하다

이이남 I '신-묵죽도' '신-고사관수도''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여기서도 유명로고가 강물에 둥둥 떠다닌다
 이이남 I '신-묵죽도' '신-고사관수도''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여기서도 유명로고가 강물에 둥둥 떠다닌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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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발상의 전환으로 우리가 거의 잊고 있었던 화선지로 된 산수화를 디지털로 복원한다. 나뭇잎이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장면이 믿기지 않는다. 작가의 말로는 작품 속에 주인을 만나기 위해 거기로 들어간단다. 그만큼 감정이입이 잘 된다는 증거다.

이런 작품으로 젊은이들이 전혀 감지할 수 없는 과거 선비들의 검소한 삶을 맛볼 수 있다. 그들이 물질적 궁핍 속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고 어떻게 멋과 풍류를 즐겼는지 그런 '유유자적', '호연지기', '위풍당당함'이 어디서 나왔는지 이해하게 된다.

생활문화에 파고드는 그의 예술은 일상이다

이이남 I '창문 살에 비친 대나무' 외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이이남 작품 여덟 폭 병풍 앞에 선 전 영국블레어총리부인 셰리 블레어
 이이남 I '창문 살에 비친 대나무' 외 LED TV, 비디오영상 2009. 이이남 작품 여덟 폭 병풍 앞에 선 전 영국블레어총리부인 셰리 블레어
ⓒ Cherie Bl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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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 부제 '사이에 스며들다'가 그렇다. '창문 살에 비친 대나무'가 디지털로 바꿔 우리 마음에 스며들게 한다. 그런데 상업적 표적이 되기 쉽다는 게 약점이다. 벌써 짝퉁이 나와 저작권 문제가 대두된다. 하여간 그의 예술은 이렇게 일상적이다. 거기엔 한국미가 스며있다.

올 여름 런던사치갤러리에서 열린 '코리안 아이' 전에서 전 영국 블레어 총리 부인은 그의 여덟 폭 병풍을 보고 IT강국인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다며 관심을 보였단다. 이이남은 이미 미국, 영국, 중국, 스페인 등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청와대, 국립현대미술관, 예일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하여간 그의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갤러리 학고재 종로구 소격동 77. 02)739-4937-8 www.hakgojae.com
이이남전 '사이에 스며들다' 2009년 11월18일부터 12월13일까지



태그:#이이남, #겸재, #세잔, #소치, #미디어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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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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