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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배고파 죽겠어. 뭐 좀 먹을 거 없어요?"

학교를 마치자마자 집에 온 딸아이가 묻는다.

"배고프다구? 오늘 급식 먹었잖아?"
"아유, 엄마. 급식배는 벌써 꺼진 지 오래고, 지금 배가 등가죽에 달라붙어서 낭떠러지가 될 지경이야. 배고파. 뭐 좀 빨리 주세요."

딸아이는 내가 먹을 것을 꺼내기도 전에 벌써 냉장고 문을 열어 이곳저곳을 뒤져보고 닥치는대로 먹을 것을 찾고 있다. 회오리 태풍같은 요란스러운 재촉이 아니더라도 그런 날은 이미 미리 준비해 놓은 간식을 내놓는다. 이런 날은 대부분 학교 급식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급식당번 친구들이 좀 '불공평하게' 반찬배분한 날이다.

아이들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급식'

각자 1인 1역을 맡는 딸의 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할은 바로 급식봉사 당번이다. 자기가 선호하는 반찬과 싫어하는 반찬을 은근슬쩍 자기 취향대로 '고를 수' 있어서다. 그래서 딸아이도 급식당번을 하고 싶어했는데, 딸보다 더 급식당번 맡기를 좋아하는 남자애들이 재빨리 손을 '번쩍' 들어서 놓쳤다고 속상해했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이미 자기 나름대로 편하고 영리하게 살겠다는 '처세술'이 생겨버린 걸까.

학교에서의 하루 일과 중 아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간은 급식 시간이 아닐까 싶다. 급식을 잘 먹고 오는 날은 학원 가는 발걸음도 힘차고 씩씩한데, 제대로 못 먹고 게다가 하필 엄마가 일이 있어 간식도 차려주지 못한 날은 학원으로 향하는 딸아이의 발걸음이 그야말로 천근만근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엔 "오늘은 배고파서 불행했다"는 딸아이의 원망을 귀 아프게 들어야 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학교급식 식단표다. 딸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이 없는 날이거나, 숙제도 많고 시험도 많은 날이라 급식이 바쁘게 이뤄질 것 같은 날은 아예 아이가 학교에서 오기 전에 밥, 반찬을 미리 '세팅'해 놓기도 한다.

학교 마치고 바로 학원으로 가는 날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짧기도 하고, 배고픈 채로 학원에 가면 집중이 안 돼 공부 효과가 떨어졌다는 학원 선생님의 말을 듣는 등 여러번 시행착오를 겪은 데서 나온 나름의 지혜라고나 할까.

급식 잘 먹으면 5교시 집중도 잘 돼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확인하는 학교급식 식단표.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확인하는 학교급식 식단표.
ⓒ 임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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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딸아이의 학교급식 식단표를 보니, 서리태밥에 쇠고기 미역국, 코다리강정과 호박새우살 볶음, 김치이다. 꽤 전통성을 살린 반찬들이다. 여기까지만 하면 아이들이 서운해 할까봐 디저트로 파인애플도 넣었다. 아이들의 성향을 많이 반영하기 위해 영양사 선생님들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아이들은 사실 코다리같은 '어른스러운' 반찬 보다 함박스테이크나 돼지 불고기같은 고기류반찬을 더 선호한다. 아무래도 한창 자라는 아이들인지라 생선류보다 포만감이 큰 육류 반찬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학교급식봉사 경험을 통해 알았다.

딸아이 말로는 그날 학교급식이 어떤가에 따라 급식 후 5교시 분위기도 달라진단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호하는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돼지갈비찜같은 푸짐한 고기 반찬이 나오는 날은 아이들도 힘이 나는지 공부를 더 잘하게 되는 것 같다고.

딸아이의 주관적인 판단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이가 선호하는 반찬인 함박스테이크, 돈가스, 너겟 등이 나온 날은 집으로 들어오는 딸아이의 발걸음도 힘차고 목소리도 밝다. 딸아이가 기분이 좋은 날은, 나도 맛있는 급식을 얻어먹은양 괜히 배가 부르다.

집에서도 못 먹이는 반찬, 여기는 가능하다

집 음식과 학교 급식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밥'이다. 집에서는 주로 전기밥솥을 이용한 밥이고 재료도 보리밥, 혼합 곡물밥인데 반해, 학교에서는 한 가지 곡물만을 넣어 짓는다. 예를, 현미밥, 기장밥, 서리태밥 같은 식으로 밥과 함께 하는 곡물을 단일화해서 아이들이 싫어하는 혼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려고 애쓰는 노력이 느껴졌다.

더구나 찐 밥이어서 밥도 쫄깃하고 맛있다. 요즘은 고학년이 되어 급식자원봉사 할 기회가 없어졌는데, 예전에 학교급식 봉사를 나가면 아이들을 다 퍼주고 남은 밥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도 난다.

아들의 한 담임 선생님은 "집에서보다 여기서 더 잘 먹어요"라고 말씀하시기도. 사실 아무리 전업주부라도 학교급식처럼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다른 반찬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급식은 매일매일 아이들 영양을 생각해 식단을 만든다. 그것도 저비용으로.

딸아이의 학교급식비는 월 4만5000원 전후이다. 하루당 급식비는 우유값 330원을 포함해서 하루 한 끼당 2140원이다. 가끔은 메뉴가 단조롭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부모에게 그다지 부담이 되지 않는 적정한 가격과 메뉴라고 보여진다.

그런데 가끔은 급식을 먹었는데도 배고파하는 딸을 보면 솔직히 속상하다. 그럴 때면 어떤 엄마가 말마따라 급식비를 좀 올려 급식의 질을 좀 높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급식비 올린다고 급식 질 좋아질까 싶지만

평소 우리집 아이들의 아침밥상 모습입니다
▲ 학교급식 분위기로 차려서 준비하는 평소 우리집 아이들의 아침밥상 모습입니다
ⓒ 임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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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이들에게 '영양가 높고 맛좋은' 급식의 기준을 맞추려면 정말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처럼 직영급식이 이루어지는 곳은 그나마 사정이 좀 낫겠지만, 급여도 낮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급식 조리원분들에 대한 처우도 개선되어야 할 듯하다. 그렇게 되면 자부심을 가지고 좀 더 맛있는 급식을 만드는 데 열중할 수 있을테니까.

또 매월 꼬박꼬박 학교에 급식비를 내면서도 정작 우리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체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형식적인 학교운영위원회의 급식모니터링만으로는 절대 부족하다) 현재의 학부모 비참여 급식 식단제도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니, 급식의 질 개선 문제는 모든 것이 급식비 인상과 직결되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급식비 인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터. 학부모, 학교, 아이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개선해 나간다면 즐겁고 '행복한' 급식시간은 계속 될 것이다.

오늘도 엄마는 2차 급식을 준비한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자마자 "배고파"를 외쳐대는 아이를 위해. 그러고 보면 급식메뉴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의 오후시간에도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메뉴에 따라 2차 급식을 준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부터 시작되니 말이다.


태그:#학교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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