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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초에 도봉산 무수골 입구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약 4평의 땅을 분양받았다. 그 정도의 땅이면 4인 가족 밥상에 올라오는 여름 푸성귀는 아쉽지 않게 길러 먹을 수가 있다.  봄에는 상추, 서너 종류의 쌈 채소, 쑥갓, 시금치, 고추, 깻잎, 가지, 토마토, 등을 심는다. 그렇게 심은 푸성귀는 우리만 먹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나 친척집에 나누어 먹게도 될 만치 풍성하다.

약을 하지 않고 노지에서 자란 채소들은 맛이 밋밋하지 않고 쌉쌀하니 톡 쏜다. 봄을 타느라 없어진 입맛을 돌게 한다. 그렇게 노지에서 자란 대부분의 채소는 봄과 여름을 지나면서, 장마를 고비로 시들해지고 병이 들거나 성장이 더디어 지면서 수명을 다한다.  연한 채소는 장맛비를 견디지 못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이 고추다. 사람들은 붉은 고추를 기대하고 키우지만 장마를 끝으로 병들고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주말농장에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체로 약을 주지 않으려 하기에 벌레 먹은 배추들이 많다.
▲ 주말농장 주말농장에서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대체로 약을 주지 않으려 하기에 벌레 먹은 배추들이 많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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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고추가 왜 이래!"

처음으로 주말농장에 입문한 옆 밭의 아저씨가 장마가 끝난 다음에 와 보고 내 지른 소리다. 그 집은 4평의 땅에 온통 고추를 심었는데 장마 전까지는 싱싱하고 길쭉하니 실했다. 우리도 저 정도 고추라면 혹시 살아남지 않을 까 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고춧대에 매달린 고추는 서서히 썩어가면서 툭툭 땅으로 떨어진다.

그러기에 장마 전 싱싱할 때 풋고추로 넉넉히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저장반찬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장마를 견디어낸 고추라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주말농장을 4~5년 한 뒤에 어설프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이번에 분양 받은 땅은 유난히 풀이 많아서 풀을 뽑아주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일주일 만에 가보는 밭에는 푸성귀보다 풀이 먼저 우리를 반길 때가 많았다. 제초제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로 빨리도 자랐다.

아직 배추 속이 들어차기 전 배추는 온통 벌레 먹은 잎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 벌레 먹은 배추 아직 배추 속이 들어차기 전 배추는 온통 벌레 먹은 잎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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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쯤에 배추는 모종으로 심고 무는 씨를 뿌렸다. 이제부터 배추는 벌레와, 무는 비둘기와의 싸움이다. 무씨가 싹이 나와 어느 정도 튼실해 질 때까지는 비둘기나 새들이 와서 쪼아 먹는다. 무는 그런 뒤에는 별 반 주위가 필요하지 않는데 배추는 다 자라 수확할 때까지 속을 끓인다. 농약을 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거의 날마다 와서는 벌레를 잡아준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농장에서 제조해 놓고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는 친환경 농약을 친다. 올해는 농약을 치는 집들이 많아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주말농장이란 아예 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 초창기 때는 도시에서 무공해 채소를 먹겠다는 결심들이 대단해 어떻게든지 약을 치지 않으려고 노력들 했고, 어느 농장에서는 아예 아무것도 주지 못하게 하는 강제성도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주말농장이 여기저기 많이 생기게 되었고, 독한 농약을 치지 못하게 하려고 친환경 농약을 자체 제작해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는 곳들도 생긴 것이다.

목초액을 몇 백배로 희석해서 뿌려주었다.
▲ 목초액 목초액을 몇 백배로 희석해서 뿌려주었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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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농약은 쳐도 된다고 하니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거의 주게 되었다. 농장 관리인 아저씨가 "아무리 친환경 약이라 해도 너무 많이 주면 잎이 말라요" 하니 "벌레가 잎을 숭숭 먹는데 그럼 어떡해요" 하면서 계속 뿌려댄다. 그렇다 보니 끝까지 약을 주지 않으려는 집들은 벌레가 감당이 되지를 않았다.

올해도 우린 일주일에 한 번씩 희석한 목초액으로 견디려는데 좀 힘들었다. 주말마다 가보면 우리 집의 배추는 다른 집의 것보다 현저히 벌레 먹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배춧잎이 동그란 동전처럼 뻥뻥 뚫어져 갔다. 우리처럼 약을 주지 않고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동지의식이 느껴질 정도였다.

보기 좋은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면 채소에 벌레가 조금 생긴다고 급하게 약을 치는 일들은 자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에서 사 먹는 채소는 내 손길이 닿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내 손으로 키워먹는 채소에 농약을 치면서 까지 부쳐 먹고 싶지는 않았다. 주말농장을 하는 이유도 약치지 않은 푸성귀를 길러 먹자는 뜻에서 시작한 것이다.

벌레 먹은 겉잎을 떼고 나니 배추통이 작아졌지만 속은 노랗게 들어차 꽉차 보인다. 사람 먹을 것이 남겨진 것이다.
▲ 무공해 배추 벌레 먹은 겉잎을 떼고 나니 배추통이 작아졌지만 속은 노랗게 들어차 꽉차 보인다. 사람 먹을 것이 남겨진 것이다.
ⓒ 박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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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처음 시작한 주말농장 배추밭에서 진딧물을 옴팍 뒤집어쓴 배추를 보며 안타까워 하고 있던 나에게 지나가던 할머니가 말씀 하셨다.

"걱정 말어, 아무리 벌레가 기승을 부려도 사람 먹을 것은 남겨 놓게 마련이여."

배추가 점점 알이 들어차고 모양새를 만들어 갈 때쯤이면 옆 집 것들과 자꾸 비교하게 된다. 사람들은 우리 밭을 지나가면서 꼭 한마디씩 한다.

배추를 갈라보니 벌레 먹지 않은 속은 깨끗하고 보기 좋다.
▲ 배추 배추를 갈라보니 벌레 먹지 않은 속은 깨끗하고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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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밭은 왜이래."
"약을 줘야겠구먼."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있는데도 대놓고 "이 집 배추는 망했네 망했어" 혀를 끌끌 차고, "진딧물을 뒤집어 쓴 것도 보이네" "진딧물 약이라도 주지 그래요" 하면서 우리보다 더 성화다.

그러면 속으로 '약을 친 배추를 먹으려면 뭐 하러 힘들게 속 끓이며 직접 기르나 사서먹지' 하는 생각으로 버텼다. 이제 와서 욕심을 부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올해는 유난히 더 애를 태우게 한 배추를 지난 주말에 수확을 했다. 배추 겉잎을 벌레에 먹히다 보니 통이 실하지는 않아도 속은 노랗게 알이 들어찬 것이 고시게 생겼다. 벌레가 먹다 지쳐 남겨놓은 배추지만 우리 집 겨울 김장 양식으로는 넘치도록 충분한 양이다.


태그:#주말농장, #무공해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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