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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적 치료효과나 부작용 판단에는 많은 조건을 확인해야

1. 여러 양약을 오랫동안 복용해 오던 당뇨환자가 한약을 복용한 이후 간 기능이 저하돼 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 환자의 간 기능 저하는 한약 때문인가?
2. 100명의 신종플루 환자에게 새로 개발된 약을 먹여서 80명이 나았다. 이 약의 신종플루 치료효과는 80%인가?

두 문제 정답은 모두 '주어진 조건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이다.

첫번째 질문의 경우 한약을 복용하기 전후 조건이 확인되었는가란 문제가 있다. 간이 나빠지는 경우는 술이나 과로 등 생활환경으로도 발생할 수 있고, 오랫 동안 복용해온 양약으로 간 기능이 약화되었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앓은 병력과도 관계있을 수 있다. 한약의 경우 한약을 복용하는 동안 다른 양약이 투약되었는지, 한약 복용 기간 중 생활에서 특이사항은 없었는지, 수백가지 약재 중 어떠한 약재가 투여되었는지, 하루에 복용한 용량이 얼만큼이었는지, 얼마나 오래 복용했는지 확인되어야만 정확한 인과관계를 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환자의 생활 습관, 복용해온 양약의 종류 및 투약기간, 그리고 한약을 복용하기 전후의 몸상태가 면밀히 확인되지 않으면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

이 지문은 실제 현재 대법원에서 심사하는 사안의 2심 결과이다. 1심에서 한의사는 무죄로 판정되었다. 이 환자는 만성 당뇨환자로서 다른 양약을 오랫동안 복용해왔다. 어떤 약재를 쓴 한약을 얼마나 복용했을 때 간 기능을 이상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1) 이 환자의 간 기능 저하 원인은 알 수 없다. 2) 그런 상황에서 한약 복용의 간 기능 이상 가능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잘못하였다는 판결은 앞뒤 모순이 아닐까?
▲ 2010 수능 사회탐구영역에 출제된 지문 이 지문은 실제 현재 대법원에서 심사하는 사안의 2심 결과이다. 1심에서 한의사는 무죄로 판정되었다. 이 환자는 만성 당뇨환자로서 다른 양약을 오랫동안 복용해왔다. 어떤 약재를 쓴 한약을 얼마나 복용했을 때 간 기능을 이상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1) 이 환자의 간 기능 저하 원인은 알 수 없다. 2) 그런 상황에서 한약 복용의 간 기능 이상 가능성을 미리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잘못하였다는 판결은 앞뒤 모순이 아닐까?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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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질문의 경우 100명의 환자들이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가란 문제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대 청년들 중 발병한 환자 100명을 치료하는 것과 70대 할아버지 환자 100명을 치료하는 것과는 매우 다르다. 평소 만성질환을 앓던 환자 100명과 건강했던 환자 100명, 질병이 걸리자마자 쉰 환자 100명과 바빠서 계속 일했던 환자 100명, 그리고 경증 환자 100명과 중증 환자 100명을 치료하는 것도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전체를 대표할 만한 환자에 대한 치료율을 내기 위해서는 대규모 연구자금과 인력 그리고 시간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수준에서 한의학의 치료효과나 부작용을 확인해 보기 위해 많은 시설과 자금, 그리고 인력이 필요하기에 필자는 지난 7번째 연재(국립암센터와 서울대에는 왜 한의과가 없을까)에 한의학에 대한 국가 지원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음기가 부족하거나 열 많은 사람은 뜸 부작용 조심

최근 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스스로 뜸을 뜨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살갗을 태워서 고름까지 잡히게 하는 뜸 시술이 과연 부작용이 없는 것일까? 수천 년간 뜸을 떠온 동아시아 사람들의 의학 기록 속에 뜸에 대한 어떤 기록이 있을까?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동의보감> 25권 중 침구편(鍼灸篇)이 있다. 365개의 주요 혈자리 중 30군데는 뜸을 뜨면 해롭다. 대개의 경우 얼굴과 머리 또는 피부가 약한 곳, 접히는 부분이나 경계가 되는 부분에는 뜸을 뜨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뜸으로 생긴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아서이다. 뜸은 상처가 없으면 효과가 반감되지만, 또 아물지 않았을 때는 더 크게 조심해야 한다. 당뇨처럼 만성질환자들은 특히 주의해야 한다. <동의보감>에는 상처가 아물지 않을 때 치료하는 방법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머리와 가슴 부위는 양기(陽氣, 따뜻한 기운)이 모이는 곳이므로 뜸을 안뜨는 것이 좋고, 배나 등은 뜸을 떠도 좋다. 음기(陰氣, 차가운 기운)가 부족한 사람인 경우는 팔다리에만 뜨도록 하였다. 음기가 부족한 사람은 물이 부족한 고목나무같은 사람이다. 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뜸을 뜨면 바싹 말라 버릴 수가 있어 증상이 심해진다. 밤 늦게까지 자지 않는 사람들, 정신 노동을 하는 사람들, 가만히 앉아서 눈과 귀를 쓰는 사람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들이 허해지기 쉬운 사람들이다. 도회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다수 현대인들이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특히 평소 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뜸을 뜨면 허한 것은 더욱 허해지고, 막힌 것은 더욱 막히는 상태가 되며, 목과 코가 건조해지고 심하면 출혈이 생길 수 있다.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습 장면. 교수님이 뜸 시술의 방법과 효능효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한의과대학의 경혈학 수업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습 장면. 교수님이 뜸 시술의 방법과 효능효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경혈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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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사제도 일본은 1895년 완전폐지, 중국은 1929년 유지

일본은 일찍부터 서양과 교류를 진행했지만 1854년까지는 쇄국정책을 폈다. 쇄국정책 기간 동안 정부에서 일하던 의사들에게는 서양의학을 연구하고 치료하는 것을 금지해왔는데, 개항 이후 1855년부터 허용하기 시작하였다.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문물에 따라 모든 법령과 제도를 고치면서 점차 서양의학 중심 의료체계가 자리잡게 되었다. 급기야 1883년 발표한 의술개업시험규칙 및 의사면허규칙에 서의학만을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1895년 한의(漢醫)와 관련된 법안이 의회에서 폐기되면서 국가정책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한편 중국에서도 1929년 일본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서양의사가 된 사람들이 일본 제도를 본따서 중의(中醫) 폐지조항을 정부 중앙위생위원회에서 통과시키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때 전국적으로 중의약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고, 1929년 3월 17일 상해에서 전국중의대표자회의를 개최하였다. 이후 제도가 원상복귀되었을 뿐 아니라 중의조례(中醫條例)를 발표하고, 중의국의관(中醫國醫館)을 두게 되었다. 현재 중의사들은 3월 17일을 국의절(國醫節)이라고 하여 기념하고 있다.

일본은 전통의사 없애고 침사·구사·안마사 만들어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조선의 모든 제도는 일본을 따라가게 되었다. 1895년 전통의사제도가 완전 폐지된 일본에서 전통의학은 학문 범주가 아니라 단순 기술로 분류되어 유사의료업이 되었다. 종합적인 학문연구는 하지 않고 침만 놓는 침사, 뜸만 뜨는 구사, 안마만 하는 안마사로 제도를 구분하였다. 1914년 조선에서도 조선총독부령에 의해 안마술, 침술 또는 구술영업취체조례가 발표되어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일본 본토와 달리 식민지였던 조선에서는 이들 기술직 이외에도 의생(醫生)이라고 하여 한의인력을 제도 안에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양의들이 배출된지 몇년 안되어 대부분의 의료제도는 한의 중심이었고, 조선 사람들의 한의에 대한 신뢰도가 무척 높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의학 연구와 교육은 대학교육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아니라 의생이 되었던 것이고, 그 지위나 역할은 침사나 구사와 비슷하였다.

해방 이후 유사의료업 제도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의생제도는 한의사제도로 발전하였다. 특히 1962년 의료법이 새로이 발표되면서 침사 및 구사 등의 유사의료업을 폐지하고 학문적 역량이 강화된 대학교육을 받은 한의사가 그 업무를 맡도록 하였다.

해방 이후 대학에서 한의사 중심으로 전통의학을 계승케 해

1948년 동양대학관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한의사 인력의 대학교육은 1966년에 대학원 석사과정, 1974년에 박사학위과정이 생기면서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경희대학교에 이어 1972년에는 원광대학교가 생겼는데 최초로 한의과대학으로 독립된 운영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대학에서 한의학에 대한 연구과 교육이 본격화될 무렵에 의료법이 개정된 것이다. 정부에서 전통의학 시술인력을 학문으로 인정하고 키워나가겠다는 정책적 판단을 한 것이다. 전통의학 시술인력의 수준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992년까지 11개의 한의과대학이 만들어졌으며, 2007년 부산대학교에 한의학전문대학원까지 두게 되었다.

원광대학교 한방병원은 전주, 광주, 군포 및 익산에 있다. 익산병원은 한의과대학 건물과 같이 있어서 한의학 교육의 중심지이다. 현재 한의과대학 한방병원들은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부속 익산한방병원 원광대학교 한방병원은 전주, 광주, 군포 및 익산에 있다. 익산병원은 한의과대학 건물과 같이 있어서 한의학 교육의 중심지이다. 현재 한의과대학 한방병원들은 전문의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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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효능과 부작용 검증을 위해 현대적인 의료기기 활용 필요

한의과대학에서 배출된 박사들이 한의학 교육을 시작한지 불과 20여 년 밖에 되지 않았다. 유일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이 15년에 불과할 뿐 아니라 예산이 무척 적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한의약에 대한 효능과 부작용 검증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양의학계에서는 왜 치료효능에 대한 데이터를 안가져오냐고 하고, 방송 스타가 된 유사의료업자들과 무면허 시술자들은 침뜸에 부작용이 없이 큰 효과를 낼 수 있는데 한의사들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큰 소리를 친다. 그러나 학문적인 수준에서 치료효과와 부작용 검증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현대적인 의료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하고 있는 것이 현행 의료법이다.

이러한 부조리한 법을 이용하여 한의사들의 연구와 검증을 제한하고서 효능과 부작용을 입증하라고 하는 양의학계나, 아무런 학문적 검증없이 의료행위의 효능을 부풀리는 무면허 시술자들이나, 표를 의식하여 법안 발의를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무엇이 옳고 그른지, 그 동안 우리 정부의 정책 방향과 성과를 거시적인 안목에서 뒤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태그:#한국의학사, #수능, #한약, #뜸,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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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의사학교실 (주)민족의학신문사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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