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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제 직업을 묻기보단, 이름을 묻기보단 “정규직이에요, 비정규직이에요.”라고 묻는다. 못나고, 못 배운 이들만 비정규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정규강사 노동자들은 기본 학력이 석사고, 박사다. 대학을 갓 졸업한 영민한 머리들이 청년인턴이라는 미명하에 비정규직으로 팔린다. 관공서들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공장이 되어 있고,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병원도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공장이 되고 있다.

생존의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우리의 삶을 직시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오마이뉴스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사회운동 네트워크와 공동으로 ‘당신은 정규직인가요?’ 기획 기사를 몇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말]
"구사대와 용역깡패가 몰려나온다. 그 뒤를 경찰이 따른다. 구사대와 용역깡패가 망루를 포위하고 연대해 온 사람들과 분리한다. 그 사이를 경찰이 차단한다. 고립된 조합원과 연대한 사람들을 경찰이 연행하고 그 연행된 사람들은 용역깡패에게 인계된다. 연행이 끝난 다음에 경찰 대신에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죽어라 외치면서 망루를 흔든다."
                                                             - 2008년 10월 20일. 기륭전자 정문 앞 풍경.

"용역깡패와 경찰이 구별되지 않는다. 복장도 방패도 보통 사람은 구별할 수도 없다. 완전한 일체다. 그렇게 물줄기를 뿜고 불을 질러 협박한다. 인화물질이 가득한 곳에서 불장난을 하고 그것을 진압하려는 119대원은 무기력하게 돌아간다. 경찰은 적개심으로 컨테이너를 타고 망루 위를 붕괴시키고 밑에서는 쉼 없이 용역깡패의 불장난 난동이 보장된다. 그러다가 죽은 목숨이 여섯 명이다."                       - 2009년 1월 20일. 용산 참사 현장.

"조합원보다 3-4배의 위력을 자랑하는 구사대 용역깡패의 새총 공격이 멈췄다. 이제 3-5분 후엔 경찰 헬리콥터가 뜬다. 최루액 공격이 이어지고 공중 촬영이 진행된다. 그 사진기에 구사대와 용역깡패는 없다. 몽둥이를 든 자, 마스크를 한 자들이 노골적으로 폭력을 가한다. 이런 폭력에 밀려 경찰에게 구호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경찰은 답은 폭력 연행이다. 연행되는 이는 100% 조합원 아니면 연대하는 사람들 즉 피해자들이다. 가해와 피해가 어느새 전도된다."                                      - 2009년 7월, 8월 평택 쌍용자동차 현장.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를 만끽한 이들은 누구보다 자본이다. 해고의 자유, 노조 탄압의 자유를 막아서는 최소한의 법적 제한이나 노동자들의 단결권은 시장과 경쟁의 이름으로 제거됐다. 자본이 구축한 자유의 공장은 치외법권 지역이 됐다. 정리해고, 비정규직이라는 빈곤과 차별이 주류를 이룬다. 저항에 대한 사회 정치적 연대도 끊긴다.

기륭전자 농성장에 국회의원의 출입이 거부되더니, 순천 하이스코 공장에서는 국회의원, 시장, 그리고 경찰청장의 출입도 거부된다.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공장 안에서 자본은 봉건 영주의 성을 만든 것이다. 인권과 민주주의가 삭제된 그들만의 야만의 자유가 만끽된다.

밟으면 지렁이도 꿈틀한다. 억압이 있는 것에 저항이 있다. 그 꿈틀댐, 그 저항이 싫어 신자유주의는 투쟁하는 대오를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세력으로 매도한다. 저항의 사회적 정당성을 거세한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힘인 집회나 시위는 이제 정치행위가 아니라 사회적 불안을 만드는 범죄 행위가 된다. 이것은 정확하게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돌아 간 것이다.

'용역경찰'의 시대가 열렸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성직자, 시민들이 2일 밤 서울광장에서 열린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뭇 생명들을 위한 위령미사'에서 경찰에 둘러싸인 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시국미사를 드리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성직자, 시민들이 2일 밤 서울광장에서 열린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뭇 생명들을 위한 위령미사'에서 경찰에 둘러싸인 채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시국미사를 드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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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최저 조건에 불과한, 그래서 인권의 최소 조건인 노동법이 무력화되고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해결하는 능력이 사라진다. '94일을 굶어도, 5명이 죽어도, 77일 옥쇄파업을 해도 들은 척도 않는 불통의 나라'가 된다. 돈과 권력의 힘이 아니면 아무것도 해결될 수 없는 불통의 나라 대한민국, 이 대한민국을 물리적으로 버티는 물리력이 바로 검찰과 경찰이다. 자본과 권력에 공권력이 사유화 된다. 드디어 사적 폭력이 공적 폭력을 조정하는 '용역경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한다. 그래도 먼 법이라도 있어 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법을 넘어 주먹이 극단의 자유를 누리는 시대다. 노동자 민중은 해고당하고, 철거당하고, 현대판 노예의 이름인 비정규직으로 내몰린다.

사람들 다수는 이런 체재에 포기 순응하고 말지만, 저항을 하고 법에 호소해보는 용기 있는 이들도 있다. 이들은 법이 마치 노동자 민중의 권익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나 되는 듯이  매달린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 기대를 배반한다. 신자유주의와 형식적 민주주의의 두 번째 수혜자들이 법을 다루는 이들 '경찰, 검찰, 판사'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유와 민주를 배타적 권리로 누리면서 그 칼끝을 저항하는 노동자 민중에 겨눈다. 드디어 법이 주먹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 주먹을 편들며 주먹을 보호하는 흉기가 된다.

이런 돈과 권력에 위한 폭력 흉기의 완성이 경찰의 사제(私製)화다. 이전 시기에 독재정권이 군대를 앞세웠다면 이제 돈에 팔린 경찰이 민중에 대한 몽둥이가 된다. 그래서 그 결과 부자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확연히 구분되고 그 경계를 지키는 용역경비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는 경찰이라는 남미의 풍경이 곧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참을 수 없다. 참아선 안 된다. 가진 자들에게 사유화되어 타락의 극치를 달리는 공권력 안에서 법이 가질 공정성과 보편성은 자취도 없다.

불법파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요구, 살인개발 중단과 진상규명, 정당한 주거권 보장을 바라는 용산 철거민들의 요구, 정리해고를 막고 먹튀자본을 규탄하며 올바른 자동차 정책을 바라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요구는 각기 다르다.

하지만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동일하다. 구사대, 용역, 경찰의 3각 폭력 편대가 그것이다. 이 역사를 막는 바리게이드들 앞에서 모든 희망은, 모든 저항은 물리적 좌절을 겪고 절망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런 통곡과 절망의 벽이 두터워지고 높아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기륭으로 대표되는 비정규직․쌍용․용산 3주체가 지난 10월 20일, 용산 참사가 난지 9개월이 지나는 그날, 그것도 경찰의 날 전날에 폭력 공권력 추방 선언을 했다. 그들은 이렇게 선언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 했지만, 민주도 공화도 사라지고 오직 살인폭력, 파시즘적 폭력만이 난무했다. 기가 막힌 것은 대한민국 경찰이다. 민중의 지팡이라던 경찰이 작년과 올해 보여 준 행위는 일제 강점기 순사의 부활이요, 독재 경찰의 광기의 부활이었다. 국민의 목숨을 지키는 경찰이 아니라, 자본의 하수인이 되어 용역깡패의 방패가 되어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박살내는 흉기가 되었다. 국가 공권력이 사적 자본의 흉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것은 경찰 스스로 민주공화국 법질서를 부정하는 것이며, 가장 파괴적인 인권유린이다. 우리는 용역 경찰로 전락한 경찰이 스스로 수치를 알고 반성을 하길 원했다. 그것이 명예를 아는 행위다. 하지만 기자회견을 해도, 1인 시위를 해도 연행하는 경찰의 만행은 더욱 심해졌을 뿐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경찰이 민주주의를 아는 경찰이 되길 바란다. 이성을 찾고 공권력으로서 제자리를 찾기를 바란다. 그래서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 용산 참사 피해자, 정리해고 당한 쌍용자동차 노동자, 이 3자가 손을 잡고 입을 모아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네트워크와 함께 자본의 하수인 용역깡패, 용역깡패의 하수인 폭력경찰 추방의 날을 선언하는 것이다."

물론 인류의 한 현인은 국가란 지배계급의 물리적 폭력 기관일 뿐이라 갈파한 바 있다. 그것은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모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 관점이 세상의 상식인 한 불가피하다. 우리는 종종 이 변화 거부의 퇴행적 인식에 대하여 '준법과 질서에 순종만 했다면 아직 우리 인류는 노예제로 살고 있을 것이다'라고 항의하지만, 법은 그리고 공권력은 여전히 일부 기득권자들의 무기이다.

질식하는 '사회 정의'

지난해 10월 21일 오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앞에서 철탑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한 뒤 연행하자 이에 항의하던 시민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21일 오후 서울 가산디지털단지 기륭전자앞에서 철탑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을 경찰이 강제진압한 뒤 연행하자 이에 항의하던 시민들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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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한도다. 지금 이명박 정권이 보여주는 공권력의 모습은 최소한의 염치도 포기한 모습이다. 연행을 위해 폭력을 유도하고 죽음 앞에서 더욱 오만해지는 현재 경찰의 모습은 존재 자체가 인권과 민주의 부정이다. 모든 절대 권력은 타락한다. 그 타락의 대표적인 표현은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에 대한 잔혹한 탄압이다. 온정도 연민도 없이 법과 질서라는 동어반복의 괴물을 앞세워 사이코패스의 세상을 만든 것이다. 

연행자를 용역에게 인수하는 기륭에서의 경찰, 죽음 앞에서 더욱 오만한 채 진실을 죽이기 위해 수사기록 3000천 쪽을 은폐하는 용산에서의 경찰과 검찰, 아직도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헬리콥터 수리비를 손배 청구하는 쌍용에서의 경찰은 정도를 잃고 타락의 길로 나선 가장 부정한 공권력의 생생한 모습이다.

이렇게 경찰과 검사와 판사가 사회적 약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차디찬 법률적 서식에만 몰두하는 때 사회적 정의는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런 사회를 역사는 파시즘이라 칭한다. 파시즘은 그것을 악용하는 정치 세력의 통치 이념이다. 그 이념의 주창자들, 사회적 약자의 가난과 차별을 강화해서 가진 자들의 곳간만 채우는 짓을 몰래하는 것도 모자라 경찰까지 동원하여 공공연하게 약탈하는 세력이 바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다. 기륭,쌍용,용산 피학살자 3주체는 이렇게 말한다.
 
"폭력경찰의 배후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공포와 욕망의 정치가 용역 경찰화, 경찰 흉기화의 빽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민생을 말하면서 폭력경찰을 앞세워 가진 자들의 이권만 보장하고 있다. 용산에서 우리는 삼성자본을 본다. 쌍용에서 우리는 초국적 먹튀 자본을 본다. 인간 존재에 대한 부정인 비정규직 노동을 보편화 시키려는 자본의 욕망을 우리는 본다. 욕망을 잡고 사람의 공동체적 삶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민생이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 '살인개발, 살인해고, 비정규문제' 해결 없는 민생 실용은 사기다. '살인개발, 살인해고, 비정규문제' 해결이 바로 민생이다."

우리는 이들의 절규가 우리의 양심을 일으키는 가장 큰 사회적 정의요, 요구가 되길 원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는 비참을 당연히 여기고 더불어 함께 사는 것을 오히려 죄악시 여기는 비정상의 사회가 되고 말 것이다. 아니 이미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많은 사회, 수습사원이 정사원보다 많은 사회가 바로 비정상 사회가 아니고 무엇일까?

생존권을 탄압하는 권력은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 독립선언서의 내용이다. 생존권 탄압을 넘어 생존 자체를 노예 상태로 돌리는 비정규직 문제, 아무 잘못 없이도 사회적 살인은 물론 생물적 살인을 감수하라는 정리해고, 최소한의 주거권을 주장한다고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철거민의 문제는 우리 사회 비참함의 뿌리다. 이 비참함의 뿌리를 자르자는 요구를 총칼로, 그리고 손배 가압류로 압살하는 경찰은 비참함을 만드는 최악의 흉기다. 이 흉기를 제거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민주와 공화는 없다. 자유와 인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빈곤과 차별의 고통 속에서도 공권력이 최소한의 염치를 되찾으라는 요구를 하는 것이다.

"용역경찰이 되지 말고 민주경찰이 되라! 그것이 명예를 아는 행위다."

덧붙이는 글 | 문재훈 기자는 서울남부노동법률상담센터 소장입니다.



태그:#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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