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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를 떠나면서 만나기로 약속한 천주교 신부를 퍼스(Perth)에서 만났다. 이 천주교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호주 원주민 아이들을 위해 기숙사를 타둔(Tardun)이라는 오지에서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원주민 아이를 근처 학교에 보내며 돌보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할 생각으로 퍼스에서 500여 킬로미터 떨어진 타둔에 있는 완달구 기숙사(Wandalgu Hostel)를 향해 떠난다.

 

서부 호주의 황량한 내륙이지만 그런대로 포장은 되어 있다. 가끔 한두 대의 자동차를 만나는 외진 길이다. 지평선만을 보며 운전하기도 하다 가끔 골짜기 사이를 운전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호주 시골길이다. 타둔 근처에 와서는 신부가 그려준 약도를 보며 비포장도로를 따라 완달구 기숙사를 찾는다. 비포장도로 옆으로는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하다. 이렇게 많은 들꽃을 보기는 처음이다.

 

완달구 기숙사에 들어서니 황량한 들판에 단층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70여 명의 원주민 학생이 이곳에 기숙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안내를 받아 기숙사를 비롯해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데 파리가 정신없이 달라붙는다. 손으로 한 번 치면 두세 마리가 잡힐 정도로 파리가 많다. 호주의 파리가 얼마나 유명한지 알만하다. 어수룩해지는 저녁이 되면 야생 캥거루들이 뛰어노는 먼지가 날리는 허허벌판이다. 정말 열악한 환경이다. 우리가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천주교 신부들은 70년 전에 이곳에 들어와 원주민을 위한 기숙사를 짓고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원 봉사자와 월급을 받는 원주민들이 학생들과 함께 숙식을 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독일에서 왔다는 젊은 아가씨 두 명은 학생이 학교에 있을 때는 부엌일을 맡아 하고 저녁에는 원주민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를 하고 있다. 빵을 만드는 사람, 수영장을 돌보는 신부 등 원주민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독일에서 온 신부는 이곳에서 원주민 아이들과 생활한 지 42년째라고 한다. 독일에 있는 천주교와 친구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원주민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를 만들기도 하고 목공예를 가르치며 지내고 있다. 독일에 돌아갈 생각이 없느냐는 나의 질문에 '이곳이 나의 집이다'라는 짤막한 대답으로 나를 쑥스럽게 한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근엄한 신부의 느낌은 전혀 없으며 단지 착한 할아버지의 인상을 풍기는 신부다.

 

기숙사와 옆에 있는 초등학교에 들러 수업하는 것을 둘러보았다. 원주민 학생들만 모여 공부하는 학교다. 교무실과 조그만 교실 몇 개가 전부인 초등학교는 한 반에 학생이 열 명도 안 된다. 선생이 학생들에게 우리가 어느 나라에서 온 것 같으냐는 질문에 중국이 제일 먼저 나오고 그 다음이 일본이다.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 한국을 알지 못해도 천진스럽고 솔직한 아이들의 모습은 항상 보기에 좋다. 

 

자신을 요구하는 곳에 찾아와 원주민 아이들과 함께 전 삶을 내던지며 봉사하고 있다. 모든 종교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사랑, 자비를 외진 곳에서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다음날 아침 들꽃 구경을 나선다. 이곳의 야생화는 유명하기 때문에 심지어는 유럽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 한다. 작은 언덕이 온통 꽃으로 뒤덮여 있다. 우리를 안내해준 사람 덕분에 흔히 보기 어렵다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생각하게 하는 화관꽃(Wreath Flower)도 구경하는 행운도 얻었다. 하나하나 보면 이름 모를 잡초에 지나지 않는 꽃이 모여 외국의 관광객까지도 부르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꽃, 이름 없는 꽃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그 어느 곳에도 예속되지 않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꽃이기에 이토록 아름다운지 모르겠다.    

 


태그:#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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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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