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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부터 폐지수거를 하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분주합니다.
▲ 폐지수거 이른 새벽부터 폐지수거를 하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분주합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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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시험을 보기 위해 나서는 딸을 데려다 주려고 차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입시한파 같은 것은 없었지만, 이른 아침이라 제법 날씨가 쌀쌀했습니다.

대략 5분여의 시간, 창문을 통해서 폐지수집을 하는 분들의 리어카가 분주하게 지나갑니다. 이 할머니는 그날 아침 세 번째 만난 폐지수집상 할머니입니다. 폐지수집을 하려면 누구보다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운도 좋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다 보면 빈리어카로 발바닥 불이 나게 걸어다닐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커다란 대형마트나 폐지가 많이 나오는 곳은 암암리에 맡아서 처리하는 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폐지를 독점하는 대신 주변 청소를 한다든지, 다른 쓰레기들을 치워주는 뭐 그런 정도의 조건이겠지요.

이런 생존경쟁 속에서 할머니들은 힘이 약하다고 밀리기 마련입니다. 보시다시피 할머니가 끌고 가는 리어카는 일반 리어카보다 작습니다.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만약에 저 나이가 되어서 저런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 아이들이 저 나이가 되어 저렇게 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그런 생각들이 복잡하게 머리를 스칩니다.

수능시험, 점수로 아이들을 서열화시키고 교묘하게 선택하는 것처럼 위장된 선택되어지는 존재, 선택되지 않으면 낙오자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 시대가 두렵습니다. 나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되어졌으며, 언제든지 선택자에 의해 버려질 수 있으며, 그가 나를 내치고자 할 때에 내쳐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서 자유로운 이들이 얼마나 될까요.

마음이 춥습니다.

그 할머니의 분주한 걸음걸이는 며칠 내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내가 그 분에게 무슨 죄를 짓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묵국물이 그립습니다.
▲ 꼬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어묵국물이 그립습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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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기승을 부릴수록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국물이 그리워집니다.

어묵꼬치에 국물 한 잔이면 움추러들었던 몸이 뜨거워지듯, 잔뜩 움추러든 우리의 마음을 풀어줄 그런 국물은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뭐 사랑이니 나눔이니 이런 추상적인 말들 말고, 그냥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화해지는 그런 일들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더 추워집니다.

친구 중 하나는 겨울,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10원에 홍합 한 그릇을 팔던 시절 10원이 없어 입맛만 다시며 종종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아픈 추억 때문에 가끔 시장에 가면 홍합을 잔뜩 사와서 배 터지게 먹는다고 합니다. 내게도 그런 음식들이 몇 가지 있고, 어묵이 그 중 하나입니다.

일명 '덴뿌라'라고 불리던 '어묵'이 도시락반찬으로 등장을 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나중에 그것이 그리 비싸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어머니를 졸라 기어이 그것을 사서 날로 먹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요.

그런데 이젠 그런 것쯤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사먹을 수 있는 시절을 살고, 더는 먹고 싶어서 안달하지 않는 정도의 삶을 살면서도 때론 포장마차 같은 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보면 마음이 헛헛합니다.

속 풀어 줄 따스한 국물 한 잔 먹지 못하는 사람이 여전히 우리 곁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뿐이지만, 저런 할머니들에게 새벽을 열어가는 사람들에게 따스한 국물 한 잔 대접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아니, 추운 겨울이 가기 전에 이른 새벽 아내와 함께 무와 멸치를 듬뿍 넣고 어묵국물을 잘 우려내서 우리 집 앞을 지나가는 분들에게 따스한 국물 한 번 대접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꼭 이 곳에 올리겠습니다.

우리 주변에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시대만 탓하다가는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을 해주지도 못하고 입만 나불거리는 못난 삶을 살아갈 것 같습니다.

속 풀어줄 따스한 국물 한 잔이 그리운 날입니다.

머지않아 이른 새벽 따스한 어묵 국물을 내서 집앞을 지나가는 폐지수집상들에게 따스한 국물이라도 한 잔씩 대접해야겠습니다.


태그:#폐지수집상, #어묵, #덴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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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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