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7~9월 사이 경북 영천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과 전선 접경지역 주민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과 군인에 의해 집단 희생된 사실이 밝혀졌다. 다른 지역과 달리 장기간에 걸쳐 여러 차례 학살되었으며, 탈영병과 같은 성씨라며 살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아래 진실화해위)는 '경북 영천 국민보도연맹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영천 사건은 1950년 7월부터 9월까지 경북 영천지역 국민보도연맹원들과 전선 접경지역 주민들이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영천경찰서 경찰과 영천지역 주둔 군(軍)에 의해 집단 희생된 사건을 말한다.

영천지역은 앞서 1946년 발생한 '10월사건'의 여파와 한국전쟁 당시 대구와 부산을 잇는 요충지로 국군과 인민군간의 전투가 격렬하게 벌어진 지역이라는 점이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다른 지역과 달리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보도연맹원에 대한 연행과 구금, 학살이 이루어졌다.

'10월사건'은 당시 미군정이 친일관리를 계속 고용하고 토지개혁을 지연하며 식량공출을 강압적으로 시행하는 것 등에 불만을 가진 민간인들과 좌익세력이 경찰과 행정당국에 맞선 사건을 말하는데, 1946년 10월 1일~2일 사이 대구에서 주민 봉기의 형태로 발생해 1946년 12월 중순까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경북에서 영천은 봉기가 가장 격렬했던 곳 중 하나다.

진실화해위는 1950년 7월 초순부터 9월 중순 사이 영천지역 보도연맹원들과 임고면, 자양면 등 격전지역 주민들은 세 차례에 걸쳐 임고면 아작골(절골), 자양면 벌바위와 대창면 용전리(어방리) 개망골, 고경면 내 산골짜기 등지에서 집단 희생된 것으로 밝혀냈다.

1950년 7월 경찰에 연행되거나 소집통보를 받고 출두한 보도연맹원들은 영천경찰서와 각 지서에 구금되었다가 이중 일부가 1차로 학살되었다. 북안면 도유리 뒷산에서 11명, 고경면 도암리 산골짜기에서 최소 14명 이상이 희생됐다.

2차로 낙동강 전선이 형성되던 8월 초 영천경찰서에 구금됐던 보도연맹원들과 경찰에 의해 소개된 전선 접경지역 주민 380여 명이 집단 학살됐다. 임고면 아작골(절골)에서 150여 명, 자양면 벌바위에서 100여 명이 희생되는 등 대부분의 사건이 이 시기에 발생했다.

또 영천ㆍ신녕전투가 벌어지던 1950년 9월 초순에는 영천경찰서에 장기 구금되어 있던 보도연맹원과 일부 피난민 등 170여 명이 전선 후방인 고경면, 대창면, 북안면 산골짜기에서 3차로 학살됐다.

"희생자들을 가족 단위로 묶어 칼로 난자한 뒤 총살"

진실화해위는 "경찰과 국군은 희생자들을 절벽위로 끌고 간 후, 총을 쏴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는가 하면, 손이 묶인 상태로 골짜기를 기어 올라가게 한 다음 등 뒤에서 총을 쏴 사살하기도 했다"며 "특히 화산면 당지리에서는 어린이와 임산부를 포함한 희생자들을 가족 단위로 나무에 묶어 칼로 난자한 뒤 총살했다"고 밝혔다.

희생자 중에는 보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민간인들도 상당수 포함됐으며, 화산면 당지동(현 화산면 당지리), 금호면 도남동(현 영천시 도남동), 화북면 구전동(현 화남면 구전리)처럼 가족ㆍ친족 또는 마을 단위로 살해된 경우도 있었다.

또 1950년 9월 초순 화산면 당지리에서는 정△△이 탈영하자, 탈영병을 찾으러온 국군이 정씨와 그 가족 6명을 살해한 뒤, 같은 정씨라는 이유로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집단 학살했다는 것.

희생자 정○○의 동생은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단지 탈영병과 같은 정씨라는 이유로 형과 마을 형님들이 잡혀갔다. 형님들은 잡혀간 당일 고문을 받다가 양지골 밤나무에 묶여 칼로 난자당한 채 총살됐다"라고 진술했다는 것.

진실화해위는 "희생자의 유족들은 사건 발생 후 60년 가까이 '레드 콤플렉스'에 의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으며, 가장이 사망함에 따라 가족이 해체되거나 연좌제에 의해 취업이 제한되는 등 심각한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며 "국가에 대해 공식사과와 아울러 위령·추모사업의 지원, 유가족 생활 지원, 군인과 경찰을 대상으로 한 평화인권교육 실시 등을 권고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