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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만남은 약속으로 만나지는 만남과 우연으로 만나지는 만남이 있다. 그러나 약속으로 만나지는 만남보다 우연한 장소에서 만나지는 갑작스런 만남이, 항상 예정되었던 만남보다 왠지 운명적인 만남의 필연성을 찾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겠다.
 
생활 속의 예술가, 시사 만화가 안기태
 
지난 12일 우연히 서면 부전 시장 맞은편 한 허름한 식당에서 만화가 안기태 선생을 만났다. 그리고 부산공무원 문인들과 연극배우 정행심, 61극단 대표 최인호 선생, 전 레퍼터리 극단 대표이자 시조시인 장세종 선생, 정애자 사진작가, 그랜드 자연병원 박정식 의사 분 등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많은 사람들을 한 장소에서 만났다. 그런데 알고보니 익명의 미팅을 청하는 문자 메시지에 모두들, 모임의 성격을 알지 못한 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만남의 계기는 이렇듯 미미한데, 만나서 돌아갈 때는 모두들 즐겁고 화기애애한 얼굴이었다. 사실 익명의 미팅을 청한 문자 메시지 발신인은 식당 주인이자 문학 지망생으로 평소 찾아 준 예술인들과 지인들을 위해 식당을 그만두면서 무료 식사와 술을 대접키 위한 초대였다. 그런데 여기에 안기태 만화가 선생이 식당 집 하얀 접시에 한장 한장 싸인해 그려주는 멋진 '그림 접시'를 얻어서 돌아갈 수 있어서, 모두들 행운 당첨권을 받은 것처럼, 즐겁기 그지 없는 표정들이었다.
 
이 접시 그림을 그려달라고 누가 먼저 발상을 해 낸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날 식당 접시는 모두 안기태 선생의 작품의 재료가 되었다. 모두들 그림 접시를 얻는 바람에 나도 빠질 수 없어서, 식당 주인(문학지망생)에게 접시 한개 부탁했더니 웃으면서, 그림 값은 없어도 접시값은 달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식당 접시는 동이 났다. 나중에는 식당에 쓰는 플라스틱 물컵에다 안기태 선생은 컷을 그리고 싸인을 해서 나누어 주었다. 갑작스런 지청구에 의해 접시 그림을 마냥 그려내는 안기태 선생은 그러나 그의 만화 캐릭터 표정처럼 그저 싱글벙글 행복에 겨운 듯 내게 보였다. 정말 놀라운 솜씨였다. 즉석에서 선물을 받는 사람들의 표정과 분위기에 맞게 하나 하나 다른 그림을  창작해내는 안기태 선생의 능력과 안기태 선생의 만화에의 인기도를 실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만화의 시'라는 카툰으로 이웃들에게 웃음을 선물하다...안기태 만화가
 

시사만화가 안기태 선생은 네칸 짜리 시사만화로 부산의 일간신문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분. 그가 30여 년 연재한 네 칸 만화는, 대중의 뇌리에 깊이 각인 되어 있다 하겠다. 안기태 만화의 시선은 항상 우리 민중을 향해 있었다. 평생을 함께 해 온 네칸 짜리 시사만화. 그가 다룬 작품의 소재들은 하나 같이 따뜻하고 인간미 넘치지만, 그 온화한 만화 캐릭터 속에 숨은 칼날이 하나 있어, 우리 이웃들의 아픈 상처를 달래주고 때론 후벼 파기도 했었다.  

안기태 만화가는 이제 신문사를 정년퇴직하였으나, 여전히 바쁘다고 얘기한다. 여기 저기 들어오는 잡지 청탁에 응해야 하고 대학 강의로 틈이 없는데, 평생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또 요즘에는 카툰에 몰입하여 작품 생산에 여력이 없다고 한다.
 
이런 그는 부산시 문화상, 봉생 문화상 등 많은 상을 타기도 했다. 그는 시사만화가 무엇인가 묻는 짧은 질문에 네칸 만화처럼 짧게 말했다. "시사만화는 네칸 짜리 세상, 7초의 미학 예술이다"고…

 

# 생활 속의 예술향기로 공직자 자세 성찰 계기 삼아
 

갑작스러운 만남의 자리인데 예정된 문학 행사처럼 안기태 만화가의 그림 접시를 하나씩 선물로 받은 사람들은 즐거운 기분으로 스스로 자리에 일어나서 시를 낭송했다. 그리고 공무원 문인회 총무를 맡은 박상식 문인의 사회로, 분위기는 점점 가을 시낭송회밤처럼 낭만적인 자리로 바뀌어 갔다.
 
부산 공무원 문인회의 결성은, 때로는 공직자이기 때문에, 종종 억울한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는 수모도 참아내야 하고, 국민의 손과 발이 되어서 일하겠다는 각오에 얘기하기 힘든 공직자로서의 바쁜 업무 속에서 살다보니, 정서와 삶의 윤기가 메말라가는 듯 해서, 부산 지역의 공무원들이 모여 만든 모임으로, 05년도에 발족되어, 그간 '나루터'란 동인지를 여러차례 발간하기도 했다.
 
부산공무원 문인회 총무 역할을 맡은 박상식(서구청) 회원은, 07년도 공무원 문예 대전(소설분야)에서 입상한 바 있다. 그는 이 모임을 통해 잠자고 있는 상상력을 깨우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활발한 작품 생산을 통해 작품 생산 의욕을 얻고 있고, 회원들이 낸 결과물로 정기적으로 만나 창작품에 대한 청람을 갖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고, 유명 문인 및 고명한 인사들을 초빙해 더욱 활발한 창작품을 생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공무원 문인회 회원들은, 이 모임을 통해 청렴결백한 공직자로 자세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이 모임 회원의 자격은, 부산시 공무원이면 누구나 가능하고,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한다. 벌써 30여명 가까운 분들이 등단을 했다고 웃으며 모임의 성과에 대해 얘기했다.
 

 
또 나무를 센다
처음에는 눈으로 세어 간다
더욱 올곧게 자라라고
바를 정(正)를 친다
 
밑둥치에서 가지 끝가지
나무의 표정을 살핀다
나무가 간지럼을 탈 정도로
줄기를 쓰다듬어준다
따뜻한 수액이 손금에 베인다
 
나무가 살아가는 보람은
사람이 자주 쳐다보아 주는 일
나무의 눈과 사람의 눈이 마주 칠 때
잎이 돋아나고 꽃망울이 터진다
 
나무를 세다보면
바람도 가뭄도 두렵지 않은
뿌리내린 나무의 환희를 함께하고
아직 흙내를 맡지 못해 땅과 씨름하는
나무의 고통이 내것임을 안다
때로는 쓰러진 나무의 안타까움에
내 몸도 아프다
 
언제 이 나무 세는 일을 멈추게 될가
오늘도 내 옆에서, 내 위에서
함께 길을 가는 나무
<나무와 함께>-김태수(중구청 근무)
 

이날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시립극단 정행심 배우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부르는 박목월 작시 김성태 작곡의 <이별의 노래> 시간이었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모두들 초등학생처럼 즐겁게 합창했다. 이에 그랜드 자연 병원 박정식 의사는 평소 노인요양환자들을 위해 매월 음악회를 열기도 하는데, 이런 문화예술인의 소박한 예술의 자리를, 노인요양병원 환자들을 위해 주선했으면 하는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정말 예술은 예술작품을 통해서도 만나지지만, 예술가가 모인 자리라면, 어느 곳에도 예술의 향기가 피어 올라 그 일상이 예술처럼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모처럼 유익한 삶과 예술이 함께 만난,… 그 가을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별의 노래> 중-'박목월'


태그:#안기태, #만화가, #부산공무원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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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곧 인간이다고 한다. 지식은 곧 마음이라고 한다. 인간의 모두는 이러한 마음에 따라 그 지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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