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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얏꽃 문양에 담긴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

창덕궁(昌德宮)의 법전인 인정전(仁政殿)과 그 전문인 인정문(仁政門)의 용마루에는 이상한 문양의 조각물이 달려 있음을 볼 수 있다. 오얏꽃-이화(李花) 문양이라 한다. 이 문양은 희정당(熙政堂)으로 들어가는 현관이라든지 경운궁(慶運宮, 덕수궁)의 석조전(石造殿)이나 덕홍전(德弘殿)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한제국이 성립되고 그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여러 상징물들이 만들어지는데, 이화대훈장(李花大勳章) 또한 그러하다. 오얏꽃은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왜 이런 문양들이 인정전, 인정문 등 극히 일부의 건물에서만 보이는 것일까? 용마루에 이와 같은 문양의 장식을 단 경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조각에 혐의를 둘 수밖에 없다. 고종이 1907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순종이 원치 않는 황제의 위에 올랐다. 그리고 일본은 이들을 격리시켜 순종은 창덕궁에, 고종은 경운궁에 머물게 했다.

인정전은 이후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불법으로 강점하는 쓰라린 기억의 장소가 되었다. 1917년에는 희정당, 대조전 등 내전의 건물 대부분이 불에 타 경복궁의 강녕전, 교태전 등을 헐어다 옮겨지었다. 이러한 여러 정황들로 미루어볼 때 오얏꽃 문양 조각은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여 달린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왜 이런 조각이 달렸을까? 일본의 불순한 의도가 개입되었을 것임은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 의도는 대한제국(大韓帝國), 조선(朝鮮)이라는 국호의 참뜻을 왜곡하고 뒤틀리게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오얏꽃 문양 하나에서도 우리는 왜곡과 오욕으로 점철된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을 찾아볼 수 있다.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인정문 용마루에 달린 오얏꽃 문양이다. 이것은 인정전 용마루에도 달려 있다. 이 조각이 용마루에 달린 것은 일본의 불순한 의도 때문이었으며, 이는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이다.
▲ 인정문 용마루의 오얏꽃 문양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것이 인정문 용마루에 달린 오얏꽃 문양이다. 이것은 인정전 용마루에도 달려 있다. 이 조각이 용마루에 달린 것은 일본의 불순한 의도 때문이었으며, 이는 우리 역사의 아픈 단면이다.
ⓒ 강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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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계열의 무식함

최근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역사인식이 매우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음이 지적되고 있다. 그들의 역사인식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끌어안고 있다는 것이며, 경제 논리를 그 이론적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계열이 대한민국의 건국에 누구보다 앞장서고 있다는(?) 것, 이승만과 박정희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뉴라이트 계열의 연구 성과 자체를 모두 무위로 되돌릴 수는 없다. 분명히 앞으로의 우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도 있고, 한 인물에 대한 공과의 엄정한 평가가 있어야 함도 염두에 두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럼에도 뉴라이트 계열의 연구 성과가 지니는 문제점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무식함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에 관해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매우 많겠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두 가지만 생각해보자.

우선 대한민국 건국의 정통성 문제이다. 그들이 정말 대한민국의 건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대한제국,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대한민국으로 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어야 한다. 그런데 '식민지 근대화론'을 수용하여 일제 강점기를 긍정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법통을 잇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대한민국의 건국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거기에 선봉장임을 자처하는 뉴라이트 계열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공개 부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일본이 들어와서 우리가 근대화가 되었고, 그들이 남긴 산업화의 유산이 오늘의 경제 발전을 일으키게 했다고 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경제 분야의 발전이 근대화가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근대화가 되었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강도가 들어와 주인의 집을 빼앗고, 그 집주인을 하인으로 만든 다음 그들의 고혈을 짜내 집을 새로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그 하인들에게는 이전보다 더 나은 세상일까? 더구나 하인들(집을 빼앗긴 이들)의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누나, 여동생, 딸, 어머니가 갖은 수단으로 납치되거나 끌려가 지속적, 집단적으로 성폭행(강간)과 성추행을 당하고, 하인들의 형, 남동생, 아들, 아버지 또한 강도에 의해 강제로 광산이나 공장으로 끌려가 노예처럼 일만 하다가 그렇게 세상을 등지는 경우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모든 국민들이 이와 같은 경험을 겪었다면 과연 이것은 근대화된 세상일까? 지옥과 같은 세상이 아니고 무엇인가?

일본이 이와 같은 짓을 저질렀는데, 그러고도 일본의 극우 지도자들은 "우리는 이와 같은 짓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 때문에 한국이 발전하지 않았느냐?" 하는 뻔뻔한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을 근대화된 세상이라고 떠드는 뉴라이트 계열이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구한말'? '대한제국'!

일본은 대한제국을 불법으로 강점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이런 정당하지 못하고 불법적이며 불합리한 면을 의도적으로 희석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대한제국의 역사와 문화를 왜곡하고, 황실 인물들에 대한 철저한 이미지 조작을 시도했으며, 관련 공간들에 대한 파괴와 변형 등을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궁궐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은 역으로 대한제국의 발전상이 생각보다 매우 놀라운 측면을 보였으며, 오랫동안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꿈꿔왔던 일본이 그들의 야욕이 좌절될까봐 조직적인 '대한제국 흔들기'로 결국 대한제국을 불법으로 강점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실제로 학자들의 활발한 연구로 이런 면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물론 고종 정권에 망국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대한제국의 역사를 단순한 '망국의 역사'로 치부하고 이들에게만 망국의 책임을 물어 돌을 던지는 우리들의 모습은 반성하고 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침략자인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 올바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대한'은 '삼한을 하나로 통합한 큰 한'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갑자기 나온 것이라 보기 어렵다. 고종은 각계각층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제국을 세우고 황제로 즉위했는데, 이 과정에서 '대한'이라는 국호가 탄생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국호에는 흩어진 국론을 모으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염원이 담겨 있다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구한말'(舊韓末)이라는 용어를 쓴다. 물론 대한민국임시정부나 대한민국에 대하여 '옛 한국'이라는 이름의 '구한말'로 쓰는 것이 그리 이상할 리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에는 대한제국을 한 나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대한제국은 비록 실패한 역사의 길을 걸었을지언정 엄연한 제국이었다. 궁예(弓裔)의 태봉(泰封), 견훤(甄萱 ; 진훤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의 (후)백제(百濟) 또한 짧은, 또 실패한 역사라 할지라도 우리는 신라와 함께 '후삼국'을 이루었다 하여 당당하게 한 나라로 인정하였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대한제국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제국의 멸망은 자연스러운 멸망이라기보다는 일본의 불법 강점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깔려 있다. 그런 대한제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통성은 어디서 찾을 것이며, 일제 강점기는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3·1운동과 6·10 만세운동이 고종과 순종의 승하가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상기해본다면, 이제 우리는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찾아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조선'은 우리 조상들의 당당한 국호였다.

요즘도 흔히 '조선'을 '이조'(李朝)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흔히 '이조'를 '이씨 조선'의 준말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의 '조'는 '왕조'를 가리키기 때문에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고려를 '왕씨 고려', 신라를 '박씨 신라''석씨 신라''김씨 신라'라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 용어에는 아주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다. 일본은 대한제국을 불법으로 강점한 뒤 다시 조선이라는 이름을 쓰게 하였다. 그러나 이때의 조선은 식민지 조선이었다. 또한 '이조'라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쓰게 했는데 이것은 일본 천황 밑의 한 귀족 가문과 같은 존재로 격하시키기 위해 쓴 것이었다. 궁궐 건물 여러 곳에서 보이는 오얏꽃 문양은 그런 의도가 담긴, 씁쓸한 조각물들이다.

흔히 '조선'이라는 국호를 명나라의 승인을 받은 것을 문제 삼아 사대주의의 전형으로 몰고 가는 이도 있다. 그런 면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해도 이는 사대의 참뜻을 모르는 무식한 발언이다. 조선이라는 국호에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영광을 계승한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으며, 민족의식을 한 단계 심화시키는 당당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이야기해도 '조선은 사대주의에 빠져 주체성도 없는 약해빠진 나라였다'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인용문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점을 던져준다.

사대주의의 참뜻을 아무리 강조해도 조선의 주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름지기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한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럽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며,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이하 생략)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2, 솔, 2006, 207쪽.)

♧ 참 고 문 헌 ♧

신주백, '교과서포럼의 역사인식 비판', <역사비평> 제76호, 역사비평사, 2006년 가을.
오주석,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솔, 2006.
이기백, '독자에게 드리는 글', <한국사시민강좌> 제19집, 일조각, 1996.
이성무, <조선왕조사>2, 동방미디어, 1998.
이태진, '스위퍼였나? - 5개 연구 과제로 보낸 40년', <세계 속의 한국사>, 태학사, 2009.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역사> (전면개정판), 경세원, 2003.
홍순민, <우리 궁궐 이야기>, 청년사, 1999.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11월 5일 창덕궁을 자유관람한 뒤 인정문과 인정전의 용마루, 그리고 희정당 현관에 달린 오얏꽃 문양에 담긴 아픈 역사에 관해 여러 기본적인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하여 저의 생각을 담아 나름대로 새로 정리한 글입니다. 본문 사진 속의 사진도 이날 촬영한 것인데 폰카로 찍은 것임을 양해바랍니다.



태그:#오얏꽃문양, #대한제국,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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