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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방송된 KBS <환경스페셜-야생동물 vs 인간> 중 한 장면.
 2007년 1월 방송된 KBS <환경스페셜-야생동물 vs 인간> 중 한 장면.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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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죠스>는 매우 매력적인 영화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미지의 바다 속에 살고 있는 공포의 식인상어와의 한판 승부. 그러나 영화의 성공 이면에는 '상어'라는 동물에 대한 과장된 공포와 무분별한 포획·사냥이라는 씁쓸한 후문이 남았다. 실제로 상어는 무척 섬세하고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며 극한의 상황이 아닌 이상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상어보호협회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던 스필버그와 원작자 피터 벤츨러는 상어보호협회에 상당한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가 준 영향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지난여름, '식인동물'을 소재로 한 영화가 대한민국에 등장했다. 그 상대는 멧돼지. 물론 지금이 멧돼지들이 수난을 당하는 시기임은 분명하다. 환경부는 최근 '도심 출현 야생 멧돼지 관리대책'을 발표했다. 전국 19개 시·군의 수렵장에서 총기 등을 활용해 포획할 수 있는 멧돼지의 개체 수는 당초 계획한 8063마리에서 2만 마리로 늘어나며 엽사 1인당 포획할 수 있는 멧돼지도 3마리에서 6마리로 늘어났다.

농촌지역에 출몰하여 피해를 주는 멧돼지들은 물론이거니와 멧돼지들이 주로 도심에 등장하는 시기가 되면, 정부는 말할 것도 없이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호들갑에 가까울 정도다. 그리고 그 공포는 '퇴출', '전면전', '소탕' 등의 단어와 함께 등장한다. 멧돼지를 잡는 소방관들의 활약은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희귀동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멧돼지의 죽음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더욱 당당하다. 2005년 서울 시내로 진입했다가 한강에서 익사된 멧돼지를 포획할 당시 "꼭 그렇게 잔인하게 죽였어야 했냐"는 문제제기에 "귀한 동물도 아닌데 살려줄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정책, 과연 합리적인가?

물론 도심에 갑자기 등장한 200kg의 거구 멧돼지는 공포를 넘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멧돼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과 방법 역시 무섭다. 멧돼지의 개체수가 불어나고 도심까지 밀고 들어오는 근본적인 원인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원인에 대한 반성은 전무하다. 급박하게 골칫덩이 동물을 소탕해주는 엽사들이 보호라는 단어를 단체명에 붙인 채 등장해 동물전문가임을 자처한다.

개체수가 불어나 이를 조절해야 한다면 그 전문가들에는 해당동물을 잡는 전문가뿐 아니라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하는 의무에 대해 발언하는 전문가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관리대책회의에 정부가 참여시켰다는 동물전문가는 동물수렵전문가일 뿐 동물복지전문가가 아니다. 인도적인 개체수 조절에 대한 담론 없이 일방적으로 공포의 존재를 괴물처럼 설정해 놓고 퇴치의 극적 드라마를 써 내려가는 것, 이쯤 되면 인간이 공포 그 자체다.

게다가 이번 결정은 2006년 초 환경부의 야생멧돼지 특별관리 추진계획과는 다르다. 당시 환경부는 2년간의 조사를 통해 수도권 지역에 전국 평균 2배 높게 서식하고 있다는 발표를 한 바 있다. 당시 조사의 정확성에도 의문이 제기됐었다. 실제 조사지역 중엔 수렵문화 확산이 주요 목적인 수렵단체 관계자들을 견제해야 할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빠진 가운데 이루어진 곳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한겨레> 2006년 4월 27일자 기사).

개체수 조사에 따른 정책결정에도 의문이 제기될 정도인데 이번 결정은 개체수 조사결과에 따른 것도 아니다. 환경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정책의 결정은 멧돼지의 잦은 도심출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기준이 올해 들어 "멧돼지가 25차례 출몰"했고 이것은 그간 10여 차례 출몰한 것에 비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만여 마리 소탕작전은 이렇게 결정되었다.

사냥은 문제 해결의 궁극적 방법이 아니다

식인멧돼지를 소재로 만든 영화 <차우>의 한 장면.
 식인멧돼지를 소재로 만든 영화 <차우>의 한 장면.
ⓒ 영화사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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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합리적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사냥이 효과가 있을까. 포획허가가 매년 늘고 있지만 사실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호랑이·늑대가 사라진 숲에서 멧돼지는 생태계의 최상층을 점거했다. 60년대 이후 산림녹화사업으로 숲엔 소나무 등만이 늘어나 수종이 단순화 되었고 최근 들어 생태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밤, 잣, 감나무 등을 무분별하게 심어 야생동물들의 표적이 되었다. 야생동물들은 개발로 인해 서식지가 줄어들자 특정지역에 몰려들고 있고 먹이가 부족해지면 농가로 내려갈 수밖에 없다(KBS <환경스페셜> 2007년1월 17일자 방송). 근원을 따지고 올라가보니 인간이 있다. 그러나 근원적인 반성은 없고 사냥에 열을 올린 주장이 난무한다. 다음은 엽사들의 전형적인 주장이다.

"산 속에 멧돼지가 꽉 차 있어서다. 아니, 넘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10년 전 만 해도 멧돼지가 겨울철이든, 번식기든 도시로 나온 예가 전혀 없었다… (중략) 그러나 지금은 국토 개발과 밀렵억제 등의 이유로 사정이 많이 달라져 개체수가 10년 전보다는 아마 20배 가량 늘어났을 것으로 본다." - '미안하다 멧돼지들 2만마리는 죽겠구나' <오마이뉴스> 11월 11일자 기사

그들은 개체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적정 개체수는 서식밀도만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들이 고려돼야 하는 어려운 개념이다. 환경전문가들조차 지역의 특정 종의 적정 개체수는 누구도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또 멧돼지의 도심출몰과의 연관성은 더 정교하고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된 글의 논지를 따라가면 온 산은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평균수명 15년~20년인 멧돼지 한 마리가 매년 여섯 마리 정도의 새끼를 낳으니까, 대략 자기 생애에 5~6만(후손들을 모두 합했을 경우)의 가족을 거느린다고 보면 된다. 이로 볼 때 포식자가 없는 세상에서 무한 번식이 가능한 동물이 멧돼지라고 할 수 있다."

인간 역시 가임기간이 있고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생리가 시작된 시점부터 폐경 때까지 모두 임신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인간이 모두 그 시기에 출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멧돼지 역시 환경적 측면이나 개체의 건강상태에 따라 출산한다. 모든 동물은 환경에 따라 어느 정도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한다. 생태계의 균형이 깨진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한 개체의 동물이 무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연의 균형을 매우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게다가 이 기사는 "우리나라는 수렵보다 유해조수구제라는 임기응변식 처방을 선호해 결국 야생동물 개체수 조절 실패를 자초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매우 놀라운 주장이다. 인간에게 피해를 줄 때만 포획하면 임기응변이니 씨를 말리자는 것인가?

그간 수렵장 운영으로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사냥개 때문에 기르던 염소가 물려 죽거나(<부산일보> 2006년 1월 20일자) 수렵장이 개장된 전국 15개 시·군 수렵장 지역 주민이 엽사들의 무분별한 총질에 반발하며 "사람만 잡는 수렵장"이란 비판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기도 했다(<세계일보> 2005년 12월 11자 기사). 사냥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는 엽사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인도적인 방식도 있다, 왜 논의하지 않는가?

12마리의 멧돼지 무리.
 12마리의 멧돼지 무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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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인도적인 방식을 시도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사냥보다는 최대한 쫒아내기를 권유하는 방식을 취했던 무주군은 2005년 우리나라 최초로 야생동물피해조례안을 제정해 피해액의 70%를 보상하고 있다고 한다. 차양과 그물도 가뿐이 넘어 다니는 녀석들을 막기 위해 최근 전기펜스가 등장했다. 사냥을 통한 전쟁이 아니라 공존을 위한 방식을 고안하고자 함이다.

프랑스 사례도 있다. 전통적으로 산에 방목하던 양떼를 공격하기 시작한 늑대. 국제적인 보호동물이라 함부로 사냥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양치기들의 고민을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이에 프랑스 정부는 피해를 입은 목장엔 양 한 마리당 9만 유로의 보상금을 줬고, 그 후엔 방목장 주변에 특수견을 배치했다.

물론 프랑스도 사냥을 허가했다. 하지만 2006년 단 두 마리의 늑대만이 죽었다. 늑대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하는 과학적 접근을 통해 엄격하게 관리함으로써 무분별한 사냥을 방지한 것이다. 전통적인 완전방목을 포기하고 밤이 되면 양들은 전기울타리 안으로 들어간다. 산 중턱에 양치기들이 머물 곳도 마련했다. 사람냄새를 싫어하는 늑대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KBS <환경스페셜> 2007년 1월 24일 방송).

환경부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와 주관적인 판단에 의해 정책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또 개체수 조절에 대한 인도적인 방식이 어떻게 가능한지 사전에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 시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는, 정부 주도의 효율적 관리방식을 우선적으로 채택하려는 관행이 지속된다면 향후 멧돼지 문제 하나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시민사회의 성숙도와 연관된 문제다.


태그:#멧돼지, #유해야생동물, #사냥, #동물보호, #인도적 개체수 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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