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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도 못한 채 6·25 때 전사한 아버지와 재혼한 어머니 때문에 조부모 밑에서 부모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란 김명순씨. 결혼을 하게 되면서 가족관계등록부상 자신의 부모가 생부모가 아닌 조부모란 사실을 알게 되었고, 환갑에 가까운 나이지만 이제는 서류상으로라도 자신의 생부모를 찾고 싶어 하는데…

 

 

할아버지가 아버지? 생부모에 대한 그리움 커져

 

"법무사님. 지금 와서 서류상으로 생부모를 찾는다고 뭐가 달라지냐고들 하지만, 그래도 저는 꼭 제 부모를 찾고 싶습니다."

 

법무현장에서 가사 사건을 처리하다 보면, 인간에게 있어 '핏줄'이란 얼마나 질기고 강한 힘인가를 느끼곤 한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양부모나 조부모의 충분한 사랑도 받고 자랐음에도 친부모에 대한 애끓는 그리움을 어쩌지 못해서 성인이 되어 그 행방을 추적하거나 찾아나서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것이다. 

 

 얌전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던 김명순씨(가명)의 경우도 그랬다. 그녀는 아버지 김남석(가명)과 어머니 유학진(가명) 사이에서 1950년 출생했는데, 아버지는 미처 혼인신고도 하기 전에 군에 입대해 6·25전쟁으로 전사하고 말았다. 홀로 남겨진 어머니는 시부모 밑에서 그녀를 기르다가 젊은 나이 때문인지 결국 조부모에게 그녀를 맡기고, 친정으로 돌아가 1960년 재혼을 했다.

 

 김씨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장남이 비록 결혼은 했으나 혼인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고, 새 삶을 찾아 떠난 며느리와 아무것도 모르는 손녀의 장래에 짐을 지울 수가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자신의 자식으로 호적(지금은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렸다. 김씨는 이런 사실도 모른 채, 태어나자마자 전사해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와 재혼한 어머니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만을 간직한 채, 조부모와 작은 아버지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 속에 자라났다.

 

 그러다 30세 되던 1980년, 결혼을 앞두고 호적을 챙겨 보게 된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할아버지가 아버지, 할머니가 어머니, 그리고 작은 아버지가 오빠로 기재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전사와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조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었음을 잘 알고 있는 그녀였지만, 막상 생부모가 아닌 조부모가 부모로 올라가 있는 호적을 보니, 마음 깊이 묻어둔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슴이 저려왔다.

 

 결혼과 함께 연이어 두 형제를 낳아 기르면서 더욱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가던 그녀는 마침내 1999년,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매번 미뤄두었던 '어머니 찾기'에 나섰고, 수소문 끝에 성남에 살고 있는 어머니와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었다. 이후 꾸준히 생모와 만남을 이어가며 못다 한 부녀의 정도 나누고 이복형제들과도 가까이 지내던 중, 지난 2007년 생모가 돌아가시면서 '이제는 어머니 얼굴도 볼 수 없으니 서류상으로라도 친부모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어도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절대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남은 생에서라도 제 부모님을 진짜 부모님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녀의 간절한 바람은 딱딱한 법조문에 익숙한 나의 마음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녀가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길은 비록 서류상이라 하더라도 결코 간단치는 않은 문제다. 김씨는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관계에서 출생했다. 따라서 가족관계등록부상  부모란을 정정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자의 친생부인(민법 제846조)', '친생부인의 소(「민법」 제847조)'를 제기할 수가 없다. 이 소송들은 부모가 혼인신고를 한 부부라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부모는 현재 모두 사망했기 때문에 '인지 청구(민법 제855조)'를 할 길도 없다. 부모가 사망한 경우에는 그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하는데 그 기간도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김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민법 865조의 규정에 따라 '제845조, 제846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제862조, 제863조의 규정에 의하여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로서 위에 열거한 사유 이외의 사유를 들어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부모와 부모 모두가 사망해 검사를 상대로 해야만 하는 이 소송 역시 사망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제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역시 그 기간도 지나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김씨는 대체 어떻게 자신의 생부모를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을까? 지금부터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의 의의와 성질, 친생자관계를 형성하거나 소멸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유사한 소에 대해 살펴보면서 그 방법을 함께 찾아가 보자.

 

1.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

 

1)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의 의의와 성질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는 법원에 의한 부의 결정(「민법」 제845조), 자의 친생부인(민법 제846조, 제848조, 제850조, 제851조), 인지에 대한 이의(민법 제862조), 인지청구(민법 제863조) 및 인지의 무효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사유를 원인으로 하여 친생자관계의 존재, 또는 부존재의 확인을 구하는 소이다(민법 제865조).

 

 인지의 무효나 인지에 대한 이의는 인지신고에 의해 발생된 신분관계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 인지신고가 아니라, 출생신고에 의해 가족관계등록부상 등재된 친자관계를 다투기 위해서는 그 출생신고에 인지로서의 효력이 인정되더라도 인지에 대한 이의나 '인지무효의 소'를 제기할 것이 아니라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한편, 혼인 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하여 부의 친생자로 추정되는 자(민법 제844조)와의 친생자관계를 부정하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하여야 한다. 다만, 친생자 추정을 받는 기간 중에 출생한 자라도 동거하지 않아 아내가 남편의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경우에는 자가 부의 친생자로 추정되지 않으므로 부는 '친생부인의 소'가 아니라, 자와의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한 경우 부적법한 소라도 가정법원이 이를 간과한 채 그 청구를 받아들여 부와 자 사이에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선고하고, 그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는 그 판결은 당연 무효가 아니고 대세효도 있으므로 친생추정의 효과는 소멸하게 된다.

 

 이와 같이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는 인지에 대한 이의나 인지의 무효, 친생부인의 소와의 관계에서 보충적인 성질을 가지지만, 일단 그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는 인지나 친생추정 등에 의한 신분관계가 부정되게 되므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친생자관계 중 모자관계는 기아(棄兒)와 같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산에 의해 당연히, 자연적으로 형성됨에 비해 부자관계는 혼인 중에 포태되어 부의 친생자로 추정 받거나, 법원에 의한 부의 결정, 인지 등의 법률요건이 갖추어진 경우에야 비로소 형성된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지 일단 친생자관계 형성의 효력이 발생된 이후에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신분관계의 존부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그와 같은 친생자관계 형성의 원인이 된 법률요건 자체가 아니라 현재 형성되어 있는 신분관계인 친생자 관계를 다투는 자가 있는 때에는 판결을 통해 친생자관계의 존부를 대세적으로 확인, 확정할 필요가 있다.

 

 또, 상속과 관련된 가족관계에서 실제와 다른 기재가 이루어져 있는 때에는 '친족상속법' 상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가족관계등록법' 제104조에 의해 정정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친생자관계의 존부에 관해 다툼이 없더라도 기재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친생자관계존부의 확정판결'이 필요하다.

 

다만,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가 잘못되어 있는 경우에도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 기재와 같은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판결을 받아 기재를 말소한 후, 진정한 부 또는 모가 진실한 신분관계에 맞춰 새로이 자의 출생신고를 하거나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의 방법으로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어서 친생자관계 존재확인은 그 실익이 없거나 확인의 이익이 없는 경우가 많다.

 

 

2) 정당한 당사자

 

① 원고 적격

 

 민법 제865조 제1항에 따르면, 법원에 의한 부의 결정, 자의 친생부인, 인지에 대한 이의, 인지청구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자는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부를 정하는 소는 당사자가, 자의 친생부인의 소는 부・후견인・유언집행자・직계존속이나 직계비속 등이, 인지에 대한 이의의 소는 자와 기타 이해관계인이, 인지청구의 소는 자와 그 직계비속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각각 소를 제기할 수 있으므로 결국 '이해관계인은 누구나'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셈이다.

 

그러나 여기의 이해관계인은 친생자관계존부의 확정판결에 의해 특정한 권리를 얻게 되거나 특정한 의무를 면하게 되는 등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를 가리킨다.

 

② 피고 적격

 

 가족관계등록부 기재 상 친생자관계가 있는 일방의 당사자가 소를 제기할 때에는 타방의 당사자를 상대방으로 하고(가사소송법 제28조, 동법 제24조 각 참조), 제3자가 소를 제기할 때에는 가족관계등록부 기재 상 친생자관계가 있는 당사자 쌍방을 상대방으로 한다(가사소송법 제24조 제2항). 여기에서 친생자관계가 있는 당사자의 일방, 또는 쌍방이라는 것은 부자간에 있어서는 그 부와 자, 모자간에 있어서는 그 모와 자를 가리키고, 부모와 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실무상 자가 부모를 공동 피고로 하여 그 친생자관계부존재의 확인을 소구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부에 대한 부자관계의 부존재확인청구와 모에 대한 모자관계의 부존재확인청구가 단순이 주관적 및 객관적으로 병합된 것일 뿐, 모가 필요적 공동소송인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한다.

 

부나 모가 여러 명의 자를 공동피고로 하여 소를 제기한 경우, 또는 제3자가 부모 및 자를 공동피고로 하여 소를 제기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이 경우 공동 피고로 된 부와 자, 또는 모와 자는 각각 필요적 공동소송인이 된다.

 

 친생자관계의 일방 당사자가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 타방이 사망한 때에는 검사를 상대방으로 한다. 제3자가 소를 제기하는 경우에 친생자관계의 일방 당사자가 사망한 때에는 생존한 타방 당사자를 상대방으로 하고, 친생자관계의 당사자 쌍방이 모두 사망한 때에는 검사를 상대방으로 한다(가사소송법 제24조 제2, 3항).

 

따라서 검사는 피고적격을 가지는 자 전원이 사망한 경우에 한해 보충적으로 피고적격을 가지게 된다. 피고적격을 가지는 당사자가 사망하여 검사를 피고로 하는 경우에는 그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2년 이내에 소를 제기해야 한다(민법 제865조 제2항). 이는 제척기간이다.

 

2.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와 유사한 소송

 

1) 친생부인의 소(「민법」 제847조)

 

 친생부인의 소는 자가 혼인성립의 날로부터 200일 후, 또는 혼인관계 종료의 날로부터 300일 내에 출생하여 부(남편)의 친생자로 추정 받으나 실제로는 친생자가 아닌 경우에 부(남편) 또는 처가 다른 일방 또는 자를 상대로 하여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제기하는 소를 말한다. 위의 경우에 상대방이 될 자가 모두 사망한 때에는 그 사망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검사를 상대로 하여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다.

 

2) 인지(민법 제855조 이하)

 

 법률상의 모자관계는 분만에 의해 당연히 발생된다. 그러나 법률상 부자관계는 특별한 법적 요건을 필요로 한다. 혼인 중의 자는 부의 친생자로 추정되지만(민법 제844조), 친생추정을 받지 못하는 자, 즉, 혼인 외의 자는 부모가 나중에 혼인하거나 부가 혼인중의 자로 출생신고를 하는 방법, 부가 자유로운 의사로 친생자임을 인정하는 임의인지 방법, 부의 의사에 불구하고 그 친생자임을 인정할 것을 가정법원에 소구하여 그 확정판결에 의해 친생자로 인정받는 강제인지의 방법이 있다. 즉, 부자관계의 형성을 목적으로 임의 또는 소를 제기하여 부자관계를 형성시키는 방법이 인지인 것이다.

 

3) 인지의 무효와 취소

 

 인지의 무효란 혼인 외의 자에 대해 법률상의 부모자관계가 형성된 것으로 가족관계등록부 기재가 이루어져 있으나 그 성립과정의 하자로 인해 법률상의 부모자관계 형성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혼인 외의 자에 대해 부모가 인지했으나 하자로 인해 효력이 없는 경우, 명문의 규정은 없으나 가정법원에 인지가 무효임을 확인하는 소를 제기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인지의 취소는 임의인지가 사기나 강박, 또는 중대한 착오로 인한 것임을 이유로 이를 취소하는 것을 말한다(민법 제861조). 

 

작은아버지가 김씨 상대로 소송, 승소해 생부모 등재

 

 '당사자가 사망한 날의 2년 이내에 해야 한다'는 소 제기의 체적기간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었던 김씨는 (상속에) 이해관계가 있는 작은 아버지가 소를 제기함으로써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오빠로 되어 있는 작은아버지가 김씨를 상대로 '소(訴) 외 망(亡) 조부모와는 친생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소와 '소(訴) 외 망 친부모와는 친생자관계가 존재한다'는 소를 각각 제기한 것이다.

 

 작은 아버지는 제기한 각각의 소에서 모두 승소했다. 이후 김씨는 가정법원의 판결문을 첨부해 자신의 제적과 가족관계등록부상 부모란을 정정해 달라는 신청을 했고, 마침내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신의 생부모인 김남석, 유학진의 이름을 재적등본과 가족관계등록부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모든 게 제자리를 잡았어요. 친부모도 찾고 나도 찾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친생자관계존부확인의 소도 그렇고, 수많은 제적과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는 일은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매우 번거롭고 힘겨운 과정이다. 그 지난한 기간 동안 지칠 법도 하건만, 자신의 친부모가 등재된 가족관계등록부를 꼬옥 끌어안은 김씨의 눈에는 기쁨의 웃음과 회한의 눈물이 번갈아 지나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위 글은 법무사인 필자가 직접 현장에서 수임했던 실제 사건을 각색,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글로서 <법무사저널> 2009년 11, 1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가족관계법,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호적 정정, #친생자존부확인, #법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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