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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을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궁금해 했다. 왜 저 집 마당에는 돌탑이 수백 개나 될까.  왜 그 집 할아버지(노승정, 80세)는 항상 부지런히 꽃을 가꾸고, 시간만 나면 돌탑을 쌓을까. 

드디어 사람들의 궁금증을 안고 지난 5일, 그 집을 찾았다. 마당에 돌탑이 많다는 외관 못지않게 거실도 특이하다. 거실엔 잘 차려진 제단이 있다. 그렇다면 무속인의 집? 하지만 이런 선입견을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마당에 수백 개의 돌탑을 쌓은 만큼이나 할아버지 집의 거실 또한 특이했다. 할아버지 집 거실엔 이렇게 '천제당'이 꾸며져 있고, 매일 새벽 1~2시면 사방의 하늘을 향해 절을 한단다. 순전히 자기 수련을 위한 것이라고.
▲ 천제당 마당에 수백 개의 돌탑을 쌓은 만큼이나 할아버지 집의 거실 또한 특이했다. 할아버지 집 거실엔 이렇게 '천제당'이 꾸며져 있고, 매일 새벽 1~2시면 사방의 하늘을 향해 절을 한단다. 순전히 자기 수련을 위한 것이라고.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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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출가해서 20세에 주지승이 되다

집 안팎의 외형만큼이나 그가 풀어 놓은 인생 스토리는 더욱 기막히다. 14~16세 때 살생의 아픔을 고민하다가 17세에 충남 마곡사에 출가한 것은 그의 기막힌 사연의 서곡. 법명은 '법천'스님. 당시 마곡사 승려들 사이엔 "마곡사에 천재가 들어 왔구먼"이라고 입소문이 돌 지경.

그런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20세에 충남 보령군에 위치한 중대사에 주지승으로 발령받은 것. 사람들은 그를 일러 '아기 주지스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간 중대사는 오래된 절로서 국보급이었다. 하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대웅전과 다른 전들이 다 쓰러져가고 있었다. 법천 스님에게 떨어진 사명은 그 절을 중수하는 것.

그는 먼저 보령군수와 경찰서장을 만나 '절 중수'에 대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다. 대대적으로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어 팔아 절 중수 자금을 마련하는 일도 시작했다. 그 일로 인해서 도청으로부터 제재를 당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의 결연한 의지로 그 일을 일구어 나갔다. 비록 완공은 보지 못했지만, 3년의 주지승 생활을 남김없이 불태우며 절을 중수했다.

마당에 있는 돌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 그는 17세에 출가해 20세에 충남 중대사의 주지스님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 돌탑 마당에 있는 돌탑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할아버지. 그는 17세에 출가해 20세에 충남 중대사의 주지스님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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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생활에 환멸 느껴 승복을 벗다

중대사를 나온 그에게 떨어진 사명은 충남 신원사 주지가 되는 일이었다. 승려들만 해도 400여 명이나 되는 큰 사찰에 23세의 주지승이 발령받는 일. 입후보들 중에 가장 많은 표를 받은 법천 스님은 갑자기 불꽃같은 선언을 한다. 절의 권력을 두고 승려들끼리 서로 다투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더욱 그 마음을 굳혔던 것.

"더 이상 내 양심으로는 승려로 살아갈 수 없다. 부처님의 이름으로 중생들이 바친 시주와 불전으로 살아가는 승려로는 더 이상 살지 않겠다. 땀 흘려 일하고 살겠다."

그러고는 신원사 주지를 고사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승복을 벗었다. 승려들 사이에선 소위 잘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떨쳐 버렸다. 속세에서 절로 출가하더니, 이젠 절에서 속세로 출가한 꼴이다.

그는 승려 생활을 접고 난 후 그 스스로 땀을 흘려 소득을 벌기 위해 일선 직업 전선에 나섰다. 처음엔 경찰(경찰을 감찰하는 감찰)로도, 화원을 통해 꽃장사로도, 꽃다발을 만들어 파는 일 등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할아버지의 시골집은 입구에서부터 돌탑이 하나 가득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부분 뿐만 아니라 집 뒤와 마당 저 편 등 공간이 있는 곳은 모두 돌탑 투성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특유의 방법으로 꽃밭도 여러군데나 만들어져 있다.
▲ 돌탑 마당 할아버지의 시골집은 입구에서부터 돌탑이 하나 가득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부분 뿐만 아니라 집 뒤와 마당 저 편 등 공간이 있는 곳은 모두 돌탑 투성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특유의 방법으로 꽃밭도 여러군데나 만들어져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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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탑은 돌단, 꽃밭은 화단

"불당에 부처가 있는 것이 아니지. 승복을 입고 수련한다고 해서 불도가 아니지. 불당이 아니라 개천이라도 마음이 있는 그 곳이 곳 불당이며, 승복을 안 입어도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곳 불도인 것을"

이런 평소 주관은 팔순이 된 지금, 안성 시골집 거실에 '천제당'을 만들게 했다. 새벽 1~2시면 '천제당(거실)'에서 하늘을 향해 절을 한다. 하루 3번 향불을 피운다. 이 '천제당'은 물론 신도를 모으거나 손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수련 장소라고.

이쯤 되니 돌탑과 꽃밭을 만드는 이유를 말해야겠다. 돌 하나 쌓을 때마다 마음을 쌓는 마음이라고. 꽃 하나 가꿀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가꾸는 마음이다. 그에겐 돌탑은 하늘을 향해 절을 하는 '돌단'이고, 꽃밭은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화단'인 셈이다. 다른 이들의 선입견처럼 보기 좋으라고 하는 것이 결코 아니란다. 

그는 사람들에게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 준 복(운명)은 불공을 드린다고 해서 바뀌지 않는 것이여. 그것도 모르고  잘 되게 해달라며 절에 가서 열심히 불공드리고 시주하고 불전을 드리는 것은 헛된 짓이란 말여. 모두 승려들 먹여 살리는 짓이여. 허허허허"

할아버지 집 거실에서 당신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환하게 웃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온화한 마을 할아버지였다.
▲ 웃음 할아버지 집 거실에서 당신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환하게 웃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온화한 마을 할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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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과감한 비판을 쏟아 놓지만, 그의 외모는 이웃 할아버지가 '딱'이다. 평소 시골집에서 돌을 쌓고, 꽃을 가꾸며 도를 닦은 결과이리라.


태그:#돌탑할아버지, #주지승, #노승정, #안성, #천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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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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